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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62화 (162/200)

제162화

샤훌리트의 마왕성 안.

왕좌가 있는 대복도 정중앙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한 명의 미남자가 있었다.

마왕, 샤훌리트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찾아왔군, 르기에.”

르기에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제 부하인 카르스트가 카인의 맹세까지 한 마당에, 어찌 그를 버려두고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보다 부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하군.”

“휘하에 몇 명 없어서 더 각별한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풋… 근데 카르스트는 어디에 있나?”

비웃으며 묻는 샤훌리트의 물음에 르기에는 태연하게 둘러댔다.

“현재 엘도르에 몰래 잠입해서 지구에 대한 정보를 더 수집하는 중입니다. 아마 곧 마왕님께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흠.”

샤훌리트는 르기에를 바라보았다.

그의 온몸에서 풍기고 있는 강렬한 마기. 그것은, 샤훌리트 본인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괜히 천하의 투할 사단의 2인자였던 게 아니었다. 당시에도 르기에만큼은 어지간한 마왕들과 견줄 만큼 강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이건 세간의 평가 그 이상이었다.

“정말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인가? 르기에?”

그래서 샤훌리트는 또 한 번 물었다. 저렇게 강한 놈이 정말 내 밑으로 들어온다고?

르기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원하시면 카인의 맹세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샤훌리트는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의 각오라…. 이전에 카르스트가 했던 말대로, 생각보다 자신과 함께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조금 의외로군. 카르스트의 말이 전부 사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며칠 전, 자신의 눈앞에 무릎을 꿇었었던 카르스트는 지구에 대한 핵심 정보를 가지고 샤훌리트에게 딜을 했었다.

- 엘도르 대륙에 지구인이 넘어왔다.

- 그들과 치고받고 싸우면서 얻은 정보가 많다.

- 만약 자신을 풀어준다면 르기에와 함께 샤훌리트의 밑에 들어가 지구를 침략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설득을 샤훌리트는 믿지 않았다. 보통 주인을 잃고 버려졌던 마족들이 살아남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내뱉는 모습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카인의 맹세까지 받은 뒤 돌려보냈는데… 정말로 르기에를 여기로 불러온 것이다.

“그만큼 저의 복수심은 강합니다. 이 행성 내 동족들한테 패배한 것도 아니고, 저 하찮은 다른 차원의 나약한 생명체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굴욕적으로 패배했습니다. 마왕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복수심을 불태우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흠.”

르기에의 말은 샤훌리트가 듣기에도 꽤 설득력이 있었다.

천하의 데르툴족이 타 차원을 정복하러 갔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실패했다? 아마 모든 데르툴들의 조롱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르기에를 바라보는 부하들의 눈빛들도 그래 보였다.

“결국, 나의 힘을 빌려 지구인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흠… 좋아.”

샤훌리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눈에 보일 만큼 강렬한 르기에의 기운. 그리고 엘도르 정복 실패를 통해 얻은 지구인들에 대한 중요 정보까지. 이 두 가지만 봐도 안 받아들이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이제부터 너는 내 부하다, 르기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나의 주인님.”

바로 허리를 숙이며 무릎을 꿇고 부복하려던 르기에를, 샤훌리트는 손을 들어 말렸다.

“그 전에, 카인의 맹세는 해야지.”

“……!”

살짝 눈이 커지는 르기에를 샤훌리트는 씨익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내가 평소에 의심이 많아서 말이야. 설마 못 하겠다고 번복하진 않겠지?”

잠시 두 눈을 마주 바라보는 둘.

르기에는 이내 다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나의 주인님.”

르기에는 다시 꼿꼿이 선 후,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을 했다.

“나, 르기에는 모든 것을 걸고 다짐합니다. 앞으로 나의 주인님, 샤훌리트의 명령에 절대복종할 것이며, 평생 목숨을 바쳐 당신을 섬길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동시에 르기에의 온몸이 까만 룬어 같은 것으로 순식간에 뒤덮였다가 바로 사라졌다. ‘카인의 맹세’가 이뤄졌다는 증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샤훌리트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좋아. 앞으로 너의 자리는 내 오른쪽 옆이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주인님.”

르기에는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샤훌리트의 바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보통 마왕의 오른쪽에는 부하들 중 가장 강한 자. 즉, 2인자가 선다. 지금 르기에는 샤훌리트의 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2인자가 되는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이다.

“…….”

“…….”

걸어가는 르기에의 모습을 복도에 정렬해 선 최상위 귀족들 모두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차마 반대는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반대하기엔, 르기에의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마기가 엄청나게 강했던 것이다. 정말 분하지만, 샤훌리트 휘하의 최상위 귀족 중 르기에의 절반만큼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이조차 한 명도 없는 게 현실이다.

“…아, 주인님.”

오른쪽에 선 르기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제 부하인 카르스트 등이 엘도르 대륙에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굉장히 놀랄 만한 정보를 얻어서 돌아왔다고 방금 통신 마법으로 말해 왔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자리에 차원 이동문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지.”

샤훌리트는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카르스트, 르기에 둘 다 자신에게 카인의 맹세까지 한 마당. 이제 배신의 변수는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허락을 받은 르기에는 다시 복도 중앙에 서서 차원의 틈을 열었다. 그러자, 곧바로 한 명의 마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

등장한 이를 본 샤훌리트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는 카르스트도 아니고, 나퓰라, 보코르 같은 다른 르기에의 부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샤훌리트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인물이었다.

“테, 텐자흔?!”

또 다른 마왕, 텐자흔이 얼굴 가득 사악한 미소를 그렸다.

“너를 잡아먹으러 왔다, 샤훌리트!”

동시에 폭발적인 마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차원의 틈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텐자흔의 부하들의 모습. 누가 봐도 샤훌리트의 세력을 장악하러 온 모습이었다.

“마, 막아라!”

샤훌리트 외치면서 반사적으로 다급하게 마기를 뿜어내려 했다.

하지만,

퍼어엉!

“커헉!”

옆구리 쪽에서 들려온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마기를 끌어 올리기도 전에 샤훌리트는 피를 토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옆구리에 난 커다란 구멍에서 검은 피를 철철 흘리는 샤훌리트의 모습. 쉽사리 일어나지도 못하는 걸 보니, 제대로 치명타를 맞은 듯 보였다.

“쿨럭! 이, 이게 어떻게…!”

샤훌리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공격한 르기에를 바라보았다.

분명 ‘카인의 맹세’로 자신과 주종의 관계를 맺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신을 공격한 그 순간 르기에는 맹세를 어긴 죄로 바로 소멸당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 거지?

“그러니 네가 이렇게 멍청하게 당한 거다.”

말하면서 다가온 텐자흔은, 오른손을 편 후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서 있는 힘껏 샤훌리트의 이마 쪽으로 내리꽂았다.

샤훌리트는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라 텐자흔의 그 한 수조차 막아낼 수 없었다.

푹!

“억…!”

그의 뇌핵에 텐자흔의 손톱이 꽂혀버렸고, 동시에 샤훌리트의 모든 행동이 정지되었다.

그의 귀에 텐자흔의 말이 이어져 들려왔다.

“내 능력이 뭔지 잊었나? 난 모든 걸 과거로 돌릴 수 있어. 르기에 역시 카인의 맹세를 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릴 수 있지.”

“!!”

눈을 부릅뜬 샤훌리트.

모든 생명체의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 있는 텐자흔. ‘시간을 돌리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지금 차원 이동으로 넘어오자마자 르기에의 시간을 ‘카인의 맹세’ 이전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르기에는 샤훌리트와 어떠한 관계도 아닌 상태다. 주종 관계도 아니라는 소리다.

“덕분에 아주 좋은 양분을 손에 넣게 되었군. 크하하하!”

“아, 안 돼…!”

최후를 직감한 샤훌리트가 마지막 저항을 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뇌핵에 손톱을 꽂아 넣은 텐자흔이 그대로 샤훌리트의 체내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흐어어어…!”

김빠지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샤훌리트의 온몸이 공기 빠지는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고, 이윽고 껍데기마저 완전히 텐자흔의 몸에 흡수되어 버렸다.

이제 우주 어디에도 샤훌리트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흐흐흐… 흐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야!”

온몸에 넘쳐나는 마기를 만끽한 텐자흔이 광소를 터뜨렸다.

대충 봐도 아까 전보다 두 배 가까이 강해진 게 느껴지는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옆의 르기에가 공손하게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텐자흔은 신뢰감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로 르기에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주 훌륭한 계획이었다. 덕분에 완벽하게 샤훌리트의 세력을 손에 얻게 되었어!”

“하지만 아직 정리할 잔챙이들이 좀 남아 있습니다.”

르기에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대복도에 서 있던 샤훌리트의 휘하 최상위 귀족들이, 차원의 틈을 열고 넘어오는 텐자흔의 부하들과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텐자흔은 다시 투지를 불태웠다.

“네놈들도 모조리 흡수해주마! 크하하하!”

광소하면서 전력을 다해 샤훌리트의 부하들을 향해 달려드는 텐자흔. 그의 강대해진 마기의 위력은 어마어마해서, 무려 최상위 귀족이나 되는 것들이 단 한 수조차 버티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은 채로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르기에는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러면 무난하게 샤훌리트의 세력도 정벌할 수 있다.’

평소에도 샤훌리트의 세력은 텐자흔 쪽보다 약하다고 평가받았었다. 이 와중에 샤훌리트마저 소멸당해 버렸으니, 남은 데르툴족으로는 절대로 텐자흔 세력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데르툴 행성에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건 다 얻었다.’

우선 샤훌리트 세력을 장악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구 쪽의 좌표를 바로 얻을 수 있다. 마법사 몇 명만 고문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텐자흔이라는 든든한 세력을 등에 업었다. 이번 작전의 성공을 통해 르기에는 텐자흔의 신임을 제대로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향후 르기에가 원하는 대로 지구 정복 계획 역시 흔쾌히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샤훌리트의 세력까지 흡수해서 전력 전체가 배가 되었다. 몇 세력만 더 이렇게 잡아먹으면, 전성기 투할 그 이상의 전력으로 만드는 것도 꿈이 아니다.

‘이제 몇 걸음 안 남았다.’

르기에는 다시금 마음속으로 복수의 불길을 불태웠다.

그러는 그의 머릿속엔 또다시 로한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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