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그 연예인들은 현재 촬영 카메라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예정에 없던 특별 편성 프로그램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재석이고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 MC 소리를 듣고 있는 김재석이 먼저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러자 이어서 양옆의 연예인들도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왕호동입니다.”
“진동엽입니다.”
나머지 둘 역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MC였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MC 5명을 대보시오’라는 질문을 들으면 95% 이상은 반드시 이 세 사람을 호명할 것이리라.
김재석이 진행을 이어갔다.
“저희 셋이 이렇게 한 프로에 뭉친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요?”
“뭉친 적이… 있던가요?”
“처음 같은데요? 하하하.”
실제로 셋은 오늘 처음 뭉쳤다. 셋 다 워낙 거물급 MC이니만큼 주로 혼자서 프로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출연료도 굉장히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따로 셋이서 뭉친 경우도 신인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저희도 신기하지만, 여러분께서도 저희 셋이 한 화면에 나오는 광경은 시상식을 제외하면 처음 보실 텐데요. 그렇다면 왜 저희가 뭉치게 되었느냐? 저길 보시죠.”
김재석이 손가락을 포탈 쪽으로 향했고, 카메라도 그쪽으로 돌아갔다.
로한, 강동혁을 비롯해 각국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정렬해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이 화면 안에 들어왔다.
“보이십니까?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태어나서 한 번 만나기도 힘든 대단하신 분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와, 다시 봐도 어이가 없네.”
“이건 영화로 나와도 욕먹을 만한 장면 아니야?”
사실 로한 정도는 되어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보다 한 단계 윗급에 속하니까 저렇게 태평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거지, 당장 국민 MC인 김재석만 해도 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극도로 어렵게 느껴질 정도다.
저 중 한 명만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하더라도 한 시간 특집으로 방영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엄청난 장면이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에 사이보그 부대장인 로한 님께서 연설과 함께 그의 고향, 엘도르 대륙에 가서 협상할 인원들을 따로 모집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있는 분들이 바로 엘도르 대륙으로 이동할 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거기 합류하게 되었다 이겁니다!”
“고작 예능인일 뿐인 우리가 왜 여기 합류하게 되었을까요~?”
역시 다들 대단한 MC다 보니 진행 쿵짝이 잘 맞았다. 그래서 김재석은 평소보다도 더 편하게 진행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도르 대륙의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로한 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고심 끝에, 저희 세 명이 엘도르 대륙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하셨습니다!”
“캬~”
“이건 박수 쳐야 돼.”
근처 스태프들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서로 감동받은 표정으로 한 번씩 껴안는 MC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가! 일반인의 신분으로 다른 차원에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다니!
이 순간만큼은 MC로 성공한 자기 자신들이 너무 대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 그래서 아예 예능 PD까지 데리고 온 거였어? 난 정부에서 직접 찍는 줄 알았는데.”
MC들의 말을 멀리서 듣던 로한이 그제야 깨달은 듯 물었다.
강동혁이 대답했다.
“정부에서 찍는 것보다, 국민들이 더 친숙하게 느끼는 스타 연예인들한테 맡기는 게 퀄리티는 훨씬 높을 테니까. 그리고 다들 베테랑들이라 딱히 논란될 만한 행동도 안 할 테고.”
“잘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고의 PD 중 한 명인 박태호가 지휘하는 촬영이라면, 엘도르 대륙의 아주 흥미롭고 신선하며 긍정적인 부분만 국민들께 보여주는 게 가능할 것이다.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때 앞에 서 있던 엘-카시안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후 그를 필두로 로한, 강동혁 등 일행들 전체가 호위 병력과 함께 포탈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MC들은 바짝 긴장했다.
“오! 들어간다.”
“우리가 제일 마지막인가?”
“저기 피디님. 우리 찍으면서 들어가도 된다고 했죠?”
김재석의 말에 카메라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박태호 피디. 안내에 잘 따르면서 안전 지역만 벗어나지 않으면, 24시간 내내 어떤 장면을 촬영해도 된다는 정부 측의 허락이 있었다.
그래서 MC들은 계속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천천히 포탈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최대한 긴장하는 듯한 연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엄청 긴장하는 중이었으니까.
곧 앞의 모든 일행들이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MC들 차례가 되었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나 포탈 처음 타보는데.”
“와, 씨. 긴장돼 미치겠다…!”
긴장감이 최대치까지 상승해버린 셋.
포탈 안으로 발을 디디는 그 순간, 순식간에 눈앞의 경치가 뒤바뀌었다.
형광등으로 밝았던 지하에서, 날씨 좋고 풍경 좋은 옥상으로 말이다.
“우와…!”
“엘도르 대륙이란 곳으로 이동한 거 맞지?”
“세상에…!”
MC들은 프로답게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동시에 카메라맨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찍는 것은 주변 풍경이었다.
과학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지구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들. 전쟁의 여파가 거의 없는 수준인 서쪽 숲 쪽에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과 그림으로 그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
“우와! 저거 뭐야?”
왕호동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로엘의 와이번 기사단이 있었다.
아로엘 영지민들 입장에서는 이제 전혀 신기하지 않은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지구인들의 눈에는 아니었다. 마치 판타지 세계에서 그대로 따온 듯한 와이번 기사단이 정찰하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카메라맨이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풍경을 찍었으니, 이제 옥상을 찍을 차례다.
“저들이 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인가 봐요!”
김재석이 가리키는 곳에는 연합군의 핵심 인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힉스 등 아로엘의 주요 관리는 물론이요, 윌리엄과 그의 아들인 클리프, 이안도 있었으며, 테르디아 국왕인 필리프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이종족 연합군의 핵심 인사들도 자리했다. 드워프, 엘프 등등의 족장들 말이다. 심지어 드래곤족도 모여서 딘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와, 판타지 영화에서 보던 엘프랑 드워프랑 똑같아… 응?”
감탄사를 연발하던 김재석은 갑자기 왕호동이 옆에서 툭툭 치는 것을 느꼈다.
왕호동과 그 옆의 진동엽까지 멍한 표정으로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것을 확인한 김재석은, 그 역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가 본 것은… 엄청난 미인이었다.
흔히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설정된 대륙 최고의 절세미인. 하지만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그 설정에 걸맞은 연예인을 섭외하진 못했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시청자들이 보기에 ‘절세미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저 성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여인은 그 ‘절세미인’이라는 단어에 유일하게 부합하는 존재였다.
“와….”
“…….”
“꿀꺽.”
오죽하면 방송 괴물들이라 불리는 세 베테랑 MC가 멘트도 잊은 채 멍하니 한참 동안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정작 피디인 박태호도 차마 그들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전부 저 여성분 찍어.”
오죽하면 이런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카메라맨들은 옳다구나 하고 온 정성을 다해 미인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전신 샷부터 얼굴 확대 샷까지, 모든 구도로 그녀의 행동 하나,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 절세의 미녀, 에텔드리다는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건 채로 로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금방 돌아오셨네요?”
“저, 약속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모르셨습니까?”
“푸훗… 저게 지난번에 말했던 카메라라는 건가요?”
에텔드리다가 촬영 팀 쪽을 바라보면서 물었고,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표정 관리 잘하라고 미리 당부했던 겁니다. 저 기계에 담긴 영상은 평생 남거든요. 그리고 지구인들은 평민들에게도 영상을 전부 공유하는 편이고요.”
“아…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성녀님처럼 이미지가 생명인 분께는 더더욱 그렇죠. 손이나 한번 흔들어 주세요.”
로한의 말대로 에텔드리다는 환한 얼굴로 카메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촬영 팀 전체에서 “오오오!”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봤어?! 날 보고 웃었어!”
“뭔 소리야? 나한테 했거든?”
“정신 차려라, 이 유부남들아. 쯧쯧쯧.”
MC들 역시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이미 로한과 에텔드리다는 그들에게서 관심을 뗀 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전쟁은 마무리됐나요?”
“네. 테르디아의 헤이즈 장군이 도미티아누 폴리스를 점령하는 것으로 끝났어요.”
“역시, 헤이즈가 제일 빨랐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양보하기도 했고요.”
다른 연합 국가들도 이번 신마대전의 주인공이 테르디아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진군 속도를 늦춰 테르디아 군대가 먼저 수도를 점령하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점령한 오스크만 땅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여섯 나라가 골고루 나눠서 가지기로 했어요.”
“아… 그러면 오스크만이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 속에서만 남게 되겠군요.”
“그래야 더 이상의 신마대전이 없을 테니까요.”
에텔드리다의 말에 로한도 동의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엘도르 대륙 전체를 전쟁으로 몰고 간 오스크만은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 인구 대부분이 데르마로 변해 죽어버린 터라 더는 국가의 구실을 못 하는 상태기도 했지만 말이다.
“윌리엄 공작님.”
로한이 옆에 서 있던 윌리엄을 불렀다.
“전에 제가 말씀드린 건 논의를 하셨습니까?”
그의 질문에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군 모두는 데르툴 행성을 공격하는 데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네.”
“오! 다들 동의하던가요?”
“다들 마족들에게 당한 게 많았는지, 반대표가 하나도 없었네. 특히 르기에 등이 도망간 것이 다들 마음에 걸린 모양이야. 나도 마찬가지일세.”
“다행입니다.”
“엘-카시안 님의 말을 방금 들었는데, 지구 쪽은 아직 지지부진하다며?”
이번엔 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구 쪽은 간신히 얻은 지금의 평화를 또다시 전쟁으로 깨고 싶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설득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입니다. 엘도르 대륙 혼자만의 힘으로도 한 명의 마왕 세력을 막아내기가 버거웠는데, 어떻게 다른 차원의 도움 없이 마족들의 본거지를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건, 로한조차 데르툴 행성 내의 전력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구에서 전쟁이 끝날 당시 반격할 만한 전력이 아닌 상태였기에 한 명도 데르툴 행성으로 넘어가질 못했었다.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다면, 어쩌면 데르툴 행성 내에는 투할 세력이 최소 10군데 이상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구인들의 마음을 돌릴 생각인가?”
윌리엄의 물음에 로한이 되물었다.
“혹시 두 분, 연기 쪽에 재능이 있으십니까?”
“연기…?”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요. 근데 왜 그걸 묻죠?”
로한은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