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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56화 (156/200)

제156화

“어떡하죠?”

옆에서 에텔드리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녀 역시 르기에 등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죄송해요. 설마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도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아로엘로 갔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너무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불씨가 남아서 조금 꺼림직할 뿐이지, 고작 네 명 정도 되는 최상위 데르툴로는 이제 더 이상 어쩔 방법이 없어요.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겠죠…?”

“그럼요.”

로한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에텔드리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기왕이면 좋게 생각하죠. 최상위 마족 놈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 눈앞의 마족 부대를 빨리 밀어버릴 수 있다고요.”

“아, 그렇겠네요.”

“전원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세요.”

“공격? 진군하란 말씀이세요?”

놀란 눈의 에텔드리다에게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전쟁을 끝내야죠.”

동시에 로한의 바로 등 뒤가 일렁이더니, 곧 거대한 세이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버를 매만지면서 로한은 혼잣말을 했다.

“그새 완벽하게 회복했군.”

세이버는 사이보그들처럼, 에너지원을 이용해서 자체 회복을 할 수 있다. 고작 한 시간 정도 쉬었을 뿐인데, 그새 투할과의 전투로 망가졌던 부분이 전부 멀쩡해진 모습이었다.

로한은 바로 세이버에 탑승한 후 가동을 시작했다.

“자, 그럼 모두 다 따라와!”

외치는 로한의 목소리에는 전혀 부담감이 없었다.

마왕도 없겠다, 최상위 마족도 없겠다, 심지어 다른 변수도 전혀 안 보이겠다. 이러면 이제 양 떼 사이에 풀어놓은 늑대처럼 마음껏 날뛸 수 있다.

로한은 세이버를 몰고 그대로 성벽 밖으로 몸을 날렸다. 쾅! 하고 충격음이 들려오면서 세이버가 부딪친 쪽의 마족 떨거지들이 한꺼번에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저희도 출진하겠습니다, 성녀님.”

뒤이어 피롤린 등 이전에 생체 휴머노이드였던 이들도 일제히 로한을 따라 성벽을 뛰어내렸다. 이후 마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그들의 무위는, 생체 휴머노이드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1분도 안 되어서 눈앞의 대부분의 마족 부대들을 삭제시켜 버리는 로한 등의 멤버들.

그 모습에 에텔드리다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로한 님을 따라, 전군 진군하세요!”

“와아아아!!”

높은 사기가 느껴지는 함성과 함께, 굳게 닫혔던 성문이 처음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웅크리고 있던 성기사 등의 아르베니아 병력들이 일제히 마족 부대들을 향해 돌격했다.

* * *

오스크만 제국의 황성, 도미티아누는 신마대전이 시작한 이래로 며칠 내내 텅 비어 있었다. 안의 관리들 모두가 국경선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차원 이동해 온 네 명의 최상위 데르툴 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말없이 침묵하고 있는 넷.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침묵을 먼저 깨는 목소리가 있었다.

르기에였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주인님은 소멸당했고, 도와주러 온 아스모데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으며, 마왕성마저 무너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지휘관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하급 데르툴족과 데르마들뿐이죠. 반면, 연합군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로한 등은 여전히 건재하고요.”

“…….”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신마대전은 끝났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이 대륙 정벌에 실패한 겁니다.”

“그래서?”

카르스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미 그들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여기 넷 중 아무도 없다. 굳이 르기에의 입으로 듣지 않아도 말이다.

“이대로 포기하자고? 데르툴족으로 태어나서 이런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그냥 등을 돌리란 말인가!”

“누가 포기하자고 했습니까?”

반문하는 르기에의 목소리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흥분한 카르스트와는 달리 말이다.

“저도 데르툴족입니다. 이대로 빈손으로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실패했다고 했나!”

“마왕 ‘투할’이 실패한 거지, 우리가 실패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

카르스트가 살짝 놀랐다.

그 누구보다 깍듯한 존칭을 붙이던 르기에의 입에서, 처음으로 존칭 없는 ‘투할’ 두 글자만 튀어나왔다.

“투할의 계획은 완벽했지만, 한 가지를 간과했습니다. 데르툴족이 차원을 넘어서 침략했으면, 다른 차원에서 지원군이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었어야 했습니다.”

“로한이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확실한가?”

르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로엘의 본성 옥상 위에, 다른 차원과 연결되는 거대한 포탈이 생성되어 있다는 보고가 최근에 들어왔었습니다. 마왕성을 기습한 사이보그들이나, 다른 국가에 지원을 온 최신식 기갑 부대도 모두 그 포탈에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건가!”

“말해도 이미 늦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투할이 알고 있었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어요.”

냉정한 대답을 한 르기에는, 옆에 놓인 와인 병을 집어 호화로운 황금 잔에 따른 뒤 입에 가져갔다.

이후 말을 이었다.

“우리는 투할이 저지른 실수를 잘 생각해서 계획을 짜야 합니다. 저 사이보그들이 넘어온 차원에 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다시 전쟁을 벌여봤자 결과는 똑같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뭐 좋은 계획이라도 있나 보지?”

“있긴 합니다.”

“그게 뭔가?”

“그 전에 일단 사이보그들이 넘어온 차원에 대한 정보부터 알아내야죠. 그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계획은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지금 우리더러 정보를 조사해 오라는 건가?”

계속해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카르스트. 하지만 르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대답을 이었다.

“아뇨. 이건 제가 조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푹 쉬고 계십시오. 피로도 쌓였을 테고, 부상 부위도 회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답한 뒤 다시 술잔을 집어 드는 르기에.

그 모습에 카르스트는 또 딴지를 걸었다.

“그런데 네가 왜 투할 님의 황좌에 앉아 있는 거지?”

“이제는 빈자리니까요.”

르기에는 능구렁이처럼 대답했다.

“아, 당신들 위에 서고 싶어서 여기 앉아 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의자가 보이길래 앉았을 뿐이죠.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자리를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카르스트 님.”

“…….”

“그게 아니라면 제가 계속 앉아 있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죠? 후후후….”

낮게 웃으면서 잔을 입에 가져가는 르기에.

남은 셋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도, 뭐라 반박하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 * *

신마대전이 시작된 지 3일이 지났다.

고작 3일이다. 시간을 계산하면 2일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동안 일어난 일만 보면 최소 보름은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3일 만에 신마대전의 승패는 거의 정해졌다.

“이겼다!”

“마족을 물리쳤다!”

“승전보를 울려라!”

“만세! 와하하하!”

오스크만과 국경선을 대고 있는 노르토반, 테르디아, 아르베니아 세 나라의 성벽 위에서 거의 동시라고 할 타이밍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전투 결과는 대승.

테르디아, 아르베니아는 최종 방어선을 내어주지 않고 마족 군단을 괴멸시켰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노르토반도 결국 끝까지 왕성을 지켜내면서 적군을 물리쳤다.

이제 더 이상 연합군을 위협할 수 있는 마족 부대는 없었다. 오스크만 내에 남아 있는 병력들은 완전 소수에 불과해, 다 뭉쳐도 1개 사단도 되지 않는다.

비록 최상위 데르툴 네 명이 도망친 것이 께름칙하긴 하지만, 고작 네 명이서 뭘 어쩔 수 있겠는가? 그들만으로는 현재 멀쩡한 드래곤족을 상대하는 것조차 벅차다.

이제 남은 것은, 아틸러스 산맥을 넘어 여유롭게 오스크만의 수도, 도미티아누 폴리스까지 진격하는 일만 남았다.

그날 밤, 모든 국경선 근처 부대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두 달 가까이 모든 생명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족을 상대로 한 대승. 심지어 마왕들까지 죽은 마당이라, 반격의 걱정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상황.

살아남은 모든 이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신마대전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죽어 나간 전우들을 기리고, 잊기 위해서.

수뇌부들도 따로 잔치를 가졌다. 각 나라의 총사령관을 중심으로 말이다. 노르토반은 드미트리우스, 테르디아는 윌리엄, 아르베니아는 헨리.

그리고 로한은, 지구에서 온 지휘관들과 저녁 시간을 함께 했다.

“다들 고맙습니다!”

“연합군의 승리를 위하여!”

임시 막사 안에서 연신 잔을 들어 올리는 로한 등의 멤버들.

지구의 지휘관들과 아로엘의 기사단 등 핵심 헌터들 모두가 함께 모여 술을 마시는, 정말 특별한 자리였다.

“이제 우리가 없어도 된다고?”

강동혁의 질문에 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크만의 지도를 보니까, 이제 전투를 치를 만한 병력도 남아 있지 않아. 그냥 연합군만 밀고 나가도 쉽게 점령이 가능할 거야.”

“르기에를 포함한 최상위 귀족이 남아 있다며?”

“걔네로는 아무것도 못 해. 그리고 머리 좋은 그놈들이라면 벌써 지들 고향으로 도망쳤을 거야. 가지고 있는 병력들이 죄다 괴멸당한 지금 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만약 다시 등장하더라도 고향에서 다른 마왕 병력을 꼬셔서 데려오겠지,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재침공을 한다 하더라도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은 분명하다. 투할도 이 대륙을 장악한다고 몇 년에 걸쳐서 차근차근 준비를 거쳤던 걸 생각하면, 다른 마왕들도 쉽사리 병력을 무작정 보낼 확률은 적다.

두 번이나 정벌을 실패한 난공불락의 대륙! 이런 곳을 생각 없이 기습할 머리 나쁜 마왕이 있을까? 로한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이제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맘 편히 돌아가도 돼.”

“흠~ 그냥 이렇게 돌아가라고? 그건 좀 섭섭한데.”

강동혁의 말에 로한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냥 돌아가라고는 안 하지. 내가 이런 큰 은혜를 무시하고 외면할 놈으로 보였냐?”

“아니었냐? 방금 좀 서운할 뻔했다.”

“큭큭큭. 일단 돌아갈 때 나랑 같이 가자.”

“너도?”

눈이 커진 강동혁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로한.

“가서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지. 어떻게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내 입으로 직접 설명도 해야 되고.”

아마 지금쯤 지구는 또 로한 때문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강동혁의 발표로 인해 모든 매체가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고, 또 조건 없이 로한을 돕기 위해 수많은 강대국들의 병력이 출진한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을 테니까.

이건 최소한 로한 본인이 직접 정리하는 것이 맞다. 이후 지구와 엘도르 대륙 간의 관계는 다음 문제다.

* * *

그 시각, 도미티아누 황성 안.

“지구인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다시금 황좌에 앉은 르기에가 카르스트 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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