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일행들 모두가 원형으로 넓게 퍼졌다. 아스모데를 크게 포위한 대형을 완성한 것을 확인한 방태산은 이어 말했다.
[제가 시선을 끌 테니, 작전을 준비하세요.]
그 말에 윌리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태산은 곧바로 아스모데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제우스 캐논이 빠른 속도로 거대한 대검으로 바뀌었다.
“하아압!”
일부러 아스모데의 시선을 끌기 위해 기합도 세게 내뱉는 방태산.
대검을 휘둘러 오는 그의 모습에 아스모데는 코웃음을 쳤다.
“하!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그녀의 눈에는 방태산의 모습이 등불을 향해 날아오는 한낱 날파리처럼 보일 뿐이다.
아스모데는 수많은 손을 일제히 방태산에게 휘저었다. 방어와 동시에 강력한 공격이기도 했다.
방태산은 다급히 휘두르던 대검을 막기 자세를 취하면서 위로 치솟아 올랐다.
까까깡!
대검에 수많은 손들이 막히는 소리가, 마치 병장기끼리 맞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윽… 역시 무리였군.”
약간의 인상을 쓰면서 아스모데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는 방태산.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스모데가 입을 벌려 빔을 내뱉는 2차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었다.
“이크!”
방태산은 그 어느 때보다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날아오는 모든 마기 빔을 피해내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멀어지면서 요리조리 재빠른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해내는 모습은 마치 폭우 속의 빗방울을 모조리 피해내는 한 무림의 고수를 보는 듯했다.
퍼어엉!
“큭!”
결국 마지막 마기 빔을 얻어맞아 버린 방태산. 하지만 미리 활성화한 실드 시스템이 있어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다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끄는 데 성공했다.
방태산이 다시 포위 대형으로 돌아오던 그때, 윌리엄의 손에서 반구체 모양의 기계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작동을 시작했다.
그것의 이름은 ‘중력장 파동 시스템 머신’이었다.
“……!”
아스모데의 수많은 눈이 살짝 흔들렸다.
갑자기 땅바닥에서 자신의 육중한 신체를 강제로 잡아당기는 느낌!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도 천근만근 무거웠고,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아까보다 많은 체력 소모가 필요할 정도였다.
이 특이한 상황의 원인을 확인한 아스모데는 곧 이를 악물었다.
“하! 이딴 장난질을 하려고 시간을 끈 거였냐!”
외치면서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중력장 머신을 파괴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걸 본 방태산이 외쳤다.
“머신을 지켜야 한다! 지원 사격해!”
그 말에 대원들 및 윌리엄이 일제히 원거리 공격을 감행했다. 포위된 상태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은 하나하나 강력했고, 또 그녀의 사방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스모데 입장에서도 경시하지 못하고 손을 휘저어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중력장의 영향 안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전부 막아내는 그녀. 그 와중에, 그녀의 입에서 날아간 마기 빔 일부가 중력장 머신에게로 향했다.
퍼퍼퍼퍼펑!
연이은 폭발음이 머신 위에서 들려왔지만, 머신은 멀쩡했다.
설치하기 전에 딘이 미리 걸어둔 실드 마법 때문이었다. 드래곤의 용언으로 건 고클래스 실드 마법은 저 강력한 마기 빔에도 깨지지 않는 내구성을 자랑했다.
머신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방태산은 재빠르게 통신했다.
[방태산이다. 중력장을 가동시켰다. 즉시 지원 사격을 요청한다.]
[오케이!]
에드먼의 외침이 들려올 그때.
“어어, 저건 좀 위험한데…?”
김현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눈에, 또다시 발사된 수많은 마기 빔이 일제히 중력장 머신으로 집중되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보다 훨씬 수도 많고, 빔의 굵기도 두꺼웠다.
곧 모든 공격이 머신에 꽂혔고,
콰앙!
결국 실드가 깨져버린 머신은 마기 빔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동시에, 아스모데를 묶어놓던 중력장 기능도 사라져 버렸다.
김현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외쳤다.
“이런! 실패인가?”
“아니. 성공이다.”
방태산이 대답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빛의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두꺼운 푸른 마나의 빔이었다.
에드먼이 어제 하늘로 쏘아 올렸던 인공위성에서 폭격용 레이저를 발사한 것이다.
“!!”
아스모데의 눈이 커졌다.
푸른 레이저 안에 담겨 있는 마나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무조건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중력장의 여파가 남아 있는 상태라서 그녀는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마기를 끌어올려 방어막을 펼쳐 레이저를 막아내었다.
콰아앙!
“큭…!”
거대한 폭발과 함께 아스모데의 수많은 얼굴들이 일그러졌다.
지금 이 모습으로 변한 뒤 처음으로 보는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문제는, 떨어지는 레이저가 한 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공위성 다섯 대에서 모두 그녀에게 화력을 집중했던 것이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연이어 네 번의 거대한 폭발이 아스모데의 신체 위에서 터졌다.
화염 구름이 아스모데의 거대한 몸 전체를 뒤덮는 것을 넘어,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방태산 등의 바로 코앞까지 퍼질 정도였다.
방태산은 바로 외쳤다.
“적이 치명상을 입었다! 지금 해치워라!”
그의 눈에 달린 최첨단 렌즈는 화염 구름 속 아스모데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그가 보는 아스모데는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며, 몇 개의 머리와 손들이 폭발에 휩쓸려 날아가거나 터져 있었다.
지금이 죽일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그는 제우스 캐논을 들어 전력이 담긴 에너지원 빔을 연신 발사했다.
대원들 모두 일제히 화염 구름을 향해 원거리 사격을 퍼부을 그때.
“캬아아아!!”
갑자기 절규에 가까운 괴성과 함께, 화염 구름을 헤치며 아스모데가 튀어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가 달려드는 방향은 정확히 방태산이 있는 쪽이었다.
“!”
방태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반격이라, 그도 살짝 반응 속도가 늦었던 것이다.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이 붙었고, 실드로 막기에는 아스모데의 남은 손들에 맴돌고 있는 마기가 여전히 너무 강력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인 그때.
콰아앙!
갑자기 발밑에서 거대한 기운이 날아와 아스모데와 부딪쳤다.
“아아악!”
비명과 함께 휘청이는 아스모데. 지금 폭발로 그녀의 손 몇 개가 절단되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방태산의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만든 주인공을 본 방태산은 반갑게 외쳤다.
“아린!”
“적절하게 도착했네요.”
아린이 대답하는 동안, 뒤이어 따라온 나머지 기습 팀 멤버들이 속속들이 방태산 주위로 몰려들었다.
피닉스의 등에 타고 있는 이안과 에리얼의 등에 타고 있는,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밀리오. 그리고 박나성이 이끄는 기습 팀 대원들까지.
특히 대원들의 영 좋지 않아 보이는 상태가 방태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들 고생 좀 했군.”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혹시 진짜 죽은 대원은 없지?”
“다행히 없습니다.”
신체가 완전히 망가진 대원들은 몇 명 있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핵심을 이루는 CPU, 즉 뇌 부분을 다친 대원은 없었다.
뇌만 멀쩡하면 신체야 언제든지 다시 새 걸로 갈아 끼면 된다.
“좋아, 그럼 다 같이 마무리하자고. 다들 한 손으로 쏘는 법 잊어먹진 않았겠지?”
“하하, 그 정도로 녹슬지는 않았습니다. 전원 사격 준비!”
박나성의 외침에 기습 팀 전원이 포위 대형으로 흩어졌다. 하나같이 한 팔밖에 안 남은 그들이었지만, 익숙하게 한 손으로 사격 무기를 들고 아스모데를 향해 조준하는 모습이었다.
“쏴라!”
곧 두 배 이상 강력해진 화력이 일제히 피투성이의 아스모데를 향해 집중되었다.
이안이 소환한 세 정령왕의 화력과, 윌리엄의 무형검 화력,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던 딘까지 마법으로 화력을 지원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 있던 아린의 화력이 가장 강력했다.
지금 아스모데의 상태는 다른 공격은 어찌저찌 다 막아 내더라도, 전신의 레기스트륨을 모두 집중시킨 아린의 지금 에너지 빔만큼은 절대 막아낼 수 없었다.
곧 아스모데의 전신에서 북 터지듯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아스모데는 다시 한번 바닥으로 추락했다.
마왕성 지붕을 또 무너뜨린 뒤 복도에 널브러진 아스모데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본 아린이 말했다.
“숨통을 완전히 끊으러 가죠. 머리를 모두 터뜨리면 될 거예요.”
“알았다. 모두 아린을 따른다!”
곧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아린 등이 아스모데가 쓰러진 마왕성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아린과 방태산을 필두로 한 일행들 모두가 로한 쪽으로 다가갔다.
마침 소강상태라 투할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로한의 세이버. 그의 옆으로 이동한 방태산이 보고했다.
“아스모데를 처치했습니다, 대장님.”
“그럼 이제 투할만 남았겠군.”
“그렇죠.”
방태산은 전방의 투할의 상태를 확인했다.
“…저놈도 금방 마무리되겠군요.”
온몸에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는 투할의 모습.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로 인해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아까 추락하기 직전의 아스모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상황. 다른 점이 있다면,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피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세가 넘쳐흘러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뿐이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마기가 매우 미약해진 것을 방태산 정도 되는 고수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방태산의 물음에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성녀님이나 좀 챙겨줘. 투할 공격 몇 번 맞아서 상태가 안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대답한 방태산은 한 번 더 투할의 상태를 확인한 후 뒤로 이동했다. 상태를 보아하니, 로한 혼자서 금방 마무리가 가능해 보였다.
물러선 그는 모두에게 지시했다.
“전원 포위 대형으로.”
혹시나 모를 전투 변수나 투할이 도망치는 각을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일행들 모두가 넓게 흩어져서 로한과 투할을 포위하기 시작할 그때.
로한의 입이 열렸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왕성도 파괴되고, 아스모데도 소멸되었어. 이제 너만 남았다.”
“…….”
“지구 최고의 사이보그의 손으로 직접 소멸시켜 주는 영광을 선사해주지.”
말을 마친 로한은 세이버의 에너지원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아마, 이번 격돌로 투할의 최후는 결정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투할 본인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이제 눈앞의 세이버의 공격도 막기 버거울 정도로 마기가 많이 떨어진 상황. 설사 저 세이버를 막아 내더라도, 자신을 포위한 수많은 적군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심지어 완벽히 포위되어서 도망도 불가능하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투할의 선택지는,
“흐아아!!”
온몸의 마기를 짜내어 세이버와 맞부딪치는 것이었다.
“나는 데르툴 최강의 마왕, 투할이다!!”
크게 외치면서 그는 전력을 다해 세이버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먹에 감도는 마기는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했지만, 달려드는 자세와 기세, 그리고 붉은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은 여전했다.
곧 그의 모든 것을 담은 주먹과 세이버의 광선검이 맞닿았고,
퍼어어엉!
거대한 마나끼리의 폭발이 둘의 신체를 감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