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아스모데는 덩치가 크다.
데르툴족의 신체의 근원이 마기이니만큼, 마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신체가 자연스럽게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 거대한 아스모데의 신체가 드높은 하늘 위에서 곤두박질쳤으니, 제아무리 튼튼한 투할의 마왕성이라 할지라도 멀쩡히 버텨낼 수는 없었다.
아스모데가 추락한 마왕성 한쪽의 지붕이 콰직!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렸다.
“으으…!”
마왕성 내 복도에 쓰러진 아스모데는 머리의 절반이 날아간 상처 부위를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았다. 절반만 남은 뇌가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커다란 타격이었다.
문제는, 데르툴족 생명의 근원인 뇌핵마저도 일부 날아갔다는 점이다. 이건 치명적이었다.
“으으… 으으으… 으아아아!!”
고통스러운 신음만 내뱉던 그녀의 입에서 곧 분노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 사이보그, 너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소멸시킨다! 아아아아!!”
증오가 가득 담긴 마지막 외침은, 마왕성 전체를 흔들리게끔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기가 담겨 있었다.
그와 동시에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복도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는 그녀의 ‘새끼’들의 시체가, 갑자기 생성된 마기 웅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우드득! 소리를 내며 시체를 집어삼킨 웅덩이는 이내 빠른 속도로 아스모데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도달한 웅덩이는 하나씩, 하나씩 아스모데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스모데의 신체도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모든 웅덩이를 삼켰을 그때.
콰앙!
구멍이 났던 천장이 또 한 번 박살 나면서 더 큰 구멍을 만들어 내었다. 아스모데가 뛰어올라 그대로 천장을 박살 내버린 것이었다.
뛰어오른 아스모데는 순식간에 다시 방태산 등 대원들의 눈앞까지 도달했고,
“……!”
대원들은 전부 눈이 커졌다.
완전히 달라진 아스모데의 모습은 마치, 힌두교의 신들의 모습 같달까? 수많은 머리와 팔이 달려 있는 그 신들 말이다.
최소 15개는 넘어 보이는 머리와 50개 이상의 거대한 팔들, 그리고 20개 정도 되는 다리들이 드래곤과 비견될 만큼 거대한 신체 하나에 전부 붙어 있는 모습.
정말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흉측한 광경이었지만, 그만큼 풍겨지는 마기는 강력했다. 변신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김현진이 방태산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부대장님 체내 데이터에 저런 괴물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습니까? 일단 저는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여기 있는 베테랑 멤버들의 데이터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소리는, 지구에서 10년간의 전투 동안에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라는 소리다.
그 새로운 존재가 외쳤다.
“모조리 죽여주겠다!!”
수많은 머리에 달린 입이 합창하듯 외치니, 그 목소리가 마왕성을 넘어 아로엘의 국경선까지 닿을 정도였다.
“산채로 씹어 삼켜서, 내 새로운 새끼들을 만드는 양분으로 만들어 주겠다! 흐아아아!”
괴성과 함께 그녀의 수많은 입에서 갑자기 검은 구체가 형성되었다. 1초 뒤, 그 구체들은 일제히 마기로 이루어진 빔으로 변하여 대원들을 향해 날아갔다.
방태산 등은 본능적으로 실드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최대한 마기 빔을 피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한두 개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 마기 빔을 맞을 때마다,
“큭!”
“윽…?”
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질렀다. 실드에 막혔음에도 몸에 전달되는 충격이 그 정도로 심했던 것이다.
유일하게 신음을 지르지 않은 방태산이 다급히 지시를 내렸다.
“최대한 흩어져! 방어와 회피에 집중하면서 패턴 데이터를 최대한 습득한다!”
지시와 동시에 일행들은 최대한 멀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 또다시 아스모데의 입에서 빔이 뿜어져 나왔고, 빔들은 흩어지는 다섯 명의 대원들을 향해 골고루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방향 설정이 잘못 되었나 보다. 멀리서 투할과 싸우고 있던 로한에게 날아가는 걸 보면 말이다.
곧 펑! 소리와 함께 세이버가 생성해낸 실드 위에 빔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한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스모데 쪽으로 돌아갔다.
“…….”
괴물 같은 아스모데의 모습을 보는 로한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쩐지 쉽게 처치한다 했어.’
아까 추락한 걸 봤을 때, 괜히 불길한 예감이 든 게 아니었다. 최소 샤훌리트와 동급이고 최대 두 배 이상은 강해 보이는 아스모데가, 다른 곳도 아닌 이 마왕성 근처에서 이렇게 쉽게 쓰러질 리가 있을까?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저러면 되레 대원들이 위험해 질 텐데… 읏!’
생각을 잇던 로한은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퍼어엉! 소리와 함께 급하게 들어 올린 두 세이버의 팔뚝 위에 투할의 주먹이 꽂혔다. 조금만 늦게 들었어도 큰 타격을 받았을 법한 위력이었다.
뒤로 살짝 물러서면서 로한은 다시 투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놈도 아까와는 차원이 달라졌어.’
지금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투할의 모습은, 그가 알고 있던 마왕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까 전에는 두 주먹만 거대하게 변했었는데, 지금은 신체 전체가 거대하게 변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아주 튼튼하게 강화된 느낌으로.
그로 인해 현재 투할은, 로한이 탑승한 세이버와 비슷한 크기까지 커진 상태였다.
‘그래도 내가 이긴다!’
로한은 다시금 에너지원을 끌어올린 뒤,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투할에게 달려들었다. 세이버의 양손에 뽑아 든 광선검을 휘두르자 투할 역시 강화된 두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또다시 퍼어엉!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둘은 또 한 번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여전히 아무 상처가 없어 보이는 둘의 모습. 아직, 어디가 우세라고 보기 힘든 백중세의 상황이었다.
그 시각, 지하의 기습 팀은.
“왼쪽 환영이 쓰러지기 직전이다! 화력 집중해!”
박나성의 지시에 맞춰 계속 최상위 귀족 데르툴들과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그의 지시를 들은 대원들은 순간적으로 왼쪽의 휘청이는 환영을 향해 총구를 고정시킨 뒤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퍼퍼퍼퍼펑!
[크아아악…!]
대부분의 공격을 얻어맞은 환영, 다보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빠른 속도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환영으로 다시금 부활했던 최상위 귀족, 다보 티디아니는 그렇게 또 한 번 소멸되고 말았다.
이로써 남은 환영은 둘.
“이대로 계속 안전하게 전투를 펼친다! 오른쪽 환영이 반응 속도가 더 느리니, 그놈을 최우선으로 노린다!”
외치는 박나성의 목소리는 한층 더 힘이 실렸다. 승기가 많이 넘어온 것을 체감한 것이다.
환영 셋과 싸울 때도 한 번도 기세를 밀리지 않고 하나를 소멸시킨 대원들이다. 그 와중에 전투 불능의 피해를 입은 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처럼만 계속 싸우면, 완벽하게 환영들을 모두 제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방 수류탄!”
천상현이 외치면서 뽑아 든 커다란 레기스트륨 수류탄을 오른쪽 환영에게 집어던졌다. 대원들은 짜기라도 한 듯이 일제히 사격을 멈추고 웅크리며 실드 시스템을 가동하는 모습이었다.
콰아아앙!
[크흑…!]
수류탄의 폭발 화력을 거의 다 뒤집어 쓴 환영, 페른이 괴로운 신음을 질러댔다. 아까보다 신체의 투명도가 훨씬 높아진 모습이었는데, 그만큼 소유하고 있던 마기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소리다.
“지금이다! 집중 사격!”
곧바로 대원들 전원은 페른을 향해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휘청이던 환영, 페른은 역시 대부분의 공격을 맞고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하찮은… 놈들 따위에게…!]
그렇게 페른도 소멸되었고, 남은 것은 라디치뿐이었다.
그는 최대한 저항하면서 어떻게든 대원들을 죽이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요원했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지구에서도 가장 많은 데르툴족을 죽였던 최고의 정예 부대원들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라디치의 모든 행동을 미리 읽기라도 한 듯이 대원들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가 달려들면, 그쪽에 있던 대원들은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으로 훌쩍 옆으로 이동해 공격을 피해내었다.
그가 들고 있던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면, 동시에 실드 시스템을 중첩 가동시켜 가볍게 막아내었다. 마기를 뿜어내는 대인 공격은 개개인의 한 겹 실드도 뚫어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대원들의 공격은 계속 라디치에게 타격을 주었다.
퍼퍼퍼퍼펑!
[끄아악…!]
결국, 라디치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소멸되었다.
그렇게 전투를 마친 박나성은 점검 시간을 가졌다.
“전투 종료! 피해 상황 보고하라!”
“1팀 전원 무사합니다.”
“2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 팀, 오준택 한 명 경상입니다. 10분 정도면 회복 가능합니다.”
“움직일 수는 있나?”
“오준택입니다. 행동에는 지장 없습니다.”
완벽한 승리라는 것을 확인한 박나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지시를 이었다.
“좋아. 그럼 속히 저 중앙 물체를 완벽하게 파괴한 뒤… 응?”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박살 난 정팔면체 안에서 또 누군가의 환영이 스르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또 환영이 나온… 아니!”
외치려던 박나성의 눈이 커졌다.
모습을 드러낸 환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아까 전 최상급 귀족 세 명을 다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박나성은 그것의 외형을 보자마자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왕이다!”
지구에서 봤던 샤훌리트와 오늘 목격한 투할, 아스모데와 비슷한 크기와 모양새를 한 눈앞의 환영은, 분명 마왕이 맞았다.
[누가 감히 내 손으로 만든 성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그의 음산한 목소리가 대원들의 머릿속을 직접 때리듯이 울려왔다.
[하찮은 존재들이여! 모두 내 성의 한 줌의 마기로 만들어 주겠다!]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마왕 환영의 온몸에서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우앗!”
“큭…!”
너무 강렬해서, 멀찌감치 서 있던 대원들의 몸이 태풍에 휩쓸리는 것처럼 뒤로 밀려나는 모습이었다. 두꺼운 실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죽어라!]
환영이 한 손을 휘젓자, 동시에 생성된 반월 모양의 거대한 마기 칼날이 빛처럼 날아들어 천상현이 있던 2팀을 덮쳤다.
엄청난 속도였다. 천하의 대한민국 사이보그 제1부대원들 대부분이 반응도 못할 정도였다.
위력도 어마어마했다.
콰아아앙!
“크아악!”
“아악!”
폭발 범위 안에 있던 사이보그들 대부분이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날아갔다. 대부분 신체에 큰 손상을 입었고, 한 부대원은 다리 한쪽이 날아간 모습이었다.
박나성은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하이퍼 최종 모드로 변신한다!”
대원들 전부가 사이보그의 최종 전투 형태, 하이퍼 모드로 변신할 그때.
박나성은 다급하게 로한에게 보고했다.
[여기는 기습 팀! 지하에 마왕의 환영이 나타났다! 지원군이 필요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여기 있는 대원들만으로는 저 마왕 환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