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르기에가 드론의 렌즈 부분을 가리켰다.
“이 기계의 눈 모양으로 보이는 부분이 계속해서 우리 국경선 쪽을 주시하고 있더군요. 이 대륙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정찰용 아티팩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연합군 쪽에서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최첨단 기계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로한, 그놈이 만들었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르기에에게 아스모데가 물었다.
“다른 정보는? 설마 겨우 이거 하나 가져온 게 전부는 아니겠지? 그놈들이 우리를 정찰하고 있을 거라는 걸 모르는 이가 있었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천천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날카로운 그녀의 말을 르기에는 부드럽게 받아친 후, 자신의 아공간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마법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는 한 명의 기사를 꺼내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로엘 영지 외곽 순찰을 돌던 기사입니다. 잡아서 정신 세뇌를 해봤더니, 꽤 고급 정보를 술술 털어놓더군요.”
“어떤 정보?”
르기에는 설명을 이었다.
“어제, 로한이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부하들로 보이는 동족들을 다수 데려왔다고 합니다. 이런 최첨단 기계들과 함께 말이죠. 그들은 로한 못지않은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면서 서쪽 대륙의 시체들을 빠르고 가볍게 제압했으며, 최첨단 비행 물체를 이용해 사갈 공국을 빠른 속도로 멸망시켰습니다. 또한 언데드 마법진을 제거한 것도 모두 그들의 짓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설마, 내 포탈을 한꺼번에 소멸시킨 놈들도?”
“분명 이들의 짓이겠죠.”
아스모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지? 이렇게 우리의 계획을 한꺼번에 방해한 종족은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한낱 인간 따위는 절대 불가능한 행동인데.”
“사이보그.”
“뭐?”
르기에는 말을 이었다.
“로한과 그의 부하들을, 사이보그라는 단어로 부릅니다.”
“이런.”
도청을 듣고 있던 로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사 한 명이 언제 납치되었던 거지? 힉스. 확인해봐.”
“네.”
힉스가 마법석 통신으로 다급히 확인하는 동안, 로한은 혼잣말을 이었다.
“확실히 르기에, 이 자식은 강해. 드론이랑 부하를 납치했는데도 불구하고 레이더가 반응조차 안 했어.”
르기에 정도의 마왕급 마기를 지닌 데르툴이라면, 근처에 도달하자마자 레이더가 바로 반응해서 스크린에 경고 표시를 띄웠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는 것은, 그 정도로 르기에가 마기를 감추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거다. 이 말은 즉 그만큼 강하다는 뜻도 된다.
그때 힉스가 보고해왔다.
“납치된 기사는 론입니다. 동북쪽 국경선 정찰을 돌던 도중 흔적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알았어. 일단 계속 들어보자.”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로한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이보그? 처음 듣는 종족인데.”
아스모데가 그동안 열었던 포탈 내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보그라는 단어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 투할의 입이 열렸다.
“사이보그의 규모와 현재 위치는?”
현실적인 그에게는 당장 사이보그라는 존재보다, 앞둔 전쟁이 더 중요했다.
르기에는 술술 설명했다.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사이보그의 숫자는 50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 아스모데 님의 포탈을 막기 위해 서쪽 대륙 사방에 흩어진 상태라고 합니다.”
“현재 포탈 상황은?”
이번엔 아스모데에게 묻는 투할. 그녀도 바로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아무 문제 없다. 내 새끼들 막기에도 급급한 거 같아 보이긴 하는데… 음?”
그때, 전방에서 차원의 틈이 생성되면서 한 명의 데르툴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스트였다.
“돌아왔습니다, 주인님.”
“준비는 끝났나?”
“현재 모든 준비를 마쳤으며, 주인님의 출전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투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후 르기에, 카르스트를 향해 지시했다.
“둘은 즉시 국경선 근처에 다수의 차원 이동 포탈을 생성하라.”
“네, 주인님.”
둘이 차원의 틈을 열기 시작할 그때, 투할은 옆의 아스모데를 돌아보았다.
“너도 나와 함께 국경선으로 이동한다.”
“지금?”
투할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들이 넘어오는 대로, 바로 서쪽 대륙으로 쳐들어간다.”
투할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은 일행들 전부가 비상이 걸렸다.
지금 쳐들어온다고?
“헌터들 모두 동쪽 국경선으로 신속히 이동해!!”
“네!”
힉스 등 주요 멤버들은 다급하게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내성 밖의 워프진으로 달려가는 동안, 로한은 계속 지시를 이었다.
“아린은 모든 국가에 통신해서 바로 전쟁에 대비하라고 전해.”
“네.”
“에드먼, 너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계 다 활성화시켜 놓고!”
“알아, 이 새끼야! 지금 이미 하고 있어!”
“남은 행정부 직원들은 지금부터 24시간 항시 비상 대기 체제에 돌입한다. 스크린과 스피커, 통신 등으로 들려오는 모든 정보를 에드먼과 아린에게 우선적으로 보고해!”
“네!”
모든 지시를 마친 로한은, 이번에는 포탈을 막고 있는 부하들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대장이다. 현재 포탈 상황은 어떻나?]
[여기는 로터스. 아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대표로 대답해오는 방태산의 목소리에 로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직도?]
[네. 생각보다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몬스터의 힘도 강한 편이고요.]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그리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군이 조금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렇게 계속되면 우리 쪽이 먼저 지칩니다.]
[이런.]
오히려 원군이 필요한 상황이라니. 이러면 전혀 그들을 데려온 보람을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로한은 혹시나 하고 다른 쪽 국가 상황도 알아보았다.
[다른 쪽 국가 상황은 어떤가?]
[아바입니다. 로터스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즈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테르디아입니다. 아직 우열을 가리기 힘듭니다.]
[노르토반은 많이 힘듭니다. 원군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아르베니아는 성녀님이 도와주고 있어서 상황이 나쁘진 않습니다. 적어도 내일이 되기 전까지는 제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제일 먼저 제거한 팀은 바로 노르토반을 도와주도록.]
[네.]
통신을 마친 로한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른 이에게 통신을 걸었다.
[여기는 아로엘입니다. 잘 들립니까?]
[사갈의 엘-카시안입니다. 잘 들립니다.]
[거의 다 마무리 지으셨죠?]
[이미 상황 종료 후 병력들을 국경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일 마지막에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로한이 통신을 이었다.
[잠깐 아로엘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회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아로엘 내성 옥상에는 몇 명의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좀 살 만한가 보지, 딘?”
로한이 옆의 금발의 미남자, 딘에게 핀잔을 줬다.
그가 대답해왔다.
“움직일 만은 하다.”
“뭔 소리야? 아직도 다 안 나았어?”
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놈들과 싸울 때 마지막에 드래곤 하트를 크게 다쳤다. 물론, 지금도 평범한 데르마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이런.”
로한은 진지하게 안타까워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딘만큼은 로한 못지않은 연합군의 핵심 전력 중 한 명인데, 전쟁을 앞둔 이 상황에 아직도 정상이 아니라니.
“어째 안 좋은 소식만 듣게 되네. 내 부하들이 바로 참전 못 하는 것도 그렇고, 딘도 그렇고.”
안 그래도 여기 서 있는 핵심 인원들은 곧 일어날 전쟁을 대비한 마지막 회의를 위해 모인 인원들이었다.
로한의 부하들이 당장 참전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한 후, 어떻게 국경선에 병력들을 배치해야 할까 의논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딘마저 빠지다니. 더 안 좋은 소식을 들어버렸다.
“연합군을 믿으십시오.”
그때, 희망적으로 말해오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엘-카시안이었다.
“천 년 전, 신마대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는 드래곤족이 바로 참전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결국 연합군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유리하지 않습니까? 드래곤족도 미리 대기하고 있고, 로한 님이 개발한 최신식 무기들도 한가득이고요.”
“나도 동의한다.”
옆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월리엄 공작이었다.
“지금 서쪽 국가 연합군은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좋다. 로한, 너를 중심으로 뭉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그렇습니까?”
“실제로 자네가 나선 전투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지 않았나?”
“아….”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긴 하다. 귀환한 이후 지금까지 모든 전투 및 계략에서 항상 로한은 승리를 거두었었다. 버몬드 때도 그렇고, 아르베니아의 마왕들을 잡아낼 때도 그렇고.
그나마 실패했던 것이 르기에 등이 도망치는 것을 막지 못한 것 정도?
“병사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번에 말해오는 이는 에텔드리다였다.
“아르베니아를 포함해, 제가 만났었던 백성들 모두 대천사의 후예이신 로한 님이 반드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어요. 오죽하면 성국인 아르베니아에서 로한 님을 신으로 믿는 종교도 생겨나고 있다니까요?”
“그건 좀 그렇네요. 이제 다들 아시잖아요? 제 정체를요.”
물론, 로한이 모두에게 사이보그라는 존재를 아주 자세히 설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 원군으로 온 에드먼 등 사이보그 부대들이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던 주요 멤버들은 이제 눈치껏 로한 등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는 상태다.
에텔드리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중요한가요? 백성들은 전부 대천사의 후예로 믿고 있는데요.”
“하하하….”
로한이 멋쩍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제가 활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겠군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들 알고 있었다. 사갈 공국, 그리고 언데드 마법진 등 수많은 변수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연합군 측이 많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더욱 군사들과 백성들이 로한의 활약에 기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일단, 모두 전선으로 돌아가 주세요. 상황을 보아하니, 10분 내외로 적들이 공격해 올 상황입니다.”
“난 드래곤족을 통솔하러 간다.”
“저도 이종족들을 지휘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난 다른 국가의 총사령관들과 연락해 보겠다.”
그렇게 모두가 흩어져서 각자의 워프진 쪽으로 움직이던 그때.
유일하게 남아 있던 에텔드리다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바랄게요.”
진심을 담은 그녀의 말에, 로한도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다치지 마세요. 당신은 혼자인 몸이 아니니까요.”
“…네?”
자신도 모르게 되묻는 에텔드리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