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갑자기 기억난다. 이거 발견하기 위한 기술 개발한다고 24시간 잠도 못 자고 골머리 앓던 한 미친 과학자의 모습이 말이지.”
“누가 미친 과학자야!!”
빽 소리를 지른 에드먼은 그때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듯, 회상하듯이 말했다.
“그때 정말 힘들긴 했지. 내가 그거 때문에 10년은 더 빨리 늙었어! 더 늦게 개발했으면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클클클.”
“그건 아쉽겠어? 맨날 죽어야만 푹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푸념 늘어놓더만.”
“그건 농담이고, 이 새끼야!!”
실제로 지구에서 데르툴족과 전쟁을 벌일 때,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게 포탈이었다.
불시에 갑작스럽게 도심 한가운데 나타나는 포탈과,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몬스터들과 데르툴족들의 기습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도시가 몇 개였던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에드먼을 필두로 한 과학자들은 포탈이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 지 알아내기 위한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사이보그 부대가 전투를 통해 얻은 단서들과 포로로 잡힌 데르툴들을 심문해서 얻은 정보 등등을 모두 취합하면서 오랫동안 연구에 매달렸던 과학자들.
정확히 전쟁이 벌어진 지 9년 후, 그들은 드디어 해냈다. 포탈이 생성되는 원리를 알아내고 언제 어디서 포탈이 생성되는지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에드먼이 다시 모두를 돌아보았다.
“이번에 내가 개발한 인공위성에는, 그렇게 정말 어렵게 개발한 포탈 위치 발견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여기 시간 보여?”
에드먼이 포탈이 생성되려고 하는 점 위의 시간을 가리켰다. 계속 감소하고 있는 그것은 막 55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55분 뒤에 포탈이 열린다는 소리야. 옆에 서 있는 ‘초대형’이라는 글씨는 뭐냐? 바로 초대형 포탈로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그, 그러면 지금 엄청 위험한 거 아닙니까?”
“당연히 위험하지! 하지만 걱정 마! 해결책도 다 있으니까!”
에드먼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로한과 아린은 이미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각국에 파견되어 나가 있는 자신의 사이보그 부하들에게 통신을 하고 있었다.
로한이 가장 먼저 통신한 인물은 부대장, 방태산이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좌표를 잘 기억해놔라. 얘기가 끝나는 즉시 한 시간 이내에 모두 소멸시켜야 해.]
[알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일단 첫 번째는….]
그 시각.
방태산은 로터스의 왕성에 서서 로한이 얘기하는 좌표들을 모두 메모리에 저장하는 작업을 실행 중이었다.
[…여기까지다.]
[모두 저장했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오케이.]
통신을 마친 방태산은 주변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로터스 상공에 생성되고 있는 포탈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총 다섯 개이므로, 2명의 사이보그와 2명의 휴머노이드, 이렇게 네 명이 한 팀을 이뤄서 총 다섯 팀으로 나눠 흩어진다. 이해했나?”
“네!”
“그럼 각자 해결해야 할 좌표를 무선 통신으로 보내주겠다.”
사이보그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길고 복잡한 정보를 굳이 입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미리 저장해놓은 문서 파일을 모두에게 골고루 무선으로 전송시키면 되니까 말이다.
모두에게 전송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문서 파일 자체가 용량이 안 크니까 말이다.
“다 받았으면 바로 이동한다.”
“네!”
곧 4명씩 나눠진 사이보그 팀들이 순식간에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 일부는 발밑에 부스터를 뿜어내면서 날아갔고, 일부는 하이퍼 모드로 변신해서 날개를 이용해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남아 있던 방태산이 옆의 동료이자 부하인 박나성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동하지.”
“네. 모두 따라와.”
방태산과 박나성 역시, 각자 휴머노이드와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들이 소멸시켜야 할 포탈은 왕성의 바로 하늘 위였기에,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공중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지고 난 후.
“와….”
“대박.”
남아 있던 로터스의 용병들은 멍한 표정으로 사이보그들이 사라진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중 한 명이 옆의 동료에게 물었다.
“저게 로한 님이 직접 데려온 대천사의 후예들이라고 했지?”
“어. 소문으론 그렇다던데.”
“저 정도면 소문이 아니라 진짜인 것 같은데?”
현재 서쪽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사이보그 부대들에 대한 소문은 이 정도였다.
하긴, 대천사가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쉽게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항상 괴물 같은 위력을 자랑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대천사의 후예라는 소문이, 그냥 인간이라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신뢰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그 시각.
신마대전을 앞둔 투할은, 또 한번 연무장에서 마기를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마기 수련법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이번 수련을 끝으로, 어쩌면 두 번 다시 황성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될 법했다.
그때였다.
“아아악!! 이런 망할 자식들이!!”
저 멀리 떨어진 황좌 쪽에서 들려오는 아스모데의 분노에 찬 외침.
그로 인해 투할의 집중력이 절로 흐트러졌다.
수련법을 중지하고 천천히 눈을 뜨는 투할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무언가에 방해를 받아 수련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것만큼 그를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내가 힘들게 만들어놓은 포탈을 건드리려 해?! 이 산 채로 갈아버릴 새끼들아! 당장 그만두지 못해?! 아아악!”
계속되는 아스모데의 발악에 가까운 외침에 투할의 표정은 또 한 번 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스모데가 저렇게 화내는 경우라면… 설마?’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가정에, 투할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원의 틈을 열었다. 걸어가는 것보다 차원 이동이 더 빨리 그녀에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황좌가 있는 대복도로 이동한 투할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이 하찮은 인간 놈들이!!”
포탈을 여는 작업에 한창이던 그녀가 버럭 외치듯 대답했다.
“내 포탈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한 달간 작업해놨던 포탈들을 소멸시키고 있다고!!”
“……!”
투할의 두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아스모데가 이렇게 분노하는 경우는 살면서 딱 두 가지 경우밖에 못 봤다. 그녀의 ‘애완동물’들을 함부로 건드릴 때. 그리고 지금처럼 그녀의 포탈 생성을 방해할 때다.
아까 전 떠올린 그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작업은 실패하면 안 된다. 알고 있겠지?”
투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포탈 생성이 실패하는 건, 사갈 공국이나 언데드 마법진이 전멸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걸 실패하면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간신히 아스모데를 데려온 의미가 아예 사라지는 것과 같다.
“나도 알고 있어!!”
버럭 외치는 아스모데의 얼굴은 정말 악마 그 자체였다. 이를 악문 채로 내뿜는 저 붉은 안광을 일반인이 보았다면, 바로 실금하면서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리라.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열 수 있는 포탈이라도 연다!!”
다행히 아스모데는 이런 돌발적인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포탈 생성을 방해받은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있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계속 이를 악문 채로 주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직 남아 있는 포탈이라도 살리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여기는 다시 로터스.
왕성의 하늘 높이 솟아오른 방태산 등은, 전방의 검은 포탈 제거 작업에 한창 중이었다.
네 명 모두 메모리에 내장된 포탈 제거 시스템을 가동한 뒤, 전방의 포탈에 변환된 에너지원을 뿜어내어 커져가는 포탈을 다시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거, 너무 빨리 커지는데요?”
집중하고 있던 박나성이 방태산에게 말해왔다.
무려 4명의 최강 사이보그 및 휴머노이드들이 달라붙어 제거 작업 중인데도, 포탈이 줄어드는 속도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만큼 포탈이 생성되는 속도가 빠른 탓이었다.
“음… 기다려봐.”
잠시 고민하던 방태산은, 포탈에서 손을 뗀 후 등에 메고 있던 그의 특제 무기인 제우스 캐논을 꺼내었다.
“이 정도 크기면 제거 가능할 거 같군.”
말과 함께 자세를 잡고 발사 준비를 마친 그는, 에너지원을 불어넣으면서 모두에게 지시했다.
“내가 말함과 동시에 모두 포탈에서 손을 뗀다. 알았나?”
“네.”
“5, 4, 3, 2, 1… 지금!”
방태산의 외침에 모두가 포탈에서 손을 떼고 멀어졌을 그때.
거대한 제우스 캐논의 총구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에너지탄이 발사되었다.
콰아아앙!
곧 엄청난 폭발이 검은 포탈 쪽에서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폭발로 생성된 화염 구름이 완전히 걷혔다. 그리고 전방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태산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제거 완료.”
“꼭 이렇게 요란하게 제거해야 합니까?”
“간만에 캐논 좀 쏴보고 싶어서.”
박나성의 핀잔에 대답한 방태산은 다시 제우스 캐논을 등에 멘 후, 통신 기능을 작동시켰다.
[여기는 방태산. 1호 포탈 제거 완료했다. 다른 쪽 상황 보고하라.]
[2호 포탈 제거 완료.]
[4호 포탈, 방금 제거했습니다.]
[3호 포탈 제거 후 귀환 중입니다.]
하나씩 보고가 들려왔다. 이제 남은 건 5호 포탈로 이동한 다섯 번째 팀의 보고뿐이었다.
곧 5팀의 보고가 들려왔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말이다.
[5호 포탈 제거 실패! 포탈 생성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습니다. 곧 완성되기 직전입니다!]
‘……!’
방태산의 눈이 커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빠르게 판단해서 지시를 내렸다.
[바로 지원을 가겠다. 최대한 완성을 저지하도록.]
[네!]
[전원, 5호 포탈을 향해 신속하게 이동한다!]
모두에게 통신으로 지시한 그 한마디에, 옆에 있던 박나성 등도 방태산과 함께 빠른 속도로 5호 포탈 좌표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와중에, 방태산은 대장인 로한에게 보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여기는 로터스. 4개 포탈을 제거했지만, 5호 포탈 제거에는 실패했습니다. 현재 5호 포탈을 지원하러 이동 중입니다.]
[알겠다.]
로한의 대답은 바로 들려왔다.
방태산을 비롯, 각 국가에서 들려오는 계속되는 보고들로 인해 아로엘 내성 대회의실 내 인력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르베니아도 3호 포탈 하나 제거 실패했다는 보고야.”
“이런 무능력한 새끼들! 어째 죄다 하나씩 다 실패한 거야?!”
로한의 말에 에드먼은 역정을 냈다.
스크린을 바라보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젠 늦었어. 이미 생성을 멈추기에는 포탈이 너무 커졌다고.”
안 그래도, 스크린에 남아 있는 검은 점들이 어느 순간 몇십 배는 거대하게 변한 것이 일행들의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빨리 커진 거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들은 방금 스크린을 통해 확인했었다. 지금 남아 있는 포탈이, 몇 분 사이에 갑자기 빨리 감기를 한 듯이 몇 배는 빠르게 커져가는 모습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