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오오!”
“와아아!”
이 함성들은 아로엘의 내성 대회의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전방의 초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힉스 등 수많은 아로엘의 핵심 관리들은,
- 콰아아앙!
스크린 안에서 폭격이 오스크만 국경선 쪽에 떨어질 때마다,
“이야!”
“파괴력 미쳤는데!”
“범위가 저렇게 넓어?”
라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스크린 바로 옆에 서 있던 로한과 아린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질 진짜 좋네. 정찰용 드론 띄워놓길 잘했어.”
“그러게요.”
안 그래도 인공위성 폭격 전에, 오스크만의 국경선을 더욱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 에드먼제 최신식 군사용 스텔스 드론을 국경선 전체에 뿌려놓은 상태였다.
그 드론들 덕분에, 지금 일행들은 마치 종말 장르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실내에서 편하게 오스크만 병력들이 박살 나고 있는 장면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캬캬캬캬! 좋아 좋아! 아직 한 발 더 남았다!”
에드먼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한 번 더 발사 버튼을 눌렀다.
또 한 방의 인공위성 에너지탄이 지상으로 떨어졌고,
-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또 한 곳의 부대 진지 전체가 폭발로 뒤덮였다.
잠시 후, 폭발이 걷힌 해당 장소의 모습은 참혹했다. 대부분의 병력들이 흔적도 없이 불타 버렸거나, 사지 중 최소 한 곳이 날아가서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자, 이제 끝! 인공위성 내부의 에너지원 다 쥐어 짜냈다! 이거 한 발 충전하려면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제 당분간은 사용 못 한다고 보면 돼.”
“남은 적군 병력 규모 좀 계산해봐.”
“기다려봐! 안 그래도 자동으로 계산 중이니까.”
로한의 말에 에드먼이 스크린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남은 적군의 전력 규모를 측정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잠시 후, 그 문구는 뒤바뀌었다.
[적군의 전력 규모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남은 적군의 전력은 폭격 전과 비교해 48.572%로 추정됩니다.]
[오차 범위는 ±5% 이내입니다.]
“흠… 괜찮네. 이 정도면.”
로한은 썩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까 대충 확인했던 국경선 내 적군의 병력 규모는 최소 50만 이상. 그렇다면 많으면 30만 이상을 지금 인공위성 에너지원 폭격으로 제거한 셈이다.
연합군 측에서는 환호해도 될 만큼의 성과고, 오스크만 제국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커다란 타격을 입은 셈이다.
“잠깐.”
그때 로한이 스크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중앙에 서 있는 놈 확대 좀 해봐.”
“이놈?”
에드먼이 보조 스크린으로 로한이 말한 이를 터치했고, 인공지능에 탑재된 자동 줌인 기능을 통해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이 선명하게 확대되어 초대형 스크린에 나타났다.
“데르툴이군.”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정체.
심지어 양쪽에 날개까지 달려 있는, 최상위 귀족으로 보이는 그가 막 차원의 틈을 열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의 정체를 아는 이가 회의실에 한 명 있었다.
“카르스트예요.”
바로 아린이었다. 직접 싸웠던 아린은 데르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카르스트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로한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살아남은 데르툴들은 모두 오스크만 제국으로 돌아갔군.”
“그나저나 전혀 부상도 안 입었군요.”
“예상했잖아? 네 전력을 다한 공격도 버티고 도망친 놈들인데 이 정도 폭발을 못 버티겠어?”
대답한 로한은 모두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봤듯이, 다른 병력들은 많이 줄였어도 데르툴족들은 멀쩡히 살아서 도망갔다. 적들의 핵심 전력인 마족들은 아직 건재하다는 걸 마음속에 새겨두도록.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 말에 힉스 등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20만 명 이상을 처치했다 쳐도 일행들 중 아무도 긴장을 푸는 사람은 없었다. 또다시 벌어질 ‘신마대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엘도르 대륙인들에게는 그만큼 무겁고 공포스러웠다.
[대장님.]
그때 로한의 머릿속에서 통신이 들려왔다.
대한민국 사이보그 팀의 부대장, 방태산의 목소리였다.
[말해.]
[방금 로터스의 모든 언데드 마법진을 제거했습니다.]
[수고했다. 너네가 제일 마지막 보고였어.]
[이런. 우리 쪽이 꼴찌입니까? 하하하.]
가볍게 웃던 방태산이 물어왔다.
[이제 아로엘로 귀환합니까?]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곧 다시 연락줄 때까지 전원 수도에서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로한이 에드먼에게 말했다.
“로터스까지 언데드 마법진 제거를 마쳤다고 보고가 왔다. 이제 서쪽 대륙 전체를 정리했어.”
“뭐 이리 늦었어?! 3개월간 놀고 처먹었더니 굼벵이가 다 됐군. 에잉!”
“자, 이제 화면 바꿔. 아까 얘기했던 거 해결해야 하니까.”
로한의 지시에 에드먼은 바로 스크린 키보드를 두 손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곧, 처참한 오스크만 국경선 쪽 진지를 보여주고 있던 스크린 내 화면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자, 봐! 이건 어쩌면 저 오스크만이라는 국가가 쳐들어오는 것보다 더 위험한 거일 수도 있어.”
그 시각.
도미티아누 황성 내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
황좌 바로 앞에 말없이 부복해 있는 다수의 데르툴족들.
카르스트 등을 포함한 최상위 귀족들이었다.
이들 모두는, 방금 전 인공위성 폭격으로 수많은 병력을 잃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바로 황성에 불려온 상태였다.
그런 그들을 투할은,
“…….”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불러놓고 아무런 말이 없으니, 오히려 더 초조해지는 건 카르스트 등의 부하들뿐이었다.
‘제발, 한 번의 기회만 더…!’
속으로 간절하게 외치는 카르스트.
기회가 없으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소멸뿐이다. 그 누구보다 냉혹한 투할에게 애매한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긴장감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킬 그때.
“모두 일어서라.”
투할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 카르스트 등을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크게 실망했다.”
“!”
“하지만, 시국을 생각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처벌은 유보하겠다.”
지금 투할은, 앞으로 있을 전쟁을 생각해 그의 평소 냉혹했던 결단력을 뒤로 미룬 것이다.
“모두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쳐 이 빚을 갚도록. 만약 전쟁 때도 실수하는 놈이 있다면, 두 번의 용서는 없다.”
“네!”
기합이 가득 들어간 외침이 카르스트 등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투할은 곧바로 지시를 이었다.
“살아남은 모든 병력을 국경선에서 일보 후퇴시킨다. 최대한 병력을 흩어지게 만들어서 향후 폭격을 대비한다.”
“네!”
“그리고 아스모데.”
옆 황좌에 앉아 있던 아스모데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계획을 최대한 앞당긴다. 지금 당장 포탈을 소환해라.”
“지금?”
“지금도 늦었다.”
투할이 말을 이었다.
“완벽했다 생각했던 계획들을, 연합군 쪽에서 하나씩 망가뜨리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을 주면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다. 당장 실행해라, 아스모데.”
설명이 이어질수록 투할의 두 눈의 안광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아스모데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식 웃었다.
“네가 이렇게 화난 건 처음 보는군, 투할.”
“지시에 따라라.”
“기다려. 대륙 곳곳에 모든 포탈을 한꺼번에 여는 작업이 버튼 하나 누른다고 되는 줄 알아? 전력을 다해도 한 시간은 걸린다.”
곧 아스모데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후 중얼거리면서 주문을 외우는데, 그러는 사이 그녀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양이 말도 안 되게 거세졌다.
그녀 특유의 능력인, 엘도르 대륙 서쪽 각지의 포탈을 소환하는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투할은 다시 부하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르스트.”
“네!”
“넌 고향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전원을 데리고 와라.”
“……!”
그 말에 카르스트의 눈이 커졌다.
남아 있는 데르툴 병사들 전원을?
그러면 고향의 투할 영지는 어떡하고?
“주인님, 그러면 고향의 영지가….”
“당장 이동해라.”
카르스트의 말은, 투할의 단호한 한마디에 끊겼다.
그의 두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안광에, 카르스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카르스트는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차원의 틈을 열기 시작했다.
곧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투할이 말없이 나머지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왜 아직도 여기 서 있나?’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헉!’
‘위험하다!’
투할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 나머지 부하들은 재빨리 차원의 틈을 열어 원래 진지로 황급히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곧, 황성의 대복도에 남아 있는 이는 두 명의 마왕이 전부였다.
‘내가 연합군을 너무 얕봤어.’
투할은 말없이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언제나 가장 큰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정말로 정복을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향에 남아 있는 부하들을 모조리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확실하게 해도 이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면 고향의 영지 방어는 어떡하냐고?
어차피, 이곳 점령을 실패하는 순간 투할은 모든 걸 잃는다. 아스모데와 계약하면서 지불한 마정석 등의 고가품 가격을 생각해보면, 사실 대륙을 정벌해야 그나마 본전을 찾는 수준이다.
그냥 실패해도 고향에서 그의 영향력이 대폭 줄어드는 상황. 그럴 바에야, 아예 전력을 다해 이곳을 밀어버린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다.
투할 입장에서도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내 사전에 실패란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투할의 두 눈동자 안에서 거대한 분노의 불길이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다시 여기는 아로엘 내성 대회의실 안.
에드먼이 초대형 스크린에 뜬 화면 곳곳을 가리키면서 모두를 향해 설명하고 있었다.
“봐! 여기는 니들이 살고 있는 대륙의 서쪽 전체야. 아까 오전 때보다 맵이 훨씬 더 깨끗해졌지?”
에드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만 해도 수많은 검은 언데드 마법진으로 군데군데 먹물을 떨어뜨린 듯이 지저분했는데, 이제는 거의 말끔히 지워진 상태였다.
“모두 사이보그 부대가 고생한 덕분이야! 그리고 내 최첨단 무인 폭격기로 인해 사갈이라는 망할 나라도 깔끔히 정리했고. 이게 다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겨져?”
“아…!”
“듣고 보니 그렇네?”
새삼 다시 깨닫는 관리들. 사갈 공국을 밀고, 서쪽 대륙의 모든 마법진을 제거하고, 거기에 오스크만 병력들을 절반 이상 줄이는 데까지 고작 8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로한이 데리고 온 괴물 같은 능력을 보유한 사이보그들과 최첨단 무인 기계들이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하나 남은 게 있어. 이거 보여?”
에드먼이 서쪽 대륙 곳곳에 나 있는 작은 검은 점들을 가리켰다.
“이게 뭔지 아는 사람?”
“…….”
“당연히 모르겠지! 로한, 너는 알고 있을 거고.”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탈이 열리기 전에 볼 수 있는 징조지.”
“바로 그거야!”
에드먼의 최첨단 인공위성은, 서쪽 대륙 하늘 곳곳에 맴돌고 있는 포탈 생성 직전의 기운마저 잡아낸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아스모데가 지금 동시에 열려고 하는 포탈들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