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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29화 (129/200)

제129화

사갈 공국의 북쪽 국경선과 맞닿아 있는 테르디아의 영지는 크게 세 곳이다.

가장 오른쪽부터 아로엘, 칼슈타인, 돔블로다.

이 중 아로엘은 로한이 지키고 있고, 칼슈타인은 윌리엄이 지키고 있다. 그리고 돔블로는, 윌리엄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시모어 백작이 영주로 있는 곳이다.

물론 시모어 역시 A급 랭크로, 테르디아를 대표하는 헌터긴 하지만 아무래도 두 공작인 로한과 칼슈타인과 비교하면 그 위상이 확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지의 전력도 세 곳 중 가장 약한 편이고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현재 북쪽 영지 중에서 가장 사갈 공국의 침략에 고생하고 있는 영지가 돔블로였다.

“왼쪽 성벽에 데르툴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이곳은 돔블로의 북쪽 국경선에 세워진 성벽.

그곳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데르툴들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그들을, 성벽 위 돔블로 영지 병력들이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왼쪽에 마나 건 화력을 집중해라!”

시모어가 하도 외쳐서 갈라진 목소리로 또다시 명령했다. 그 말에, 왼쪽 성벽의 헌터 병력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마나 건의 총구를 돌렸다.

곧 마나 미사일이 사다리 위 데르툴들에게 집중되었다.

퍼퍼퍼펑! 소리와 함께 사다리가 부서졌고, 막 성벽을 넘어오려던 데르툴들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기 시작했다.

시모어가 이어 외쳤다.

“마나 폭탄을 계속 던져라!”

“영주님! 폭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뭐?”

근처 부관의 외침에 시모어의 표정이 변했다.

이틀이 넘는 치열한 공성전을 지금까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아로엘 영지에서 지급한 마나 폭탄이었는데, 그게 다 떨어지다니!

“젠장! 아로엘 측에 더 보내줄 수 있냐고 연락해!”

“알겠습니다!”

부관은 바로 미니 통신기를 귀에 꽂은 뒤 아로엘과 통신을 시도했다.

잠시 후, 통신을 마친 것을 확인한 시모어가 물었다.

“뭐라고 왔나?”

“곧 원군이 도착할 것이라는 답변이 왔습니다!”

“원군?”

시모어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지금까지 아로엘 영지에서 보급품은 받았어도 원군은 받은 적이 없었다. 아로엘도 사갈 공국과 동쪽 산맥 몬스터까지 막아내느라 제 코가 석자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같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에서 원군은 당연히 보급품들보다 백배는 더 필요한 자원이다. 심지어 다른 영지도 아니고 무려 ‘로한’의 영지 지원군 아닌가?

“곧 아로엘의 원군이 도착한다! 모두 목숨을 걸고 성벽을 사수하라!”

시모어는 간만에 힘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외쳤다.

무려 로한의 영지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모두 사기가 올라서일까? 성벽 위 병력들의 마나 건 발사 속도가 직전과 비교해서 두 배 이상은 빨라진 기분이었다.

시모어도 역시 마나 건을 꺼내 사격을 도왔다. A급 헌터인 그의 마나 미사일은 다른 병력들에 비해 크기도 컸고, 위력도 강했다.

퍼엉!

“키에엑!”

단 한 방에 철제 사다리를 박살 내서, 또 한 팀의 데르마들을 추락시킬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집중해서 계속 사격하던 시모어는 곧 한숨 돌리기 위해 잠시 마나 건을 내려놓은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피해는 거의 없군.’

본래 공성전 자체가 방어하는 쪽이 굉장히 유리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서라도 이틀간 처치한 데르마들 숫자에 비해 사상자가 너무 없다시피 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진짜 이 마나 건이 없었으면 진작에 성벽을 점령당했겠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아로엘 특제 마나 건.

사갈 공국이 국경선을 침범하자마자, 아로엘 측에서는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량의 마나 건 등의 최첨단 무기들을 워프진을 통해 돔블로 영지에 지원해 주었다.

이 뛰어난 효율을 가진 강력한 원거리 마나 공격 무기는 특히 공성전에서 엄청난 빛을 발휘했다. 실제로 첫날은 마나 미사일의 위력 때문에 데르마들이 성벽에 붙을 생각조차 못했을 정도니까.

만약 병사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 마나를 회복할 시간만 벌었더라면, 지금도 이렇게 데르마들이 성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무리야. 헌터들이 전부 지쳐 있어.’

마나 건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체내의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나가 무한정이라면 탄이 떨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만, 마나가 떨어지는 순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현재 성벽 위 병력들은 모두 후자에 가까운 상태다. 48시간 내내 잠도 못 자고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마나가 몸속에 남아 있겠는가?

‘빨리 원군이 와야 해. 그래야 어떻게 희망이 보이는데….’

시모어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졌다.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면, 결국 데르마들이 성벽을 넘어와 지친 아군 병력들을 쉽게 처치한 후 성벽을 점령할 것 같은 모습이 자연스레 그의 머리에 그려졌다.

그때였다.

“여, 영주님! 동쪽 하늘을 보십시오!”

부관의 놀란 외침에, 시모어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가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날아오고 있는 다수의 물체를 본 시모어는,

“…저게 뭐지?”

라고 첫인상을 입 밖에 꺼냈다.

확실한 건 생명체는 아니었다. 로한 공작이 발명한 특수 기계 같아 보았는데, 양옆에 날개가 달려 있고 뒤에서는 무슨 화염 브레스처럼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걸 원동력으로 공중을 날고 있는 건가 싶었다.

10대 정도 되는 저 신원 미상의 비행 물체가, 빠른 속도로 시모어가 있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물체에서 나는 듯한 굉음 역시 점점 커져만 갔다.

그 소리 때문에 모든 성벽 위 병력들이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야?”

“히익?!”

“뭐, 뭐야 저거?”

돔블로 쪽 병력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뭐라고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그 물체들은 병력들의 바로 머리 위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물체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시모어의 눈이 커졌다.

한꺼번에 떨어지고 있는 저것은 분명, 아로엘에서 지급받았던 마나 폭탄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심지어 크기도 훨씬 컸다!

“성 바깥으로 떨어집니다!”

부관이 외칠 그때, 제일 먼저 떨어진 폭탄이 성벽 앞 데르마들이 뭉쳐 있는 곳에 도달했고,

콰아앙!

곧바로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굉장히 넓은 범위를 휩쓴 그 폭발은, 최소 몇백 명은 될 법한 데르마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잿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

그 어마어마한 살상력에 시모어 등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폭발은 이제 시작이었다.

쾅쾅! 콰콰콰쾅! 콰아앙!

만약 전설로만 존재한다는 메테오 마법이 떨어진다면 이런 모습일까?

지천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폭발과 고막을 뚫어버릴 것 같은 굉음이 돔블로 영지 북쪽 국경선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그 안에 휩쓸린 데르마들의 생사조차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끊임없이 폭탄이 떨어졌고, 폭발도 계속되었다.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끊임없이 폭탄을 떨어뜨리던 비행 물체는 곧 천천히 사갈 공국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저 지평선 멀리 있는 데르마들을 향해 또다시 폭탄을 투하하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시모어 등은 폭발의 여파가 끝난 성벽 앞의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헉…!”

“세상에…!”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폭발에 휩쓸린 성벽 앞에 서 있는 데르마들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다시 일어서는 시체들조차 거의 없었다. 폭발에 아예 사지가 다 뜯겨 버린 시체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상황 종료였다.

점령당하기 직전까지 갔던 돔블로 영지 국경선 쪽 공성전이, 단 3분 남짓한 시간 만에 돔블로 쪽의 완벽한 승리로 돌아간 것이다. 이틀간 밤새워서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허… 허허허….”

오죽하면 시모어조차 이렇게 헛웃음을 흘리고 있을까.

“믿을 수가 없군. 설마 저게, 로한 공작님이 보내준다는 원군이었나?”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저런 최신식 기계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은 현재 대륙에서 아로엘밖에 없다.

그때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훤칠하게 잘생긴 엘프 한 명이 역시 놀란 표정으로 저 멀리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비행 물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한이 저 물체에 대해 단번에 국경선 전체를 정리하고, 오늘 안에 수도까지 점령이 가능할 정도의 위력이라고 설명할 때만 하더라도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이었군요.”

“당신은…?”

“아, 전 이종족 연합군을 지휘하고 있는 엘-카시안이라고 합니다.”

“아! 당신이 바로 그…!”

3일 전 있었던 ‘해돋이’ 작전 때문에 시모어도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엘-카시안이 말했다.

“방금 드래곤족 칸 님의 워프진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그가 시선을 뒤로 돌렸다. 방금 전까지는 없었던 다양한 이종족 전사들이 저 멀리 생겨난 워프진 쪽에서 등장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부터 사갈 공국은 저희 이종족 연합군과 드래곤족이 정리하겠습니다. 당신은 오늘 안에 최대한 빨리 영지 내의 부활한 시체들을 모두 정리하십시오.”

“아, 영지 내부 시체들은 이미 정리했소. 윌리엄 공작님께서 칼슈타인을 정리하신 후 가장 먼저 우리 영지를 도와주셨다오.”

“그러시다면 병력을 재정비 후, 전원 동쪽 국경선으로 이동하십시오.”

“동쪽으로?”

엘-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2차 신마대전을 대비해야 하니까요.”

* * *

“크힛힛힛힛!”

마치 악당의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는 장소는 아로엘의 회의실 안이었다.

에드먼이, 전방의 스크린을 주시하면서 계속 광소하고 있었다.

“내 최신식 무인 폭격기의 맛이 어떠냐? 이 데르툴족 따까리들아! 크핫핫핫핫!”

웃는 그의 전방 스크린에는, 지도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무인 폭격기의 모습이 상세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떨어뜨리는 폭탄들에 쓸려가고 있는 수많은 데르마들의 모습도 말이다.

총 30대의 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사갈 공국의 남쪽 전체를 완벽하게 폭격한 뒤 빠른 속도로 수도인 트라피타로 향하고 있었다.

“데르툴족 놈들도 이 폭격기가 나타나면 방어 태세를 갖추기 바빴다! 그런데 한낱 따까리 새끼들이 버틸 리가 없지! 크하하하하!”

“그만 처웃고 아까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엉?”

로한의 핀잔에 에드먼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뭐라고 했었지?”

“…오스크만 제국은 어떻게 견제할 거냐고 했다.”

“아, 아. 그랬었지?”

에드먼의 시선이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갔다.

사갈 공국의 동쪽 산맥 너머에 있는 오스크만 제국의 국경선 쪽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수많은 병력들의 모습이 위성에 잡히고 있었다.

“흐음… 이것도 최신 기술로 폭격 한번 해볼까?”

“또 무인 폭격기 쓰게? 저 30대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부라고 하지 않았어?”

“얌마!”

에드먼이 소리를 질렀다.

“천하의 에드먼을 뭐로 보는 거야?! 폭격은 뭐 이 비행기만 가능한 줄 알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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