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아, 아. 들리십니까?”
한 20대 후반의 젊은 남성이, 휴대폰을 삼각대에 꽂아 넣은 채 들어 올리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인터넷 방송인. BJ명은 ‘이슈의 제왕’이었다.
곧 휴대폰 화면의 채팅방에서 수많은 채팅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왕하]
[왕하]
[ㅇㅎ]
[ㅇㅎㅇㅎ]
왕하. 즉 ‘이슈의 제왕 하이’라는 뜻이다. 처음 방송을 켤 때 주로 올라오는 채팅들이었다.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차자 그는 본격적으로 방송을 진행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반갑습니다! 언제나 이슈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현장 BJ, 이슈의 제왕입니다. 자, 여러분!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그는 카메라를 돌려 주변을 360도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이 모두 정답을 말했다.
[워프존?]
[인천 아냐?]
[인천 워프존이네]
“맞습니다, 여러분! 여기는 바로 인천 워프존입니다.”
30세기 이후부터 지구에서 비행기는 탈것의 목적으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최첨단 워프진이 발명되었기 때문이었다.
100% 안전하게 전 세계를 1분 만에 이동할 수 있는 워프진이 발명되었는데, 누가 비행기를 탈것으로 이용하겠는가? 그래서 현재 비행기는 군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인천 워프존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80개의 워프진이 그려져 있는 최대 워프존이다.
[워프존은 왜 감?]
[너 혹시 해외 나가냐?]
[와! 이슈의 제왕 본격 해외진출 ㄷㄷㄷ]
“아니, 제가 해외를 왜 나갑니까? 전 한국이 좋습니다. 지금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어딥니까? 한국 아닙니까! 이 선진국을 놔두고 왜 굳이 해외 진출을 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ㅇㅈ]
[ㅇㅈ]
[맞지]
[요즘 한국이 젤 살기 좋긴 해 ㄹㅇ]
한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된 이유는 딱 하나. 데르툴족과의 전쟁 때 로한, 에드먼, 강동혁 이 세 명의 영웅들 덕분에 가장 피해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은, 전쟁 때 완전히 멸망해버린 일본 땅과 일부 만주 땅까지 자연스럽게 영토를 확장한 상태이며, 두 배 이상 영토가 늘어났음에도 수많은 사이보그들의 치안 관리와 최첨단 기계들의 빠른 영토 재건으로 인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자,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말이죠. 정말 엄청난 인물이 이 인천 워프존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일까요?”
[ㄴㄱ?]
[VTS?]
[VTS 지금 한국에 있잖아]
[그럼 누군데?]
[설마 에드먼이라도 오나? 엌ㅋㅋㅋ]
“정답! 바로 에드먼이 잠시 후 이곳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의 외침에 채팅방에 올라오는 채팅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
[오?]
[에드먼이?]
[ㄹㅇ?]
[에드먼이 왜 인천 워프존을 이용해?]
[에드먼 맨날 군용 워프존 이용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에드먼이 이렇게 민간 워프존을 이용하는 건 최근 들어 처음 있는 일이죠?”
에드먼은 전 세계의 영웅이다. 그만큼 현재 전 세계에서 그를 만나기 위한 방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런 에드먼에게 평생 군용 워프존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이보그 부대의 도움을 받았던 대부분의 국가가 마찬가지 혜택을 주었다.
편의도 편의지만, 에드먼의 개인 경호 목적도 있었다. 지구의 영웅이 민간 시설을 이용하다가 자칫 해코지라도 당하면 안 되지 않는가? 24시간 철통 감시가 가능한 군용 워프진이라면 확실하게 에드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워싱턴 워프존에서 인천으로 워프하러 이동하는 에드먼의 모습이 사진에 찍혔어요! 그게 현재 SNS에 엄청나게 화제입니다!”
[진짜임?]
[구라 아님?]
[ㄹㅇ임 나도 봤음]
[지금 SNS 가봐 전부 그 얘기뿐이다]
[ㄹㅇ?]
“정말이라니까요? 여러분,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좀 보세요!”
그는 삼각대를 돌려 자신의 주변을 보여줬다.
그러자 시청자들이 놀랐다.
[와]
[사람 뭐임?]
[최소 500명은 넘어 보이는데? 아니, 천 명인가?]
[저게 전부 기자들이야? ㅋㅋㅋ]
[와 BJ들도 겁나 많이 갔네 ㅋㅋㅋㅋ]
[뻑이가 저 새끼는 저기 왜 갔냐 ㅋㅋ]
출구 쪽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은, 죄다 손에 카메라 혹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는 보통 연예계 톱스타, 혹은 어마어마한 유명인이 입국할 때뿐이다.
그리고 에드먼은, 현재 지구 최고의 유명인 중 한 명이다.
“보이시죠? 다들 에드먼을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에요. 아까 오면서 BJ들도 엄청 많이 만났다니까요?”
[그럴 만하네 ㄷㄷ]
[야 방제 바꿔라]
[아직도 어제 방제 안 바꿔놨네]
[방제 좀]
“아, 방제 안 바꿨구나. 잠시만요.”
곧 그는 손가락으로 휴대폰 이곳저곳을 터치해 방송 제목을 바꾸기 시작했다.
바뀐 방송 제목은 이랬다.
- 지구 최고의 과학자 에드먼 님 실물 영접 직전… 5분 뒤 입국하십니다.
[굿]
[굳]
[좋은 제목이다]
“괜찮죠? 자, 그럼… 어? 워싱턴 쪽 사람들 도착했나 봐요!”
갑자기 출구가 열리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방송 화면에 잡혔다.
끊임없이 밀려 나오는 사람들 중, 에드먼은 제일 마지막에 등장했다.
“우와!”
“에드먼이다!”
“에드먼 님, 여기 좀 봐주세요!”
“팬이에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난리가 났다.
왜소한 체구에 꼬장꼬장한 표정을 한 노인에게 하나같이 달려들어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파들. 지구 최고의 보이 밴드 VTS도 저리 가라 할 수준의 인기였다.
“야, 비켜! 꺼져!”
하지만 그런 인파들을 상대하는 에드먼의 태도는 아주 거칠었다.
“아, 이 X발놈들이 비키라니까! 카메라 안 치워? 집어서 던져버린다!”
험악한 얼굴로 쌍욕까지 퍼붓는 에드먼의 모습.
그런데, 그 모습에 사람들은 더 열광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꺄아아악!”
“와! 나 에드먼 님에게 쌍욕 들었어! 오늘 하루 운수 좋겠다!”
“저한테도 욕해주세요!”
“영광이에요!”
채팅방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따 욕 찰지다 ㅋㅋㅋㅋ]
[츤데레 끼는 여전하네 진짜 ㅋㅋㅋㅋ]
[욕쟁이 할아범 ON]
[지구에서 가장 X발을 찰지게 외치는 남자]
[저러면서 사람들 다칠까 봐 조심해서 걷는 거 봐 ㅋㅋㅋㅋ]
이미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에드먼의 성격을 다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항상 인상을 쓰면서 차갑고 험악한 말을 퍼붓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제로 주변 사람들한테 그렇게 잘하기로 유명하고, 남몰래 기부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츤데레’ 끼를 전부 알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이 좋은 것이리라. 그래서 오히려 이런 거친 성격이 에드먼의 스타성을 되레 상승시켜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에드먼 님! 갑자기 인천 워프존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원래 맨날 군용 워프진만 사용하시잖아요?”
“대답해 주세요!”
곧 주변 기자 및 BJ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다 대답해줄 성격의 에드먼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 워프존을 사용하든 무슨 상관이야? 이제 다 꺼져! 나 택시 타고 갈 거니까!”
곧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무인 택시에 에드먼이 탑승했다. 곧 무인 택시가 출발하자, 그 뒤를 뒤따르는 수많은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중에는 이슈의 제왕도 있었다.
“자, 여러분! 에드먼 님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끝까지 한번 추격해 보겠습니다! 나가지 마시고 계속 방송 시청해 주세요~!”
운전대를 잡은 와중에도 거치대에 걸린 휴대폰을 향해 계속 떠드는 이슈의 제왕.
그렇게 에드먼이 탄 무인 택시와 그를 쫓아가는 수많은 열성 팬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두 시간 정도 뒤.
용산의 에테르노 호텔 정문 근처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BJ들이 몰려 있었다.
“여러분, 이슈의 제왕입니다. 라이브를 계속 시청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 에드먼이 에테르노 호텔 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과연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요?”
이슈의 제왕 등 BJ들이 각자 카메라에 대고 열심히 방송하던 그때.
5001호의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는 세 남자가 있었다.
로한, 에드먼, 강동혁이었다.
“어지간히 소란스럽게 왔네. 꼭 이렇게 ‘나 대단한 사람 만나러 왔어요’라고 광고하고 와야겠냐?”
“야 인마, 그러면 어떻게 해?! 정부 놈들 눈치채면 안 되니까 군용 워프진은 사용하지 말라며!”
“그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오라는 뜻으로 얘기한 거지, 이 멍청아! 이렇게 시끄러울 거면 그냥 군용 워프진 타고 오는 게 더 나았다!”
“머, 멍청아? 이 천하의 에드먼에게 멍청아?”
“그럼 뭐, 병신이라고 바꿔줄까?”
“이 새끼야아아!”
곧 육체적으로 티격태격하는 에드먼과 로한의 모습. 하지만 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지켜보던 강동혁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둘은 오랜만에 만나도 여전하군그래.”
“오랜만은 무슨! 기껏해야 3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그 3개월간 나 보고 싶다고 그렇게 혼술을 마셔댔다며?”
“내, 내가 언제?”
“강동혁이 다 불었는데.”
“야 이 새끼야! 내가 그거 얘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하하….”
한참을 사이좋게 회포를 풀던 셋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지구로 넘어온 이유가 데르툴족 때문이라고?”
“어.”
강동혁의 말에 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부탁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이보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도저히 못 막을 것 같아.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어?”
“너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
강동혁이 대답했다.
“지구를 구한 영웅이자, 내 부모님을 구한 은인이자, 내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번만 더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넌 뭐라 대답하겠어?”
“그야, 뭐….”
“똑같은 거지.”
곧 로한과 강동혁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로한은 이번엔 에드먼을 쳐다보았다.
“싫어! 안 도와줘! 귀찮아! 또 밤낮 없이 바쁠 거 아냐!”
“아직 안 물어봤는데.”
“뻔하잖아! 그냥 사이보그들만 보내면 좀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내 발명품들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거 아냐!”
“오, 대박. 에드먼, 못 본 사이에 독심술도 배웠구나?”
“내가 널 하루이틀 보냐?!”
퉁명스런 에드먼의 목소리에 로한은 진지하게 부탁했다.
“나 한 번만 더 도와줘라. 부탁할게.”
“…….”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에드먼은 조금 마음이 약해졌나 보다. 흘겨보는 눈빛이 살짝 풀어진 걸 보니 말이다.
사실, 어차피 처음부터 도와줄 마음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흥! 너 때문에 도와주는 거 아니야! 데르툴족, 그놈들이 날뛰는 꼴 보기 싫어서 도와주는 거야! 확실하게 알아!”
“고맙다, 에드먼.”
“맨날 말로만?!”
어찌 되었든, 로한은 지구 전력 중 가장 핵심 멤버인 둘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러면 얼마나 지원해줄 수 있는지 말해줄래?”
“공식적으로? 아니면 비공식적으로?”
“당연히 비공식이지. 공식적으로 모집하면 지구 전체가 또 난리가 날 게 뻔하잖아.”
공식적으로 모집하는 순간, 로한의 정체와 엘도르라는 생소한 대륙의 정체도 공개해야 한다. 게다가 지구인들의 머릿속에 이미 깊숙이 박힌 데르툴족에 대한 공포감까지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워 질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니 이건 비공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
“비공식이면, 좀 조용히 살고 있는 사이보그들을 골라야겠군. 대외적으로 바쁜 놈들한테 부탁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심할 테니까.”
“맞아. 대략 얼마나 모일 수 있을 것 같아?”
로한의 물음에 강동혁은 대답했다.
“그래도 꽤 많이 모일 거다. 전쟁 끝나고 심심해 죽으려는 놈들이 꽤 많거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