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만약 훨씬 미래로 돌아온 거라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문제다.
그래서 로한은 확인차 물어보았다.
“언제 이전했나요?”
“지난달에 이전했어요.”
“아, 그러면 전쟁이 끝난 두 달 뒤에 이전한 셈이군요?”
“어~ 네. 그쯤일 거예요.”
대답을 들은 로한은 속으로 안도했다.
다행히, 제때 돌아온 거 같았다. 그가 엘도르 대륙으로 귀환해서 3개월 정도를 보냈으니까, 여기도 3개월이 지났다면 얼추 날짜는 비슷하다.
“그나저나 손님. 관람 구역이 아닌 곳을 마음대로 출입하시면 안 돼요. 현재 이 박물관의 지하는 아직 관람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요. 조심 좀 해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로한은 바로 사과했다. 다행히 안내원은 자신을 평범한 박물관 관람객 정도로 생각했나 보다.
그는 바로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오.”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로한의 입 밖으로 나온 감탄사.
3개월 만에 다시 온 지구는, 변해도 너무 변해 있었다.
‘무너진 건물들을 완전히 다 복구했구나.’
수많은 세련된 빌딩들이 들어서 있는 시내의 모습은 전쟁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3개월 전,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연구소 주변은 완전히 폐허 그 자체였는데 말이다.
‘하긴, 로봇으로 건설하면 금방 복구가 가능하지.’
지금 그의 영지인 아로엘도 로한의 아공간에서 빼낸 건설 로봇들로 아파트 정도의 건물을 순식간에 짓는 것이 가능하다. 한 달 만에 괜히 아로엘이 대륙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로 발전했던 게 아니다.
하물며 지구의 건설 전문 초대형 로봇이 대거 투입되면, 이 정도 건물들은 일주일 만에 모두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도 이제 편하게 거리를 다니고 있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들. 그리고 번화가에 가득한 네온사인과, 전쟁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각종 상점들이 문을 연 채로 손님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꽤 시간이 흘렀구나, 라는 게 절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러면, 더 지원군을 요청하기 쉬워질지도.’
속으로 생각하던 로한은, 저 멀리 다가오는 무인 택시를 보고는 손을 들었다. 택시가 멈추자, 로한은 문을 열고 안에 탔다.
그러자 택시 내 인공지능 도우미가 물어왔다.
[어디로 가시나요?]
“에테르노 호텔요.”
[용산에 위치한 에테르노 호텔 맞으신가요?]
“네.”
[가격은 48,000원입니다. 결제는 선불입니다.]
그 말에 로한은 손바닥 중앙을 열었다. 그러자 작은 스크린이 하나가 솟아올랐다.
로한은 스크린에 내장된 개인 금융 코드를 띄운 뒤, 의자 앞에 있는 인식 센서 앞에 갖다 대었다.
‘근데 내 통장에 돈이 남아 있던가?’
10년 내내 전투만 펼치느라 통장 안에 돈이 얼마 있는지는 전혀 신경을 안 썼던 로한이었다. 어차피 먹고 자는 건 다 공짜로 가능해서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설마 5만 원도 없을까?
삐빅.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택시의 인공지능 도우미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로한 내부의 인공지능 도우미도 말해왔다.
[48,000원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통장 안에 남은 잔여 금액은 10,185,741,920원입니다.]
…충분하고도 남구나.
‘101억이나 남았었어? 돈 어지간히 안 쓰긴 했네.’
속으로 로한이 피식 웃을 때, 택시는 드디어 목적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뒤, 택시는 로한의 목적지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로한은 정면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리모델링 좀 했네.’
딱 봐도 정말 비싸 보이는 고급스러운 호텔 건물.
이곳이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 중 하나인 에테르노였다.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그 호텔의 정문으로 로한은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답고 잘생긴 직원들이 일어서서 로한을 반겼다.
그들을 보자마자 로한은 생각했다.
‘여전히 괜찮은 휴머노이드들을 쓰는군.’
딱 봐도, 전투력이 높은 휴머노이드라는 걸 그는 파악할 수 있었다.
“예약하셨나요?”
이어지는 직원의 물음에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5001호에 묵고 싶은데요.”
“잠시만요.”
직원은 바로 예약 유무를 확인해 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 5001호는 현재 사용 중인 손님이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대답한 로한은 몸을 돌려 걸어갔다. 건물 밖이 아니라, 안쪽의 엘리베이터로 말이다.
‘당연히 예약되어 있겠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로한은 엘리베이터를 탄 후, 제일 꼭대기 층인 50층 버튼을 눌렀다.
50층에 도착한 후 그가 걸어가는 장소는 5001호 문 앞이었다.
그가 문 앞에 서자마자,
[동공 센서 도어락 시스템입니다.]
[눈을 크게 뜨시고 센서를 3초 이상 바라봐 주세요.]
라는 목소리가 정면의 스크린에서 들려왔다.
로한은 눈을 스크린 위의 센서에 가져갔다.
[이름 : 로한.]
[정체 : 사이보그.]
[로한 님은 이곳에 입장이 가능하십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곧 두꺼운 문이 열리고, 드넓은 실내가 로한의 시야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간 로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무기 수집을 좋아하는구만.’
한쪽 벽면에 가득 걸려 있는 수많은 최첨단 총들과 각종 도검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여기 어디 휴대폰이 하나 남아 있을 텐데….”
로한은 방 곳곳을 둘러보더니,
“여깄…군.”
식탁 위에 문서들과 함께 놓여 있는 작은 휴대폰을 발견하고는 집어 들었다.
휴대폰의 잠금 화면을 풀기 위해 동공을 카메라 쪽에 맞추니, 자동으로 잠금 화면이 풀렸다. 로한을 또 다른 사용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로한은 익숙하게 번호를 누른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정면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통화음을 들으며 창밖을 쳐다보는 로한.
“…이 칙칙한 건물은 여전하군.”
혼잣말을 하는 로한의 시야에는, 굉장히 낡고 칙칙한 건물이 하나 보였다.
에테르노 건물 바로 옆에 지어져 있는 저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국방부였다.
오늘 국방부의 강당은 북적북적했다.
전쟁 이후, 3개월 만에 정식으로 뽑힌 공무원들의 취임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강연하고 있는 한 중년의 사내.
대한민국의 특수 사이보그 부대 총사령관, 강동혁이었다.
“…이것으로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동혁이 연설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일부는 강동혁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와, 그 강동혁 님을 실제로 보다니…!”
“역시 영웅이 되려면 얼굴도 잘생겨야 하는구나. 완전 미중년이잖아!”
“어떻게 가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을 수 없나? 하다못해 사인이라도….”
데르툴족을 물리친 이후, 지구에는 3대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있다.
최고의 사이보그 전사인 로한.
최고의 사이보그 신체 개발자인 에드먼.
그리고, 사이보그 부대를 세계 최초로 신설한 장본인이자, 국가 차원에서 사이보그 및 휴머노이드에 대한 지원 및 조력을 아끼지 않았던 ‘사이보그들의 아버지’ 강동혁.
그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이보그 육성 학교를 설립하지 않았다면, 로한이라는 최고의 사이보그 전사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천문학적인 액수를 사이보그 연구소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에드먼이라는 지구 최고의 천재 과학자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우, 어서 가지.”
강동혁은 부리나케 강당을 빠져나갔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온 그는 차에 탑승하자마자 물었다.
“다음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운전석에 앉은 휴머노이드가 대답했다.
“저녁 만찬이 예약되어 있는데, 세 곳 중 하나를 고르셔야 합니다. 첫 번째는 강남에서 국내 재계들과의 만찬 자리고, 두 번째는 상암에서 예능 프로그램인 <싸우면 뭐 하니> 관계자들과의 미팅 겸 식사 자리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광화문의 호텔에서 모델 겸 배우이신 고승아 님이 개인적인 저녁 식사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빼.”
강동혁은 고민도 안 하고 단호하게 잘랐다.
요즘 전 대륙적으로 인기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고승아처럼 전 세계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유혹해 보려고 입맛을 다시는 여성들이 너무 많다. 이럴 때는 미혼이라는 게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재계와 예능 중 하나라…. 둘 다 별로인데….”
중얼거리는 강동혁의 표정은 정말로 피곤해 보였다.
도대체 편하게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한 지가 언제였던가? 매일 이렇게 스케줄에 치이다 보니, 혼자서 조용히 먹는 집밥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강동혁은 손을 넣고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해 보았다.
“음?”
동시에 표정이 변했다.
발신자 이름이 강동혁 본인으로 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내 호텔 방에 놔둔 휴대폰 번호인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강동혁의 지위상, 국방부에서 공식적인 업무만 볼 순 없다. 가끔 보안이 완벽한 비밀 장소에서 비공식적인 손님을 만나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사용하는 공간이 국방부 옆 에테르노 호텔의 5001호였다. 이 장소는 365일 강동혁이 사용하는 것으로 호텔 쪽과 암묵적인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다.
지금 이 번호는, 그 방 안에 놔뒀던 휴대폰 번호다.
‘내 허락 없이 5001호에 들어갈 사람이 없는데?’
기껏해야 에드먼 정도뿐인데, 에드먼은 성격상 절대 호텔까지 찾아올 인간이 아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발신 번호를 한참 바라보던 강동혁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
“누구냐?”
- 나다.
대답을 듣는 순간, 강동혁의 모든 행동이 정지되었다.
이 목소리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로, 로한?”
- 그래.
“정말 로한이냐? 돌아온 거야?!”
강동혁이 이렇게 기쁜 모습으로 외친 적이 얼마 만인가?
아마 전쟁이 끝난 이후 그 누구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 호들갑은. 어디냐?
“지금 거기로 간다! 5분이면 도착해!”
- 알았다.
로한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도 한참을 충격, 기쁨, 놀람 등의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던 강동혁은, 곧 다급히 휴머노이드를 향해 외쳤다.
“바로 에테르노로 돌려!”
“저녁 만찬은 어떻게 할까요?”
“전부 취소시켜!”
지금 한낱 재계나 예능 인사 따위를 만나서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는가? 세계 최고의 전사, 로한이 지구에 돌아왔는데!
곧 휴머노이드가 U턴을 하면서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그때, 강동혁은 또다시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 연결음이 끊기자마자 강동혁은 외쳤다.
“에드먼!”
- 아, 뭐야?! 갑자기 귀 찢어지게!
휴대폰 안에서 에드먼의 짜증 가득한 외침이 들려왔다.
- 내가 말했지?! 요즘 고막 안 좋으니까 크게 말하지 말라고!
“로한이 돌아왔어!”
- …뭐?
순간 벙찐 게 확연히 느껴지는 에드먼의 되묻는 목소리.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강동혁은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로한이 지구로 돌아왔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