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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24화 (124/200)

제124화

그날 저녁.

로한은 아린과 함께 내성 옥상 위에 서 있었다.

“완성했군.”

전방의 커다란 차원문 틀을 바라보며 로한이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저 혼자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요. 정제된 마나석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기도 했고, 구르카족 드워프들 모두가 지금 전투를 돕기 위해 동쪽으로 이동한 상태고요.”

아로엘도 지금, 시체들이 부활한 여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영지 내부는 문제가 없었다. 사갈의 스파이들을 모조리 색출해낸 영지 내 레이더들 때문에 데르툴 마법사들도 그곳에는 함부로 마법진을 그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영지 바깥, 아틸러스 산맥이 문제였다.

동쪽 국경선 너머에 대규모 마법진을 그려놨는지, 그곳에서 일어난 포탈 몬스터들의 시체가 한꺼번에 우르르 아로엘로 진격해 온 것이다.

그래서 현재 힉스 등 대부분의 전력이 동쪽으로 파견 나간 상태다.

“동쪽은 잘 막고 있어?”

“네. 한 달간 포탈 안에서 다들 열심히 훈련한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오빠가 구르카족이랑 만든 마나 건 등의 최첨단 무기도 효과가 좋고요.”

“북쪽 국경선은 어때?”

“한 시간 전에 사갈에서 국경선을 침범했어요.”

사갈 공국은 연합군이 철수하자마자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켰다. 테르디아는 물론, 서쪽의 로터스와 북쪽의 노르토반의 국경선까지 한꺼번에 넘어버린 것이다.

아로엘도 당연히 그 여파에 휩쓸렸다.

“그나마 칸이 도와주는 중이라,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어요.”

다행히도 사갈에서 마족과의 싸움을 끝낸 드래곤 칸이 바로 철수하지 않고 테르디아 국경선 쪽으로 몰려오는 데르마 등에게 브레스와 마법을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아직 북쪽 국경선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버티기만 할 뿐이지,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힘들어요. 지금 버티는 것도 역부족이라서요.”

“거기에 곧 오스크만 제국이 몰려오면 답도 없어지는 거지.”

지금 서쪽 대륙은 시체들의 공격에 정말 간신히 버티고만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지금, 아틸러스 산맥 동쪽, 그러니까 오스크만의 서쪽 국경선에 대규모 병력들이 밀집하고 있는 모습이 위성을 통해 보이고 있다.

르기에가 말한 대로, 곧 제2차 신마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다.

“거기에 마족들도 대부분 놓쳐 버렸잖아. 분명 전부 오스크만 제국으로 도망쳤을 거야.”

“…….”

로한의 말에 아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 ‘해돋이’ 작전을 통해 처치한 마족은 딱 세 명이었다. 테르디아의 고든, 사갈의 라디치, 노르토반의 페른으로 분장한 두크락.

나머지는 전부 놓치고 말았다. 아린 역시 카르스트를 잡는 데 실패했다.

도망친 데르툴들은 모두 르기에랑 똑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처음 보는 강력한 몬스터를 꺼내서 연합군 측의 시선을 빼앗은 뒤, 그 틈을 타 차원문을 열고 도망친 것이다.

“최소 두 명 이상의 마왕과, 살아남은 마족들까지 추가된 오스크만 제국의 병력이 몰려오면 절대로 지금 서쪽 대륙 상황으로는 막을 수 없어. 설사 딘이 지금 당장 상처를 전부 회복하더라도 불가능해.”

“그래서 결국, 지구에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거군요.”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하기 싫었는데, 그런 상황이 오고 말았네.”

“가자마자 에드먼 박사한테 엄청 조롱당하겠네요.”

“아, 진짜 최악이다….”

“푸훗.”

진심으로 싫은 표정을 짓고 있는 로한의 모습에 피식 웃어버리는 아린이었다.

“그런데, 지구로 무사히 이동할 수 있겠어요? 또 15년 전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럴 일 없어.”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어제 유키펠한테 자백을 받았다고 했잖아? 그때 완벽하게 차원 이동을 하는 방법도 알아냈어.”

“아!”

“최상위 귀족 정도면 왠지 알고 있을 거 같아서 물어봤는데, 정말 알고 있더라고. 그걸 들었기 때문에 내가 바로 지구로 넘어가겠다고 한 거야. 유키펠한테 정보를 못 얻었으면, 나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넘어갈 생각은 안 했을 거야.”

“하긴….”

만약 유키펠의 정보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또 15년 전 지구로 넘어갔다? 그러면 넘어간 의미가 아예 없어진다. 지구의 사이보그 기술의 발전은 10년 동안 데르툴족과 치열한 전쟁을 겪으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15년 전의 구식 사이보그들을 데려와 봤자 지금 로한이 만든 생체 휴머노이드보다 약하면 약했지, 더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 그럼….”

로한은 두 손을 거대한 마나석 차원문 틀에 갖다 대었다. 그는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는 지구 좌표를 불러온 뒤, 온몸의 에너지원을 변환해서 포탈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포탈 생성 시간은 이번에는 좀 오래 걸렸다. 아예 다른 행성으로 넘어가는 포탈을 생성하는 건 매우 고차원 기술이기 때문에, 필요한 마나의 양도 많은 것이다.

“후… 다 됐다.”

포탈을 완성시킨 로한의 입에서 오랜만에 힘겨운 한숨이 나왔다.

“에너지원을 76%나 썼네.”

“어머. 이렇게 많이 쓴 적 없지 않았어요?”

“처음이지. 근데 금방 회복되네.”

막 포탈 완성이 끝났을 때 24%밖에 남지 않았던 에너지원이, 벌써 30%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자동으로 레기스트륨을 생성하는 최첨단 원자로의 힘이었다.

포탈을 넘어간 후 지구에 도달하면 절반 이상까지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럼 갔다 올게. 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아로엘에 계속 남아 있어. 어머니한테는 적당히 둘러대 주고.”

“걱정 마시고 빨리 다녀와요.”

“그래.”

로한은 그렇게 인사를 마친 뒤, 포탈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오스크만 제국의 황성, 도미티아누.

건물의 대복도 끝에 위치한 황좌 쪽에는, 본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다수의 데르툴족들이 서 있었다.

“다들 수고했다.”

황좌에 앉아 있던 투할이 입을 열었다.

“이게 살아남은 전부인가?”

“네, 주인님. 라디치와 두크락은 드래곤족과 전투 중에 소멸했습니다.”

르기에가 대표로 대답했다. 그러는 그의 몸은 완전히 멀쩡해진 상태였다. 뒤에 서 있는 카르스트 등의 데르툴족도 마찬가지였다.

마기로 가득한 이 도미티아누 황성에 발을 디디자마자 그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마기를 회복했던 것이다.

“큰 손실은 아니군.”

투할은 그렇게 둘의 죽음을 한마디로 평했다. 그것으로 둘의 언급은 끝이었다.

본래 힘이 곧 법인 종족이 데르툴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힘에 대한 평가가 냉정한 마왕이 투할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서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부하는 아예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편이다.

그리고 고작 인간들과의 대결에서 죽은 놈은, 당연히 투할 입장에서는 실패한 놈이다.

“아스모데.”

그가 옆에 마련된 또 다른 황좌에 앉아 있는 아스모데를 불렀다.

“포탈을 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하지?”

“길어야 3일.”

대답을 들은 투할이 선언했다.

“3일 뒤, 제2차 신마대전을 일으키겠다. 아스모데가 서쪽 대륙의 모든 지역에 포탈을 생성함과 동시에 병력을 이끌고 서쪽의 모든 국가를 정복할 것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건 ‘천지개벽’ 작전의 마지막 단계였다.

아스모데가 끌어모은 마나를 모두 사용해서, 서쪽 대륙의 모든 곳에 최소 B급 이상의 포탈을 생성한다. 거기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 대륙 전체가 또 한번 혼란스러워질 그때, 오스크만 제국의 데르마들이 일제히 산맥을 넘기 시작한다.

이 작전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었다.

제아무리 로한, 아린과 드래곤족이 전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오스크만 제국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력들과 투할 휘하의 수많은 강력한 데르툴족들, 거기에 아스모데가 특별히 제작한 포탈 몬스터들까지 한꺼번에 몰려오면 절대 막아낼 수 없다.

“3일 뒤까지 너희는 최상의 신체 상태로 끌어 올려라. 마지막 전투가 될 테니,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일제히 대답하는 부하들.

그중 르기에는 속으로 복수의 불길을 태우고 있었다.

‘다음에 만난다면, 최후에 서 있는 자는 내가 될 것입니다, 로한 공작.’

1대1로는 여전히 역부족일 수도 있지만, 투할과 아스모데, 이 두 마왕과 함께한다면 아예 얘기가 달라진다.

둘을 중심으로 한 점에 힘을 모은 데르툴족의 총공세를 로한, 아린과 몇 명 안 되는 드래곤족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고, 르기에는 자신하고 있었다.

* * *

‘여긴….’

로한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포탈을 타고 넘어오니, 완전히 환경이 바뀌어 있었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드넓은 공간. 천장에 달려 있는 수많은 형광등이 실내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런 이곳에 존재하는 건 딱 하나. 바로 로한이 타고 온 차원문이었다.

그 차원문도, 슬슬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것마저 사라지면 이 공간 안에는 로한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내가 엘도르 대륙으로 넘어갈 때의 그 장소는 맞군.’

다행히도, 지구로의 차원 이동은 성공했다. 로한이 지구에서 에드먼 등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던 그 장소로 다시 넘어온 걸 보면 말이다.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이번엔 시간도 맞게 이동했어야 되는데.’

로한은 걸음을 옮겨, 전방에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안에 들어간 그는 1층 버튼을 눌렀다.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달하자 양쪽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로한은,

“…음?”

그의 기억 속과 달라진 환경에 흠칫했다.

분명, 이곳은 에드먼 박사의 연구소여야 했다. 그러므로 1층에는 에드먼 휘하의 수많은 연구원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웬 생뚱맞은 안내원 같은 여성이 입구 쪽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어?”

의아해하는 로한의 귓가에 들려오는 안내원의 목소리.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로한에게로 다가왔다.

“어디서 올라오셨… 어어!”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질문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로, 로한?!”

경악하는 그녀의 외침에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잘못 보셨습니다.”

엘도르 대륙으로 넘어갈 때, 로한은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그것이 아니면 갑자기 실종된 로한의 거취를 설명하기가 힘드니까 말이다.

즉, 최고의 사이보그였던 로한은 마왕을 처치함과 동시에 본인도 장렬하게 전사하는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지구의 역사 속에 기록된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안내원은 바로 사과했다. 동시에 속으로 자책했다.

‘하긴, 죽은 로한이 다시 살아날 리가 없지. 분명 비슷한 외모로 제작된 사이보그나 휴머노이드일 거야.’

실제로 지구의 위대한 영웅, 로한을 숭배하는 의미로 그와 똑같은 외모로 고친 사이보그나 휴머노이드를 많이 봐왔었다. 눈앞의 남성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일 것이리라.

“여긴 원래 에드먼 박사의 연구소 아니었나요?”

로한의 물음에 안내원이 대답했다.

“그건 예전 얘기고요, 지금은 미국의 워싱턴 시로 이전한 상태입니다. 여기는 에드먼 박사의 박물관으로 바뀌었고요. 유명한 얘긴데, 모르셨어요?”

그 말에 로한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예전’에 연구소가 이전했다고?

‘설마, 미래로 돌아온 건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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