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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16화 (116/200)

제116화

페른.

현 노르토반의 황제. 즉,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

그의 한마디면 북쪽의 모든 원로들이 고개를 숙이며, 설원의 발키리들이 모두 칼을 빼 들고 진군한다.

특히 왕실 기사단은 그 누구보다도 페른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그가 죽으라 하면 정말 바로 자결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 이 쓰레기 자식!”

하지만, 지금 왕실 기사단은 모두 페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쇠사슬에 꽁꽁 묶여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그중 제일 앞에 있는 왕실 기사단장, 드미트리우스가 절규하듯 외쳤다.

“어떻게, 어떻게 국왕인 네가 마족에게 넘어갈 수 있단 말이냐!”

“말은 바로 해라!”

왕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던 페른이 입을 열었다.

“난 마족에게 넘어간 게 아니라, 그냥 마족이다. 하찮은 하수인 따위로 취급하지 말길 바란다.”

“뭐, 뭐라…?”

더 큰 충격을 받은 드미트리우스에게서 페른은 시선을 돌렸다.

그가 말을 거는 상대는,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한 청초한 여인이었다. 차가워 보이는 검은 흑발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얼음을 연상케 하는 색깔의 푸른 드레스가 너무도 잘 어울려 보이는 미녀.

“그동안 연기하느라 고생했다, 캐서린.”

엘도르 대륙의 4대 미녀 중 한 명이자, 노르토반 설국의 모든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얼음 공주’ 캐서린.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은 ‘얼음 공주’라는 칭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전 아무것도 한 것 없어요. 지금까지 눈치 한 번 못 챈 이놈들이 멍청한 거죠, 뭐. 호호호.”

오만한 눈빛과 표정으로 웃어대는 그녀의 지금 모습은 악녀 그 자체라 표현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빨리 작전 끝내요, 주인님. 주인님의 품에 안긴 지 너무 오래됐단 말이에요~”

심지어 음탕한 눈빛으로 아양까지 떠는 모습. 이것이 얼음 공주라는 가면을 쓰고 있던 캐서린의 본모습이었다.

실제 그녀는 페른의 친딸이 아니었다. 페른의 탈을 쓴 마족의 한낱 데르마이자, 성적 파트너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 빨리 끝내자.”

페른도 음심이 발동한 듯 음흉하게 웃더니, 바로 주변의 데르마들에게 지시했다.

“체포한 전원의 목을 베어라!”

“네!”

곧 그들은 각자 무기를 뽑아 든 뒤, 제일 가까이에 있는 기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무기를 들어 올릴 때까지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자신들을 꽁꽁 묶은 마법 쇠사슬로 인해 마나 사용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충격에서 못 벗어난 드미트리우스가 중얼거리던 그때, 그에게 다가온 데르마 관리가 양손으로 쥔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

페른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갑자기 오른쪽 멀리서, 엄청난 기운이 눈부신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최소 지금의 자신보다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기운!

페른은 곧장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앙!

그와 동시에 오른쪽 벽이 박살이 나면서 왕좌가 산산조각이 났다.

“꺄아악!”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옆에 서 있던 캐서린이 휩쓸려서 페른 쪽으로 같이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왼쪽 벽에 부딪친 캐서린은 충격에 쉬이 일어나지 못했지만, 운 좋게 피한 페른은 바로 마기를 극도로 끌어 올린 채로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했다.

상대방은 백발의 푸른 눈을 한,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성이었다. 눈처럼 하얀 색의 제복이 너무도 잘 어울렸으며, 또한 설국인 노르토반과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심지어 목소리조차 고드름이 뚝뚝 떨어질 법한 차가운 느낌이었다.

“오랜만이다, 페른.”

그 말에 페른은 의아한 눈빛으로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오랜만이라고? 난 기억에 없는데…. 도대체 누구지?

‘이렇게 강한 놈이면 분명 기억하고 있었을 텐데?’

“그래, 페른… 아니, 페른이 아니겠군. 진짜 페른은 이미 네 손에 죽었을 테니.”

사내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아닌 진짜 페른이 태어난 날, 그에게 얼음의 축복을 내려줬었다.”

“……!”

그 말을 들은 페른의 눈이 부릅떠졌다. ‘얼음의 축복’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상대방의 정체를 바로 알아챈 것이다.

동시에 경악했다.

노르토반의 차기 국왕이 탄생했을 때, 얼음의 축복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크리수트라…?”

노르토반 사람들은 주로 크리스라고 부르는 존재.

바로 노르토반을 5천 년 넘게 보호하고 지켜냈던 수호신, 화이트 드래곤의 이름이었다.

“얼음의 축복을 받은 아이를 죽인 것도 모자라, 그의 껍데기까지 쓰고 있다니.”

크리스의 두 눈동자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안광이 폭사되었다.

“페른, 그리고 노르토반의 분노를 받아라.”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강렬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왕성 전체를 뒤덮은 그의 마나는 너무 차가워서, 주변 사람들이 오한으로 인해 절로 온몸을 파르르 떨 지경이었다.

곧, 크리스가 내민 손바닥에서 거대한 얼음 송곳들이 다수 생겨나 페른에게 발사되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페른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본체로 돌아가지 못하면 저 드래곤의 강력한 마법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버는 방법을 택했다.

옆에 쓰러져 있던 캐서린을 집어 든 후, 정면에 던져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다.

퍼퍼퍽!

“아악…!”

단번에 온몸에 얼음 송곳이 박힌 캐서린은, 마치 고슴도치와도 같은 모습으로 축 늘어졌다. 대륙의 4대 미녀, 캐서린의 최후는 이리도 허망했다.

하지만 그녀 덕에 페른은 변신할 시간을 벌었다. 변신을 시작하면서 그는 데르마들에게 외쳤다.

“모두 공격해라!”

데르마들은 곧장 크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갑자기 무너진 벽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낯선 이들이 없었다면 말이다.

“테아이엘 여신님의 이름으로, 데르마들을 모두 처단하라!”

외침과 함께 신성력을 끌어 올린 상태로 일제히 달려드는 성기사단은, 바로 아르베니아에서 워프해 온 원군들이었다.

곧, 성기사들과 데르마들. 그리고 크리스와 페른 간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니!’

그 시각.

엘-줄리안과 싸우고 있던 마가체프는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갑자기 원군으로 등장한 거지? 설마….’

마가체프의 시선이 절로 엘-줄리안에게로 향했다.

“설마, 네놈이 작전을 눈치챘나?”

그는 이렇게밖에 의심할 수 없었다. ‘천지개벽’ 작전과 딱 맞는 타이밍에 아르베니아의 원군까지 데려오려면, 스파이인 엘-줄리안이 미리 작전을 눈치채서 그들의 연합군에게 알려줬다는 가정밖에 없었다.

“그건 아닌데?”

답변은 엘-줄리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옆의 무너진 벽 쪽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한 젊은 소년의 것이었다.

“읏차!”

바람의 정령의 등에서 내린 그가 마가체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린 그냥 우리 나름대로 작전을 실행한 건데~? 뭐야, 설마 니들끼리 짠 작전이 또 있었나 봐~?”

“…넌 누구냐?”

마가체프가 방심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분명, 지금 저놈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옆의 엘-줄리안과 비슷한 성질이면서도, 훨씬 더 강력했다.

그의 물음에 소년이 갑자기 목을 다듬었다. 이후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과 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크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테르디아의 최고의 가문인 칼슈티안의 자랑스러운 삼남이자! 그 천하의 로한 공작과 ‘가장 친한 동생’ 사이이며, 뭇 테르디아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 하지만, 이미 사모하는 여인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쩔 수 없이 마음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이안 칼슈타인이다.”

“아, 왜 끊어!”

갑자기 옆에 나타난 한 발키리 전사를 향해 빽 외치는 이안.

“주인님께서 이안 님이 헛소리를 할 때마다 칼같이 차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는 그녀는 로한이 노르토반으로 보낸 생체 휴머노이드, 카트린느였다.

“야, 이게 어떻게 헛소리냐? 전부 100% 팩트인데! 아직 대륙 최고의 정령사라고는 소개도 안….”

“빨리 정령왕을 소환하십시오. 속히 이곳을 정리하고 다른 곳을 도우러 가야 합니다.”

“아오, 씨! 너 사사건건 내 말 끊을래?”

“빨리 정리 못 하면 아린 님께서 평생 얼굴 안 본다고 하셨습니다.”

“하아아압!”

곧바로 정령 친화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졍령 소환술을 시작하는 이안의 모습.

잠시 후, 그의 주위에 정령왕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정령왕이 아니라, 정령왕‘들’이다.

“……!”

마가체프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안이 소환한 정령왕은 무려 세 명이었다!

은빛의 페가수스 모습을 한 저 환수는 분명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이고,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 황토빛 거인은 땅의 정령왕 오리에드였으며, 온몸이 불에 타고 있는 듯한 거대한 저 새는 분명 불의 정령왕, 피닉스다.

‘어떻게 하찮은 인간 주제에 한 번에 세 명의 정령왕을…!’

믿을 수 없어하는 마가체프를 향해 이안이 씨익 웃었다.

“너 아까 분명, 널 이기려면 정령왕 세 명은 소환해야 한다고 말했었지?”

“!”

“그래서 세 명 모두 한꺼번에 소환해봤지~! 자, 이제 시작해 볼까나?”

그 말에 정령왕 네 명이 모두 전투 준비를 갖췄다. 엘-줄리안이 소환한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까지 합하면 네 명이 맞다.

거기에 로한의 생체 휴머노이드, 카트린느까지 공격 자세를 취했다.

“큭!”

마가체프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면서 전신의 마기를 급격히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압도적 우세였던 상황이, 지금 단번에 열세로 변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였다.

콰아앙!

우르르….

왕좌 쪽에서 갑자기 건물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와~!”

이안이 놀란 표정으로 순수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왕성 천장을 뚫고 솟아오른 두 거대한 존재 때문이었다.

한 명은 전 페른 황제였던 마족이 본연의 모습으로 변신한 모습이었고, 한 명은 폴리모프를 푼 화이트 드래곤, 크리스가 본체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그중 마족이 외쳤다.

“네놈이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나는 데르툴 중에서도 최상위 귀족인 두크락이다! 크아아아!”

동시에 사방에 마기를 분출하며 크리스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

그걸 본 엘-줄리안이 혼잣말을 했다.

“일단, 노르토반의 ‘해돋이’ 작전 1차 목표는 성공이군요.”

저렇게 대놓고 공중에서 마족의 모습으로 싸우기 시작한 이상, 노르토반의 모든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족의 본모습을 보여줘서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뒤,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다는 ‘해돋이’ 작전의 가장 큰 목적은 일단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저렇게 마족들이 대놓고 날뛰는데, 당연히 노르토반의 모든 헌터들이 뭉치지 않겠는가?

“이제 이 눈앞의 마족들만 처치하면, 2차 목표까지 성공하는 겁니다.”

“좋아~ 들어가자!”

이안의 외침과 함께, 네 명의 정령왕과 카트린느까지 일제히 마가체프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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