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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12화 (112/200)

제112화

딘이 거주하는 드래곤 레어는, 엘-카시안의 엘프 마을과 그리 머지않은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아틀라스 산맥 정중앙이라 주변의 포탈 몬스터와 키메라들이 가득하며, 레어 모양도 주변의 산등성이와 비슷해서 안구로 구별하기 매우 힘들었다.

가까이 가더라도 레어에 쳐져 있는 강력한 결계 마법에 의해 환각 작용이 발생해서 결국 주변을 빙빙 돌다 포기하게 되는 구조다.

그래서 딘의 허락이 없으면 접근조차 어려운 이곳에,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건… 심각하군요….”

엘-카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충격받은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레어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누워 있는 딘의 온몸에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이미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딘 님…?”

“안 괜찮다.”

딘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태어나서 이 정도로 죽기 직전의 상태까지 몰린 건 그도 처음 겪는 일이다.

정말 여기서 상처 조금만 더 입었으면, 과다출혈로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최악의 위기를 넘긴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엘-카시안 옆의 남성이 혀를 찼다. 로한이었다.

“내가 나대다가 이 꼴 날 줄 알았다.”

“…시끄럽다.”

“그러게 평소에 남한테 잘하고 다니지 그랬냐. 나한테 꼬박꼬박 연락도 좀 하고. 공덕을 제 발로 걷어차니까 벌 받은 거야.”

“시끄럽다고 했다! …으윽!”

“참으십시오! 상처가 벌어지십니다!”

발끈해서 버럭 외치려다가 인상을 쓰는 딘과, 동시에 다시 목의 관통상이 다시 벌어지려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외치는 엘-카시안의 모습.

로한이 말했다.

“상처는 더 안 벌어질 거야. 내 특제 회복약이 효과가 좀 좋긴 하거든. 물론 빨리 회복되는 만큼 좀 많이 아프긴 한데, 그 정도는 다 큰 드래곤이 돼서 참을 수 있잖아?”

“…….”

“거, 도움받았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 하냐? 이래서 나쁜 놈 도와줘 봤자 하나도 소용이 없어요. 나중에 가면 회복약 때문이 아니라 지가 잘나서 알아서 회복했다고 고집 부릴 놈이라니까? 이런 놈을 수장이라고 둔 드래곤들이 불쌍하다. 쯧쯧쯧.”

“…저놈 입 좀 닥치게 만들어라, 제발.”

지금 엘-카시안은 딘이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장면을 보는 귀한 장면을 목격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농담도 아니었다. 절실한 딘의 표정을 보니 저 말은 진짜 진심이었다.

“그나저나, 마왕이 둘이라는 건 정말 예상 밖의 정보군.”

로한은 지금까지의 장난기가 살짝 담긴 말투가 아닌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원래 같은 마왕끼리 같은 대륙을 안 정복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실제로 지구를 습격했던 마왕도 샤훌리트, 단 한 명이었다. 그의 휘하 데르툴족의 침입만으로도 지구는 완전히 멸망당할 뻔했었다.

그런데 둘이나?

이러면 지구에서의 기억도 큰 도움이 안 된다.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니까.

“이러면 ‘해돋이’ 작전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마왕이 둘이라는 것은, 휘하 마족도 두 배로 많다는 소리니까요.”

“하지만 이미 의심자 명단이 모두 나왔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많은 마족이 평민 사이에 섞여 있다면요? 그들로 인해 작전에 참여한 드래곤족이 모두 몰살당하기라도 한다면요?”

반박하려던 엘-카시안은, 눈앞의 딘의 상태를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로드도 이렇게 패퇴했는데, 다른 드래곤이라고 생명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해야 한다.”

이번 목소리는 딘의 것이었다.

“‘해돋이’ 작전은 단순히 서쪽 대륙의 마족을 일망타진하는 걸 넘어서, 인간들을 다시 뭉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제국 전체가 이미 마족에게 장악당한 이상, 하루 빨리 서쪽 대륙의 모든 국가가 뭉쳐야 해. 안 그러면 몰려오는 제국 놈들에게 각개 격파당하고 만… 윽!”

“그만 말씀하십시오, 딘 님.”

로한의 물약에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길게 오랫동안 말하는 것도 힘든 게 현재 딘의 상태다.

로한이 아픈 딘을 대신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위험해서 작전을 물릴 여유가 전혀 없어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이 작전 아니면 솔직히 답이 없어요.”

“음….”

엘-카시안이 속으로 살짝 고민할 때, 로한은 이런 생각을 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긴 한데… 그걸 사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이 방법은 아직 미완성일 뿐더러, 언제 완성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무턱대고 사용했다가 오히려 엄청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최악 중의 최악의 상태일 때만 사용할 계획이었다.

로한이 입을 열었다.

“최대한 빨리 해돋이 작전 기일을 당깁시다. 덩치만 크지 약해빠져서 이 모양 이 꼴이 난 도마뱀 새끼 회복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넌 진짜 낫고 보자.”

“빨리 낫기나 해, 이 자식아! 뭐야, 이 한심한 꼴은 뭐야, 도대체!”

로한의 이번 외침에는 꽤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나마 이 자식이 연합군 중에서 믿을 만한 놈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연합군 전력에 엄청난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가!

그 속마음을 읽었을까? 딘도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딘 님의 역할은 누가 수행해야 할까요?”

엘-카시안의 물음에 로한은 대답했다.

“제가 해야죠 뭐. 별수 있나요?”

“그러면 테르디아는요?”

“아린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윌리엄 공작도 있고요.”

현재 윌리엄 공작의 경지라면 데르툴족까지는 힘들더라도, 데르마들을 상대로 제압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윌리엄 외의 정예 멤버들이 데르마들을 맡아주면, 데르툴족은 아린이 상대해주면 된다.

[오빠!]

그때, 짜기라도 한 듯이 아린의 통신이 들려왔다.

그런데 목소리가 많이 다급해 보였다.

[큰일 났어요! 빨리 영지로 돌아와야 해요!]

‘왜?’

로한이 물었다.

* * *

10분 전.

드넓은 평야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10명가량의 헌터 무리가 있었다.

바로 하딩 파티 팀이었다.

“이야~ 파티 사냥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뒤쪽에서 기쁘게 말하는 이는 신입 헌터, 딕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친구 벅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여기 B급 던전이잖아? 근데 D+급 헌터인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사냥한다는 게 말이 되냐? 단계로 따지면 우리 5단계 위의 던전을 공략에 성공한 거라고!”

“지금 말하면 벌써 세 번째 말하는 거다.”

“그만큼 놀랍다는 거야! 난 B급 던전의 보스가 그렇게 쉽게 잡히는 건 생전 듣도 보도 못했어!”

계속 말하는 딕의 머릿속엔, 방금 전 보스 사냥 장면이 떠올랐다.

이 던전 내 몬스터인 쿠살리크를 몇 배 더 키운 듯한 모습의 보스 몬스터, 모락스.

뿔이 네 개 달린 거대하고 튼튼한 그 몬스터가 일행들의 각종 덫 장치와 이어지는 마나 건 폭격에 어떻게 반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런 식이면 매일 던전 사냥에 참여해도 문제없겠다. 그치? 그냥 마나 건으로 뿅뿅 쏘면, 여기보다 낮은 등급의 던전은 더 쉽게 공략 가능할 거 아냐?”

“뭐야, 너 내일도 가게?”

“당연하지! 빨리 돈 벌어야 더 큰 집도 장만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지! 평생 아파트라는 조그마한 거주 공간에서 살래?”

“난 아파트 좋던데. 최신식 시설이 너무 좋아서 다른 데 이사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시설이 좋긴 한데… 에이, 그래도!”

둘이 그렇게 편하게 잡담을 계속 나눌 때, 하딩의 외침이 들려왔다.

“절반 정도 걸어왔으니, 10분 정도 휴식 후 다시 이동한다.”

그 말에 계속 걷던 일행들은 이곳저곳 자리를 잡아 계속 걷던 다리에게 휴식을 줬다.

딕은 물통의 뚜껑을 열면서 물었다.

“보스 잡고 지금까지 한 시간 정도 걸어왔나?”

“어. 한 시간만 더 가면 던전 입구에 도착할걸.”

“확실히 돌아가는 길은 편하네. 몬스터 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그러냐?”

“이렇게 안심하다가 고블린에게 습격당해서 정강이에 큰 구멍이 났던 놈이 누구더라?”

“에이, 씨! 불길한 소리 하지 마! 그땐 퇴각 경로를 이상하게 짠 그 파티 대장 놈의 잘못이잖아~!”

그리고, 벅의 불길한 소리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

역시 앉아 쉬고 있던 하딩의 고개가 한쪽으로 휙 돌아갔다. 여기서 제일 강한 그의 감각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몬스터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왼쪽에 몬스터 무리다! 모두 전투 준비!”

“아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딕은 벅을 째려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 건을 고쳐 잡았다.

모두가 급히 전투 준비를 하던 그때.

역시 마나 건을 꺼내들던 하딩의 눈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이건, 쿠살리크가 아닌데?’

전방에 느껴지는 몬스터들의 기운이, 지금까지 처치했던 쿠살리크보다 훨씬 강했다. 심지어 속도도 빨라,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도마뱀이었다. 아니, 잘 보면 드래곤 새끼인 해츨링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입과 콧김으로 뜨거운 불길을 연신 뿜어내는, 온몸이 빨간 피부로 뒤덮인 그들의 정체를, 하딩은 알고 있었다.

‘페루다!’

바로 A- 몬스터, 페루다였다. A- 몬스터!

“뭐, 뭐야? 페루다잖아!”

“쟤들이 이 던전에 왜 나타났어?”

그들을 알아본 다른 헌터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모두가 당황할 때,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게 파티장의 몫이다. 다행히 하딩은, 아로엘에서도 파티장으로 가장 많은 전과를 올린 노련한 헌터였다.

‘이건 영주님이 말한 아데가 현상이다. 그렇다면….’

상위 몬스터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온다는 아데가 현상이 일어났을 때, 절대 싸우지 말고 도망치라는 로한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싸워봤자 등급이 높은 몬스터라 반드시 피해를 볼 것이고, 처치해봤자 끝없이 몬스터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 던전 입구 쪽으로 달려!”

하딩의 외침에 일행들 전부가 던전 쪽으로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전원 각성자로 이루어져 굉장히 속도가 빨랐지만, 그들을 뒤쫓기 시작한 페루다들의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그때, 하딩은 유일하게 도망치지 않고 급하게 배낭에 차고 있던 폭탄 비스무리한 물체를 하나 꺼내어 페루다 쪽으로 던졌다.

컨퓨스(Confuse) 마법 룬어가 새겨진 마법 폭탄이었다.

퍼엉!

폭탄이 터지고 노란 연기가 페루다들 전체를 뒤덮었다. 연기를 마신 페루다는 모두 혼란 효과에 걸렸다.

일부는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일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같은 동족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기도 했다. 컨퓨스 마법의 효과였다.

‘지금이다!’

하딩은 곧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는 일행들의 뒤를 따랐다. 저 폭탄의 효과는 그리 짧지 않기 때문에, 마법 효과가 사라지기 전까지 최대한 그들과 거리를 벌려놔야 한다.

그리고 10초 뒤 마법 효과는 사라졌고,

“취리리릭!”

“캬아아!”

정신을 차린 페루다들은 괴성과 함께 다시 하딩 등의 뒤를 빠르게 쫓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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