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역시, 오스크만 제국이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엘-카시안이 대답했다.
이제 모든 정보가 수집된 서쪽 대륙과는 달리, 동쪽의 오스크만은 아직 수집된 정보가 미흡하다. 딘과 로한이 보낸 두 첩자, 엔벨과 에슬라가 한 달간 꾸준히 정보를 보내오고 있지만, 그마저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셋 다 지금까지 황성에서 정보를 수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성에서의 정보가 없다 보니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딘 님이 황제를 만나서 제대로 된 핵심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만….”
“전 안전하게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로한의 말에 엘-카시안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딘 님인데, 설마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모르는 겁니다.”
단호히 대답하는 로한의 표정은 진지했다.
“상대가 마족이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만약 벤슈타인이 혹시나 마왕 본인이라면, 그래서 딘의 정체를 단번에 눈치챈다면,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마왕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
“그리고 전 변수가 단순히 오스크만 제국에만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엘-카시안이 물었다.
“우리가 ‘해돋이’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한 달의 기간 동안 마족들이라고 그들만의 작전을 짜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최근 한 달 동안, 명단에 있는 모두가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최근 대륙 전체적으로 심해진 감시의 눈길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로 움츠러들 놈들이 아닙니다. 마족들은 엘-카시안 님의 생각보다 훨씬 교활하고, 치밀하고, 탐욕적인 놈들입니다.”
로한은 대답을 이었다.
“분명 그들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우리는 딘이 돌아오자마자 지체 없이 ‘해돋이’ 작전을 시작해야 합니다. 조금만 늦어도 언제 그들이 먼저 역공을 펼칠지 모릅니다.”
“…….”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한 후, 엘-카시안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월요일 일찍부터 아로엘 성의 내성 입구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모두 헌터라는 점이다.
“C- 랭크 던전 가시는 분! C- 랭크는 여기로 모이시오!”
“B- 가는 2팀은 이쪽으로!”
“B- 1팀은 이쪽입니다! …아니, 당신은 2팀이잖아요? 2팀은 저쪽이에요!”
각 파티 대표들의 외침에 따라 속속들이 자신의 팀으로 이동하는 헌터들.
이 수많은 파티들 중에서 가장 평균 헌터 랭크가 높은 팀은 B랭크 팀이었다.
“B팀 다 모인 것 같으니, 출석 체크 좀 해보겠습니다.”
얼굴을 비롯, 온몸이 흉터로 가득한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 파티원들이 모두 모였나 다시 한번 호명하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부르던 그는 곧 마지막 순서에 다다랐다.
“벅, 어딨소?”
“여깄…습니다.”
“확인. 옆은 딕이겠군.”
벅 옆에 서 있던 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신입이군. 이번에 아로엘 영지의 헌터로 등록했고. 맞소?”
“네.”
“둘 다 D+ 랭크에, 바니어스 성 출신이라. 둘이 아는 사이요?”
“네. 친구 사이입니다.”
“좋소.”
명단이 적힌 문서를 집어넣은 그가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난 하딩. 이번에 당신들의 통솔을 맡은 B+급 헌터요. 반갑고, 이번 던전도 무사히 잘 공략해 봅시다. 그럼, 이동하겠소. 짐들 모두 챙기시오.”
하딩의 말에 모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 일제히 하딩의 뒤를 따라 내성으로 걸을 때, 제일 뒷줄의 딕이 벅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하딩이구나. 다행이다. 덕분에 더 안전하게 던전 공략하겠네.”
“유명해?”
“몰라?”
딕이 되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딩 님은 현재 아로엘에서 5위 안에 드는 강자 중 하나야! 게다가 실전 경험은 단연코 아로엘 1위라서, 던전 안에서 활약상은 거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으로 유명해!”
“아, 그렇구나.”
“넌 아로엘에서 일한다는 놈이 기본 상식도 검색 안 하고 왔냐?”
“니가 다 알려줄 텐데 뭘, 귀찮게. 이번에도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맙다~!”
“아.”
딕이 당했다는 표정을 지을 그때, 하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11번 워프진으로 모두 이동하겠소.”
그쪽을 바라보니, 최소 20개는 넘어 보이는 수많은 워프진들이 마탑 옆 공터에 그려져 있었다.
각 마탑별로 포탈 랭크가 적혀 있는 걸 보니, 포탈로 바로 넘어가는 워프진인 모양이었다.
두두두두두…!
지천을 울리는 육중한 질주 소리.
하딩 파티원들의 시야를 새까맣게 뒤덮은 물소 몬스터, 쿠살리크가 달려오면서 만들어낸 소리였다.
하딩이 외쳤다.
“모두 일제 사격!”
동시에 일행들은 손에 들고 있는 소총 모양의 물체를 쿠살리크들에게 겨눈 뒤,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마치 레이저 빔 같은 것들이 발사되었다.
레이저 빔에 처음 맞은 쿠살리크는 살짝 휘청였고, 두 대 맞았을 때에는 크게 휘청였으며, 세 대 맞았을 때에는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쓰러져 버렸다.
끝없는 일행들의 사격에 쓰러지는 쿠살리크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고, 곧 서 있는 쿠살리크는 몇 마리 되지도 않았다.
그들 역시,
“음머어!”
“푸르륵…!”
레이저 빔을 두들겨 맞고 신음과 함께 다른 동료들처럼 시체가 되어버렸다.
거의 40마리는 넘는 것 같은 저 거대한 쿠살리크들을 단 한 명의 피해 없이 완벽하게 일망타진한 것이다.
하딩이 입을 열었다.
“좋아. 시체들의 뿔만 수집하고 다시 이동한다.”
“가죽은 안 챙기십니까?”
“가격이 너무 떨어져서, 해부하는 시간이 더 아까워. 지금도 아로엘 창고에 한가득이다.”
“알겠습니다.”
곧 절반은 경계를 서고, 절반은 시체 해부를 위해 이동했다. 보통 해부는 말단 헌터들의 몫이었고, 하딩 팀도 마찬가지다.
시체 한 마리한테 붙어 해부용 칼을 꺼낸 신입 헌터, 딕이 옆의 벅에게 말을 걸었다.
“몇 마리 잡았어?”
“몰라? 적어도 3마리 정도?”
“난 4마리인데. 내가 이겼다. 흐흐흐.”
“어, 그래. 축하한다.”
“쳇. 재미없긴…. 그나저나 그 무기 쩔지 않냐?”
딕이 벅의 어깨에 메여 있는 소총을 가리켰다.
“마나 건? 이거 대박인 거 같아. 무슨 마나를 화살처럼 발사가 가능하지? 심지어 위력도 칼로 공격할 때보다 훨씬 세!”
“그만큼 빨리 지치지 않냐? 나 벌써 몸속 마나 반 토막 난 것 같아.”
“에이, 이 정도 위력이면 마나 소모도 당연히 많아야지. 덕분에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해치웠잖아?”
“하긴….”
일행들이 모두 어깨에 메고 있는 마나 건은, 로한이 최근에 개발한 각성자용 특제 무기다.
그냥 평상시 무기를 사용하듯이 마나를 끌어 올려서 방아쇠를 당기면, 무기 안의 마나석에 새겨진 룬어에 반응을 일으켜 압축된 마나를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평상시보다 마나 소모량이 높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장점밖에 없는 진짜 혁신적인 무기다. 원거리 공격에 위력도 강해서, 어지간하면 포탈 몬스터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거 어떻게 개인적으로 못 사나? 돈 많이 들어도 사고 싶은데.”
“아직은 불가능해.”
딕의 혼잣말을 들은 하딩이 대답해왔다.
“물량이 아직 얼마 없어서, 지금 아로엘 던전 사냥 팀에게만 지급하는 것도 빠듯한 상황이거든. 안 그래도 대륙 전체에서 이 무기 사고 싶다고 난리인데, 아직 팔 물건 자체가 없어.”
“아하!”
“몇 주 더 지나서 구매 가능하면 그때 아로엘 본성에서 공지할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 자,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빨리 잘라.”
“아, 네.”
곧 모든 해부를 마친 일행들은 다시 가던 길을 이어 걷기 시작했다. 마나 건을 사용할 때 필요한 마나를 최대한 다시 회복해서 체내에 축적시키며 말이다.
* * *
도미티아누 황성.
제국의 초대 황제인 도미티아누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곳은 오스크만 제국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대륙 최고의 국가를 다스리는 장소이자, 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무나 이 황성 안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실력은 물론이요, 계급, 혈통, 충성도 등등 모든 점에서 결점이 없어야 대륙 최고의 권력자를 곁에서 보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지금 여기, 딱 일주일 전에 그 자격을 받은 한 명의 신입 관리가 황성 내 복도를 걷고 있었다.
딘. 본명 레이오트라카르딘이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정말 사치스럽군.’
복도 전체를 돌아보는 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이 황성은 일반 복도에도 금, 보석 혹은 마나석으로 제작된 장식품들이 한가득 깔려 있었다.
보나 마나, 평민들의 눈물과 고혈로 만들어진 것들이 분명하리라.
‘황성 밖의 평민들은 그렇게 굶주리고 있는데 말이지.’
지난 한 달간, 오스크만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는 서쪽 대륙 사람들이 모르는 온갖 참상을 다 봐왔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수도인 도미티아누 폴리스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평민들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높은 비율의 세금과 혹사라고 말해도 될 만큼 높은 노동 강도, 거기에 자비가 없는 잔혹한 형벌까지.
이들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세금들은 모조리 황성의 권력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 년 전이랑 상황이 너무 똑같다.’
신마대전 때도 이랬다. 고혈을 빨아 모아놓은 마나석 등을 이용해 수많은 데르마들과 포탈 몬스터, 키메라들을 한꺼번에 소환해 전쟁을 일으켰던 오스크만 제국 아니던가.
게다가, 이 황성 전체에 흐르고 있는 마기들. 그래서 딘은 확신하고 있었다. 곧 이놈들은 제2차 신마대전을 벌일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과연 벤슈타인, 네놈이 내 예상대로 진짜 마왕일지 지금 확인해보지.’
거기까지 생각한 딘의 발걸음이 멈췄다. 바로, 제국의 황제 벤슈타인의 집무실 정문 앞이었다.
안의 관리가 안쪽으로 외쳤다.
“폐하. 신입 대마법사인 카딘이옵니다.”
“들여보내.”
굵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옆의 병사들이 정문을 활짝 열었다.
벤슈타인.
오스크만 제국을 손에 넣은 대륙 최고의 권력자이자, 동시에 S+등급 랭크를 가진 대륙 최강의 헌터 중 한 명.
검은 수염을 기른 남성미 넘치는 얼굴의 그가, 고급 목재로 제작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를 본 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벤슈타인의 온몸에서 퍼지고 있는 이 기분 나쁜 기운은 분명, 마기였다.
‘이 자식, 대놓고 마기를 이렇게…?’
너무 당당하게 뿜어내고 있어서 황당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을 그때.
벤슈타인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만나는군.”
“…네?”
무슨 소리냐는 표정의 딘에게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드래곤 로드는 얼마나 강한지 항상 궁금했거든.”
“!”
순간 행동이 멈춰버린 딘의 두 눈을, 벤슈타인이 마주 쳐다보며 안광을 내뿜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