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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02화 (102/200)

제102화

엘프들의 집은 아까 전 로한이 발견했던 커다란 나무였다. 엘프들은 이 나무를 생명수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줄기 곳곳에 구멍을 내거나 통나무집을 건설해서 살아간다고 한다.

촌장, 엘-카시안의 집은 제일 낮은 지상에 있었다. 로한과 구르카, 둘은 그 안에서 촌장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 디, 딘이 그 내가 알고 있는 드래곤 로드님이었어?!”

곧 경악해서 외치는 구르카.

“네.”

“그분이랑 단둘이 마족 간의 정보 공유를 하고 있었다고?!”

“네.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해서 지금까지 숨길 수밖에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야!”

사과하는 로한에게 두 손을 휘젓는 구르카. 그 손끝들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공포스럽게 각인되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후… 오늘 들은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암!”

오죽하면 이렇게 세뇌를 하면서 기억을 강제로 지우고 싶어 할까?

지켜보던 엘-카시안이 그를 향해 물었다.

“정 듣기 싫으면 잠깐 나가 있겠나? 지금부터 할 얘기를 들으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네. 무엇보다 얘기할 것이 많아 자네가 많이 지루해할 수도….”

“그럼 난 나가 있겠네!”

지루하다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구르카는 벌떡 일어나더니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엘-카시안은 미소와 함께 로한에게 말했다.

“드워프족은 본래 지루한 걸 절대 참지 못하는 종족입니다. 아마 지금이 아니어도, 한 5분 정도 얘기를 나누고 나면 알아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겁니다.”

“하하하….”

“그리고 드워프족은 입이 무거운 편이니 비밀 유지에 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특히 은인이 얘기한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는 습성이 있죠.”

“저도 구르카 님은 믿습니다. 평소에도 입이 무거우신 편이거든요.”

대답한 로한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딘에게 저에 대한 얘기를 대충 들으셨다니까 바로 물어보겠습니다. 딘이, 당신을 꼭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족과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요.”

“네, 맞습니다.”

“어떤 관련이 있으신 겁니까?”

“천 년 전, 신마대전에 참전했던 이종족 연합군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당시 천마대전에서 연합군은 크게 세 개의 세력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인간 연합군, 드래곤족, 그리고 이종족 연합군.

“당시 이종족 연합군의 수장을 기억하십니까?”

“네. 엘-하드리안… 아, 그러고 보니 같은 하이엘프였네요?”

“맞습니다. 저의 아버지 되시죠.”

“아!”

“저는 아버지의 임무를 그대로 부임받았습니다. 그래서 비상시에 이종족 연합군의 수장의 역할을 맡게 되죠.”

“그러시군요….”

대답하는 로한의 눈빛이 새삼 달라졌다. 천 년 전 전설의 그 이종족 연합군의 수장을 대대로 물려받았다라. 이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인데?

“천 년 전 신마대전 종료 후 연합군끼리 맺은 맹약을 기억하십니까?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종족의 수장들은 서로 연락을 바로 할 수 있는 개인 연락망을 유지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전설 책자 속에 그렇게 적혀 있는 건 압니다만… 그게 실제로 이행되었습니까?”

“아버지와 딘 님은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었지만, 인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신마대전이 끝난 후 동맹이 깨짐과 동시에 서로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분열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인간 연합군의 수장이라는 자리도 사라지게 된 거죠.”

엘-카시안이 로한과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맹약은 다시 부활했습니다.”

“누가… 설마?”

눈치챈 로한이 손으로 본인을 가리키자, 엘-카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딘 님께서는 당신을, 마족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인간들의 유일한 대표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신과 직접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용언 마법을 건 것입니다.”

이번에는 로한도 속으로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도마뱀 놈이 나를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얼마 전에 모든 나라의 국경선에 드래곤이 등장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어진 엘-카시안의 말에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그것도 설마….”

“바로 당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아르베니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연합을 맺어 테르디아를 치려 했었습니다.”

“네?!”

깜짝 놀라 외치는 로한.

물론 그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었다. 지구에서 데르툴들이 써먹은 작전 중 하나가, 연합국끼리 분열을 일으켜 세계 전쟁을 발발시킨 후 혼란을 틈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포탈을 여는 것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며칠 전에 윌리엄에게 얘기했던 것이다. 분명 서쪽 대륙 전체가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근데 그냥 전쟁을 넘어서, 연합을 맺어서 테르디아만 집중 공격하려 했다고?

“그 사실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노르토반의 현재 재상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노르토반의 재상이라면, 엘프인 엘-줄리안… 아!”

로한이 바로 눈치채고 감탄사를 터뜨리자, 엘-카시안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는 현재 노르토반의 모든 마족에 대한 정보를 저에게 제공해주는 스파이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의 정보로 인해 곧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딘 님이 당신을 인간들의 대표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당신은 연합군과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었겠죠.”

“…그렇겠군요.”

테르디아는 대륙 내 가장 작은 소국이다. 사갈 공국 하나도 막기 버거운 판국에, 서쪽 대륙 국가 전체가 공격해 온다? 결과는 뻔하다.

설사 아르베니아가 지원군을 보내온다 하더라도 간신히 멸망을 막을 수 있을 뿐이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는 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로한이 문득 떠오른 생각을 물어보았다.

“엘-줄리안 님처럼, 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이 각 나라마다 모두 존재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의 정체와 그동안 얻은 정보를 모두 공유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곧 엘-카시안은 옆에 놓인 문서 더미를 로한에게 내밀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 정보는 이 대륙에서 딘 님과 저, 그리고 당신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이죠.”

대답한 로한은 바로 그 문서를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문서 스캔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동공 카메라에 보이는 문서를 스캔해서 사진으로 저장 후, 곧바로 텍스트로 변환하겠습니다.]

[변환된 텍스트는 ‘엘-카시안의 정보’ 제목의 파일로 저장됩니다.]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와 함께 거의 1초에 한 장 꼴로 문서를 계속 휘리릭 넘기던 로한은, 정확히 30초 뒤 다시 문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다 읽었습니다.”

“정말 빨리 읽으시는군요.”

“제가 속독을 좀 배워서요. 그러면, 읽은 내용을 정리 좀 해보겠습니다.”

로한은 데이터 메모리에 한꺼번에 저장된 문서 내용들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한번 되짚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정리 목록은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고국, 테르디아부터다.

“일단, 질렌 백작이 우리나라에 투입된 이종족 스파이였군요.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질렌 백작은 테르디아의 정보국장이다. 평상시에 말수도 적고 조용하며, 파티나 만찬 등의 자리에도 잘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이종족들의 스파이 중 한 명이었다니.

엘-카시안이 대답했다.

“그는 사실 하프 엘프입니다. 인간보다 엘프의 피를 더 많이 물려받았죠. 그래서 인간들보다 엘프들과 더 친한 편입니다.”

“하프 엘프였다고요? 전혀 몰랐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히 인간의 모습이니까요.”

대화하면서 테르디아 쪽 정보를 정리한 로한은, 이후 다른 나라도 차례대로 정리해서 데이터 메모리에 차곡차곡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리를 하면 할수록 로한은 점점 더 크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자들이 스파이로 투입되어 있군요. 그것도 모두 중요 관직에 앉아 있고요.”

“천 년간 노력한 결실입니다. 천 년 전의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면 항상 이 정도는 대비하고 있어야 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엘-카시안은 대답했지만, 로한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지금 그가 제공한 정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면,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러면 굳이 생체 휴머노이드들 보낼 필요가 없는 거 아냐?’

이미 이렇게 각 국가의 핵심 관직에 전부 앉아 있으면, 보내봤자 인력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로한은 바로 생각을 바꿨다.

‘아냐. 생체 휴머노이드들의 능력치를 생각하면 계획대로 보내는 게 맞아.’

만약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쪽은 이종족의 스파이들이 아니라 생체 휴머노이드들이다. 태생적인 신체 능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종족 스파이들이 놓친 정보를 그들이 얻어올 가능성도 높다. 그들의 데이터 내에 내장된 수많은 최첨단 정보 수집 시스템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한 나라가 빠졌군요.”

모든 정리를 마친 로한이 그리 말하자, 엘-카시안이 대답했다.

“오스크만 제국은 이종족이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신마대전 이전부터 이종족을 배척하기로 유명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면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는 소리군요.”

“그래서 현재 딘 님이 직접 오스크만으로 가셨습니다.”

“딘이요?”

엘-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딘 님이 직접 잠입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요.”

“이 도마뱀 새끼, 진짜 진심이었네.”

“…지금,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살짝 당황한 듯한 엘-카시안을 향해 손을 휘젓는 로한이었다.

엘-카시안은 다시 본래 표정을 되찾은 후에 말을 이었다.

“딘 님의 능력이라면 오스크만 제국의 수도인 도미티아누폴리스에 쉽게 입성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때부터 당신도 오스크만 제국의 정보를 직접 들으실 수 있게 되겠죠.”

“그 도마… 아니, 딘이 나한테 직접 얘기를 해줄까요? 당장 다른 나라가 동맹을 맺을 뻔했다는 정보도 안 얘기해 주던데요.”

“…….”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그도 딘이 정보를 듣는 대로 곧이 제공할 거라는 확신은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 모르니, 저한테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당신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 그러려면 연락망이 필요하겠군요.”

“그냥 엘-카시안 님이 딘을 설득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저한테 직접 정보를 얘기해 달라는 식으로요.”

“제가 감히 딘 님을 어떻게 설득하겠습니까? 하하하….”

“…….”

로한은 분명 느꼈다. 엘-카시안의 저 웃음소리에 실려 있는 체념이라는 감정을.

“그러면 일단 연락망을… 음?”

“……!”

대화하던 둘의 고개가 곧 동시에 문 바깥쪽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엄청나게 강한 기운 바깥에서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로한 입장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성질의 마나였다.

“뭐죠?”

“정령이 소환됐을 때 느낄 수 있는 마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하게 느껴진다는 건….”

엘-카시안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

갑자기 바깥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누가 나를 소환했는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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