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100화 (100/200)

제100화

촥!

“끼잉….”

마지막으로 서 있던 몬스터가 목이 반쯤 베이며 신음과 함께 힘없이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해당 몬스터는 카시라이온. 거대한 사자의 몸통에 뱀의 머리가 달려 있는 포탈 몬스터로, 등급은 최소 B+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몬스터들의 시체가 이 지역 사방에 널려 있었다.

“모두 처치했습니다.”

지금 보고하는 피를린을 비롯한 7명의 생체 휴머노이드들이 만든 장면이었다.

평상시에는 아로엘의 최정예 멤버들이 모두 출동해야 정리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의 B+ 몬스터들을 단 5분 만에 가볍고, 압도적으로 제압한 것이다.

“휘이익!”

“멋지십니다!”

“역시 공작님이 직접 뽑은 특별 멤버들은 달라!”

같이 출정 온 영지군들은 이젠 놀라지도 않고 환호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이틀간 하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니 전부 적응해버린 것이다.

로한이 7명을 격려했다.

“수고했다. 내성으로 돌아가서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 출발하는 걸로 해. 포상으로 각 개인에게 알맞은 무기를 하나씩 지급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이후 7명은 영지군들과 함께 철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로한은 오스캄 등 지휘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게 마지막 게이트지?”

“네. 이로써 아로엘 영지에 속해 있는 아틸러스 산맥 부근은 모두 정리가 끝났습니다.”

“이 산맥을 정리하는 날이 오긴 오는군요.”

이어진 하딩의 말에 오스캄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일세. 설마 이 산맥 쪽의 몬스터를 이틀 만에 전부 정리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아로엘은 테르디아와 역사를 같이했다. 이 영지도 딱 올해로 500년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 500년간 아무도 이 동쪽의 산맥을 정리하지 못했었다. 겁 없이 정복을 선언하며 도전한 자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전부 대패해서 도망치거나 목숨을 잃거나, 아예 실종되었다.

심지어 몇십 년 전부터 갑자기 나타난 포탈과, 거기서 튀어나오는 마기로 오염된 몬스터들이 산맥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그 누구도 아예 손 댈 생각조차 하질 못했다. 그때부터 아로엘은 ‘버려진 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근데 이 버려진 곳을 정리했다. 단 2일 만에.

‘하긴, 저렇게 최소 S급 수준의 헌터들이 7명이나 있으면 누구라도 정리할 수 있겠지.’

새삼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서쪽 대륙에서 S급 헌터를 5명 이상 보유한 나라가 하나도 없는데, 여긴 고작 영지일 뿐인데 S급이 몇 명인가?

웃긴 건, 오스캄 등 주요 멤버들은 이 사실에 별로 충격을 안 받은 상태라는 거다.

‘그동안 놀랄 일이 워낙 많았어야지, 원.’

로한 공작이 영주로 부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놀랄 일이 한두 개였던가? 솔직히 S급 헌터 7명보다 반인반신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는 로한을 영주로 모시고 있는 게 더 신기하다.

“아, 오스캄.”

그때 로한이 생각에 잠겨 있던 오스캄을 불렀다.

“네, 영주님.”

“이번 2차, 3차 면접 지원자들 중에서도 정령사는 없다고 했지?”

“네. 세 번이나 검토했는데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로한의 요구로 아린은 전 행정부 직원에게 신입 중 정령사가 있는지 명단을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었다. 하지만 새로 뽑은 신참은 물론, 면접에 지원한 이들 중에서도 한 명도 찾아내질 못했다.

“하긴 정령사라는 존재가 극히 드물기는 하지.”

엘도르 대륙 내에서 정령사는 매우 희귀하다. 그나마 그들 중 대다수는 모두 사람의 눈길을 피해 숨어 살고 있는 이종족들이다.

인간 중에 정령사가 나올 확률은 한 나라에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래서 인간 중에 정령사가 탄생하면, 모든 나라에서 앞다투어 그를 영입하려고 한다.

그의 능력치가 어떻든 간에 한 국가의 왕실에서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평생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다.

그 정도의 희소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로엘에 갑자기 나타날 확률? 거의 제로에 가깝다. 로한도 대충 예상하고는 있었다.

‘딘 녀석, 그냥 지가 좀 가르쳐줄 것이지.’

안 그래도 어제 딘한테 속으로 이렇게 연락을 했었다.

‘야, 네가 이안한테 정령 소환하는 법 가르쳐주면 안 되냐?’

…그리고 가볍게 씹혔다. 망할 도마뱀 새끼.

아무튼, 이렇게 되면 이안이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터뜨릴 방법이 없다.

무술이나 마법, 신성력 등등 메모리에 어지간한 기술들은 전부 다 저장되어 있는 로한도 정령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도 정령이란 존재는 없었거든.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정령사는 던전 내에서 활약상이 엄청나다고 알고 있는데.’

로한이 속으로 계속 고민하던 그때였다.

[엘-카시안에게로 가라.]

갑자기 속으로 들려오는 딘의 목소리. 정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 채식쟁이라면 좋은 정령술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채식쟁이?’

[네가 데리고 있는 땅굴 난쟁이랑 친구 사이인 걸로 알고 있으니,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다.]

땅굴 난쟁이?

‘설마 구르카를 말하는 거냐?’

[꼭 만나라. 마족과도 관련이 있는 놈이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로한이 재차 딘한테 되물었다.

하지만 또 씹혔다. 진짜 이 도마뱀 새끼가….

순간 올라오는 짜증을 억지로 가라앉힌 로한은,

‘일단 구르카를 만나야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광산까지의 거리를 쟀다.

때마침 서 있는 이 자리가 광산이 있는 카데시 지방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날아가면 금방 도착할 듯싶었다.

로한은 옆의 오스캄 등에게 말했다.

“다들 본성으로 돌아가 있어. 난 간만에 광산 좀 점검하고 올 테니까.”

“네, 영주님.”

곧 로한은 아예 대놓고 하이퍼 모드로 변신해서 날개를 폈다. 어차피 자신의 이 모습이 대륙 전체에 소문이 퍼진 이상,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바로 하늘로 떠오른 로한은, 마나석 광산이 있는 카데시 지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딩이 말했다.

“저 날개, 되게 편해 보이지 않습니까?”

“동감이야.”

본인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 인간이라면 어릴 적부터 한 번쯤은 다 꿈꿔 보지 않던가?

이젠 오스캄 등에겐 로한의 저 날개가 충격적이기보다는 되레 부러워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카데시 지방의 방어 진지에 도착한 로한.

“여기 진지도 어느새 다 완성되었네.”

진지 중앙에 서서히 착륙하면서 그가 한 혼잣말이었다. 맨 처음 임시로 부랴부랴 돌을 쌓아서 간신히 진지 비슷한 구색만 갖추던 이곳이, 한 달이 넘어간 지금은 아로엘 본성 못지않은 요새로 변했다.

10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이 요새의 돌벽을 뚫고 광산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최소한 로한처럼 공중을 날아서 잠입할 수밖에 없으리라.

“영주님께 경례!”

“충성!”

곧 착륙한 로한을 향해 기지 안의 모든 병사들이 경례를 했다. 로한은 마주 경례하면서 바로 광산 입구로 향했다.

처음 뚫었을 때보다 반경이 몇 배는 넓어진 입구 쪽에는 마나석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구르카족이 마나석 운반을 위해 제작한 것이었다.

로한은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광산의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바닥에 도착한 로한은,

“이야, 이제 진짜 광산 같네.”

라고 감탄했다.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드넓어진 지하 공간 안에는 채굴에 필요한 모든 최신식 설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마나석으로 작동하는 자동 광산 수레도 있었고, 캔 마나석을 정제하거나 제련할 때 사용하는 대장간도 있었다.

여전히 불씨가 안 꺼진 화로 옆에는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드워프제 곡괭이들도 나열되어 있었다.

“오오! 이게 누구야!”

그때 광산 동굴 쪽에서 반가운 감정이 가득 담긴 외침이 들려왔다.

때마침, 구르카가 일족들과 함께 광산 입구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로한의 눈에 들어왔다.

“이게 얼마만이냐, 로한 인간! 아니지, 이제 대천사라고 불러야 하나? 크하하핫!”

“그냥 평소처럼 대해 주십시오. 전 여전히 인간일 뿐,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닙니다.”

“정체가 어떻든 뭔 상관이야? 암튼 반가우이!”

굳게 악수하면서 반갑게 로한을 맞이하는 구르카. 확실히, 이종족이라 그런지 로한의 정체에 대한 편견은 인간에 비해 훨씬 없어 보였다.

“여긴 무슨 일이야? 설마 또 마나석 캐는 거 도와주려고 온 거야? 이제 그럴 필요 없어! 요즘 우리 동족들의 채광 속도가 엄청나거든! 오죽했으면 얼마 전 힉스? 그 인간이 신입 인간 안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필요 없다고 돌려보내기까지 했어!”

“힉스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구르카족이 공급해주는 마나석을 써먹을 만한 수요가 한참 모자라서 창고에 마나석이 남아도는 중이다. 빨리 마법사들을 다수 뽑아 마탑을 세워야 아티팩트 등으로 빨리 수요를 채울 텐데 말이다.

솔직히, 그 라마라는 레드 드래곤이 부하들을 죽이겠다고 시비만 안 걸었어도 이렇게 마나석이 남아돌 일도 없었을 거다.

‘딘한테 한번 물어볼까? 남은 드래곤들 중에서 마나석이 필요한 놈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로한이 그렇게 생각할 때쯤 다시금 구르카가 물어왔다.

“그럼 왜 왔어? 빨리 목적 말해! 궁금하니까.”

“아, 그게요.”

로한은 바로 구르카에게 자신이 여기를 찾아온 목적을 물었다.

곧 구르카가 대답했다.

“엘-카시안? 니가 그 채식쟁이를 어떻게 알고 있어?”

“왕성에 있다가 우연히 들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인가요?”

“알다마다! 내 300년 지기 친구 놈이야!”

구르카는 친구 얘기가 나와서 신이 났는지 큰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내가 살고 있던 바이카 산 알지? 거기서 동쪽 숲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채식쟁이 놈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어. 엘-카시안이 거기 족장이야! 지금도 거기 계속 살고 있을걸?”

“그분이 정령도 잘 다룬다던데,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그놈은 태생적으로 정령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룰 수밖에 없는 놈이야! 근데 그놈은 왜? 설마 만나러 가려고?”

“네. 좀 얘기를 나눌 게 있어서요.”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나도 간만에 그놈 얼굴도 구경할 겸 말이지!”

오히려 구르카가 먼저 로한에게 동행을 제의했다. 로한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구르카 님.”

“감사할 것 없어! 내가 말했잖아? 네가 부탁하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목숨을 빚진 입장에선 당연한 거야!”

호쾌하게 대답하는 구르카. 역시, 절대 은혜를 잊지 않는 드워프족다운 대답이었다.

“하하하… 근데, 아까 채식쟁이라 하셨는데….”

정확히 그 채식쟁이라 부르는 이의 정체가 뭡니까? 라는 뒷말이 담겨 있는 로한의 물음이었다.

구르카는 바로 대답했다.

“아, 하이엘프 말하는 거야! 대륙에서 풀만 처먹고 사는 변태 같은 종족이 하이엘프 말고 누가 있겠어? 크하하핫!”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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