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99화 (99/200)

제99화

여기는 로한과 아린만이 알고 있는 비밀 지하 공간이다. 아공간 차원이동 문을 위해 만든 대저택 밑의 그 공간 말이다.

이곳엔 로한, 아린 둘만 서 있었다.

“오빠 지시를 모두에게 그대로 전달했어요.”

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국경선 쪽으로 이동시켰던 병력 대부분을 다시 회군시켰고, 이들을 헌터 팀으로 새로 편제한 후 포탈 던전 안에서 훈련시키도록 했어요. 각 팀별로 최소 C+급 이상의 헌터 한 명씩은 꼭 포함시켰고요. 힉스가 이 과정을 모두 전담할 예정이에요.”

“힉스가 고생이 많네.”

“인재 선별 작업이 끝나면 고생한 이들한테 포상이라도 내려줘야 할 거 같아요. 지금 병력 편제에 2차, 3차 관리 선발 과정까지 모두 지휘하느라 24시간이 모자라 보이더라고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실제로 현재 로한을 포함, 아로엘의 핵심 멤버들은 일에 치여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상황이다.

문제는 로한과 아린은 사이보그라 24시간 내내 안 자도 상관이 없지만 다른 이들은 인간이라는 거다.

아무리 초월자급 헌터라 일반인보다 훨씬 수면 부족 현상을 오래 버틴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인간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굴리다가는 언젠가는 일이 터지고 만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인재 선별 과정이 중요해. 이번에 확실하게 엑기스 멤버를 뽑아놔야 또다시 이런 식으로 밤새울 일이 없어질 테니까.”

힉스 등은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 고생한 보람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밑에 뽑힌 수많은 인재들이 업무 부담을 덜어가는 순간부터 느끼지 않을까?

“당분간 얘네들한테 업무를 좀 분담시키면 안 될까요?”

아린이 정면을 바라보면서 로한에게 물었다.

정면에는 정확히 7명이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 개개인 모두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들은 로한이 엄선한 시체들로 지금 막 제작한 생체 휴머노이드들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어. 지금 누가 마족인지 알아내는 것도 한시가 급해서 말이야.”

“알아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푸훗. 자, 이제 설명해줄게.”

로한은 가장 왼쪽의 생체 휴머노이드부터 손가락으로 짚은 후, 오른쪽으로 한 명씩 옮겨갔다.

“이들은 모두 한 명씩 각 나라에 스파이로 보낼 거야. 슬론처럼 마족의 정체를 밝히는 용도로 말이지. 가장 왼쪽부터 로터스, 노르토반, 이즈미트, 아바, 그리고 아르베니아에 각각 보낼 예정이야.”

“아르베니아도 보내는군요.”

“또 마족이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지금 아르베니아는 마족들을 모두 처치했다고 안심하고 있는 상태다. 이렇게 마음을 놓았을 때 가장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로한은 과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에텔드리다한테는 말을 해놓으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맹국의 수장이자 성녀라면 정체를 말해도 상관없을 테니까.”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요즘 안 그래도 많이 바쁘다던데.”

“바쁠 수밖에. 정치 경험이 전무하던 어린 여자가 갑자기 대국을 다스리게 됐는데.”

지금 에텔드리다가 얼마나 바쁠까? 아마 그녀의 눈에는 힉스 등이 고생하는 건 애교처럼 보일 것이다.

아르베니아는 애초에 한낱 영지일 뿐인 아로엘과 비교조차 안 되는 대국이니, 그만큼 관리할 것도 많다.

“네가 성녀님을 잘 좀 보필해줘, 피를린. 나랑 아린과 같은 제3의 주인님처럼 모시라는 얘기야.”

“맡겨 주십시오.”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딱 신관을 할 상이군’이라고 생각할 법한 인상을 가진 30대 휴머노이드, 피를린이 그렇게 답변했다.

로한의 손가락이 6번째, 7번째 남녀 휴머노이드로 향했다.

“이 둘, 엔벨과 에슬라는 오스크만 제국으로 보낼 거야.”

최상위급 포탈과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해서 초월자급 실력자도 넘어갈 엄두조차 내지 않는 아틸러스 산맥.

로한은 이 둘을 지금, 그 산맥을 넘어서 오스크만에 잠입시키려 하는 것이다.

어렵긴 하겠지만, 개개인의 생존에만 신경 쓴다면 산맥을 넘어가는 게 이 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생체 휴머노이드의 능력은 뛰어나다.

“서쪽 대륙도 데르툴 때문에 이 난리인데, 동쪽의 오스크만 제국이라고 데르툴족의 손길이 뻗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둘이 제국에 잠입하면 분명 큰 소득이 있을 거야.”

“어쩌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장소에 잠입하는군요.”

“그치. 아틸러스 산맥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니 최대한 안전에 신경 써야 해. 정체가 탄로 나면 나나 아린이 바로 도와줄 수 없는 장소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엔벨과 에슬라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7명의 역할을 모두 아린에게 소개했다.

“근데 한 명이 없네요?”

하지만 아린은 이렇게 물어왔다.

“누구?”

“케이요.”

케이. 며칠 전까지 이안의 비밀 호위를 담당하다가, 최근 이안이 내성으로 다시 소환되면서 임무가 없어진 생체 휴머노이드다.

“지금 맡은 임무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얘네들이랑 다른 국가에 파견 보내는 것 아니었나요? 그래서 케이도 여기에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케이는 이미 내 지시를 받고 잠입 임무를 수행중이야.”

“어디요?”

“테르디아. 등잔 밑이 어두울 수도 있으니까.”

케이는 이미 벌써 벨타디아의 왕성에 몰래 잠입한 상태다.

그의 능력으로 봤을 때, 금방 왕성의 관리로 승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 안 되면 로한이 낙하산으로 꽂아도 되고.

당분간 아로엘에 집중해야 할 로한을 대신해서 케이는 왕성에서 그의 또 다른 눈과 귀가 되어줄 것이다.

‘꽤 의심되는 인물들도 몇 명 있고 말이지.’

로한의 머릿속에 순간 스쳐 지나가는 몇 명의 얼굴들. 하지만 그저 심증일 뿐이기 때문에 굳이 그들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자, 그럼 다들 임무도 하달받았으니 밖에 나갈까?”

“바로 파견 보내는 건가요?”

“아니. 기초 점검은 하고 보내야지.”

로한은 생체 휴머노이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새롭게 얻은 신체도 체크할 겸, 몸 좀 풀러 가볼까?”

몇 시간 뒤.

7명의 생체 휴머노이드들은 아로엘의 동쪽, 아틸러스 산맥 부근에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푹. 촥. 서걱.

“끼에엑!”

“끄르르륵…!”

전투 내내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살 베이는 소리와 비명 및 죽어가는 신음.

반면 아로엘 영지군 쪽은 경상조차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앞서 말한 7명이 포탈 몬스터들을 압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7명의 무위가 얼마나 압도적이었으면, 같이 온 영지군들이 여유롭게 그들의 전투 장면을 구경해도 안전상 문제가 전혀 없을 정도였다.

“…….”

“대, 대단하다.”

“미쳐 날뛴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원래 아틸러스 산맥 정리가 이렇게 쉬운 거였어?”

비단 놀라고 있는 건 이번에 새로 합류한 신참 헌터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을 지금 이끌고 있는 오스캄 등의 기존 헌터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영주님.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멍하니 7명의 무위를 쳐다보던 오스캄이 옆의 로한에게 물었다. 저건 아무리 봐도 최소 힉스 이상, 최대 S급 헌터 이상으로 보이는 실력자들 아닌가?

로한은 대충 둘러댔다.

“내가 특별히 뽑은 정예 멤버들.”

“어떻게 저런 실력자들을 한꺼번에 구하셨습니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러면 저분들도 이제 아로엘에 합류하는 겁니까?”

“그건 아냐. 여기만 다 정리한 후에 다른 임무로 타 국가에 파견 보낼 예정이라서.”

“아….”

살짝 안타까워하는 오스캄. 저런 엄청난 실력자들이 아군 병력에 합류한다면, 현재 오스캄 본인이 맡고 있는 업무도 절반 이상은 줄어들 텐데.

“조금 힘들어도 참아. 인재들 다 선별해서 뽑고 교육까지 다 시키고 나면 그때부터 너희들이 이렇게 고생할 일은 없을 거야.”

“…아, 네.”

오스캄은 뜨끔한 심정을 감추며 대답했다. 뭐지? 내 마음을 대천사 특유의 능력으로 읽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전투는 슬슬 마무리가 되어갔다.

“전부 처리했습니다, 영주님.”

생체 휴머노이드들 중 대표로 로한에게 보고하는 피를린.

로한이 물었다.

“다들 아직 쌩쌩하지?”

“네. 다들 아직 더 몸을 풀고 싶어 합니다.”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생체 휴머노이드들은 전신이 기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만큼, 사이보그나 본래 휴머노이드보다 신체 점검 기회가 많이 필요한 편이다.

사갈에 있는 슬론도 초반에 동쪽의 몬스터들을 대량 사냥한 다음 넘어가지 않았던가.

“곧바로 다음 포탈로 이동한다. 다음 포탈은… 북서쪽으로 1.2km 가면 있군. 오스캄은 남고, 하딩이 통솔해서 먼저 이동하도록.”

“네, 영주님. 전군 나를 따른다!”

하딩이 전군을 이끌고 해당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로한은 눈앞에 보이는 포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후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포탈 표면에 손목에 차고 있는 마나석 헌터 팔찌를 갖다 대었다.

곧 팔찌의 표면에 해당 포탈의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 헌터 전용 가이드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사용자 이름 : 로한

- 사용자 헌터 등급 : S+

- 현재 던전 난이도를 자동으로 확인합니다….

- 현재 던전 난이도 : D

- 현재 던전에서 주로 마주칠 수 있는 몬스터 : 레이스, 고스트 등의 유령 몬스터.

팔찌 표면을 바라보던 로한이 오스캄에게 물었다.

“D급 던전이 근처에 하나 있지 않았나?”

“네. 아까 처음 주변 정리를 했던 포탈이 D급 던전입니다.”

“그럼 이건 필요 없겠군.”

로한은 이번엔 포탈 표면에 팔찌 대신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갔다.

동시에 들려오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에너지원을 변환해 해당 포탈을 제거합니다.]

[제거 작업에 30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동안 에너지원이 계속 소모됩니다.]

곧 그의 손바닥에서 레기스트륨 에너지원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그것이 손바닥을 중심으로 점점 포탈 전체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검은색 포탈을 그의 에너지원이 완전히 푸른색으로 뒤덮은 그 순간.

쨍그랑!

크게 깨지는 소리와 함께 포탈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

오스캄이 눈을 부릅떴다.

유리 조각처럼 변해서 바닥에 흩뿌려진 기존 포탈 성분을 바라보며 그는 말을 더듬었다.

“포탈을… 부술 수도… 있었던 거였습니까?”

“어. 몰랐어?”

“이걸 아는 사람이 지금까지 없던 걸로 압니다만…?”

“아, 그랬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로한의 저 태도가 오스캄 입장에서는 더 황당했다. 지금 본인이 얼마나 충격적인 짓을 벌였는지 모르는 건가?

‘포탈을 깨부술 수만 있으면, 전 대륙 생명체가 그렇게 몬스터들 때문에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이 사실이 퍼지면, 지금 포탈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영지의 주인들이 모두 앞다투어 로한에게 달려와 제발 내 영지의 포탈 좀 부숴달라고 애원할 게 뻔하다.

지금도 헌터 숫자가 부족해서 포탈 통제를 못 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로 애를 먹고 있는 영지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나중에 돈 받고 팔아도 괜찮겠는걸?”

“네?”

“자, 빨리 우리도 뒤쫓아 가자.”

로한은 걸음을 옮겨 하딩 등이 이동한 길을 그대로 따라갔고, 오스캄도 그의 뒤를 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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