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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98화 (98/200)

제98화

“왜 도와주는 걸까요?”

아린이 로한에게 물었다. 분명, 데르툴족만 상대한다고 했지 저렇게 적군의 병력을 줄여주는 지원은 안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로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뭐, 변덕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족에 대한 분노가 저 정도로 큰 것일 수도 있고.”

드래곤들의 평상시 화끈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저런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전쟁 걱정은 당분간 안 해도 되겠어. 저렇게 드래곤이 국경선 근처에 출몰해 버리면, 사갈 입장에선 당연히 국경선 쪽으로 병력을 보내기 힘들어질 테니까.”

엘도르 대륙의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드래곤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이 소문을 듣고 공포에 질려 몰래 탈영하는 사갈 병사들도 적지 않게 나올 것이다.

동시에 사갈 공국의 누군지 아직 모르는 데르툴족 놈은 분명 골치가 많이 아파졌을 것이다. 이제 전쟁을 일으키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딘과 맞서 싸우면 바로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이 높고 말이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막 인재를 모으는 단계라 병사들 편제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딘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우리한텐 매우 중요하지.”

아로엘은 이제 막 발전을 시작하려고 하는 단계다. 인재들을 뽑고, 그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서 실전에 투입할 수 있게끔 만들 때까지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은 필요하다.

지금 사태로 인해 한 달 이상의 시간은 벌지 않았을까? 로한은 그렇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래곤들의 마족에 대한 분노가 정말 큰가 봐요. 동족을 죽인 오빠보다 마족을 더 싫어하네요?”

“내가 얼마 전에 예상한 것과 똑같이 흘러갔지?”

“정말로요.”

사실 천 년 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다. 드래곤족 전체 숫자의 절반 이상을 죽게 만들고, 해츨링을 잡아 생체 실험까지 저질렀던 마족들에 대한 분노가 크겠는가, 아니면 단순 거래 목적으로 방문했다가 먼저 시비가 걸려서 정당방위로 드래곤을 죽인 로한에 대한 분노가 크겠는가?

그리고 신마대전이 끝날 당시 딘이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 드래곤들은 절대 한 하늘 아래에 마족과 같이 살 수 없다!]

당시 분노에 북받쳐 죽인 마족의 시체를 오체분시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게 진짜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상 신빙성은 꽤 있어 보이는 기록이다.

로한은 다시 사갈 쪽 국경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든든한 우군을 얻었어.”

어느새 꽁지가 빠져라 줄행랑을 치고 있는 사갈 병사들의 모습이 로한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드래곤이 출몰한 건 비단 사갈 공국의 국경선뿐만이 아니었다. 테르디아와 아르베니아를 제외한 로터스, 노르토반, 이즈미트 등의 모든 서쪽 대륙의 국가에서 거의 동시에 드래곤이 출몰했다.

일부는 딘처럼 국경선의 병사들을 공격하기도 했고, 일부는 왕성의 하늘 위에서 살벌한 경고를 날렸는데, 내용은 모두 똑같았다.

[마족은 모습을 드러내라. 아니면 애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 경고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사갈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갑자기 모아두었던 병력들을 일제히 국경선에서 회군시켰기 때문이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사갈 공국의 현재 상황

사갈 쪽의 스파이, 슬론이 새로운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원래 사갈은 딘 님이 국경선에 출몰한 그다음 날에 병력을 이끌고 테르디아를 공격하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딘 님의 출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병력을 다시 물린 상태라고 합니다.

이 예상외의 사태 때문에 사갈의 공왕, 카르스트는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분노했으면, 조금이라도 트집이 잡힌 관리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을 당하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현재 사갈 공국의 왕성 전체가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현재 들어온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추가 정보가 있으면 이후에 작성해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로한 오빠한테 갖다주세요.”

서류 작성을 마친 아린은 그걸 옆의 이안에게 넘겨주었다. 이안은 느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레이디.”

“…여전하군요.”

“사람이 급격히 변하면 죽는다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도 막상 이러는 제가 그립지… 히익!”

계속 작업을 걸던 이안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윌킨슨을 발견하자마자 두 손으로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황급히 행정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다시 경비 관리로 보낼까요? 듣기로는 그쪽이 천직이라고 그러던데.”

“영주님께서 안전상의 이유로 안 내보내실 것 같습니다만.”

“알아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딘에게 납치당한 사건 이후 로한은 이안을 다시 내성 안으로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이렇게 된 이상, 두 번 납치당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으니까.

문제는 여전히 내성 안에서 이안을 써먹을 만한 관직이 없다는 거다. 행정 재능도 없고, 검술 재능도 없고, 출신을 생각하면 잡부로 써먹을 수도 없고.

결국 남는 건 로한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것뿐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나의’ 로한 형님~! 여기 아린 님이 주신 서류예요~”

“부를 때 앞에 ‘나’ 단어 빼라고.”

“아 왜요~ 어쨌거나 ‘나’랑 제일 친한 형님은 맞는데요. 히히힛.”

집무실에 있던 로한은 티격태격하며 이안이 내민 서류를 받았다. 한번 읽어본 그는 속으로 딘을 불렀다.

‘야, 딘.’

[…야라니. 진짜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너도 꼰대였냐? 호칭 가지고 태클 걸긴.’

[꼰대? 그게 뭐냐?]

‘암튼 정보 하나 줄 거 생겼다. 어디서 만날까?’

[기다려라.]

딘의 말이 마음속에 들려온 지 5초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집무실 중앙에서 빛이 번쩍였다. 딘이 워프로 등장한 것이다.

이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이익! 나, 나, 납치범이다!”

“자, 여기.”

하지만 서류를 건네는 로한과, 그 서류를 받는 딘 둘 다 기겁하는 이안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서류를 다 읽은 딘이 말했다.

“이 카르스트가 마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

“거의 90% 이상. 피와 모래 암살단을 직접 조종할 만한 존재는 공왕 정도밖에 없으니까. 만약 아니더라도 최소 바로 밑의 핵심 관리 중 한 명일 거야.”

“다른 국가는 정보가 없나?”

“아직은. 하지만 곧 모든 국가에 스파이를 보낼 예정이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한 장 정도의 간단한 정보만 주는 일은 없을 거다.”

“기대하지.”

딘은 다시 워프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안은 난리가 났다.

“저, 저 납치범을 이대로 그냥 보냅니까? 최소한 감옥에라도 집어넣어야죠!”

호들갑을 떠는 이안에게 딘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안을 찬찬히 훑어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정령 친화력을 갖고 있군. 그것도 꽤 진하게.”

“…에?”

“인간에게는 드문 재능인데, 축복받았군.”

그 말을 끝으로 딘은 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은 로한과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기, 형님. 정령 친화력이라는 게 그, 정령사와 관련된 능력 아니에요?”

“…….”

“헐, 설마 나 정령사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야? 진짜로?! 어, 근데 저 사람 말을 믿을 수 있나? 나를 납치했던 인간이 나한테 좋은 말을 해줄 리가 없잖아?”

좋아하다가 이내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안.

하지만 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로한은 그 말을 100% 믿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이 정령 친화력을 못 보면 이 대륙에서 누가 볼 수 있단 말인가!

로한은 다급히 아린에게 통신했다.

[이번에 뽑은 인재들 중에서 정령사가 있는지 확인해봐.]

[정령사요? 없었던 거 같은데, 한 번 더 확인해 볼게요.]

[지원한 인재들 중에서도 찾아봐야 해. 꽤 중요한 문제야.]

* * *

화려하고 웅장하고 드넓은 궁궐 안.

대복도의 끝에 있는 커다란 왕좌 위에, 검은 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르기에 등의 데르툴들에게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자였다.

그의 정면에는 언제나처럼 마법으로 생성된 화면이 존재했고, 그곳에는 르기에, 카르스트 등 각 나라에 파견된 데르툴들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천 년 전의 실수가 반복되려고 하고 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니,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당시 신마대전 때는 그래도 파견 보낸 데르툴족이 정체를 들키거나, 패배해서 생포당하거나 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아르베니아를 포함, 몇 개의 나라의 전권을 잡는 데 실패한 경우만 있었을 뿐이다.

그때의 선조도 대륙 정벌에 실패했었는데, 지금은 더 상황이 안 좋다.

“로한이라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등장하고, 부하들이 압도적으로 패배해서 사로잡히고, 이젠 드래곤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마대전 때는 전쟁 중간에 움직였던 그들이 말이다.”

- …….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드래곤의 개입으로 인해, 차선책이었던 전쟁을 통한 서쪽 대륙 혼란 야기 계략이 시작도 하기 전에 완전히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아직 모두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건, 드래곤들에게 몰살당하라는 말이나 똑같다.

“명령하겠다.”

사내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분간 모든 작전을 중지한다. 내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마라. 각 국가의 전권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데르마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금지다.”

-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지금은 어떤 행동을 해도 위험하다. 천 년 전 우리를 패퇴시켰던 드래곤들을 무시하지 마라.”

화면 안의 데르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에 대한 자존심이 그 누구보다 강한 이들도, 이 대륙에서 드래곤만큼은 유일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천 년 전 저항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아직까지도 데르툴 행성 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종족 중 하나로 꼽히고 있겠는가.

“그동안 나는 고향에 다녀오겠다. 가서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다.”

- ……!

그 말에 화면 속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마왕, 주인님이 고향에 지원을 요청한다!

평상시 데르툴 행성 내 마왕들의 관계가 얼마나 험악한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 그들의 주인님은 엄청나게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른 마왕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대륙을 정벌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결정이었다.

- 어떤 분께 도움을 요청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르기에의 물음에 사내는 대답했다.

“아스모데.”

- !

화면 안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몇 명은 자신이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싶은 표정이었다.

오죽하면 르기에조차 놀라서 말을 더듬는 모습이었다.

- 저, 정말입니까? 아스모데면… 아니, 그보다 그녀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긴 합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사내는 한마디로 르기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확실한 건, 지원을 받는 순간 엘도르는 끝이다.”

그 말에 화면 내 모든 데르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고향에 남아 있는 마왕 중 가장 특별한 능력을 보유한 이가 아스모데 아니던가.

타 대륙 정벌에 가장 안성맞춤인 능력을 보유한 그녀가 만약 원군으로 참전한다면, 엘도르 대륙 정벌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럼 다녀온 뒤에 보지.”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법 화면은 사라졌다. 그리고, 옆에 사람 한 명쯤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공간의 틈이 발생하였다.

사내는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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