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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97화 (97/200)

제97화

그 말엔 로한도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돕겠다고? 드래곤족 전체가?”

“단지 마족 퇴치를 위한 협력일 뿐이다. 인간들끼리 싸울 땐 우리의 지원을 바라지 마라.”

“어쨌든, 같이 마족이랑 싸운다는 거잖아?”

“그렇다.”

딘의 대답에 로한은 씨익 웃었다.

드래곤족이 아군이 된다. 이것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다.

“좋아. 그런 이유라면 언제든지 정보를 넘겨줄 수 있지. 드래곤 로드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거 아냐?”

“드래곤은 거짓말을 못 하는 종족이다. 차라리 마음에 안 든다고 죽이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그게 더 문제 있는 거 아냐?”

“정보나 말해라.”

딘의 재촉에 로한이 대답했다.

“지금 아린보고 서류로 작성해서 갖고 오라고 했어. 정리할 양이 많으니 10분 정도는 걸릴 거야.”

“아까 너랑 비슷한 경지의 여인 말인가?”

“어.”

“서류에 너희들 정체도 자세하게 적어라.”

“그건 비밀인데.”

로한이 튕기자 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라마까지 죽인 놈이 계속 시건방을 떠는군.”

“그거 정당방위였다니까 그러네. 정 그거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싶으면 지금 요구하든가.”

“네 머리.”

“…그건 좀.”

“아니면 아린이라는 여자를 잠시 나에게 넘겨라. 3일 정도만 자세히 해부하면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아, 알았어. 알았어. 정체 적어서 넘겨줄게.”

“진작 그럴 것이지.”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짓는 딘. 로한은 그를 살짝 노려보며 경고했다.

“대신 서류에 적힌 내용은 전부 비밀이다. 우리 정체도 마찬가지야. 당분간 우리 정체 때문에 대륙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마족에게 좋은 먹잇감만 주는 거니까.”

“드래곤 로드의 입을 너무 가볍게 보는군.”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네 다른 동족을 못 믿겠어. 만에 하나 드래곤들 중에서 입 가벼운 놈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잘 통솔할 테니 걱정 마라.”

“…없다는 소리는 안 한다?”

그렇게 생각보다 덜 진지한 분위기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로한과 딘.

그사이 서류 작성을 모두 마친 아린이 다시 둘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여기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조사한 모든 마족의 정보예요.”

“빠진 게 있으면 안 된다.”

“안 빠졌겠지만, 혹시나 빠졌으면 내일 해가 뜨기 전에 추가해서 보낼게요. 어디로 보내면 되죠?”

그 말에 딘은 대답 대신 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곧 누가 봐도 마법이라고 알 수 있는 마나 배열이 둘의 몸을 잠깐 감쌌다가 사라졌다.

“둘에게 나와 영혼으로 대화할 수 있는 용언 마법을 걸었다. 이제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생각하며 속으로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오….”

로한과 아린, 둘끼리만 가능한 전자 통신 같은 기법을 사용하게끔 만들어줄 수 있는 마법이라니. 이건 로한 입장에서도 좀 많이 신기하다.

“정말 필요할 때만 연락하도록. 드래곤 로드라는 자리는 언제나 바쁘니까. 정말 바쁘면 대답을 못 할 수도 있다. 그럼.”

딘은 떠나기 위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워프진 마법을 막 시전할 때, 로한이 물었다.

“정말 라마에 대한 대가는 안 요구하는 건가?”

“넌 이미 대가를 치렀다.”

워프진을 활성화하며 딘은 대답을 이었다.

“앞으로 마족과 싸우는 동안, 드래곤족이 테르디아를 돕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래 테르디아를 지키는 담당 드래곤이 라마였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딘은 바로 워프했다.

순식간에 딘이 사라진 걸 확인한 아린이 입을 열었다.

“그 레드 드래곤이 테르디아의 수호신이라는 소린가요?”

“그런가 봐.”

“그러면 오빠가 테르디아의 수호신을 죽인 셈이 된 거네요?”

“…….”

로한은 볼을 긁적였다. 그도 모르게 테르디아의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테르디아 국민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반응을 볼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로한과 아린은 이 사실을 무조건 무덤까지 가지고 갈 테니까.

* * *

사갈 공국 내 왕성.

공왕 카르스트가, 총사령관인 라디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쟁 준비는 모두 끝났나?”

“네. 내일부터는 공왕님께서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전군 출진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현재 북쪽에서 출발한 보급 부대가 아직 국경선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늦어도 오늘 밤에는 도착할 예정입니다.”

라디치의 대답에 카르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일 장군들과 기사단 모두 나를 따라 국경선으로 이동한다.”

“넷.”

카르스트는 그에게서 시선을 뗀 후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축객령이라는 걸 눈치챈 라디치는, 빠르고 조용하게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가 보고 있는 서류에는 현재 남쪽 국경선에 몰려 있는 아군의 병력 규모와, 테르디아에 잠입한 스파이들이 보낸 정보를 취합해서 작성한 적국의 병력 규모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아로엘만 빼면 아주 세세하게 적혀 있군.’

최근 아로엘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몰살당하면서, 이쪽 지역만 병력 규모 판단이 어렵게 되었다. 어떻게 그 많은 스파이들을 처치했는지 방법조차 모르는 상황.

일단 그가 예상하기에 아로엘의 병력은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닐 것이다.

최근 아로엘에서 전 대륙에 뿌린 인재 모집 공고문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로엘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그도 들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분명 뛰어난 헌터들도 많을 것이다.

‘아로엘은 내가 직접 담당해야겠다.’

그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로엘이 가장 힘든 격전지라는 것을.

특히 로한의 존재가 너무 크다. 데르툴족 본신으로 돌아온 유키펠, 힌스테딘을 그렇게 쉽게 잡아낸 걸 보면, 카르스트 본인이 직접 그와 상대하지 않는 이상 아로엘과의 전투는 대패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그 역시 로한과 1대1로 붙으면 승산이 높지 않다. 분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수 대 다수의 전투다.

‘이번에 주인님께서 보낸 마법사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승산이 높다.’

다수 대 다수의 전투에서 데르툴 마법사들의 존재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로한이 카르스트 한 명을 밀어붙이는 사이, 아로엘의 나머지 부대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무엇보다, 호전적인 사갈 공국의 병력들은 그 어느 국가보다 전쟁 경험이 풍부하다. 대인전에서 경험 많은 장군, 병사들의 순간적인 판단력은 패배하기 직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오기도 한다.

‘그럼 나도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군.’

쾅!

“공왕님!”

그때, 갑자기 문이 크게 열리며 통신 마법사 한 명이 다급하게 그에게 달려왔다.

평상시에 그의 앞에서 이렇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자는 바로 즉결 처형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왕성 통신 마법사가 이렇게 앞뒤 다 무시하고 달려온 걸 보면, 정말 급한 정보다 들어왔다는 거다.

그래서 카르스트도 처벌 전에 목적부터 물었다.

“무슨 일이냐?”

“크, 큰일입니다! 지금 아로엘 쪽 국경선에서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나 아군을 공격하고 있다 합니다!”

“……!”

카르스트의 두 눈이 커졌다.

드래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그 시각.

아로엘과 맞붙어 있는 사갈 공국의 국경선 안쪽.

태양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정오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사갈 병사들은 따스한 햇빛 대신 어두운 그늘의 서늘함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태양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거대한 드래곤이,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드래곤 로드, 레이오트라카르딘이다! 사갈에 마족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받고 이곳에 왔다! 마족은 당장 내 눈앞에 정체를 드러내라!]

모두의 머리가 아플 정도로 크게 울리는 딘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사갈 병사들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딘의 화염 브레스였다.

콰앙!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무슨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국경선 진지 한쪽이 움푹 파였으니까.

그곳에 있던 병사들은 흔적도 없이 불타버렸음은 물론이다.

“히이익!”

“지, 진짜 그 전설의 드래곤 로드 딘이야?!”

“아니, 마족이나 찾아서 쳐 죽일 것이지 왜 애꿎은 우리한테 브레스를 쏘냐고!”

“허억! 또 날아온다!”

“살려줘어어!”

또다시 날아오는 브레스에 병사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도망쳤다. 곧, 또 한 번의 굉음과 함께 국경선 진지 하나가 또 날아가 버렸다.

이후 딘이 외쳤다.

[당장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이 마족 놈아! 사갈의 병사들이 모조리 불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여기는 다시 카르스트의 집무실 안.

“…….”

한참 동안 침묵하고 있는 카르스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분노에 차 있었다. 얼마나 분노했으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오른손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는 건 앞에 서 있는 통신 마법사였다. 카르스트가 저렇게 분노했을 때, 근처의 관리들 중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자보다 더 적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왕성 안에 있을까?

‘전쟁의 여신 아루하시여, 제발 저를 살려주소서… 제발! 앞으로 더 자주 기도드리고 공물도 자주 바칠게요. 제발, 제발, 제발…!’

속으로 평소에 찾지도 않던 아루하 여신을 연신 속으로 찾던 그때.

드디어 카르스트의 입이 열렸다.

“국경선의 병사들, 전원을… 후퇴시켜라.”

“넷!”

통신 마법사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한 후, 혹시나 카르스트의 마음이 바뀔세라 재빠르게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쾅!

이 소리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닌, 카르스트가 책상을 오른 주먹으로 내리치는 소리였다. 그로 인해 책상 중앙이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파여버렸다.

‘모든 게 완벽했었는데, 갑자기 왜 드래곤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자신의 그림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이 분노를 당장 딘에게 풀고 싶지만, 그럴 순 없었다.

딘은 마족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 중 하나다.

만약 달려들었다가 정체가 탄로라도 난다면, 그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쌓은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지금은 정말 분하더라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나중에 일으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때, 난리가 난 사갈 쪽 병영과는 다르게 아로엘의 병사들은 모두 강 건너 불구경 중이었다.

“와, 저게 드래곤이야? 진짜 크다.”

“전설 속의 드래곤 로드, 딘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안 되겠어. 바로 저 모습을 스케치로 남겨야지.”

“그렇지! 저 망할 사갈 놈들을 전부 불태워 버리라고! 하하하!”

아로엘 병사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자신들의 앙숙인 사갈 병사들을 저 거대한 드래곤이 알아서 브레스로 해치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성벽에 붙어서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을 때.

“인간들끼리 싸울 땐 지원 안 해준다더니.”

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경선 쪽이 아닌, 그들의 머리 위 아주 높은 하늘에서 말이다.

소식을 듣고 바로 이곳까지 날아온 로한과 아린이었다. 둘의 등에는, 하이퍼 레벨 2 모드에서 볼 수 있는 푸른빛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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