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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94화 (94/200)

제94화

스르릉.

왕성 내 연무장 안에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윌리엄이, 두 손으로 쥐고 있는 투 핸드 소드를 자세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앞에 서 있는 로한이 준 선물이었다.

레기스트륨 바로 전 버전의 최첨단 금속인 렐리기륨으로 만든 이 검은 튼튼하고, 가볍고, 잘 베이면서 무엇보다 마나 전환 효율이 매우 뛰어나다.

이번에 아르베니아 원정단에 참여했던 이들은 모두 한 번씩 체험해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월리엄은 그 멤버에 없었으니까.

한참을 감상하던 윌리엄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명검이군.”

이미 이 말이 나올 줄 예상했던 로한이 이어 말했다.

“제가 보유한 무기 중에 윌리엄 님이 주로 사용하시는 투 핸드 소드가 이거 딱 하나 남아 있더군요. 그래서 아린을 시켜서 이번에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검을 나에게 선뜻 줘도 되는 건가?”

입 무거운 윌리엄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가 지금 이 검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 수 있다.

로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마족 놈들과 싸우려면 이 정도 무기는 필수입니다.”

“맞는 말일세.”

윌리엄은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정말 고맙네. 큰 빚을 졌군.”

“안 휘둘러 보십니까?”

“괜찮네. 쥐는 순간 알았으니. 돌아가지.”

바로 연무장을 나서는 윌리엄의 뒤를 로한은 따르면서, 속으로 ‘역시….’라고 생각했다.

굳이 무기를 휘둘러 보지 않아도 바로 자신과 잘 맞는 무기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경지. 그게 지금 윌리엄의 수준이다.

내성으로 걸어가면서 둘은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었지.”

“네.”

둘은 아까 연무장에 오기 전, 집무실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다시 짚는 중이었다.

대답한 로한이 설명을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아닌 아르베니아까지 마족이 두 명이나 잠입해 있었던 걸로 보아, 이제 대륙 내 모든 국가에 마족이 최소 한 명 이상씩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마족들의 치밀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더 가능성이 높죠. 원래는 말파스처럼 버몬드 등을 이용해 전권을 휘어잡은 뒤, 손쉽게 대륙을 정벌하려 했을 겁니다. 천 년 전 신마대전 때처럼 말이죠. 하지만 마족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지금에서는 그 방법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왜 차선책이 전쟁인가?”

“서쪽 대륙 전체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죠. 모든 국가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그때, 마족에게 점령당한 오스크만 제국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군.”

윌리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족이 등장한 이상, 이제 오스크만 제국이 언제 아틸러스 산맥을 뚫고 국경선을 넘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천 년 전이랑 똑같이 말이다.

포탈 몬스터의 천국인 아틸러스 산맥의 존재 때문에 완전히 제국과의 소식이 단절되어 있는 터라 서쪽 대륙 국가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첫 번째 목표는 우리 테르디아가 될 것입니다. 다름 아닌 제가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마족을 모두 잃은 아르베니아겠지만… 그곳은 워낙 강대국이니 쉽게 건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데르툴족들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국가는 마족을 셋이나 처치한 로한이 있는 이곳일 것이다.

엘도르 대륙에서 가장 국력이 약한 이 소국이, 로한의 존재로 인해 마족들이 가장 경계하는 1순위 나라로 돌변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타 국가의 침략에 대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와 앙숙인 사갈 공국을요. 만약 사갈이 먼저 공격해 온다면, 국경선이 맞닿아있는 아로엘과 칼슈타인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겠죠. 공작님과 제 영지이기도 하고요.”

“…바로 준비해야겠군.”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윌리엄은 로한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로한의 논리는 일리가 있었다.

항상 정책을 논할 때는 최악의 최악 상황까지 생각하라. 이미 마족 때문에 혼란스러워진 이 시기에 이 정도로 미리 준비하는 건 절대 과한 결정이 아니다.

“바로 폐하께 가서 이 의견에 대해 보고하세.”

“네.”

“자네는 언제 마족에 대해 따로 공부라도 했나?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군.”

윌리엄이 새삼 이렇게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데르마와 마족들의 정체, 신체 구조, 전투력 판단도 모자라 이젠 성향까지 파악해 미리 대비하기까지.

지금까지 로한이 그들을 상대로 보여줬던 모습은 정말 여신께서 테르디아를 구원하라고 보낸 대천사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로한은 웃으며 대충 둘러댔다.

“그냥,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대충 감이 잡힌 것뿐입니다. 20년밖에 안 산 제가 마족에 대해 언제 따로 공부했겠습니까.”

지구에서 망할 데르툴들을 지겹게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에 대해 1부터 100까지 모르는 게 없는 수준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윌리엄은 로한을 빤히 쳐다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테르디아에 자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네.”

사실 로한이 어떻게 마족을 잘 알고 있는지, 그걸 숨기는 이유가 뭔지, 그게 정말 그가 인간이 아닌 다른 초월적인 존재인지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로한의 존재 자체가 든든하다는 것. 그로 인해 테르디아가 훨씬 더 안전하다는 것. 윌리엄 입장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할 뿐이다.

“하나만 약속하게.”

“무엇입니까?”

“모든 위기가 마무리되면 자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게. 그때까지 난 기다려줄 수 있네.”

로한은 윌리엄을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 전에 아마 알게 되실 겁니다.”

이 대답은 진심이었다. 로한의 향후 계획에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대륙인들이 그의 정체를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국왕을 찾아간 로한은 필리프에게 앞으로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윌리엄과 한입으로 그렇게 말하니, 필리프도 더불어 심각성을 느끼고는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결과, 테르디아의 모든 영주들에게 준전시 상태에 돌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회의를 마친 로한은 자신의 영지에 이 결정을 알리기 위해 아린과 같이 바로 워프진을 타고 아로엘로 돌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도착하자마자 로한과 아린이 본 것은, 자신들을 환영하는 아로엘의 주요 헌터들 및 관리들의 모습이었다.

5일 정도밖에 안 됐는데도 로한은 이들을 꽤 오랜만에 본 기분이었다.

“오랜만이다. 근데 사람이 엄청 늘었네?”

“네. 이번에 새롭게 뽑은 아로엘의 관리들과 병력들입니다.”

힉스가 뒤편의 새로운 얼굴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번에 로한이 자리를 비운 근 5일간 공고문을 본 수많은 이들이 아로엘에 몰려들었고, 아로엘 관리들은 그들을 선별하는 데 5일이란 시간을 모조리 썼다.

그 1차 결과가 지금 로한 앞에 서 있는 이들이었다.

“언제 뽑은 거야?”

“어제 뽑았고, 오늘 첫 출근입니다.”

“그래? 그러면 다들 회의실로 가자. 바쁘니까 거기서 신입들과 함께하는 첫 회의를 바로 진행하자고.”

“네, 영주님. 모두 회의실로 간다!”

곧 회의실은 로한 등의 일행들로 꽉 찼다.

“이 드넓은 회의실이 꽉 차는 날도 오는군요. 저도 2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입니다. 앞으로 사람들을 더 뽑을 걸 생각하면 이 회의실로는 모자랄 수도 있겠습니다.”

“돈이 좋긴 좋지?”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소문이 사실입니까?”

“뭐?”

“그, 대천사니 뭐니 들려오던데 말입니다.”

“아, 이거?”

로한은 바로 하이퍼 모드로 변신해서 날개를 쫙 펴주었고,

“헉?!”

“오오!”

모두들 휘둥그레진 눈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다시 원상태로 복귀한 로한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래 보여도 인간 맞아. 단지 신체 일부분이 인간이 아닐 뿐이지.”

“그러면, 혹시, 반인반신이라는 소문이…?”

“그냥 인간이라니까? 나중에 정체 다 밝혀줄 테니까 일단은 그냥 넘어가. 어차피 지금 설명해도 니들 아무도 안 믿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미 로한을 향한 신뢰도가 매우 높은 힉스 등의 주요 인물들은 바로 넘어갔다. 로한은 여전히 궁금해하는 표정의 신참 관리들을 바라보며 농을 건넸다.

“뭐, 대천사로 오해할 만하긴 하지. 내가 대천사로 보일 만큼 잘생기긴 했잖아?”

“하하하….”

그렇게 분위기를 전환한 로한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금 폐하의 명을 받고 오는 길이야. 테르디아의 모든 영지는 전쟁 발발을 대비해 지금 이 시간부로 모두 준전시 상태로 돌입한다.”

“준전시 상태면, 아로엘은 평상시랑 똑같겠군요.”

“맞아.”

아로엘은 애초부터 몬스터, 사갈 공국 때문에 항시 준전시 상태였다.

“힉스 등 주요 관리들은 알고 있겠지만, 사갈 공국은 지금 전쟁 준비에 돌입하고 있어. 윌킨슨, 모니터 좀.”

“여기 있습니다.”

윌킨슨은 큰 모니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마나석으로 만든 전류 공급 기기에 플러그를 꽂은 후 전원 버튼을 누르자, 미리 띄워놨던 아로엘 전체 지도가 화면에 나타났다.

“우와!”

“저게 뭐야?”

“그 영상 보여주는 마법구 아티팩트인가?”

“마법구가 저렇게 네모나게 생기진 않았잖아?”

신참들은 모니터를 처음 보고 모두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웅성거림은 로한이 말하면서 일제히 중단되었다.

“이건 아로엘 북쪽의 국경선 전체를 보여주는 지도야. 빨간 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을 중심으로, 위쪽에 있는 사람들이 사갈의 병사들, 남쪽은 아로엘 병사들이지. 근데 봐봐.”

로한이 모니터의 사갈 쪽을 지휘봉으로 짚었다.

“딱 봐도 아로엘보다 병력이 몇 배는 많아 보이지? 원래 사갈 병사들의 숫자가 이렇게는 많지 않았어. 근데 최근 들어 점점 불어나더니 이 정도까지 된 거야. 자, 질문 하나 하지. 국경선에 병사들이 갑자기 많이 모인다, 그럼 보통 목적이 뭐겠어?”

“전쟁… 아닙니까?”

“맞아. 사갈은 분명 며칠 내에 병력을 이끌고 국경선을 넘어올 거야. 그 첫 번째 목표는 병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아로엘, 그리고 칼슈타인이지.”

로한은 근거도 없이 윌리엄과 필리프에게 전쟁 얘기를 했던 게 아니다.

인공위성으로 꾸준히 국경선 쪽 병력 변화를 지켜본 결과, 전쟁 의도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그들을 설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신참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업무는 바로 전쟁 대비야. 병사로 뽑힌 인력들은 모두 국경선으로 이동시켜서 성벽을 보수 혹은 강화시켜. 관리들은 국경선에 식량이나 무기 등이 부족하지 않게 물자 조달에 힘쓰고.”

“네, 영주님!”

“힉스는 계속 신입들 뽑는 데 주력해. 전쟁 때 병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전쟁에 참전할 시 평상시보다 보수를 두 배 더 준다는 것도 잊지 말고 강조하고.”

“알겠습니다.”

“좋아. 첫 회의는 이것으로 마친다. 모두 해산.”

회의가 끝난 후 모두가 자신의 업무를 하기 위해 회의실을 빠져나갈 때, 아린이 로한에게 다가왔다.

“오빠, 잠깐 집에 들를 수 있어요?”

“지금? 나 바쁜데.”

“어머니께서 지금 밤잠을 설치고 계세요.”

“왜?”

“왜겠어요? 오빠 정체 때문이죠.”

“아…!”

로한은 단번에 어머니의 상황을 파악했다.

평상시에도 심약한 비올라는 분명 로한이 인간이 아니라는 소문에 대해 많이 놀랐을 것이 분명하다.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아마 로한이 자신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겠지.

“그러게 좀 천천히 정체를 공개하지 그랬어요.”

“매도 미리 맞는 게 나아. 어차피 앞으로 데르툴족이랑 싸울 땐 나뿐만 아니라, 너도 변신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데?”

“아, 하긴.”

“일단 저택에 가자. 어머니를 만나 뵙긴 해야 했어.”

로한은 아린과 함께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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