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위험해요!”
그때 에텔드리다가 나섰다. 그녀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신성력 장막이 일행 전체를 감쌌다.
콰앙!
검은 광선은 장막에 닿자마자 굉음과 함께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윽…!”
에텔드리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강한 검은 광선의 충격에 약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힌스테딘이 오만하게 웃었다.
“하하하! 천하의 성녀도 별거 없군! 고작 이 정도 공격 하나 제대로 못 막아내고 비틀거리는 꼴이라니!”
“입 닥쳐! 이 재활용도 안 될 폐기물 같은 자식아!”
에텔드리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틀 전에 봤던, 정의의 철퇴를 휘두르던 모습이 다시 한번 그녀에게 투영되기 시작했다.
로한이 그런 그녀를 말렸다.
“저놈은 제 몫입니다. 당신은 주변 데르마들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세요.”
그 말에 그녀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푸르가티오 폭탄 때문에 괴로워하던 주변 데르마들이, 본신으로 돌아간 힌스테딘의 강력한 마기 덕에 점차 회복되어 가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때, 힌스테딘이 외쳤다.
“모두 마기를 폭주시켜라! 반드시 저 연놈들을 죽여라!”
동시에 비틀거리던 데르마들의 몸에서 다시 강력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르르르…!”
“크어어어…!”
마치 짐승이 낼 법한 괴성을 지르기 시작하는 그들. 두 눈 역시 동공이 보이지 않을 만큼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체내에 남아 있던 모든 마기들을 폭주시키는 버서커 모드에 돌입했을 때 보이는 현상이었다.
그들이, 워프존 중앙에 서 있는 로한 일행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킁!”
가장 먼저 움직인 일행원은 라가스였다.
본인의 몸만 한 커다란 망치를 등에서 꺼낸 그는, 마나를 가득 실어서 가장 먼저 달려오는 데르마에게 있는 힘껏 휘둘렀다.
뻐억! 소리와 함께, 무려 초월자 경지의 데르마가 저 드높은 그레이스 성당의 지붕에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이것이 테르디아의 헌터 마스터, 라가스의 위력이었다.
“이야, 이거 진짜 좋은데?”
그는 들고 있던 망치를 다시 한번 쳐다보는 여유까지 보였다.
세련된 디자인의 그것은 라가스가 처음 보는 금속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까 로한이 말했었는데, 뭐라고 했더라? 렐리기…륨? 아무튼 그런 걸로 만들어진 무기라고 했다.
아까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로한이 데르마들을 더 쉽고 빠르게 해치우라고 지급한 무기였는데, 처음 손에 쥐자마자 그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 그가 사용했던 어떤 도끼와도 비교가 안 되는 무기라는 것을.
일단 마나 효율이 엄청났는데, 소량의 마나만 주입해도 초월자 특유의 강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즉, 이 무기에 평상시처럼 강기 수준의 마나를 집어넣으면, 그의 몇 배에 달하는 위력의 강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이런 게 진작 내 손에 있었으면, 로한이 아니라 내가 버몬드를 때려잡았을 텐데. 킁!”
뻐억!
라가스가 휘두른 망치에 또 한 명의 데르마가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의 옆에는 밀리오가 로한에게 받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가 지금 한꺼번에 상대하는 데르마들의 숫자는 무려 다섯 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는커녕 오히려 한 명씩 큰 상처를 입히기 시작하는 모습. 곧,
푹!
“컥…!”
밀리오의 검에 목이 꿰뚫린 데르마가 상처 부위에서 다량의 마기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검을 회수하면서 밀리오는 생각했다.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최고의 무기다!’
그가 로한에게 지급받은 검은, 밀리오에게 있어 안성맞춤 그 자체인 명검이었다.
마나 효율도 효율이지만, 무엇보다 엄청나게 튼튼하면서도 굉장히 가벼웠다. 수련할 때 사용하는 목검보다도 몇 배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덕분에 그의 공격 속도 역시 평소보다 몇 배는 빨라졌다. 안 그래도 전투 때 민첩함을 장점으로 활용하던 그에게 이 검은 날개를 달아준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비슷한 경지의 데르마를 한꺼번에 다수를 상대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옆에는.
“찻!”
“하앗!”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헤이즈, 시모어 등의 헌터들이 보였다.
전부 A급 이상 헌터들이었는데, 로한의 요청으로 이번 작전에서 A급보다 낮은 헌터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현재 유키펠 등을 감시하기 위해 테르디아에 남아 있는 윌리엄을 제외하면, 여기 있는 멤버들은 테르디아의 최정예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A급 헌터들 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상을 보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촤악!
“끄륵…!”
또 한 명의 데르마의 목을 베어내 처치한 젊은 미남자.
윌리엄의 장남, 클리프 칼슈타인이었다.
칼슈타인 성 주변의 비밀 장소에서 혼자 뼈를 깎는 수련을 하고 있던 이 청년이, 지금 이 최정예 멤버들 틈에 섞여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확실히 실전은 어렵군.’
클리프는 넘어오기 전, 아버지가 하셨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번 작전보다 네가 데르마들을 상대로 첫 실전을 경험하기 좋은 기회는 없다. 가서 경험하고, 배우고, 느껴라. 구석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앞으로 폐관 수련은 끝이라고 생각해라. 대륙의 흐름을 보아하니, 이제 쉬지 않고 마족과 데르마들과 싸워야만 할 때가 왔다.”
이제 그동안 수련했던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실전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클리프는 어쩔 수 없이 폐관 수련을 중단한 후, 국가의 업무로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 최정예 멤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 전투를 벌인 그의 한 줄 평은 이랬다.
‘합류하길 잘했어!’
자신과 거의 대등한 경지의 데르마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는 매 순간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역시, 실전만큼 좋은 수련은 없다는 말은 정답이었다.
“하압!”
그는 로한에게 받은 검에 마나를 힘껏 불어넣은 뒤 다시 한번 눈앞의 데르마를 향해 휘둘렀다.
렐리기륨으로 만들어진 검은 평상시 그가 끌어올릴 수 있는 검강의 몇 배에 달하는 위력을 검에 담았고, 클리프가 상대하던 데르마는 그 위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왼팔이 통째로 잘려 나가 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 아린과 에텔드리다도 후방에서 마법과 신성력을 사용해서 계속 아군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유일하게 싸우고 있지 않은 이는 딱 두 명. 로한과 힌스테딘이었다.
“왜 안 공격하냐?”
로한이 그를 올려다보며 도발했다. 하지만 힌스테딘은 냉정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이놈은 유키펠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던 놈이다.’
속으로 생각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르기에에게 받았던 녹화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변신해서 무려 데르툴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유키펠을 마치 어린 아이 손목 꺾듯이 갖고 놀던 모습.
아직도 인간이 하찮은 존재라는 건 그에게 있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최소한 눈앞의 이놈이 가진 실력만큼은 절대 하찮지 않다. 괜히 주인님이 경계 대상 1호로 지목했겠는가?
그렇게 힌스테딘이 신중한 태도로 움직이지 않자,
“공격 안 할 거면 내가 먼저 간다.”
라고 로한이 말하면서, 곧장 힌스테딘이 있는 공중으로 점프해서 솟구쳐 올라갔다.
빠른 속도! 동시에 느껴지는 엄청난 위력!
힌스테딘은 전신의 마나를 급격히 활용하여 로한의 육탄 공격을 두 팔로 막아내었다.
퍼엉!
“큭!”
힌스테딘이 신음과 함께 뒤로 멀리 날아갔다. 간신히 날개를 퍼덕여 신체를 공중에 멈춰 세운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두 팔을 바라보았다.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뭉텅 날아간 두 팔뚝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역시 강하다!’
힌스테딘은 한층 더 긴장했다. 동시에 빠르게 마나를 두 팔뚝에 불어넣어, 순식간에 신체를 원상 복구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때, 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키펠보다는 확실히 싸울 맛이 나겠어.”
힌스테딘은 정면을 쳐다보았다. 동시에, 눈이 커졌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로한은, 유키펠과 싸울 때처럼 특이한 모습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와 조금 모습이 달랐다.
‘등에, 날개가…?’
로한의 어깨에는 푸른빛으로 빛나는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일반 조류처럼 깃털로 이루어지거나 힌스테딘처럼 가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철 같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긴 했다.
그 날개로 인해 로한은 지금 힌스테딘과 같이 공중에 떠올라 있는 상태였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힌스테딘이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로한은 한마디로 답변해 주었다.
“사이보그 하이퍼 모드 레벨 2다.”
“뭐?”
“자, 간다.”
친절하게 경고까지 남긴 뒤 로한은 힌스테딘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손등에서 광선검을 뽑아내는 모습. 그걸 본 힌스테딘은 전력으로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의 본능이 얘기하고 있었다. 저 광선검에 베이면, 유키펠처럼 최소 중상을 입는다!
로한이 힌스테딘이 있던 자리에 빛과 같은 속도로 광선검을 휘둘렀고,
“호오?”
동시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힌스테딘이 공중에서 몸을 틀어 돌리면서 자신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로한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아까 네가 썼던 공격 기술이다.”
로한은 손바닥을 공중의 힌스테딘으로 향해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손바닥에 생성된 레기스트륨 원자로에서 강력한 에너지 파가 방출되었다.
아까 전 힌스테딘이 내뿜은 검은 광선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강력한 위력을 지닌 공격이었다.
“크아악!”
에너지 파에 정통으로 맞은 힌스테딘이 비명과 함께 에너지 파가 발사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쾅! 하고 그레이스 성당의 지붕에 커다란 구멍을 낸 힌스테딘의 신형이 건물 바깥까지 밀려났다.
데르툴족으로 돌아온 힌스테딘의 마족 본연의 모습이, 아르베니아의 수도 피에트로의 정중앙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꺄아악!”
“마, 마족이다!”
“살려줘!”
“오오, 신이시여…!”
피에트로에 살던 백성들은 모두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모두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최대한 그레이스 성당 쪽에서 멀어지기 위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힌스테딘은 그들의 모습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으윽…!”
옆구리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통해 흘러내리는 검은 피와 빠져나가는 마기를 억제하기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정면에는 어느새 빠른 속도로 날아온 로한의 모습이 보였다.
“이 정도로 쉽게 쓰러지지 않길 바란다.”
로한이 힌스테딘에게 말했다.
“아직 공격 데이터를 더 쌓아야 되거든.”
말은 마친 로한이 다시 한번 힌스테딘에게 날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