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86화 (86/200)

제86화

서걱.

“크윽!”

또 한 번 유키펠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 베인 곳은 그의 오른 어깨였다.

하지만 오래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서걱.

“악!”

이어진 로한의 공격에 옆구리가 뭉텅 베이면서 더 큰 고통이 그의 온몸을 덮쳐왔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유키펠의 몸. 로한의 공격 단 세 번 만에 그 위협적이었던 데르툴족의 강인한 신체가 피투성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회복 속도는 빠르네.”

로한이 유키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분명 몇 초 전에 절단되었던 그곳이 언제 잘렸었냐는 듯 멀쩡하게 새로 돋아나 있었다.

최상위 귀족이라 그런가? 회복 속도도 말파스에 비해 월등히 빨랐다.

“다시 잘라줄게.”

로한의 광선검이 다시 한번 유키펠의 왼손을 겨냥했다.

유키펠은 이를 악물었다.

‘이익!’

저렇게 대놓고 정직하게 공격해 오는데 또 당해줄 수는 없다!

그는 필사적으로 공격을 피해내기 위해 온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서걱.

“아악!”

이번에도 피하는 데는 실패했다.

또다시 잘린 왼팔에서 다량의 검은 피를 후두둑 흘리면서 뒤로 물러서는 유키펠.

그의 얼굴에는 괴로운 감정과 함께 이젠 공포감마저 조금씩 서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도대체 뭐야?!’

누가 믿을까? 전 우주의 생명체 중 가장 강한 데르툴족. 그중에서도 최상위 귀족에 속해 있는 유키펠이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인간형 생명체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한 건 이놈은 인간은 아니었다. 일단 저런 모습으로 인간이 변한다는 건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주인님께 알려야 한다!’

이제 유키펠은 로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아닌,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이 그의 고향에 알려진다면 당장에 최상위 귀족 자리를 박탈하라고 다들 한목소리로 비난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어쩌랴? 도저히 이길 각이 보이질 않는 걸. 자신의 공격은 전부 막히고 상대방의 공격은 하나도 못 막겠는 걸 어떡하라고!

“또 멍하니 서 있네.”

로한이 다시 한마디와 함께 공격해 왔다.

그걸 본 유키펠은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했다. 공격도, 방어도 아닌, 36계 줄행랑을 말이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런데.

텅!

당연히 그의 몸통박치기에 부서졌어야 했을 평범한 벽이, 부서지기는커녕 오히려 유키펠을 튕겨낸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결과는 결국 로한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서걱.

“끄아악!”

그 어느 때보다 큰 비명이 유키펠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럴 만했다. 이번에는 오른팔 전체가 깔끔하게 절단되어 버렸으니까.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로한을 독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며 외쳐댔다.

“으으… 감히 벽에 장난질을 하다니!”

“그래.”

로한은 순순히 인정했다.

“네가 아까 변신할 때 미리 설치해둔 결계 마법을 가동시켰지. 그래서 눈치 못 챘을 거다.”

그 시각. 로한과 유키펠이 싸우고 있는 방 주위는 수많은 테르디아의 기사 및 헌터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촘촘하게 포위한 상태였다.

침실 건물 전체는 물론, 건물 바깥에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사들이 전투태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킁. 정말 대단한걸?”

바로 문 앞에 서 있는 배불뚝이 남성이 입을 열었다. 테르디아의 헌터 길드 마스터, 라가스였다.

그의 정면에는 마나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거울이 있었는데, 방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라가스, 윌리엄 등 핵심 인물들이 그 거울을 통해 전투 장면을 감상 중이었다.

“그때 고든 공작의 저택에 포탈이 열렸을 때도 나보다 훨씬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괴물 중의 괴물이었잖아? 이 정도면 공작님도 한 수 접어야 하는 거 아니유?”

“…….”

윌리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라가스도 더 묻지 않았다.

저건 무언의 긍정이었다. 단지, 무인의 자존심 때문에 쉽게 인정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윌리엄을 오래 본 라가스는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

라가스는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저 몸은 뭐지? 킁. 마치 최첨단 기계 같은데.”

로한의 저 인간 같지 않은 새로운 전투 모드 체형에 모두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렇다고 키메라 같은 괴물은 아닌 거 같고… 묘하게 기계 같으면서도 인간 같단 말이지. 킁. 그, 아린이라고 했냐?”

“네.”

“너도 저게 뭔지 모른다고?”

근처 결계석 앞에 서 있던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로한 오빠를 만나고 난 이후 처음 보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지금 저도 굉장히 놀라고 있어요.”

“킁. 전투 끝나면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라가스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지금껏 헌터 마스터로서 별의별 포탈 몬스터들과 각종 변이 괴물들을 겪었지만, 로한의 저 몸과 비슷하게라도 보이는 존재는 구경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윌리엄이 아린에게 말해왔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강한 결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군.”

“죄송합니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아니, 그런 뜻에서 한 말은 아닐세.”

그가 말을 꺼낸 이유는 단지 놀라워서였다.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주는 저 둘을 완벽하게 가두고 있는 이 결계 마법은 최소 7클래스 이상은 되어야 설치가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테르디아에서 그 정도 되는 실력자는 벨타디아의 마탑주인 올리버 정도뿐이다.

‘소문으로 들려오던 아로엘의 대마법사가 사실이었군.’

안 그래도 최근에 아로엘에 절세의 미녀 대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솔솔 돌았는데, 그게 아린이었던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기운이 대마법사의 마나였나.’

사실 500주년 파티에서 처음 아린을 봤을 때 윌리엄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마나는 절대 보통 실력자의 그것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을 하진 않아서 제대로 된 경지는 가늠이 불가능했는데,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테르디아 입장에서는 연이은 축복이군.’

윌리엄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제 테르디아는 로한뿐만 아니라 정말 귀한 대마법사까지 한 명 또 얻은 셈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윌리엄은 그 누구보다 테르디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테르디아가 부강해지는 것이 그의 첫 번째 행복이고, 무인 및 한 영지의 영주로서의 경쟁심은 그다음이다.

“킁. 슬슬 끝나가는구먼.”

옆에서 라가스가 한 말에 윌리엄은 다시 마나석 거울을 바라보았다.

“으… 으으으…!”

어느덧 신음 소리도 많이 작아진 유키펠.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이는 몸 상태였다.

팔다리가 모두 잘려 몸통만 남은 그는,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로한은 손목에 솟아난 광선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벌써 끝인가 보네. 팔다리가 빨리 안 돋아나는 걸 보면.”

“크윽, 닥쳐라…!”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 이 정도면 데이터 수집도 의미가 없는데 말이지.”

이건 마치 아린이 말파스를 일방적으로 압도할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뭐 적당히 차이가 나야 지금 하이퍼 모드의 공격력을 측정이 가능한데, 이건 너무 일방적으로 압도해 버렸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겠네.”

“큭… 가더라도, 절대 혼자 죽지는….”

“아, 참고로 말하는데 내 광선검에는 카르만테 성분이 묻어 있어. 쉽게 말해서 마나 안정제인데, 이 성분으로 베이면 자폭 못 한다. 알아둬라.”

“……!”

유키펠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안 그래도 마지막에 머리만 남기고 자폭한 후 공간 이동을 통해 도망가려고 했는데, 그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혹시나 해서 그는 마기를 자극시켜 보았다.

그런데, 마기가 전혀 반응하지를 않았다. 정말로 자폭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극도로 당황한 유키펠의 귓가에, 로한이 문밖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들어와서 마무리하시죠.”

곧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유키펠에겐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에텔드리다…!”

독기 가득한 그의 눈빛을 받으며 에텔드리다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이 순간을 지금까지 기다려 왔어요.”

한 발짝씩 유키펠에게 가까워지는 그녀의 손에는, 피로 잔뜩 물든 커다란 철퇴가 들려 있었다.

“신성한 아르베니아에 더러운 손길을 뻗치려고 한 마족에게 테아이엘 여신님의 철퇴를 내릴 순간을요.”

“뭐? 지금 뭐 하려는…!”

뻐억!

“커헉!”

퍽! 퍽! 뻑! 빡!

곧, 로한을 포함한 모두는 진짜 ‘여신의 철퇴’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한 것과는 조금 많이 다른 모습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신의 철퇴를 내린다는 소리가, 원래 진짜 철퇴로 후려 패는 거였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최소한 여기 있는 이들 중에는 없었다.

“…지금 장면은 비밀로 하도록 하지.”

“…….”

윌리엄의 조용한 명령에 지켜보고 있던 라가스 등의 주요 인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베니아를 위해서, 그리고 성녀님을 섬기는 모든 신도들을 위해서라도 에텔드리다의 성스러운 이미지는 계속 지켜져야 한다.

지금처럼 핏방울을 얼굴에 잔뜩 묻히면서 있는 힘껏 철퇴를 휘두르는 모습이 소문난다면, 어쩌면 대륙 사람들은 마족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큰 충격에 빠질지도 몰랐다.

그 시각.

지금 마나석 거울에 보이는 장면을 멀리서 몰래 영상 녹화 마나석으로 촬영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레이먼드였다.

촬영을 모두 마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자신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근처에 있던 관리 한 명을 불렀다.

역시 르기에의 데르마인 그에게 마나석을 몰래 건네며 레이먼드는 귀에 속삭였다.

“이걸 주인님께 지금 갖다드리도록.”

“네.”

관리는 조심스럽게 근처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들 로한이 있는 방 안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 왕실 관리 한 명이 조용히 움직이는 것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전하게 관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레이먼드는 다시금 거울 쪽을 바라보았고,

“……!”

동시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아까 전까지 거울 안에서 에텔드리다만 쳐다보고 있던 로한이,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으로 시선까지 맞추면서.

레이먼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설마 들킨 건가…!’

하지만 1초 뒤, 로한은 다시금 에텔드리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더 이상 레이먼드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진짜 식겁했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은 레이먼드는, 혹시나 몰라 그대로 로한이 있는 방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방금과 같은 기분을 또 한 번 느끼면, 진짜 수명이 십 년은 단축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망치느라 그는 한 가지를 놓쳤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다시금 로한이 거울을 통해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잠시 후.

르기에는 고든의 대저택에서 같이 마나석에 녹화된 영상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호오… 이건 좀 많이 놀랍군요.”

하이퍼 모드로 변한 로한이 유키펠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르기에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름 최상위 귀족인 유키펠을 저 정도로 압살할 줄이야. 이건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경지인데요.”

“근데 저 몸은 뭐지? 인간이 어떻게 저런 체형으로 변할 수 있는 겐가?”

고든의 물음에 르기에가 태연히 대답했다.

“그야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겠죠.”

“뭐?”

“제가 보기엔 인간의 피를 물려받은 혼종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로부터 인간들은 타 종족과 결혼해서 상상하기도 힘든 정체의 아이를 많이 낳았지 않았습니까? 이종족은 물론 몬스터, 심지어 천계의 여신의 피를 물려받은 반인반신까지도요.”

“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마족의 아이를 낳은 인간도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

“후후후, 그랬었죠.”

르기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잘 봐두십시오. 로한의 정체가 어떻든 간에, 우리 데르툴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존재라는 건 확실해 보이니까요.”

동시에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장면은 주인님께 보고를 해야겠어.’

데르툴의 최상위 귀족을 일방적으로 때려잡는 신종의 등장. 이건 데르툴족 입장에서도 절대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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