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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78화 (78/200)

제78화

아까 의원실에서 고든이 악몽을 꾸고 있을 그때.

레이먼드는 몰래 그에게 접근한 후, 일찍이 그의 주인 르기에에게 받았던 환각 마법 스크롤을 이용해 마법을 걸어두었던 것이다. 그것은 ‘악몽과 똑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정신 착란계 마법이었다.

그래서 고든은 눈을 뜬 이후에도 꿈속과 똑같은 현실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 주인님이 예상하신 그대로 상황이 진행되었습니다. 혼자 복도를 뛰어다니더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혼자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그때 그를 지켜보던 주변 하인들과 경비병들의 표정이 정말 볼 만했습니다.’

[후후후… 역시나군.]

실제로 필리프, 윌리엄, 헤이즈, 시모어는 그에 대한 뒷담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유무는 이제 아무 상관 없다. 고든의 뇌리 속에 저 넷은 현실에서도 그에게 악담을 퍼부은, 천하의 나쁜 놈들로 이미 인식이 박혀 버렸으니까.

[잘했다, 나의 데르마여. 돌아오면 상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속으로 외친 레이먼드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주인님이 내려주는 상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그를 더더욱 강해지게 만드는 대량의 정순한 마기일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 그에게 그보다 소중한 보상은 없었다.

* * *

기절해버린 고든 공작은 결국 자신의 저택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본래는 최소한으로 행동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신성조사단 접대를 고든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상태를 보아하니 접대는커녕 오늘 안에 정신을 차리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았다.

마차를 통해 본인의 침실까지 안전하게 운반된 고든.

정말 불쌍하게도, 그는 또다시 악몽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

몇 시간 만에 또다시 그의 주위를 뒤덮은 칠흑 같은 어둠.

평상시라면 고든은 “또인가….”라고 혼잣말을 하며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번 악몽도 이겨내자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또 한번 마음가짐을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상태가 많이 심각했다.

“…….”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둠 속에 주저앉아 영혼을 잃은 듯한 눈빛으로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고든의 모습.

아까 전, 환각 마법으로 인해 받은 충격은 고든 그를 거의 반 백치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그는 진짜 백치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악몽은 달랐다.

그간 이 장소에서 봐왔던 익숙한 인물들이 아닌, 예상외의 존재가 아무 말 없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고든의 두 눈빛에 서서히 총기가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저 사내는, 분명…!

“르기에…!”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공작님.”

고든 입장에서는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존재, 르기에가 얼굴에 매력적인 미소를 그린 채 그에게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그가 모습을 보인 건 악몽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나저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요. 이렇게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안타깝습니다.”

“…….”

고든은 대꾸조차 못 했다. 그럴 힘도, 정신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시에 당신의 충절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열흘 정도면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달랐습니다.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의 마음을 바꾸지 못할 것 같군요. 그래서….”

르기에는 고든에게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당신을 유혹하는 것을 이제 포기하려 한다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

“이제 더 이상 악몽으로 고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악몽도 지금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요. 이제 내일부터는 그토록 원하던 숙면을 취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대답 없는 고든을 향해 르기에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숙이며 작별의 인사를 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은 없겠군요. 그러면….”

이후 그는 천천히 고든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가 완전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감추기 직전.

“정말로.”

고든의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윌리엄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게냐?”

그 말에 르기에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고든이, 어느 때보다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잇고 있었다.

“네가 분명 말했었다. 너랑 계약하면, 이 세상 최고의 헌터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그것이 정말, 사실이냐? 한 치의 거짓말도 없는 게냐?”

“물론입니다, 공작님.”

르기에가 대답해 왔다.

“데르툴의 상위 귀족, 르기에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나는 당신을 단번에 대륙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달라!”

벌떡 일어서서 크게 외치는 고든.

이어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의 감정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나에게 저 건방진 부하 헌터들을 꺾을 수 있는 힘을! 자신의 힘만 믿고 나를 개무시하는 윌리엄을 죽일 수 있는 힘을! 나를 속으로 멸시하는 필리프의 저 왕관을 박살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달라!”

그의 외침을 끝까지 들은 르기에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나의 계약자여. 당신을 대륙 최고의 경지로 만들 수 있는 힘을 말입니다.”

이후 다시 고개를 든 그는, 얼굴에 미소를 그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예상대로 마지막 카드를 손에 쥐었다.’

모두 그가 짠 플랜대로 흘러갔다. 마지막 정신적 보루마저 무너져버린 고든은, 이번 악몽 때 반드시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고든에게 약속한 강력한 힘을 다시 찾아오는 것뿐이다.

* * *

지금 테르디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을 뽑으라면, 열이면 열 모두 이곳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려 3중 철창이 쳐져 있는 곳.

매일 테르디아의 기사단과 이단 심판관들이 10명 이상씩 교대로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곳.

디바인 마크, 폭발 방지 마법, 마나 제어 마법 등등 죄인을 억제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다 사용되고 있는 곳.

바로 마족, 말파스와 그의 데르마였던 버몬드를 가두고 있는 곳이었다.

둘은 일반적인 감옥이 아닌, 대신전의 이단 심문실에 갇혀 있는 상태다. 왜냐하면 기존의 감옥으로는 둘을 감시하는 게 부족하다는 윌리엄과 밀리오의 판단 때문이었다.

단둘을 위해서만 특별히 개조된 이곳은 설사 마왕이라 할지라도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밀리오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죄인의 상태 점검 시간이다. 이단 심판관들은 모두 들어오도록.”

오늘도 말파스가 갇혀 있는 감옥에 이단 심판관들이 단체로 입장했다. 그러자 룬어가 가득 적힌 쇠사슬에 꽁꽁 묶여 있는 말파스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머리만 남은 말파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간 후, 아주 꼼꼼하게 주변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디바인 마크 상태, 이상 무.”

“사슬 상태 양호합니다.”

“창살 상태도 문제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무려 여섯 번을 넘게 점검한다. 상대가 다름 아닌 마족이기 때문에 절대 과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점검해도 행여나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여전히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를 못하는 이단 심판관들의 저 표정을 보라.

이들의 관장이 입을 열었다.

“내일 아르베니아의 신성조사단이 온다. 그때까지 절대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되니, 이제부터는 특별히 두 시간에 한 번씩 점검을 하도록 한다.”

“네.”

다른 심판관들의 대답을 들은 관장은, 다시금 말파스를 쳐다보았다.

“볼 때마다 신기하군. 어떻게 머리만 남았는데도 아직까지 살아 움직일 수 있지?”

현재 말파스는 머리만 남은 상태로 무려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완벽하게 감금된 상태다. 근데도 처음 감금됐을 때와 똑같이, 두 눈을 부릅뜬 상태로 심판관들을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정말 저 끈질긴 생명력과 여전히 독기 가득한 눈빛은, 보는 심판관들의 마음속에 절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들게끔 만든다. 당장이라도 자폭 공격을 해올 것 같은 그런 공포감 말이다.

“입마개도 점검 마쳤지?”

“네. 이상 없었습니다.”

“그럼 물러난다.”

이단 심판관들은 바로 몸을 돌려 감옥 밖으로 나갔다. 이제 그들은 옆방에 갇혀 있는 버몬드의 상태 점검을 하러 이동할 것이며, 이곳은 이제 두 시간 뒤에나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다시 혼자 남게 된 말파스는,

‘이 하찮은 인간들 따위가…!’

여전히 속으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비록 디바인 마크로 인해 더 이상의 신체 재생도 불가능했고, 입마개로 인해 한마디 말도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두 눈빛에 담긴 마족 특유의 독기는 여전했다.

이 독기는 20일 동안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었다.

‘두고 봐라! 내일 신성조사단이 오면 이 굴욕도 이제 끝이다!’

그는 내일 자신을 찾아온다는 아르베니아의 신성조사단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만약 그의 예전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온다.

이건 현재 테르디아의 그 누구도 모르는, 오로지 말파스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만약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로한! 아린! 반드시 내 모든 걸 걸고 너희 두 연놈들에게 철저히 복수해주마!’

그의 분노가 또다시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두 남매, 로한과 아린에게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그 두 연놈들에게 평생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그리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지옥을 선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마족다운 투지는 여전하군, 말파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그의 동족인 데르툴만이 할 수 있는 대화 방법이다!

‘누구냐!’

[감히 상위 귀족한테 반말이라니. 말이 짧군, 말파스.]

‘누, 누구십니까?’

[나는 르기에다.]

르기에! 데르툴족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상위 귀족 중 한 명!

순간 말파스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절절하게 속으로 외쳐댔다.

‘르기에 님! 제발 저 좀 구해 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저에게 기회를 더 주십시오!’

르기에 정도의 최상위 귀족이라면 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신을 구해내는 건 너무도 쉽게 가능하다. 그는 하급 귀족인 자신과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를 지닌 존재니까.

곧,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동시에 그의 눈앞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데르툴족 특유의 능력, 아공간이 생성된 것이다.

그 안에서 반가운 얼굴, 르기에가 천천히 손을 뻗어 말파스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손길에 말파스는 감격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르기에 님!’

그는 확신했다. 지금 르기에의 행동은 머리만 남은 자신을 이 구속 장치에서 꺼내려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틀렸다.

콰직!

르기에는 손에 힘을 줘서 그대로 말파스의 두개골을 박살 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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