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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75화 (75/200)

제75화

곧 아린이 바로 로한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그분이 무슨 일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내성 워프진 좌표를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알려드렸죠.”

“언제 온다는데?”

“지금요.”

“뭐?”

로한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진작 말했어야지! 당장 힉스 등 주요 멤버들을 불러 모아야….”

“아뇨, 그러지 말라 하셨어요. 조용히 와서 우리 둘만 보고 금방 다시 돌아갈 예정이라 다른 사람들은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우리 둘만?”

“네.”

왜 둘만 보러 오는 거지? 그 정도로 비밀을 엄수해야 할 소식인가?

“일단 알았어. 우선 워프진 가동하러 가자.”

로한과 아린은 바로 워프진이 있는 내성 지하실로 이동했다.

워프진을 활성화시키고 나니, 금방 밀리오가 넘어온다고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잠시 후, 워프진이 자동으로 빛났다 사라지면서 한 명의 익숙한 얼굴을 이곳으로 소환시켰다.

“로한 님!”

밀리오는 로한을 보자마자 반갑게 외치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반가워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다행입니다. 늘 두 분의 삶에 평안과 안식이 있기를 파누엘 여신께 매일 기도했는데, 제 말씀을 들어주셨던 모양이네요. 하하하….”

그렇게 인사를 밀리오의 시선이 바로 옆으로 향했다.

아린.

정말 보고 싶었던 그녀가 거기 서 있었다.

“어서오세요, 밀리오 님. 그간 몸 건강하셨나요?”

그녀가 생긋 웃으면서 안부를 묻는다.

저 아름다운 미소를 그간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순간 밀리오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언제나 평온했던 그의 얼굴이 근래 처음으로 크게 함박웃음을 지은 것이다.

“저는 항상 잘 지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린 님은 어떻게… 잘, 지내셨…나요?”

“저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밀리오 님의 기도 덕분인가 봐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하!”

밀리오가 저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평상시 점잖고 바른 이미지로 밀리오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저 푼수 같은 모습을 보면 적지 않게 충격을 먹을 것이 분명하다.

로한은 피식 웃으면서 생각했다.

‘왜 굳이 우리 둘만 몰래 보러 왔는지 이제 알겠네.’

지금 로한보다 거의 열 배는 더 긴 시간 동안 아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만 봐도 모를 수가 없다.

전형적인 첫사랑에 빠진 숙맥 청년의 모습.

지금 밀리오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 한다면 이게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셋은 바로 로한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내성 안에 있으면 관리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밀리오의 존재가 금방 소문나기 때문이다. 저택 내에서는 하인들만 입단속 잘 시키면 되니까.

로한 등과 같이 이동한 밀리오는 비올라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밀리오가 몰래 온 터라 비밀로 하려 했는데, 밀리오가 굳이 인사하겠다고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다.

“어머! 어서오세요, 밀리오 님!”

“파누엘 여신의 가호가 항상 함께하기를….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잘 지냈습니다. 밀리오 님은 더 잘생겨지신 것 같… 어머! 무려 폰티펙스나 되는 분께 이런 실수를…!”

“하하하. 괜찮습니다.”

비올라와의 인사를 마친 후 접대실로 이동한 셋은, 재스민 차 한잔을 각자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음~ 차향이 정말 좋군요.”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평소에 재스민 차 좋아하시잖아요?”

“맞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그때 키넨 성 신전에서 이 재스민 차를 대접하던 밀리오 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아린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였죠, 아마?”

“…크흠, 흠! 그, 그랬었나요? 기억이 잘….”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연신 해대는 밀리오.

로한은 또 피식 웃었다. 저 습관은 아직도 여전하구나.

“벌써 제가 벨타디아를 떠난 지 보름이 넘었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폰티펙스 일로 바쁘시다는 건 소문으로 들었는데.”

“말도 마십시오. 정말 바빴습니다. 전 폰티펙스가 이렇게 바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래요?”

“파누엘 여신께 기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쉴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공식 행사 여기저기 다니고, 남는 시간은 서류 처리하느라 바쁘고요. 단지 신을 섬기는 장소에 뭐 그리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인지…. 이리 바쁠 줄 알았으면 무조건 고사했을 겁니다. 하하하.”

“서류도 처리한다고요? 그거 완전 성주 역할 아닙니까?”

“맞습니다! 영주직을 대신 담당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교황님께서는 연로하셔서 요즘 글자도 잘 못 읽으시는 터라, 제가 대신전의 서류를 거의 혼자 전담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서류들도 각자 신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중대한 안건들만 넘어오기 때문에 대충 처리하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고요. 예를 들자면….”

그렇게 밀리오는 한참을 둘에게 한탄과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름밖에 안 지났는데도 쌓인 게 참 많았는지, 둘은 10분이 넘게 맞장구만 쳐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뒤에야 밀리오는 정신을 차리고 이내 사과했다.

“앗,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제 이야기만 하고 있었군요. 신의 종이 되어서 이렇게 자제력을 잃다니….”

“괜찮습니다. 저희가 어디 가서 들은 얘기 소문낼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그걸 알고 있기에 더 편해져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하… 여신님께 고해성사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군요.”

여신께 사과의 기도를 올리는 밀리오를 바라보던 로한과 아린은 서로 통신을 나눴다.

[우리가 많이 편하긴 한가 봐.]

[저도 그리 생각해요. 밀리오 님이 이렇게 인간다운 모습 보이는 건 우리밖에 없지 않아요?]

[그렇지. 사실 수도에서도 딱히 우리 정도로 친한 또래가 없잖아.]

현재 밀리오의 위상이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최소한 백작 가문 이상은 되어야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것도 최소 윌리엄의 양팔로 불리는 헤이즈, 시모어 정도의 핵심급 백작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들 꽤 나이가 있는 편이다. 그나마 가장 어린 편인 시모어가 곧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

결국 세대 차가 느껴지지 않는 또래 중 밀리오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둘뿐이다. 무엇보다 한때 버몬드를 같이 상대했던 동료라는 점에서 둘은 더더욱 유대감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제 밀리오는 확실히 내 편이다.’

로한은 마음속으로 합격 도장을 쾅 찍었다. 친한 것도 친한 거지만, 무엇보다 아린에 대한 그의 호감도를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 밀리오와의 관계는 나빠지기가 힘든 수준이다.

“제가 오늘 온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혼자만의 속죄의 기도를 마친 밀리오가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섰다.

“아르베니아 성국에서 오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오후에 신성조사단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아, 이제야 오는군요.”

로한 입장에서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사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긴 했다. 말파스 얘기를 들은 순간 칼같이 보낼 줄 알았는데, 벌써 보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 않은가.

밀리오가 그 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실 원래는 바로 조사단을 보내려고 했는데, 조사단에 함께 참여하게 된 의외의 인물 한 명 때문에 일정을 조율하느라 늦어졌다고 합니다.”

“누구죠?”

“에텔드리다 님입니다.”

로한의 눈이 커졌다.

“에텔드리다? 설마 제가 아는 그 에텔드리다 성녀님이요?”

“네. 맞습니다. 대륙 유일의 성녀께서 이번에 조사단과 함께 테르디아에 오신다고 합니다.”

* * *

대륙에서 유일하게 마법이 금지된 나라가 하나 있다.

오로지 신성력만이 법으로 허용된 나라.

마법 등의 이단 능력은 신성력으로 모두 정화할 수 있다고 믿는 나라.

국왕 대신 교황이 나라를 다스리며, 관리 대신 신관이 국가의 업무를 관리하며, 기사단의 이름 앞에도 성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나라.

서쪽 대륙에서 가장 넓고 강한 신성 국가, 아르베니아의 이야기다.

이곳은 대륙에서 가장 큰 교회 건물인 그레이스 성당.

아르베니아의 수도, 피에트로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교황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른 국가로 따지면 왕성과도 같은 곳이다.

대륙의 그 어떤 왕성보다도 크고, 넓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건물의 내부 중심부에는 이 국가의 주인인 교황만 앉을 수 있는 교황좌가 있다.

“교황이시여.”

지금, 한 늙은 신관이 그 교황좌 앞에서 정중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오.

주교급 추기경인 그는 현재 아르베니아의 대소사를 모두 관리하는 국무원장으로서, 교황 다음 2인자에 위치해 있는 거물이다.

“테르디아에 보낼 신성조사단 명단이 확정되었습니다.”

“누가 가는가?”

교황좌에 앉아 있던 노년의 남성이 물었다.

로베르토 아졸리니.

현 아르베니아의 교황이자, 서쪽 대륙의 최강자의 위치에 앉아 있는 자다.

“원래는 데초 추기경을 중심으로 부제급 신관들로 꾸리려고 했으나, 특정 인원의 추가로 인해 부득이하게도 제가 조사단을 이끌기로 했습니다.”

“성녀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곧 아졸리니는 인상을 썼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왜 그년… 아니, 성녀님이 갑자기 테르디아행을 고집하는 것인지. 교황청에서 벗어나는 순간 수많은 이단자들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거늘.”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 아니었습니까? 성녀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걸세!”

아졸리니의 목청이 커졌다.

“성녀님은 아르베니아를 수호하는 여신, 테아이엘 님의 현신일세! 그런 분을 어떻게 이단자들의 위협에 노출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성녀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아르베니아의 백만 신도들의 목숨이 모두 위험해지는 것과 같네!”

“…….”

“후우… 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지만, 다음부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깥출입을 막아야겠어.”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힌 그가 곧 축객령을 내렸다.

“알았으니 가보게. 자네가 알아서 준비하고.”

“네, 교황님. 그럼.”

그렇게 아졸리니에게 보고를 마친 니콜라오는 교황좌에서 멀어진 뒤, 바로 옆 통로로 걸어갔다.

복도를 따라 계속 걷던 그는 미래의 여신, 테아이엘이 그려진 커다란 문 앞에 섰다. 그러자 앞에서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이 바로 문을 열었다.

안에 보이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온통 순금으로 뒤덮여 있는 교황좌 복도와 비교하면 매우 수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안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기운은 그 어느 장소와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녀시여, 니콜라오입니다.”

니콜라오의 인사에, 중앙에 서 있던 여인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안쪽 벽에 세워져 있는 테아이엘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그녀가 바로 대륙 유일의 성녀, 에텔드리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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