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69화 (69/200)

제69화

톨리아 지방은 아로엘의 동남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내성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 최정예로 구성된 이번 부대가 하루 종일 달렸음에도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톨리아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바로 전투 준비를 해야만 했다.

“전방에 몬스터가 46마리 있습니다. 크기는 중형으로, 전부 C급 이하로 측정된다는 모니터의 보고입니다.”

“전원 전투 준비.”

휴대용 모니터에 떠오른 글씨를 오스캄이 그대로 읽었고, 힉스는 바로 모두에게 명령했다.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는데, 딱 다섯 명만 무기를 뽑아 들지 않았다.

로한이 그 다섯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힉스, 윌킨슨, 하딩, 지크, 피터만 전투에 참여한다.”

이 다섯 명은 전원 B급 헌터 자격증을 보유한, 이 아로엘 최정예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5인이었다.

“모두 나한테 받은 신무기 사용 방법은 숙지했나?”

“네.”

“가서 제대로 성능을 체험하고 오도록.”

로한이 그렇게 말을 마치자, 다섯 명은 품속에서 한 손에 잡힐 만한 작은 물건을 꺼내었다. 그러더니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곧,

“오오!”

지켜보던 다른 기사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터뜨렸다.

다섯 명의 손아귀 위에 수직으로 솟아난, 100% 빛으로만 이루어진 검신. 일행들의 눈에는 익숙한 존재였다.

“설마 새 무기가 광선검이었습니까?!”

오스캄의 외침에 힉스는 씨익 웃었다.

어젯밤, 힉스를 포함한 이 다섯 명에게 로한은 이 광선검 무기를 하사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영주님의 유일무이한 무기를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된 현실에, 일부는 기대에 부풀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지금, 드디어 이 광선검의 위력을 시험할 때가 왔다.

“돌격!”

“아자아아!”

다섯 명의 기사가 빠른 속도로 전방의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광선검을 몬스터들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믐달이라 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이어서, 일반인의 눈에는 광선검 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 보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최정예 멤버들에게 어둠은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와…!”

“C급 몬스터가 저렇게 두부처럼 쉽게 썰리는 존재였나?”

“저건 전투가 아닌데?”

대륙에서 일컫는 일반적인 B급 헌터들의 경지란, 한 단계 낮은 C급 몬스터를 1대1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 C급 포탈 내 보스 몬스터는 B급 헌터들이 최소 한 분대만큼 있어야 피해 없이 잡아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5명이 40마리가 넘는 C급 몬스터를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있다.

“하하하! 진짜 소드 마스터가 된 기분이야!”

지크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로한 등이 서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지켜보던 일행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지금 보이는 저 무위는, 정말 소드 마스터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압도적인 모습이 맞았다.

곧 로한의 목소리가 일행들의 귀에 들려왔다.

“저 광선검은 최소 B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강자만 활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딱 저 다섯 명한테만 무기를 준 것이다. 저 무기는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를 단번에 초월자 이상의 전투력까지 끌어올려 주지.”

초월자의 경지를 예전에는 대륙에서 소드 마스터라고 불렀었다.

“앞으로 B급 이상으로 승격하는 자들은 나에게 바로 보고하도록. 저들과 똑같은 광선검을 지급해 주도록 하겠다.”

그 말에 일행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엘도르 대륙에서 검을 사용하는 모두가 가장 원하는 경지, 소드 마스터. 그 경지에 단번에 올라가게 만들어주는 무기를 그냥 지급해 주겠다고?

심지어 B급이라면 여기 있는 멤버들 입장에서는 평생 불가능한 경지도 아니다! 본인이 죽어라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올라갈 수 있는 경지 아닌가?

갑자기 열의에 차오르는 일행들의 표정을 본 로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초월자라는 단어만큼 이들에게 의욕을 심어주는 말은 없군.’

지금 아로엘 영지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로한을 제외한 정예 멤버들의 실력 상승이다. 최소 4년 뒤 일어날 전쟁 때 눈에 띄게 활약할 수 있는 B급 이상의 헌터들은 미리 다수 보유해 놔야 한다.

아마 지금 로한의 발언을 시작으로, 많은 기사들이 B급으로 올라서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이리라. 그들의 열의를 더 고양시키기 위해 로한은 바로 이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참고로 광선검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늦게 올라오는 사람은 못 가져갈 수도 있다는 점, 참고해 둬.”

그의 아공간 창고에 남아 있는 광선검은 현재 15개. 원래 20개였는데, 다섯 개는 지금 힉스 등이 사용하고 있다.

과연 4년 안에 광선검이 모두 동나는 상황이 올까?

로한은 그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랐다. 광선검이 동난다는 말인즉, 아로엘 내에 B급 헌터가 20명이 넘어간다는 소리고, 그 순간 아로엘은 대륙 전체에서도 최고로 강한 영지로 거듭나게 된다는 소리와도 같으니까.

톨리아에 도착한 이후 일행들은 계속 몬스터들과 전투를 펼치면서 산맥 안으로 진입해 갔다.

아틸러스 산맥 근처라 그런지 몬스터들이 정말 많았다. 모니터를 보면서 최대한 안전한 거리를 택해서 달렸음에도 2시간 동안 벌써 여섯 번의 대규모 전투를 펼쳤으니까.

하지만 아군의 피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최정예 멤버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로엘이라는 험지에서 살다 보니 매일 숨 쉬듯이 몬스터 단체 사냥을 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실력과 경험까지 갖춘 이들에게 C급 이하 몬스터들은 진짜 몸풀기 수준에 불과하다.

“영주님.”

막 다섯 번째 전투를 마치고 대열을 정리하던 중, 힉스가 로한에게 물었다.

“이제 곧 있으면 동쪽 경계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알고 있어. 왜?”

“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안에 영주님이 말씀하신 이종족이 살고 있는 겁니까?”

어느새 일행들은 아로엘의 동쪽 경계선이 눈에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진입해 들어왔다. 이제 경계선과 그들의 사이까지는 면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무리 두 눈으로 봐도 이종족이 몰래 숨어 살 만한 장소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물어본 힉스의 질문에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경계선을 넘어가야 돼.”

“네? 그건….”

아무리 영주님의 실력이라도 굉장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라고 이어 말하려던 힉스. 하지만 로한은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중간에 말을 끊었다.

“걱정 마. 우리가 가려는 장소 주변에는 몬스터가 하나도 없으니까.”

“……?”

그 말에 힉스는 의아해했다. 동쪽 경계선 너머는 아틸러스 산맥의 정중앙 부위 근처인데, 거기에 몬스터가 없을 리가 있나?

“나를 믿어. 일단 경계선까지 이대로 직진한 다음 설명하겠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영주님. 이대로 직진하면 총 4개의 몬스터 무리와 조우하게 됩니다.”

로한을 제지한 인물은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오스캄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로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알고 있어. 이제부턴 내가 선두에 선다. 모두 내 뒤를 따라와.”

“네, 영주님.”

S급 헌터, 로한이 선두에 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힉스 등 5명의 B급 헌터가 선두에 포진했었던 일행들의 대열이, 지금 처음으로 로한이 선두에 서는 형식으로 뒤바뀌었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전진하는 로한. 덕분에 금방 몬스터들을 조우할 수 있었다.

쿠워어어어!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괴성과 함께 전력으로 달려드는 거대한 이족 보행 몬스터. 일행들 눈에는 익숙한 존재다.

“트윈 헤드 오우거다!”

머리가 두 개 달린 저 근육질 몬스터는, 오우거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B+급의 몬스터다. 지금까지 일행들이 만난 몬스터 무리 중 가장 강한 몬스터이기도 하다.

힉스는 다급하게 외쳤다.

“전원 포위 대형으로 흩어져서…!”

툭. 투투툭.

하지만 그는 중간에 외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달려들던 오우거들의 몸이 순식간에 토막 나서 바닥에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의 몸을 베어내는 빛조차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로한이 광선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빨랐다.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20마리 남짓한 오우거들의 토막 시체들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모습. 그때 로한은 어느새 세 마리밖에 남지 않은 오우거들한테 달려들고 있었다.

“우와…!”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이 모습을 처음 보는 지크와 피터는 벌린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그나마 카데시에서 한 번 로한의 무위를 목격했었던 나머지는 조금 덜 놀란 모습이긴 했다.

물론 그들 역시 당연한 듯이 저 장면을 지켜보지는 못했다.

“…정말 볼 때마다 놀랍군.”

가장 많이 로한의 무위를 목격한 힉스마저도 또 한 번 경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니터의 정보대로, 정확히 네 번몬스터 무리와 전투를 펼친 후에야 일행들은 동쪽 경계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대로 쭉 직진한다. 이제부턴 감지기 사정권 밖이니 모니터는 꺼둬.”

“네.”

이후 로한은 거침없이 경계선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고, 일행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땅은 무주지(無主地)다. 어느 국가에도 속해 있지 않은, 한마디로 주인 없는 땅이다.

왜 무주지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몬스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산맥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높은 등급의 강한 몬스터들을 만날 확률이 증가한다.

당장 지금도 일행들이 올라가고 있는 산맥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검은 포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다행히 전부 다 일행과 매우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긴 하지만, 저런 포탈이 당장 그들이 걸어가는 방향에 없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아틸러스 산맥은 그런 곳이다.

그런데.

‘정말 근처에 몬스터들이 하나도 없다. 왜지?’

힉스의 생각대로, 로한이 그들을 데려가고 있는 방향에는 어떠한 포탈도, 몬스터도 발견할 수 없었다. 거의 30분에 가까운 시간을 걸어 들어왔는데 말이다.

경계선을 넘어오면서 잔뜩 긴장했던 일행들이 어느 순간부터 허탈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제 해가 뜨는군.”

그때 로한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벽 4시가 넘어가면서 동쪽 산맥 위로 태양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덕분에 일행 주변의 어둠이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저기가 우리의 목적지다.”

로한이 가리키는 곳을 일행 모두가 바라보았다. 그곳은 드높은 산이었는데, 봉우리가 뾰족하지 않고 커다란 분화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딱, 용암 분출을 멈춘 휴화산과도 같았다.

일행들은 그곳을 향해 조금 더 진군했다. 500미터 정도 거리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어떠한 몬스터들도 만나지 못했다.

곧 로한이 모두를 멈춰 세웠다.

“이제부터는 키메라들을 처치하며 들어가야 한다. 저놈들은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들과 차원이 다르니, B급 헌터들이 나와 같이 선두에 선다.”

그 말에 일행들의 표정이 변했다.

힉스가 모두를 대신해서 물어보았다.

“지금, 키메라라 하셨습니까?”

키메라는 말 그대로 개조된 몬스터다. 그들은 일반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한 전투력을 보여주는데, 문제는 키메라 제조 과정에서 인간이 생체 재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신마대전 때 제국의 흑마법사들이 대놓고 인간들을 잡아서 키메라로 개조시켰던 역사가 있다. 때문에 현재 모든 국가에서 키메라 제작을 원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로한의 입에서 분명 키메라라는 단어가 나왔다.

“어.”

심지어 맞다고 인정까지 했다.

그 말에 힉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륙 전체적으로 불법인 키메라를 사용하는 이종족? 이 말만 들어도 엄청나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가?

힉스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도대체 어떤 이종족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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