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66화 (66/200)

제66화

사로잡힌 적군의 수장은 바로 로한이 있었던 세닐 강 쪽 국경선으로 압송되었다.

지하 감옥에 가둔 뒤, 로한은 힉스와 함께 그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나르커즈 약물을 사용한 심문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자, 그럼 정리해 보자.”

로한이 앞에 묶여 있는 수장을 바라보며 그동안 심문해서 얻은 정보를 다시 되짚기 시작했다.

“이름은 빈스. 사갈 공국 출신이고, 비밀 암살단인 피와 모래의 총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고.”

“그렇…다….”

“사갈 공국에서 독단적인 행동이 가능한 특수 부대이며, 지금까지 아로엘에 투입한 모든 스파이들은 너의 명령을 받은 단원들이다. 여기까지 맞나?”

“맞…다….”

“왜 스파이들을 보냈지?”

로한의 물음에 빈스는 약에 취한 몽롱하고 어눌한 목소리로 순순히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연히… 테르디아의… 정벌을… 위해서다…. 사갈의… 목표는… 오로지… 테르디아를… 멸망시키는… 것…. 그것이… 모든… 사갈인들의… 숙명….”

“이건 진심이군요. 사갈인들 대부분이 품고 있는 생각이긴 합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힉스의 말. 로한은 재차 질문을 이었다.

“누구의 지시를 받은 거지? 공왕인 카르스트인가?”

“나의… 독단적인… 지시다….”

“공왕의 명령 없이 어떻게 타국에 스파이를 보낼 수 있지?”

“나는… 공왕님의… 명령 없이도… 내 마음대로… 스파이를… 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피와 모래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

여기까지 답변을 들은 로한은 의아해했다.

“말이 안 되는데. 카르스트의 명령 없이 독자적인 행동이 가능하다고?”

“저도 믿음이 안 갑니다.”

힉스도 동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철혈의 패왕이라 불리는 카르스트다. 사갈인들에게는 적군 병사보다도 더 두렵고 무서운 공포 그 자체로 인식되는 그가, 본인의 명령도 없이 마음대로 암살단이 스파이를 보내도록 내버려 둔다?

이건 사갈인들도 안 믿을 주장이다.

“이건 우리들을 속이려는 거짓 자백이 분명합니다.”

“아냐. 최면 약물에 완전히 취한 상태잖아.”

“최면 약물에 취한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최면으로도 이렇게 거짓 자백을 할 수 있도록 독한 정신 세뇌 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힉스는 여러 가지 가정을 내놓았지만, 로한은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르커즈는 그렇게 허술한 약물이 아니다. 천하의 데르툴들도 이 최신 약물 앞에서는 100% 모두 굴복해서 모든 정보를 술술 털어놓았다. 하물며 상대적으로 정신력이 약한 인간은 절대 버틸 수가 없다.

‘마기는 안 느껴지는데….’

로한은 고민에 빠졌다. 마기가 없으면 데르툴의 조종을 받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뭘까?

곧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

‘혹시?’

로한은 바로 떠오른 의심에 대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스캔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상대방의 신체를 스캔하겠습니다.]

곧 로한의 스크린 각막에 빈스의 신체 내부 구조가 자세하게 표시되었다.

그를 보자마자 로한은, 빈스의 신체 중 일반인들과 다른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거였군.’

로한은 옆 테이블에 놓여 있던 빈스의 물품 중 단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머리 위로 든 뒤 힘껏 내려찍었다.

푹! 소리와 함께 단검은 깊숙이 빈스의 정수리에 박혔다.

“!”

갑작스러운 로한의 행동에 힉스는 놀라면서도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계속 단검을 움직이는 로한의 모습을 지켜보던 힉스는 곧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 로한의 모습은 딱, 시체의 두뇌를 해부할 때 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힉스는 조언했다.

“영주님, 해부는 전문 심문가한테 맡기십시오. 굳이 영주님의 손에 피를 묻히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다 했어. 봐봐.”

로한은 피범벅이 된 단검으로 빈스의 갈라진 머리를 가리켰다.

뇌가 훤히 드러난 장면을 바라보던 힉스는,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빈스의 두뇌의 중앙에 박혀 있는 저 검은 물체는 뭐지?

“저것은…?”

“시뇌충(屍腦蟲)이라고 해. 이걸 죽은 시체의 뇌에 심으면, 시전자 마음대로 생각과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게 되지.”

“죽은 자를… 말입니까?”

“과거 신마대전 때 흑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했지.”

“흑마법사…!”

힉스의 두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라니! 만약 로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지 않은가?

“잘 봐.”

로한은 단검으로 빈스의 뇌에 붙어 있는 시뇌충을 단번에 제거했다. 그러자, 그때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던 빈스의 목이 축 늘어졌다. 즉사한 것이다.

동시에,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온몸이 부패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신화 속에서 신의 저주를 받은 악당이 빠르게 온몸이 썩어가는 형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계속 썩어가던 빈스의 온몸이 뼈다귀만 남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세상에….”

힉스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 그가 목격한 장면은, 누가 봐도 흑마법사의 짓이 아니면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그동안 로한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이러면 카르스트의 정체가 더더욱 의심되는데.’

방금 힉스에게는 흑마법사의 짓이라고 둘러댔지만, 이 시뇌충은 사실 데르툴족이 전문적으로 사용하던 마계의 생물체다. 지구에서 이 시뇌충에 조종당했던 사이보그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갈에서 피와 모래라는 집단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공왕인 카르스트 정도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아니, 어떤 국가더라도 이렇게 실력 좋은 대규모 암살 집단은 국왕 직속으로 두는 게 당연하다.

‘한번 제대로 조사를 해봐야겠어.’

마음먹은 로한은 몸을 돌리면서 힉스에게 지시했다.

“감지기 설치 모두 완료했지?”

“네, 영주님.”

“그러면 모두 본성으로 귀환한다. 기사단 전원 출발 준비를 하도록.”

“네.”

아로엘 성으로 전군을 이끌고 돌아온 로한은 일단 모두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3일 밤낮을 고생했으니, 최소 하루 이상은 휴가를 주는 것이 맞다.

물론 로한은 쉴 생각이 없었다. 아린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둘 다 잠을 안 자도 상관없는 신체기도 하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도 하고 말이다.

모두가 쉬는 동안, 둘은 지금 비밀 지하 공간에 만들어놓은 차원 문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조사를 하죠?”

로한에게 모든 상황을 들은 아린이 물었다.

“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뇌충처럼 정신 지배 방법을 사용하려고요?”

“아니. 그 방식은 한계가 명확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전에 적에게 걸릴 가능성이 높아.”

거기까지 말한 로한은 차원 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다시금 그의 아공간 창고로 들어온 뒤에야 그는 말을 이었다.

“시뇌충처럼 정신만 지배하는 방식으로는 카르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어. 신하들을 뽑을 때 재능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유명하거든.”

“아… 그러면 힘들겠네요. 시뇌충으로는 죽은 자의 신체 능력까지 끌어올릴 수는 없으니까.”

“맞아. 즉, 한 단계 더 발전된 방법을 써야 해.”

로한은 한쪽으로 걸음을 옮긴 후, 눈앞의 물체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걸 사용할 거야.”

그가 만지는 캡슐 모양의 물체를 본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충분하고도 남겠네요.”

로한은 한 팔로 캡슐을 가볍게 들어 올려 옆구리에 꼈다.

“다시 돌아가자.”

“네.”

둘은 다시 차원 문으로 이동해서 비밀 지하실로 돌아왔다. 이후 공간의 구석까지 걸어간 뒤에야 다리를 멈췄다.

그곳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의 시체가 한 구 누워 있었다.

“이번에 죽은 스파이들 시체 중에 가장 멀쩡한 걸로 골라 왔어.”

“음… 뇌진탕으로 죽은 모양이네요.”

“기사들한테 걸려 도망치다가 발을 헛디뎌 머리부터 떨어졌다고 하더군.”

참고로 시체를 도구로 사용하기 가장 좋은 조건은 바로 뇌를 제외한 모든 곳이 훼손되지 않은 경우다. 뇌는 어차피 새로운 두뇌를 장착할 거라 상관없기 때문이다.

로한은 들고 온 캡슐을 시체 위에 올려놓은 뒤, 작동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캡슐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숙주로 삼을 수 있는 신체를 발견했습니다.]

[신체를 스캔 중입니다….]

[해당 신체는 숙주로 삼기에 최고 등급인 A+급의 신체입니다.]

[신체와 동기화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이 작업은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캡슐에서 수많은 기계 팔들과 얇은 최첨단 금속판들이 뻗어 나왔고, 바로 시체의 전신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이제 저 상태에서 캡슐은 겉 피부, 내장, 뼈 등 전신에 휴머노이드 금속들을 씌울 것이다. 이 작업은 엄청난 섬세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켜보던 아린이 말했다.

“휴대용은 확실히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저 캡슐의 정확한 명칭은 ‘휴대용 휴머노이드 제작용 캡슐’이다. 휴대용이라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 접목했다 할지라도 기존 공장에서 찍어내는 휴머노이드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켜보던 로한은 아린에게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앞으로 할 일을 좀 정리하고 있자.”

“네.”

말을 마친 그들은 이후 움직이지 않았다.

정리하기 위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서류를 작성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가만히 서서, 통신을 통해 서로의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고요했지만, 통신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및 토론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 아.”

캡슐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로한과 아린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 시체와 99% 이상 동일한 모습으로 동기화를 마친 휴머노이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후 손과 발을 움직이며 감각을 확인하고 있었다.

“완료했나?”

“네. 100% 동기화에 성공했습니다, 주인님.”

대답한 휴머노이드에게 로한은 지시했다.

“앞으로는 나를 부르는 호칭을 영주님으로 바꾸도록.”

“알겠습니다, 영주님.”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숙주와 똑같은 ‘슬론’이다. 지금 통신으로 자료를 보내줄 테니 바로 숙지하도록.”

곧 로한의 메모리 속에 저장되어 있던 자료들이 무선으로 휴머노이드, 슬론의 두뇌 속 메모리로 복사되기 시작했다. 슬론이 그 자료를 모두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슬론이 대답했다.

“자료에 적혀 있는 대로 행동하겠습니다.”

“사갈 공국에 넘어간 이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꾸준히 나나 아린에게 연락하도록.”

“네, 영주님.”

“좋아, 바로 이동해라.”

슬론은 바로 천장의 구멍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슬론의 모습을 올려다보던 아린이 물어왔다.

“상대는 데르툴인데,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요?”

숙주의 시체에 있는 기존 뼈, 내장, 피부를 그대로 사용하는 생체형 휴머노이드 슬론은 100% 최첨단 금속으로 제작되어 있는 아린과 비교하면 그 성능이 천지차이다. 당연히, 아린처럼 손쉽게 말파스 정도의 하급 데르툴을 때려잡는 건 불가능하다.

아린의 걱정에 로한이 대답했다.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슬론은 카르스트를 제거하려고 보낸 게 아니니까.”

누구를 제거하는 목적이 아닌, 단순 정보 수집이 목적이라면 지구의 휴머노이드만큼 잘해낼 수 있는 존재는 이 대륙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제아무리 기존 휴머노이드보다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슬론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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