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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55화 (55/200)

제55화

“히이익?!”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이안이었다. 벌떡 일어나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으로 로한한테 물었다.

“공작님! 몬스터래요, 몬스터! 빨리 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피해? 맞서 싸워야지.”

“어, 어… 그래야죠. 근데 전 빼주시면 안 될까요? 제 실력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될 것 같은데….”

“그건 안 되지.”

로한은 근처에 있던 이안의 검을 집어서 그에게 던져 주었다. 얼떨결에 검을 받은 그에게 로한은 지시했다.

“한번 실력이나 보자. 그래도 칼슈타인 가문 혈통이니까 기본 실력은 있겠지.”

“히이익~ 아니에요! 저 그냥 병신 X밥 찐따인데…!”

“몬스터 온다. 싸울 준비해.”

“네?! 어디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휙휙 돌리는 이안.

로한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까아아악!

거대한 조류의 울음소리가 하늘 위에서 들려왔다.

곧 고개를 든 이안의 눈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와이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히이익! 이쪽으로 온다아!”

그중 한 마리가 정확하게 이안 쪽을 향해 내리꽂듯이 하강하고 있었다.

이안은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아 달려갔다. 그가 숨은 곳은 바로 로한의 등 뒤였다.

“제발 대신 좀 막아… 우악?!”

하지만 곧 공중에 붕 떠오르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로한이 그를 한 손으로 잡아서 옆으로 멀리 던져버린 것이다.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났다. 평소대로라면 한참을 쓰러져서 엄살을 피웠을 테지만, 눈앞에 와이번이 공격해 오고 있는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어, 어, 어떡하지?”

극도로 당황한 이안. 실전도, 훈련도 맨날 게을리 하다 보니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왁!”

몸을 날려서 공격을 피하는 선택을 했다.

그 방법은 주효했다.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들이 아슬아슬하게 이안의 몸을 비껴 나갔기 때문이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이안을 향해 로한이 한마디 했다.

“꽤 민첩하네. 좀 더 보여줘 봐.”

“아니, 보여줄 게 더 없는데…!”

그는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도망만 잘 치면 뭐 하냐고? 싸울 실력이 없는데!

끼아아악!

“와악!”

그때 또다시 하강하는 와이번의 모습에 이안은 한 번 더 몸을 날렸다.

그때부터 계속 같은 장면의 반복이었다. 공격하고, 피하고, 공격하고, 피하고…. 이렇게 다섯 번을 넘게 반복하고 있었다.

“아, 씨! 쟤는 왜 나만 공격하는 건데!”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이안이 버럭 짜증을 냈다.

원래 와이번이라는 몬스터가 한번 점찍은 사냥감은 잡을 때까지 집요하게 사냥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이안은 모르고 있었다.

“이쯤 됐으면 그냥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공작님? 나 이제 지쳤… 엉?”

도움을 청하려던 이안은 순간 벙찐 표정이 되었다.

주변에 로한이… 없다?

곧 그는, 저 멀리서 다른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현란한 몸놀림으로 와이번들을 사냥하고 있는 로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한의 무위는 얼핏 봐도 정말 대단했다. 너무 빨라서 어떻게 달려드는지, 또 어떻게 공격하는지 분간이 불가능했는데,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와이번들의 머리가 수박 깨지듯이 박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안도 감탄하면서 박수를 쳤을 장면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 나는…?”

병사들은 도와주면서 왜 나는 안 도와주는데?

하지만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저 지긋지긋한 와이번이, 여섯 번째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오, 진짜!”

이안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바로 로한 등이 오늘 하룻밤 머물 대형 텐트였다.

그곳을 향해 이안은 고민도 없이 달려 나갔다. 텐트 문을 벌컥 여는 그 순간,

“왁!”

문 앞에 서 있던 아린과 부딪칠 뻔한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부딪치진 않았지만, 순간 멈춰 서는 바람에 행동이 지연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바로 와이번이 등 뒤에까지 다가오지 않았는가!

“피해요!”

이안은 외치면서 혼자만 몸을 텐트 안쪽으로 날렸다.

와이번의 발톱은 그대로 아린의 몸에 닿았고,

뻐억!

곧 둔탁한 소리가 텐트 안을 가득 울렸다.

“…어?”

고개를 돌린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와이번 발톱에 맞은 아린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머리가 완전히 함몰되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거대한 와이번의 시체였다.

“뭐지…?”

이안은 의아해하면서 텐트 바깥을 확인했다.

누가 와이번을 잡은 거지? 로한도 없고, 그랑 같이 온 몇몇 헌터 출신 병장들도 안 보이고… 저 연약한 아린이 잡았을 리고 없고….

“이제 나오셔도 돼요.”

그때, 아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이안의 귓가에 들려왔다.

“대충 상황이 정리된 거 같으니, 이제 더 고생하실 일 없을 거예요.”

“…….”

“이안 님?”

아린이 의아하게 물어보았지만, 이안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곧 그녀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 면사포….’

텐트 안에 있어서 항상 쓰고 다니던 면사포를 잠깐 벗어 놨었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그 결과, 이 대륙으로 넘어온 이후 항상 겪던 일들을 오늘도 겪게 되었다.

지금, 갑자기 아린 앞에 무릎 꿇는 이안처럼 말이다.

“저랑 결혼해 주십시오.”

“뭐 하냐?”

대답은 아린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등장한 로한을 본 이안은 갑자기 그에게 극도로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헤헤헤, 와이번 처치하느라 고생이 참 많으셨….”

뻑!

하지만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앞으로 철푸덕 쓰러져 버렸다. 로한의 오른손이 그의 뒤통수를 강타한 것이다.

“누가 네 형님이야.”

중얼거린 로한은 흰자를 보이며 기절한 이안을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와이번은 모두 처리했으니 안심하시고 푹 쉬세요, 어머니.”

“그, 그래….”

“너도 푹 쉬고.”

“네, 오빠.”

살짝 당황한 표정의 비올라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린을 내버려 둔 채, 로한은 이안을 질질 끌면서 텐트 바깥으로 걸어갔다.

다음 날부터, 이안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던 능구렁이가, 갑자기 최고의 충성도를 자랑하는 직속 부하의 자세로 바뀐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무릎 꿇은 이안을 향해 로한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원하는 거 없는데?”

“아닙니다! 분명히 쓸 데가 있을 겁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허드렛일도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아침 준비를 해 올까요?”

당장 벌떡 일어나 요리 준비를 하러 달려가려는 모습을 본 로한은 손짓으로 그를 앉혔다.

“그러면, 검술 연습 열심히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당장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명령을 내리십시오! 형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뻑!

“악!”

형님 소리에 또 한 번 뒤통수를 얻어맞는 이안이었다.

“일단 실력부터 보자.”

로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임시로 마련된 연무장에서, 로한과 이안의 목검 대련이 진행되었다.

방식은 그저께 클리프와 비슷했다. 이안이 대부분 공격을 펼치고, 로한은 방어하면서 간간이 한 번씩 공격을 하는 패턴이었다.

“하앗! 핫! 하압!”

연신 기합 소리를 내면서 전력을 다해 목검을 휘두르는 이안의 모습. 진짜 엄청 진지해 보였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맨날 농땡이 피우던 그 이안 맞아? 가슴이 웅장해지네….”

“윌리엄 님이랑 할 때보다 더 진지한 거 같은데?”

라고 수군댈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렇게 한 50합 정도 나눴을 무렵에서야 로한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분석을 모두 완료하였다.

곧, 이안에 대해 분석한 자료가 주르륵 로한의 눈앞에 떠올랐다.

- 상대방 능력치

힘 : D

체력 : D-

지구력 : E+

마나량 : D+

마나 정제도 : E

- 상대방의 전투력 분석

장점 : 민첩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단점 : 민첩성 외에는 모든 게 평균 이하의 수준입니다.

- 최종 평가 : 상대방은 현재 비기너 초창기 단계이며, 최종적으로 각성자 초기의 단계까지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만.”

로한은 바로 대련을 중지했다.

‘잠재력이 겨우 각성자로 끝이면….’

즉, 정말 운이 좋아도 D+급 헌터밖에 되지 못한다는 소리다. 로한이 맨 처음 헌터 라이선스 실기 시험을 봤을 때 혼자 잡았던 보스, 골고를 간신히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에서 멈춘다라….

이러면 굳이 로한이 붙잡고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

“일단 너네 보급병들과 같이 온 헌터들이랑 기초 훈련부터 해.”

“어… 형님이 알려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뻑!

“악!”

다시 두 손으로 뒤통수를 부여잡는 이안을 향해 로한은 말했다.

“일단 기초부터 다지고 와. 넌 지금 기초조자 안 잡혀 있어.”

“네… 흑.”

많이 아픈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이안은 몸을 돌려 근처에서 지켜보던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로한의 말을 따라서 훈련은 하려는 모양이었다.

로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기초를 다지는 것만 해도 최소 몇 개월은 걸리겠지.’

저 정도 재능이면 로한의 기준으로 ‘기초’ 실력까지 올라서기도 힘들다. 아마, 기초를 다지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아린에 대한 열망으로 포기하지 않고 결국 기초 실력까지 쌓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다른 일을 시켜도 잘할 테니까.’

로한은 몸을 돌려 텐트 쪽으로 향했다.

* * *

아로엘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10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빠르게 이동만 했다면 훨씬 더 시간이 단축되었겠지만, 생각보다 아로엘로 향하는 여정 자체가 험난했다.

“또 몬스터입니다!”

“또야?!”

아로엘 영지에 들어선 이후부터 하루에도 최소 한 번, 많게는 세 번 이상 마주치는 포탈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정말 ‘버려진 땅’다웠다.

초반에는 무턱대고 이안이 몬스터들에게 돌격하는 작은 사고도 있었다.

“이번에 공을 세워서, 아린과 형님에게 좋은 점수를 따내고 말겠다! 이야아압!”

“안 됩니다, 도련님!”

호기롭게 눈앞에 등장한 몬스터들에게 단신으로 이안은 돌격했지만,

퍽!

“꾸엑!”

곧바로 커다란 주먹에 복부를 맞고 달려온 거리만큼 다시 날아가 귀환해 버렸다.

이후 신관 한 명이 하루 종일 붙었음에도 3일 동안 앓아누웠던 이안은, 두 번 다시 몬스터들과 싸우는 자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헌터들을 붙잡고 매일 기초 훈련을 받는 데에만 열중했다는 소식이었다.

로한은 이런 보고를 들은 이후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의 반응을 들은 이안은 ‘그래도 용기는 있다고 언급 정도는 해줄 줄 알았는데….’라면서 침울해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로한 일행은 드디어 아로엘 성에 도착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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