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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53화 (53/200)

제53화

“……!”

클리프는 매우 놀랐다.

로한이 달려드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 정도의 속도가 나온다고?

‘아버지보다 더 빨라!’

클리프가 지금까지 겪어봤던 대련 상대 중 가장 육체 능력이 정점에 달했었던 윌리엄. 하지만 로한의 속도가 더 빠르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로한의 목검에, 클리프는 본능적으로 목검을 들어 막기 자세를 취했다.

로한의 목검이 그대로 부딪쳤다. 하지만.

텅!

“컥!”

클리프는 목검을 놓치면서 그대로 뒤로 쓰러져 버렸다.

단 한 방에 대련이 종료된 것이다.

“!”

지켜보던 그랜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 엄청난 대련 실력을 가진 클리프가 단 한 번의 공격조차 막아내지 못하고 패한 것도 충격이지만, 그것보다 지금 보여준 로한의 무위가 더 놀라웠다.

‘방금 그 공격은 도대체…!’

그랜트는 자연스럽게 방금 전 장면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려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로한의 말 때문이었다.

“그만할까?”

쓰러진 클리프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만약 진짜 로한이 그만두려 했으면 저렇게 의문형이 아닌 확정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즉, 대련을 계속해도 된다는 소리다.

클리프는 충격도 잊은 채 재빨리 멀리 날아간 목검을 다시 주워 든 뒤, 로한의 앞에 서면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로한은 클리프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다시 학생의 눈으로 돌아갔군.’

지금 이 순간, 아까 전까지 클리프의 눈빛에 가득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방금 겪은 로한의 단 한 수로 인해 실력 차이를 분명 뼈저리게 느꼈겠지.

다시 배움의 자세로 돌아갔으니, 로한 입장에서도 좀 더 가르쳐 줄 기분이 들었다.

로한이 물었다.

“지금까지 나 말고 한 방에 쓰러진 적이 있었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입니다.”

공손히 대답하는 클리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천하의 아버지를 상대로도 최소 20합 이상은 버텼었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방금 전 패배는 충격적이다 못해 신선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규칙을 변경하지.”

로한이 제안했다.

“앞으로 내 공격을 한 번이라도 방어하기라도 하면, 자네가 승리하는 걸로.”

“……!”

클리프의 두 눈이 흔들렸다.

상대를 완전히 한 수 이상 아래로 깔아보는 듯한, 듣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제안.

하지만 클리프는 바로 승낙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그는 지금 개인적인 자존심보다, 방금 전 공격을 한 번 더 겪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다! 지금껏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간다.”

로한은 예고까지 한 후에야 클리프한테 달려들었다.

이번엔 찌르기 공격이었다.

만반의 마음가짐을 한 채로 기다리고 있던 클리프는 곧장 배운 대로 반응했다. 칼슈타인 검술에 따르면, 찌르기 공격은 몸을 간단히 트는 것만으로도 쉽게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몸을 틀었다. 아니, 틀려고 했다.

푹!

“커헉!”

하지만 로한의 목검이 더 빨랐다.

복부를 움켜쥔 채로 뒤로 몇 발짝이나 물러나 버린 클리프.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다시 거리를 벌리는 로한의 모습에 그는 재빨리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순간의 고통이 문제이랴? 한 수라도 더 나눠서 반드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간다.”

로한은 또다시 예고한 뒤에 달려들었다.

이후에는 계속 같은 장면의 반복이었다.

로한이 예고 후 공격하면,

텅!

“윽!”

클리프는 항상 목검을 놓치거나 몸에 얻어맞았다. 잠시 고통스러워한 후 재빨리 다시 자세를 잡으면, 또 로한이 다시 공격해 온다.

그렇게 무려 20번이 넘는 공격을 클리프는 단 한 번도 방어해 내지 못했다.

‘세상에…!’

지켜보던 그랜트의 얼굴은 어느새 충격으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혹시 우연 아닐까? 했다. 하지만 계속 지켜본 결과, 그냥 실력 차이였다.

로한의 저 모든 것을 담은 듯한 한 방 공격! 엄청난 속도와 검로, 그리고 파워까지 실린 저 목검 공격이 만약 자신한테 날아온다면, 그랜트는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당연히 못 막지. 영주님은 돼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까지 기준이 올라갈 정도로 로한의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저렇게 강력한 일격 필살 검술이 존재하다니.’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단 한 방에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혼신의 일격. 방어를 일절 생각하지 않는 검술이기 때문에, 클리프가 한 번만 막아낸다면 바로 역공으로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빠각!

“큭…!”

결국 목검이 부러지면서 바닥에 쓰러져버린 클리프. 이번이 정확히 31번째다.

저 멀리 두 동강 나서 날아간 목검을 본 로한은,

“무기도 없으니 여기까지 하지.”

라면서 목검을 내려놓았다.

이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로한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대련 전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얼굴과 팔에 피멍이 잔뜩 든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클리프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로한이 그를 내려다보며 한마디 보탰다.

“장담하는데, 엘도르엔 이 정도 무위를 보여줄 수 있는 고수들이 나라별로 적어도 다섯 명 이상씩은 있어.”

“…….”

“좋은 경험이 되었기를 바라지. 그럼.”

로한은 몸을 돌려 아린과 함께 연무장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굳이 클리프에게 조언 같은 건 해주지 않았다. A급 헌터인 그라면 이미 본인의 문제를 깨달았을 것이다. 정말 몰랐다면 방금 자신한테 질문했겠지.

‘그리고, 윌리엄 경이 알아서 해주겠지.’

심지어 테르디아 최고의 검술 스승이 아버지지 않은가.

* * *

대련이 끝난 뒤.

클리프는 마법실에 있는 통신 마법석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당연한 결과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윌리엄이었다.

- 로한의 경지는 지금 나도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이 정도 경지는 단순히 마나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라 헌터와 기사의 소양, 둘 다 모두 갖춰야만 올라설 수 있다.

헌터의 기본 소양이 실전 능력과 마나 활용 여부라면, 기사의 기본 소양은 충성심과 배려, 그리고 기본기다. 지금 윌리엄은 로한이 기본기도 충실한 인물이라 설명한 것이다.

- 대련은 어땠느냐?

클리프는 대답했다.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로한 경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았다면 대련에서 승리하는 건 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 방을 막을 만한 실력이 부족했습니다.”

- 해결책은?

“일격 필살을 막아낼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경험과 마나를 쌓는 게 저에게 맞는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석 검술 그 자체인 클리프가 다른 검술을 익혀 파훼법을 배우는 건 시간 낭비다. 그 시간에 내공을 더 쌓아 일격 필살을 한 번이라도 방어할 수 있는 실력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더 그에게는 효율적인 훈련 방식일 것이다.

“저는 아직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련 전 상태로 섣불리 전쟁터에 나갔다면 전 타국의 동급 헌터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십중팔구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그래서 당장 내일부터 다시 실전 수련에 들어가려 합니다. 일격 필살에 능한 영지 내 암살단과 실전 같은 훈련을 한다면 분명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클리프의 말을 조용히 듣던 윌리엄이 답해 왔다.

- 로한에게 큰 빚을 졌구나.

지금 클리프의 깨달음은, 단순히 로한에게 물자를 조달하는 정도로 등가 교환하기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값어치가 있다. 초월자 경지의 헌터들에게는 이런 깨달음이 있어야만 벽 하나를 뚫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클리프가 한 단계 더 올라서서 S급 문턱이라도 두드릴 수 있다면, 칼슈타인 성은 이제 윌리엄 못지않은. 아니, 나이를 생각해 보면 더 성장할 수도 있는 차기 영주를 얻게 되는 셈이다.

- 내일 로한에게 보낼 물자에 더 세심하게 신경 쓰거라. 혹시 원하는 물자가 있다면 가능한 한 최대한 지원하도록.

“네, 아버지.”

- 그리고, 이안을 보급 병력의 대표로 보내거라.

“…네?”

클리프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름이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혹시, 이안도 보급 병력과 함께 아로엘에 보내시는 겁니까?”

- 그래.

“그건… 되레 로한 경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 아닙니까?”

- 일단은 보내라.

윌리엄은 단호하게 말했다.

- 만약 로한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다면 다시 돌려보내겠지.

“…알겠습니다.”

- 보내면서 이 말도 이안에게 전해라.

“어떤 말입니까?”

클리프가 물었다.

* * *

그 시각.

만찬이 끝난 후 홀로 남은 고든 공작은.

“끄윽! 이 시건방진 놈의 새끼들…!”

만취한 상태로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침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비틀거리면서 걷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

“감히, 감히 나를, 이 천하의 고든을! 하찮은 남작 따위들이 대놓고 무시해? 끄윽…!”

“…….”

“왜 윌리엄한테는 공손하게 말하면서, 나한테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냐고! 이 천하의 고든이 우스워? 난 고든이다! 테르디아의 전권을 거머쥔 공작 중 한 명이라고! 마나가 없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딸꾹!”

“…….”

“야, 니들도 내가 우습냐? 마나 한 톨 못 쓰는 늙은이라서 같잖게 보이냐고!”

“아닙니다, 공작님.”

“대답하는 목소리가 뭐 그래? 끄윽…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냐?! 어엉?”

결국 고생하는 건 애꿎은 하인들뿐이었다.

그렇게 별소리를 다 들으면서 간신히 침실로 고든을 옮긴 뒤에야 하인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침실을 빠져나왔지만, 이미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고든은 그걸 보지 못했다.

[힘을 얻고 싶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당신을 무시하는 건방진 하급 귀족들의 표정을 바꾸고 싶지 않습니까?]

“누구냐!”

고든은 두려운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명의 인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장발에 엄청난 미모를 가진 미청년. 그가 고든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르기에. 당신을 단번에 최고의 헌터로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죠.”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입니다.”

르기에가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단번에 윌리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구도 당신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길 수 없게 되겠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뇨, 가능합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버몬드라는 선례가 있지 않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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