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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52화 (52/200)

제52화

해가 지고 난 저녁 8시경.

칼슈타인 성의 대저택에 위치한 드넓은 실내 연무장에는 네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일단 양쪽에 서로 목검을 든 채로 바라보고 서 있는 두 남자는, 클리프와 로한이었다.

“대련에 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클리프의 정중한 감사에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칼슈타인가의 물자 지원도 받는데, 이 정도야 뭐.”

실제로 내일 로한 가족은 칼슈타인에서 지원한 병사들 및 지원 물품들과 함께 아로엘로 출발할 예정이다. 윌리엄의 결정이었다.

“자, 그럼 한번 해볼까?”

로한은 말을 마친 뒤에도 목검을 들어 올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준비되지 않은, 평범하게 서 있는 자세.

일반인들이 봤다면 ‘나를 갖고 노는 건가!’라고 속으로 분통을 터뜨릴 만한 모습이지만, 클리프가 보기에는 달랐다.

‘빈틈이 없다.’

클리프의 눈에 지금 로한은 좌우 균형이 완벽하게 잡혀 있는, 대련에 완벽하게 준비된 정자세였다. 아버지와 대련을 할 때 많이 봤던 자세이기도 하다.

‘역시 S급 헌터인가.’

실제로 지금 로한에게서 느껴지고 있는 위압감 때문에 클리프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다. 마치 윌리엄과 대련할 때처럼 말이다.

평범하게 대련하면 무조건 백전백패다!

본능적으로 느낀 그는 그래서 제안했다.

“대련 방식을 조금 바꿔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검술 대련을 했으면 합니다.”

검술 대련.

말 그대로 검술로만 대결하는 방식으로, 서로 마나를 전혀 활용하지 않은 채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 승부를 본다. 마나를 활용하는 순간 바로 반칙패다.

즉, 얼마나 검술 기본기가 잘 잡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대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대련 방식으로는 전 절대로 공작님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굳이 대련을 하는 이유도 사라지게 됩니다. 수준 차이만 느낄 뿐 배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술 대련이라면, 반드시 크게 한 수 배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희 아버지와 했던 대련처럼 말입니다.”

“흠….”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작님.”

또 한 번 간청하는 클리프의 모습.

로한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뭐, 상관없지.”

“넓은 아량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공작님.”

말을 마친 클리프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면사포를 쓴 여리여리한 여인과 견갑을 착용한 건장한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아린, 그리고 칼슈타인 성의 기사단장 그랜트였다.

둘 다 이번 대련의 양쪽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대련 도중에 위험하다 싶으면 나서 주시오, 그랜트.”

“알고 있습니다.”

그랜트는 익숙하게 대답했다. 평소 칼슈타인 가문의 혈통들은 한번 대련을 시작하면 끝을 보려고 하는 성질이 있는데, 그랜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말을 마친 후, 목검을 들어 올려 그 끝을 로한에게로 향하는 클리프. 그리고 여전히 정자세로 서서 기다리고 있는 로한.

딱 봐도 곧 클리프가 달려들 것이고, 로한이 방어하면서 바로 치열한 대련이 시작될 것이다.

“제법 볼 만한 대련이 될 것입니다.”

지켜보던 그랜트가 옆의 아린에게 작게 말했다.

“검술 대련만으로 한정한다면, 도련님은 테르디아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입니다.”

“아, 검술 실력이 엄청 뛰어나신가 봐요.”

“칼슈타인가의 직계 검술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까요. 칼슈타인 검술은 엘도르 대륙에서도 최고의 검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아하….”

실제로 칼슈타인 가문의 보물 1호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바로 직계 혈통만 이어받을 수 있는 검술이다.

최고의 실용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그래서 전쟁터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펼치게끔 만들어주는 이 검술이 없었다면, 칼슈타인 가문은 절대로 부동의 테르디아 최강 기사 가문으로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공작님의 실력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검술 대련이라면 공작님도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힘드실 겁니다. 최근 도련님은 윌리엄 공과도 비등한 대련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랜트의 이어진 말은 고스란히 로한의 귀에도 들려왔다. 당연히 로한에게까지는 안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였지만, 로한의 귀 안에 설치된 마이크 고막 시스템이 워낙 최첨단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말을 들은 로한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기본기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었지.’

과거의 클리프는 기본기 하나만큼은 아버지 윌리엄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검술 대련은 물론, 전쟁터 및 던전 안에서 위급한 상황에 몰렸을 때 몸에 배인 기본기를 통해 위기를 벗어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기본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클리프는 계속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성장해서 A+급 헌터까지 달았으나…. 안타깝게도 당시 실권을 장악한 버몬드에 의해 사갈 공국과 내통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수형에 처해지고 만다.

만약 버몬드만 아니었다면, 과거의 클리프는 지금의 로한과 같은 위치에 서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닌 테르디아 내의 손꼽히는 실세 헌터로 말이다.

‘그 기본기를 통해 나를 이기려고 하는 건가?’

로한은 클리프의 두 눈을 응시했다.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호승심 가득한 저 눈빛 안에는 분명 자신감도 한가득 들어 있다. 그 누구에게도 이길 확신이 있을 때에만 볼 수 있는 눈빛이다.

어쩌면, 로한이 내력만 강할 뿐 기본기는 떨어진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실력인지 한번 확인해 볼까?’

곧바로 그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현재 총 287가지의 검술이 데이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검술 항목 중 ‘정석’ 단어로 검색을 시작합니다….]

[총 88가지 검술이 검색되었습니다.]

[이 중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검술은 ‘이태준의 정석 검술’입니다. 현재 지구의 전사 육성 학교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표본 검술입니다.]

로한은 고민도 없이 바로 도우미가 추천한 검술을 골랐다.

[‘이태준의 정석 검술’을 로딩합니다….]

[‘이태준의 정석 검술’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로한은 이태준의 정석 검술을 100%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었다.

‘이태준 선배의 검술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지.’

정석보다 강한 것은 없다! 라는 말을 늘 외치고 살았던 지구에서의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이태준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훈련소를 습격해 온 데르툴족들을 단신의 몸으로 막아내면서 한 명의 훈련병이라도 더 구해내려 했던 모습도 역시 떠올랐다.

그때 이태준의 희생 덕분에 로한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하앗!”

곧 기합과 함께 빠르게 달려드는 클리프. 그의 목검을 로한은 가볍게 막아내었다.

그것이 대련의 시작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클리프. 마나 없이 순수한 육체만으로 저렇게 빠르게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물론, 그걸 일일이 다 막아내고 있는 로한도 대단했다.

“…대단하군요.”

그랜트가 순수하게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뼛속까지 무인인 그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장면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둘에 대한 분석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휘하 기사들을 육성하는 위치에 서 있는 그의 직업병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계속 도련님이 계속 우위를 점하고 있군요. 이러면 계속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 텐데요.”

“장기전으로 가면 오빠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체력 소모가 있잖아요.”

“일반적인 대련일 경우 그렇지만, 저 둘 정도의 초고수 간의 대결은 다릅니다. 도련님은 저 상태로 30분을 넘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평가받는 A급 헌터 이상은 육체 역시 일반인과 비교가 안 된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라는 내용물을 모두 받아들이려면 그 그릇 또한 크고 튼튼해야 하니까.

실제로 클리프는 30분이 아니라, 한 시간 이상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부을 수 있는 상태다.

“이러면 도련님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1대1 대련에서는 공격할 때보다 방어할 때 실수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죠. 만약 공작님이 특별히 힘을 숨기고 있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깡!

그때, 유난히 큰 합 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울렸다.

로한의 목검이 크게 휘둘러지고, 클리프의 목검이 크게 위로 들어 올려지는 모습이 그랜트의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로한이 강력한 힘으로 목검을 밀쳐내서 클리프의 자세를 무너뜨린 모습이었다.

“…정말 숨기고 계셨군요.”

그랜트가 커다래진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저 클리프의 자세를 저렇게 망가뜨릴 수 있는 자는 지금까지 그의 주인인 윌리엄 공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그랜트의 놀란 얼굴은 곧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왜 바로 이어 공격하지 않았지?’

로한은 목검을 밀쳐낸 다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클리프가 다시 자세를 고칠 수 있는 시간을 줘버렸다.

고수 간의 대결인 만큼 재정비하기 전에 공격했으면 끝났을 상황인데, 도대체 왜?

이건 누가 봐도 고의적인 행동이라, 클리프 역시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로한이 입을 열었다.

“좋은 검술이군.”

그러는 그의 눈앞에는 상태창이 좌르륵 떠 있었다.

- 상대방의 검술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 상대방의 검술 스타일 : 정석형으로, ‘이태준의 정석 검술’과 굉장히 흡사한 스타일입니다.

- 상대방의 전투력 분석

장점 : 기본기가 매우 탄탄하며, 모든 능력치가 육각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체 역시 현재 사용 중인 정석 검술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장기전으로 가면 자신보다 한 단계 강한 상대도 빈틈을 찾아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점 : 변칙적인 검로가 거의 없습니다. 변수를 창출하기 어려운 스타일인 만큼, 본인처럼 육각형 스타일의 더 강한 상대를 만난다면 승률이 매우 저조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역시 정석 검술 중 최고라 불리는 칼슈타인 검술이야. 그걸 사용하는 당사자의 실력도 훌륭하고…. 솔직히 좀 놀랐어.”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탐색전이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상대해 주지.”

“!”

클리프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지금까지 봐줬다는 건가?

하지만 놀랄 새도 없었다.

로한의 모습에서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검술 항목 중 ‘일격 필살’ 단어로 검색을 시작합니다….]

[총 37가지 검술이 검색되었습니다.]

[이 중 로한 님이 가장 많이 사용하신 검술은 ‘수베노(Suveno) 검술’입니다.]

로한은 바로 수베노의 검술을 골랐다.

[‘수베노 검술’을 로딩합니다….]

[‘수베노 검술’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한번 막아봐.”

로한은 처음으로 클리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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