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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50화 (50/200)

제50화

“일단 버몬드 파의 빈자리가 너무 크네. 며칠 전 귀족 작위를 내린 이들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이들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니….”

버몬드 파 전원이 죽거나 이단으로 체포되면서 자연스레 테르디아의 주요 귀족 자리 절반이 비어버렸다.

이 자리를 빨리 메꾸지 않으면 국가 운영에 큰 문제가 생긴다.

일단 기존의 귀족들을 승진시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 귀족 중엔 당연히 로한도 포함되어 있다.

“안 그래도 공작 작위에 대해 로한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오, 뭐라 대답하던가?”

필리프가 궁금한 얼굴로 윌리엄에게 물었다.

한 시간 전.

“정말 영광스럽습니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윌리엄의 물음에 로한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백작으로서 제 영지조차 관리해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공작이 되어 국가의 대소사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엔 전 아직 어리고, 경험도 정말 많이 부족합니다.”

“나이는 중요치 않네. 경험은 쌓으면 되는 일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단번에 백작이 된 지금도 매우 부담감이 큽니다. 일단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로한은 그렇게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네.”

“알고 있습니다.”

“…알겠네. 곧 폐하를 찾아뵐 때 그렇게 전하지.”

“감사합니다, 공작님.”

윌리엄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로한.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공작은 안 돼. 최대한 아로엘에 오래 박혀서 몰래 세력을 키워야 한다.’

공작은 황제와 함께 국가의 대소사를 가장 긴히 논하는 위치이니만큼, 지금 윌리엄처럼 영지보다 왕성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러면 그가 계획했던 아로엘에서의 안정적인 세력 키우기는 힘들어진다.

이것이 그가 공작 자리를 한사코 거부한 이유다.

“혹시 영지를 바꾸고 싶다면 말해보게. 자네라면 현재 공석이 된 영주 자리 중 어디든 폐하께서 허락해 주실 걸세.”

버몬드의 브롬멜 성은 물론, 스콧의 바니아스 성과 전 알비치 백작의 키넨 성 등, 테르디아에서도 손꼽히는 알짜배기 땅들의 영주직이 모두 공석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백작들이 모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로한은, 그 모든 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영지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로엘 영지로 만족합니다.”

“내 앞에서 거짓말해 봤자 소용없네.”

“진심입니다.”

대답하는 로한의 눈빛을 윌리엄은 똑바로 바라보았다.

확고한 저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만족하는 이유라도 있나?”

로한은 그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실 저는 백작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아로엘 영지를 가장 원했었습니다.”

“왜지?”

“저에게 가장 딱 알맞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로한은 대답을 이었다.

“버려진 땅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발전할 가능성도 큰 곳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아직 헌터로서의 해결 방법밖에 모릅니다. 아로엘은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통하는 곳이고요.”

동쪽에는 몬스터들이, 북쪽에는 사갈 공국이 호시탐탐 쳐들어오는 버려진 땅.

하지만 로한의 무위 앞에 그들의 위협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발전 가능성이 큰 땅이지.’

사실, 윌리엄을 비롯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아로엘의 땅 깊숙한 곳에는 모든 영주들이 탐낼 만한 양질의 자원들이 어마어마하게 묻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과거로 회귀한 로한만이 아는 정보였다.

‘그 자원들이 있어야만 내가 만족할 만한 세력을 키울 수 있다.’

오히려 로한의 기준점에는 아로엘 외의 영지들은 전부 미달에 가깝다. 브롬멜 등의 대성은 왕성과 가까워서 보는 눈이 많아 몰래 세력을 키우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외 외지는 자원이 너무 부족하다.

괜히 그가 아로엘을 고집하는 게 아니었다.

“모두 거절을 했다고? 허허허….”

모든 말을 들은 필리프는 웃음을 터뜨렸다.

“흡사 자네를 보는 듯하군. 자네도 왕년에는 내가 그렇게 부탁을 해도 한사코 공작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던가?”

“…….”

“로한도 설마 자네나 헌터장같이 물욕이나 출세욕이 적은 타입인가?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탐욕스러운 성격은 확실히 아닙니다.”

“허허허. 난 참 복이 참 많은 사람이군. S급 헌터들이 하나같이 전부 자네와 비슷하다니. 애국심도 자네처럼 높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말이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필리프의 얼굴에는 며칠 전 내보였던 아린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사라지고 없었다.

국가가 전복당할 뻔한 걸 막아준, 사실상 그의 은인과도 같은 인물 아닌가? 그런 이에게 아직도 여동생의 일로 꿍해 있으면 그건 일국의 황제 자격이 없는 놈이다.

“그러면, 로한의 말을 들어줘야 하나? S급 헌터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꺼려지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윌리엄이 대답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며칠 뒤.

테르디아 왕성 내에서 또다시 대규모 귀족 작위 수여식이 열렸다.

이번에는 버몬드 파 전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려 40명이 넘는 이들을 더 높은 작위로 승격시키거나 첫 작위를 내려주어야만 했다.

이번 수여식은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항상 이런 날에도 버몬드와 윌리엄, 양쪽 계파끼리의 신경전 때문에 날 선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오늘은 참여한 인물 전원이 윌리엄 파가 추천한 귀족 및 평민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윌리엄 파의 축제라고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계파 간의 대결에서 승리한 그들은, 이제 테르디아의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니까.

“로한은 국왕 폐하 앞에 무릎을 꿇으라.”

이윽고, 오늘의 진짜 주인공 순서가 왔다.

며칠 전 수여식 때와는 로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그때는 요주의 인물을 보는 호기심과 경계로 이루어진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경외와 호감의 눈빛으로 가득했다.

곧 무릎을 꿇은 로한에게 의례적인 절차를 선언한 뒤, 필리프는 고든에게 배지를 받아 로한의 옷에 달아주었다.

그것은 분명….

‘공작 배지로군.’

로한의 시선이 절로 옆쪽의 윌리엄에게로 향했다. 눈빛을 받은 윌리엄은 말없이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로한은 바로 이해했다.

‘윌리엄이 추천했군.’

사실 윌리엄은 필리프와 독대할 때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도 공작으로 승격은 해야 합니다. 지금 엘도르 대륙에서 S급 헌터 중 공작 이상의 작위를 갖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그건 잘 구슬리면 됩니다. 당분간은 영지 발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매우 중대한 상황일 때만 왕성으로 부르십시오. 본인이 필요하다면 물자나 군사도 최대한 지원해 주면 더 좋아할 것입니다.”

“흠…. 자네가 막 공작이 되었을 때처럼 말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윌리엄도 로한처럼 국정 경험이 전무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칼슈타인의 가주가 된 윌리엄은 아버지의 공작 작위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았고, 당시 선왕께서는 그가 최대한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윌리엄은 로한에게도 그러한 배려를 해주도록 추천했고, 필리프는 받아들였던 것이다.

“축하하네, 로한 공작.”

필리프의 웃으면서 한 말에 로한은 그저 미소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지.

‘어머니께선 매우 좋아하시겠군.’

소식을 듣자마자 감격의 눈물을 쏟아낼 비올라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그때 필리프가 엄숙히 말했다.

“일어서거라, 아로엘의 영주여.”

일어서는 로한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아로엘? 그럼 영지는 그대로라는 소린가?

“영지는, 일단 아로엘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윌리엄은 로한의 영지에 관련해서도 이렇게 의견을 내었다.

“국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제 영지에서도 아낌없이 도와주면 제아무리 버려진 땅이라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자네가 직접 도와주려는 겐가?”

“네. 로한은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입니다.”

아로엘 영지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바로 테르디아에서 가장 발전한 칼슈타인 성이 바로 서쪽에 붙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군사력만큼은 테르디아에서 최고로 꼽히는 칼슈타인 영지기 때문에 여기서 군사 물자만 잘 조달해 줘도 아로엘은 이전보다 훨씬 더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이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칼슈타인 역시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쉽사리 다른 지역에 지원을 못 하는 상황인데, 오로지 로한 한 명만 보고 윌리엄이 지원하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 테르디아에서 그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다들 진심으로 축하하네!”

수여식이 끝난 후, 고든이 이번에 승격한 이들을 모아놓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제 훨씬 높은 관직에 앉았으니, 이전보다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할 것이야! 또한, 폐하와 더 가까워진 만큼 더 충직하게 행동해야 할 걸세. 알아들었나?”

“네, 공작님.”

“자자, 이쯤하고 내 저택으로 가세. 이렇게 기쁜 날 축하 만찬을 빼놓을 수 없지! 윌리엄 공도 어서 따라오시오!”

고든은 자연스럽게 모두를 이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한 명이 없었다.

“로한은? 로한은 어디로 갔나?”

“영지로 워프하기 위해 마탑으로 이동했소. 이번 일로 영지로 가는 날짜가 너무 늦어졌다면서 나한테 양해를 구하더군.”

“바로? 그래도 하루 정도는 좀 같이 자축을 하는 것이….”

“지난번에도 따로 불러서 식사했으니 이해하시오. 어차피 앞으로 볼 날이 많을 테니.”

“난 그때 못 봤는데….”

고든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괜히 아린의 일 때문에 심기가 상해서 지난번 만찬 자리에 빠진 것이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버몬드를 혼자서 처리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걸 알았다면, 그때부터 미리 친목을 다졌을 텐데….

잠시 후, 고든가의 대저택에는 큰 만찬이 열렸다.

버몬드가와의 오랜 파벌 싸움에서 거둔 최종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윌리엄 파 귀족들의 모습.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드높은 천장 샹들리에 위쪽에, 누군가가 숨어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마음껏 승리를 즐기도록.’

투명한 상태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이름은 르기에.

실패한 말파스를 대신해 이곳으로 발령받은 상급 데르툴이었다.

‘곧 말파스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지옥을 선사해 줄 테니. 후후후….’

르기에는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괜찮은 계약자를 한번 찾아볼까?’

계약자. 즉, 말파스와 버몬드 같은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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