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아침이 밝았다.
밀리오는 브롬멜 성 신전에 있는 마나석 통신기를 통해 직접 교황에게 연락했다.
보고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
“마족을 생포했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테르디아 전체가 뒤집어졌다.
소식을 전달받은 필리프 국왕은 즉시 국가 전체에 수배령을 내린 뒤 윌리엄에게 모든 수색 권한을 위임했다.
윌리엄은 곧장 휘하 헌터들 및 왕실 병력들까지 모두 데리고 브롬멜 성으로 향했다.
이동은 대형 워프진을 이용했다. 평소에는 비싼 마나석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비상시가 아니면 절대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지금은 명확한 비상시국이다.
곧바로 브롬멜 성으로 워프한 병력들은 털실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단 하루 만에 발견한 것들만 이 정도였다.
1. 로한과 밀리오가 찾아냈던 시체 더미를 다시 발굴.
2. 생체 실험 재료 수급을 위해 산골 마을을 습격한 통화 내역을 입수.
3. 마족이 직접 키워낸 헌터들의 명단 입수. 99% 이상이 버몬드 파 귀족들로 확인.
4. 생체 실험 재료를 주기적으로 버몬드한테 보내는 지역 및 귀족들의 명단을 입수.
특히 마지막 4번이 매우 중요했다. 버몬드 쪽 영지 말고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을 산 채로 납치했다는 소리 아닌가!
윌리엄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적혀 있는 모든 지역에 통행 금지령을 내리고 명단에 적힌 모든 이들을 즉시 체포하라.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병사들 및 헌터들, 그리고 신전의 이단 심판관들도 내 명령에 따른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마족과 관련된 자로 간주하여 즉결 처형하겠다.”
전권을 위임받은 윌리엄은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헌터장 라가스와 교황의 권한까지도 모두 사용했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 독단적인 결정에 라가스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교황 측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번엔 윌리엄도 완고했다.
“파누엘 신을 섬기는 자들이 어찌 마족 수색에 권한부터 내세운단 말이오? 만약 계속 더 반대한다면, 당신들도 마족과 내통했다고 간주하겠소.”
“무슨 그런 불경스러운 소리를…!”
“버몬드의 저택에서 당신들과 사적으로 접촉했다는 서류를 발견했소. 왕성으로 돌아가면 이것에 대해 폐하께 한 치의 거짓 없이 모두 보고해야 할 것이오.”
윌리엄의 이어진 말에 교황 측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버몬드 측에게 받은 뇌물을 ‘마족과의 내통’으로 단정 지으면 제아무리 왕실과 비등한, 혹은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진 교황 측이라 할지라도 무사히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곧바로 군대, 헌터, 이단 심판관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병력들이 생체 실험 재료를 보냈다는 지역을 급습했고, 얼마 걸리지 않아 모두 체포할 수 있었다.
이미 버몬드 파의 정예 헌터들은 로한의 손에 모두 죽은 상황이라 실력이 낮은 남작 정도밖에 안 남아 있었기에 정예병들을 상대로 오래 저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체포 이후 해당 지역도 수사가 이루어졌다.
- 여기는 키넨 성. 방금 지하에서 다수의 시체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 사키왈 성입니다! 이곳에는 시체 더미는 물론, 시체 소각장까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 바니아스 성 지하에서 시체 더미를….
그리고 수사가 이루어진 모든 지역에서 생체 실험 재료로 사람들을 사용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빠른 속도로 엘도르 대륙 전체로 퍼졌다.
마족이 다시 나타났다!
마족이 마기를 끌어모으기 위해, 사람들을 산 채로 데려가 생체 재료로 사용했다!
그런 마족에게 힘을 얻기 위해 협력한 귀족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소식에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는 물론, 이종족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족을 발견하고 생포한 것에 대해 큰 안도감을 표함과 동시에 자신들 역시 혹시나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중 가장 특별한 반응을 보인 두 국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오스크만 제국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
무응답이었다.
애초에 천 년 전 신마대전을 일으킨 범죄 국가이니 만큼 마족과 관련된 발언을 그 어느 곳보다 조심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성명이 없는 건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이런 소문들이 돌았다.
‘혹시 오스크만 제국에서 심은 마족이 아닐까?’
‘오스크만이 또다시 천 년 전처럼 마족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설마 또 신마대전을 일으키는 건가?’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오스크만은 신마대전 이후 그 어떤 나라와도 교류하지 않는 쇄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력으로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제국의 군사력이 막강한 것도 있었지만,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아틸러스 산맥이 더 문제였다.
‘몬스터들의 소굴’로 알려진 그 산맥을 돌파하려면, 어떤 국가라도 큰 병력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아르베니아 성국이었다.
그들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테르디아 교황 측에게 이렇게 통보했다.
‘곧바로 교국의 조사단을 파견하겠다.’
다른 국가와는 달리, 아르베니아는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필리프 국왕의 개인 서재.
“아르베니아에서 조사단을 보내겠다고 하네.”
필리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온 윌리엄에게 말하고 있었다. 국왕의 개인 공간인 서재에는 당연히 아무나 들어올 수 없지만, 공작이자 사실상 이인자인 윌리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다.
“자신들이 직접 마족을 심문하겠다고, 그 전까지 절대 손을 대지 말라고 하더군.”
“…….”
“어찌하면 좋겠는가? 분명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돈을 뜯어내려 할 텐데….”
아르베니아 조사단이 이 나라에 올 때마다 행패를 부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꼭 신의 이름을 빌려 생트집을 잡으면서 신의 뜻을 거역한 죄로 국왕도 처벌할 수 있다 어쩐다 으름장을 놓다가, 결국 거액의 돈을 합의금이랍시고 뜯어가는 결말로 귀결되었다.
그렇다고 반항할 수 있느냐? 불가능하다.
테르디아는 이 서쪽 대륙에서 가장 힘이 약한 국가 중 하나고 아르베니아 성국은 서쪽에서 가장 강한, 사실상 서쪽의 패자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습니다. 버몬드 파 귀족들에게서 몰수한 재산을 바쳐 회유할 수밖에요.”
“그 어마어마한 거금을 전부 다 바쳐야 한단 말인가?”
“선택지가 없습니다, 폐하. 이번 사안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끄응….”
필리프의 이마 주름이 하나 더 늘어났다.
윌리엄의 말대로, 마족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르베니아 심판관들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순간, “이 나라 전체가 마족과 결탁했구나!”라고 전 대륙에 선포할 것이 뻔하니까.
그러면 테르디아는 한순간에 공적으로 찍히게 된다. 그 이후는 보나 마나 협공으로 멸망이겠지.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거액으로 입을 막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건 맞다.
“…알겠네. 일단 조사단이 국경을 넘어올 때까지 아직 시일이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지.”
“네, 폐하.”
“수배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데려왔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현재 머리만 남은 말파스와 반송장이 된 버몬드, 그리고 이 성 저택 내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앓아누워 있던 스콧 등등, 입수한 서류에 적혀 있던 명단은 모두 감옥에 가둬둔 상태이다.
이단 심판관과 고위 헌터들까지 고용해서 삼엄한 감시를 펼치고 있는 중이며 라가스와 윌리엄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확인하러 방문하고 있다.
“강하게 심문하되, 아르베니아 심판관들이 넘어올 때까지 절대 죽여서는 아니 되네.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공작이 알아서 잘하리라 믿네.”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감시하겠습니다.”
윌리엄의 그 대답이, 필리프에게는 그렇게 든든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 * *
이곳은 드넓은 궁궐 안.
화려하고 웅장한 이 공간 안에는 왠지 모를 어두운 기운이 짙게 서려 있었다. 촘촘하게 서면 천 명도 넘게 설 수 있을 법한 드넓은 이곳엔, 단 한 명의 남자만이 존재했다.
커다란 왕좌 위에 앉은, 검은 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
“말파스가 실패했다.”
입을 연 그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법으로 생성된 공간 안에는 얼굴만 보이는 다수의 인원들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한꺼번에 다수와 영상 통화를 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중년의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모두 한마디씩 일제히 꺼내기 시작했다.
- 설마 인간한테 당한 겁니까? 하!
- 천하의 데르툴족 망신은 다 시키는군.
- 고작 테르디아 따위를 상대로 실패하다니…. 한심하기 그지없군요.
- 잘됐군그래! 안 그래도 만날 때마다 시건방져서 언제 한번 손봐주려고 했었는데 말이지. 킥킥킥!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인 와중에, 처음 질문했던 이가 다시 남자에게 물어왔다.
- 그럼 테르디아는 누구에게 맡기실 겁니까?
남자가 대답했다.
“새로운 놈에게 맡기려고 한다.”
- 누군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남자는 대답 대신 옆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그러자 아무도 없던 공간이 갈라지면서, 한 훤칠한 미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장발이 매력적인 그가 마법 화면을 향해 살짝 허리를 숙였다.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형제자매들이여.”
그러자 화면 속 이들의 얼굴에 살짝 놀람이 서렸다.
- 르기에, 네가 직접?
- 호오… 이건 좀 의왼데?
- 테르디아 같은 누추한 곳에 굳이 상급 데르툴을 보내시다니….
- 아니, 주인님! 굳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습니까? 킥킥킥!
- 확실한 건, 이제 테르디아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중년 남성이 르기에라 불린 청년에게 말했다.
“내가 굳이 너를 부른 이유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말파스처럼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테르디아를 손아귀에 넣으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대답한 르기에는 자신 있게 대답을 이었다.
“주인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한데, 말파스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네 마음대로 해라.”
그 말에 르기에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제가 원하던 답변이었습니다. 그럼….”
허리를 숙인 그는, 다시 아공간을 연 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중년이 한마디 했다.
“로한을 조심해라. 최근 말파스와 관련된 모든 사건에 그가 연루되어 있었다.”
르기에는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곧 르기에를 삼킨 아공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 * *
여기는 다시 필리프의 개인 서재.
“다음은… 로한에 대한 처리만 남았군.”
로한.
밀리오와 더불어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해결사.
마족의 힘을 빌려 테르디아 전체를 장악하려 했던, 버몬드 파의 계획을 사실상 단신으로 저지한 영웅.
그에 대한 적절한 논공행상을 지금 정하려 하고 있다.
“어찌 생각하나? 지금 당장 공작위를 줘도 큰 반대는 없을 것 같긴 한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