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 조사를 하기 위해 이동 중. 조사를 하기 위해….
버몬드의 집무실에 있는 통신 마법석에서, 호위병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담당 마법사가 바로 보고했다.
“백작님! 지금 로한과 밀리오가….”
“좀 닥쳐! 다 들었으니까!”
옆에 있던 버몬드가 신경질적으로 버럭 외쳤다.
입을 다문 마법사에게 그는 지시했다.
“지금부터 1분에 한 번씩 위치 보고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그 말을 그대로 호위병에게 전했다. 호위병은 지시에 따라 수시로 이동하는 위치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 중앙 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 중. 중앙 대로를 따라….
“야, 한 번씩만 말하라 그래!”
“넷!”
마법사는 재빨리 통신하면서 계속 버몬드의 눈치를 봤다. 오늘따라 극도로 저기압인 모습을 보니,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매우 높은 확률로 경을 칠 듯하다.
보고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 계속 동쪽으로 이동 중.
“좋아. 완전 반대편으로 가고 있어.”
혼잣말을 하는 버몬드.
밀리오한테 걸려서는 안 될 재료 및 시설들은 대부분 북쪽 지하에 위치해 있다. 일단 방향부터 완전히 반대이니, 일단 지금은 안심 단계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가득한 긴장감은 여전했다.
반면 로한과 밀리오는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브롬멜 성은 처음 와보는데 건물이나 도로 정비가 굉장히 잘되어 있네요. 이 정도면 벨타디아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만 그렇죠. 두 블록 안쪽으로만 들어가면 이 성의 진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 이 성도 빈민가가 있나 보군요.”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테르디아를 대표하는 다섯 대형 성 중 가장 빈민가가 많은 곳이 여기입니다.”
“이 성에 자주 와보셨나 봅니다.”
“뭐… 그렇죠.”
로한은 바로 화제를 바꿨다.
“이쪽 골목으로 들어가 보죠. 용병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이 있어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로한의 발걸음을 따라 모두가 오른쪽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뒤쪽의 호위병이 바로 보고했다.
“19번가 오른쪽 세 번째 골목길 안으로 입성.”
그가 막 보고를 마쳤을 때.
밀리오의 오른쪽 귀에만 들려오는 로한의 목소리가 있었다.
[지금부터 1분간 숨을 참으세요.]
말을 들은 밀리오는 바로 숨을 참았다.
동시에, 로한의 양손에서 무색무취의 가스가 살포되었다. 셔누스 수면 가스였다.
아주 소량이지만, 호위병들 모두에게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
“갑자…기… 졸…리…ㄷ….”
호위병 네 명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쓰러진 호위병들의 손발을 빠르게 묶은 로한은, 근처 쓰레기통 근처에 그들을 버려둔 뒤 미리 준비한 검은 천막을 그 위에 덮어 가렸다.
“이 정도면 깨어날 때까지 안 들키겠지.”
이 어두운 밤에 이 구석진 곳을 검은 천막으로 가리기까지 했으니, 억지로 기를 쓰고 찾는 게 아니면 절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로한은 밀리오를 데리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이제 그만 참으셔도 됩니다.”
“후….”
그제야 숨을 쉬는 밀리오. 예상보다 더 긴, 2분 이상 동안 산소를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초월자인 밀리오한테 이 정도 숨 참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밀리오는 바로 귀에 꽂혀 있던 미니 통신기를 빼내서 로한에게 돌려주었다.
“잘 썼습니다. 근데 이거 정말 좋은데요? 어떤 통신 마법석보다 더 선명하게 로한 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괜히 금화 30개짜리 아티팩트가 아니죠.”
한순간에 아티팩트가 되어버린 최첨단 이어폰을 로한은 다시 밀리오에게 주었다.
“일단 오늘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끼고 계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음, 알겠습니다.”
“빨리 움직입시다. 보고가 끊긴 버몬드가 무슨 수를 쓸지 모릅니다.”
“어디로 가죠?”
“따라오세요.”
로한과 밀리오의 신형이 바람처럼 서 있던 장소에서 사라졌다.
그 시각, 버몬드는.
“…왜 보고가 없어?”
라면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마법사를 재촉했다.
“다시 물어봐봐.”
“네. 여기는 둥지. 여기는 둥지. 까마귀는 응답해라. 까마귀는 응답해라.”
하지만 마법사가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급해진 버몬드는 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분명 로한이 뭔 짓을 벌였다.’
정예로 이루어진 자신의 헌터 팀도 가볍게 암살하던 로한이다. 그런 놈이 고작 B급 헌터 네 명을 처리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이런 사태를 미리 예상했던 버몬드는 바로 다음 작전으로 넘어갔다.
“성 안에 미리 배치한 모든 감시병들에게 통신해서, 로한과 밀리오를 발견하는 즉시 보고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그 전에 엘긴한테 먼저 통신해. 작전 2를 바로 진행하라고.”
“네. …엘긴 자작님! 들리십니까?”
마법사한테 지시를 마친 버몬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박차고 나섰다.
작전 2에는 버몬드도 직접 움직인다는 전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막 저택을 빠져나왔을 때.
- 여기는 까치 31! 까치 31! 북쪽 31번가 골목에서 먹잇감 발견! 다시 말한다. 북쪽 31번가….
마법사의 통신 마법석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31번가 골목 건물 옥상에 있던 감시병 중 한 명이었다.
“다시 말한다. 북쪽 31번가….”
뻐억!
하지만 뒤통수를 강타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흰자를 보이며 기절해 버렸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다가온 로한의 주먹이 벌인 짓이었다.
기절한 감시병을 내려다보며 로한은 말했다.
“확실히 철저하군, 버몬드.”
역시 머리는 비상한 놈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성 전체에 감시병을 깔아놨을 줄이야.
이로 인해 둘의 위치를 버몬드가 알게 되었다. 이제 곧바로 움직이겠지.
“이렇게 감시하는 걸 보면, 분명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밀리오가 말했다.
대신관으로서 수많은 이단자들을 잡아왔던 밀리오는 흘러가는 분위기만 보고 바로 감을 잡은 것이다. 이 성에 뭔가가 있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버몬드가 방해하기 전에 빨리 찾아야 될 텐데요.”
“이미 찾았습니다.”
대답한 로한이 바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3층 높이에서 낙하한 로한은 가볍게 골목길에 착지했다.
뒤따라 착지한 밀리오에게 로한이 말했다.
“여기에 비밀 문이 있습니다.”
“비밀 문?”
정말 앞에 문이 있다면, 비밀인 건 확실하다. 지금 밀리오의 눈엔 통나무로 만들어진 드높은 건물 벽만 보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로한의 눈에는 확연하게 보였다.
[투시 기능을 활성화 중입니다.]
[모든 구조물을 초록색 선으로 표시하는 중입니다.]
[반경 5km 내의 모든 구조물을 각막 스크린 위에 100% 표시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도우미의 말처럼, 그의 각막 스크린에는 이 벽 뒤에 있는 비밀 지하 통로가 초록 레이저로 표시되고 있었다.
아까 전 서문을 통해 처음 이 성에 입장했을 때도 로한은 이 투시 기능을 활성화한 상태였다. 그때 이곳에 있는 지하 통로를 발견했던 것이다.
밀리오가 물어왔다.
“어떻게 열고 들어가죠?”
로한은 비밀 문을 대충 훑어보았다. 양쪽 벽과 바닥 안쪽에 작은 기계 장치들이 설치된 게 보였다. 이걸 자세히 확인해 보면 늦어도 30초 안에 출입 스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로한은 그 30초의 시간도 아까웠다.
“힘으로요.”
로한은 바로 주먹에 힘을 실었다.
곧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벽에 딱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겼다.
“정말 있군요.”
구멍 안의 비밀 통로를 본 밀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가시죠.”
“네.”
둘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계단을 타고 날듯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쾅!
“……!”
로한이 비밀 문을 부수는 소리는, 멀리서 달려오던 버몬드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버몬드는 전력을 다해 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날렸고, 그 뒤를 그의 부하들이 뒤따라왔다.
30초 정도 뒤.
로한이 만들어낸 구멍 앞에는 버몬드와 그의 헌터 팀이 단체로 몰려와 서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버몬드의 표정은 볼 만했다.
“이런 망할…!”
하얗게 변해버린 얼굴로 혼잣말을 하는 버몬드.
이 비밀 통로는, ‘재료’들을 몰래 운반하는 통로 중 하나다. 그곳에 지금 로한과 밀리오가 들어갔다.
둘의 경지라면, 절대 봐서는 안 될 그곳에 이미 도착했을 터.
‘X발, 진짜 X 됐다.’
버몬드 입장에서는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면 작전 2도 실패다. 병사들을 이끌고 무슨 수를 써서든 비밀 통로를 막는 게 작전 2였는데, 이렇게 빨리 발견해서 들어갈 줄은…!
“어, 어떡하죠, 백작님?”
엘긴이 모두를 대변해서 버몬드에게 물었다. 그들 역시 상황을 알기에 모두 버몬드 못지않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버몬드의 입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전 3에 돌입한다.”
정말 쓰고 싶지 않았던 버몬드의 마지막 계책, 작전 3.
바로 로한과 밀리오가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막아내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지금 통로 감시자들한테 모두 작전 3에 바로 돌입하라고 전해. 이 통로도 마찬가지고!”
“네, 백작님!”
“그리고 너희들 모두!”
버몬드는 모두를 돌아보면서 명령했다.
“만약에 로한과 밀리오가 지상으로 벗어나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네, 백작님!”
“이번에는 모두 마기를 개방하는 걸 허락한다.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이니까!”
“네!”
헌터들 모두가 봉인된 마기를 푸는 동안, 버몬드 역시 그동안 한 번도 풀지 않았던 마기의 봉인을 풀어 헤쳤다.
곧, 주변 골목 전체가 강력한 마기로 뒤덮였다. 너무 강렬해서, 골목 전체가 얕은 지진이 난 것처럼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오오…!”
온몸을 뒤덮은 강렬한 마기에 버몬드는 절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단지 봉인을 풀었을 뿐인데,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것이 확연히 체감될 줄이야!
버몬드는 갑자기 자신감이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로한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테르디아에서 가장 강한 팀인 버몬드 파의 거의 모든 귀족 헌터들 역시 마기 봉인을 풀고 함께하는 상태다.
이 정도면 1대1로 상대해도 무조건 죽일 수 있다!
‘거기에 주인님도 움직이고 계신다. 이 작전은 무조건 성공한다!’
버몬드는 바로 그의 주인님께 말을 걸었다.
‘주인님, 작전 3에 돌입했습니다!’
[알았다.]
주인님이 바로 대답해 왔다.
그 시각.
로한과 밀리오는.
“…….”
“세, 세상에…!”
크게 충격받은 얼굴로 움직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간 뒤에야 도달한 거대한 지하 공간. 이곳에는 사면 가득히 ‘재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시체였다.
“이… 이 많은 시체들이 왜 여기에…?”
“재료로 쓰인 겁니다.”
“네?”
되묻는 밀리오에게 로한은 굳은 얼굴로 대답을 이었다.
“마기의 원천을 끌어내기 위한 생체 재료로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