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43화 (43/200)

제43화

“진짜 모르셨나 보네?”

사라의 모습을 본 지크가 한마디 했다.

“어제 단둘이 차까지 마셨다면서요? 근데 의심조차 안 했수?”

“뭐를…요?”

“잘생긴 젊은 청년인데 이름이 로한이다. 그러면 요즘 떠오르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잖수?”

“무슨… 어?”

그제야 사라는 기억해 냈다.

최근 테르디아를 뒤흔들고 있다는 새로운 S급 헌터의 소문을. 평소 세상 흘러가는 소식에 무신경한 사라지만,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죄다 그 사람 얘기뿐이라서 모를 수가 없었다.

대충 그녀가 들은 소문만 해도 이랬다.

‘로한이라고, 남쪽에서 올라온 천재 헌터가 한 명 있다.’

‘테르디아 역사상 세 번째로 탄생한 S급 헌터인데 고작 20살이라더라.’

‘혼자서 A+급 포탈 몬스터를 다 처치했다더라.’

‘목격자에 의하면 무위가 버몬드보다 강하고, 윌리엄과도 견줄 만하다더라.’

‘너무 잘생겨서 왕실 파티에 참석했을 때 200명이 넘는 여자들에게 고백을 받았다더라. 그중 하나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멀어버렸다더라.’

“설마 소문의 S급 헌터인… 그 로한이라고요?”

“정답!”

“네에에에?!”

입이 떡 벌어져 다물 생각을 못 하는 사라.

“정말 상상조차 못 했어요!”

“거참, 되게 둔감하시네.”

“그러게.”

지크와 피터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지만, 사라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S급 헌터나 되는 인물이 굳이 왜 이 더럽고 위험한 빈민가 보육원을 찾아온단 말인가? 벨타디아에 보육원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암튼, 슬슬 애들 깨우고 준비하쇼. 경비들 몰려오기 전에 떠나야 하니까.”

“경비요…?”

“그럼 이 꼴이 났는데 경비들이 안 오고 배기겠수? 금방 마차 끌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빨리 떠날 준비 마치고 계쇼. 알겠수?”

지크와 피터는 대충 시체들을 구석으로 밀어 치운 다음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한참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멍하니 서 있던 사라. 아직도 현실을 뇌가 전부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 사라야!”

그녀는 두 손바닥으로 볼을 짝짝 때리며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았다.

편지에 써 있는 로한의 말이 맞다. 이렇게 앞마당에 시체가 즐비하면, 경비병들은 무조건 사라를 용의자로 지목해서 다짜고짜 끌고 갈 것이 뻔하다.

항변해 봤자 빈민가 출신이라고 들어주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괜히 끌려가서 험한 꼴을 당하면 당장 아이들이 굶게 된다. 그럴 순 없었다.

“얘들아! 어서 일어나, 어서!”

사라는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잠시 후.

로한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사라 님께서 벨타디아 성을 이탈했습니다.]

[현재 동북쪽 방향으로 시속 6km 속도로 이동 중입니다.]

[동행하는 인원수는 총 21명입니다.]

어제 사라의 하나밖에 없는 허름한 외투에 몰래 넣어놓은 위치 추적기의 이동 경로를 인공지능 도우미가 보고한 것이다.

로한은 안도했다.

‘무사히 탈출했구나.’

지크와 피터가 잘해준 모양이다. 라가스가 ‘돈만 확실히 주면 가장 믿을 수 있는 놈들’이라고 로한한테 추천했는데,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하긴, 성공하면 금화 10개를 더 준다는데 거절할 만한 용병이 그리 많진 않겠지.

그때 옆에서 물어왔다.

“갈림길인데, 여기서 오른쪽이었죠?”

“네.”

고삐를 쥔 밀리오는 바로 마차를 오른쪽 방향으로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로한이 말했다.

“마차는 제가 몰아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공짜로 태워주시는데 운전이라도 해야죠.”

“에이, 천하의 밀리오 대신관님과 함께하는데 무슨. 어디 가서 밀리오 님한테 고삐 쥐여 줬다고 말하면 무조건 욕 먹습니다?”

“화제의 로한 님의 마차에 탔는데 무임승차하면 더 욕먹을 텐데요? 하하하.”

“하하하.”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둘의 분위기는 좋았다. 최근에 자주 만나서 더 친해진 느낌이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도 마차 안에는 안 들어가실 겁니까?”

로한의 은근한 물음에 밀리오는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그, 제가 마부석에 있기 때문에….”

“괜찮으니 들어가세요. 제 마차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한번 고삐를 쥐었으면 끝까지 몰아야죠!”

“흠… 그럼, 제가 들어가고 잠깐 아린을 밖에 나오라고….”

“그, 그러지 마십시오! 대신관으로서 아녀자와 단둘이 같은 자리에 앉을 수는 없습니다!”

빨개진 얼굴로 급히 말리는 밀리오.

로한은 혀를 찼다.

“쯧쯧쯧. 멍석 깔아줄 때 좀 잘 해봐요. 맨날 안 되면 언제 아린이랑 더 가까워지겠어요?”

“무, 무, 무슨 소리십니까! 전 아린 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감정 없는 사람이 왜 굳이 우리랑 같이 이동합니까? 교황님은 일주일 뒤에 이동하라고 했는데 굳이 오늘 같이 가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면서요?”

“그, 그건 아로엘 영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파악하려고….”

“그러면 바로 북쪽으로 이동했어야죠. 지금 우린 반대편인 브롬멜 성으로 향하고 있잖아요.”

“…그, 그렇습니까?”

“출발하기 전에 세 번이나 얘기했는데요.”

“크흠, 흠! 제, 제가 기억력이 좀 안 좋아서….”

천하의 밀리오가 기억력이 안 좋다고? 자신한테 치료받은 사람의 이름을 10년 넘게 기억한 걸로 유명했던 양반이? 퍽이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로한은 이번엔 아린한테 통신으로 물었다.

[니가 먼저 접근해 볼래? 밀리오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긴 한데… 굳이 먼저 해야 하나요?]

[…아니.]

하긴, 접대할 것도 아닌데 ‘굳이’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먼저 접근할 필요는 없다.

동시에 로한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계속 뜸 들이면 영원히 못 친해질 겁니다, 숙맥 신관 씨.’

다짜고짜 공개 고백을 했던 테르디아 왕세자처럼 급발진하는 것도 안 좋지만, 이렇게 한없이 우물쭈물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심지어 아린도 딱히 마음이 없어 보이는 걸 보니, 앞으로 밀리오의 짝사랑 고생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 * *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어둠.

이 공간은 단지 어두운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둠 전체에 굉장히 기분 나쁜, 동시에 공포감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 공간의 오래된 침묵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작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어둠의 공간을 열어가는 남성.

그가 문을 여는 순간, 빛이 들어오면서 칠흑 같은 어둠이 걷혔다. 동시에 남성의 얼굴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버몬드 백작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흐흐흐…!”

온몸에 가득 찬 마기에 그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낮게 웃으면서 계단을 타고 걸어 올라가는 버몬드.

계단의 끝에 있는 문을 열자, 화려한 복도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브롬멜 성 안에 있는, 그의 호화로운 대저택에서만 볼 수 있는 휘황찬란한 실내의 모습이었다.

복도를 거침없이 걸어가면서 그는 혼잣말을 했다.

“조금만 더 하면 윌리엄 따위는 그냥 때려잡을 수 있겠어. 흐흐흐!”

브롬멜 성으로 돌아온 후, 그는 매일같이 비밀 지하 공간에서 수련에 열중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재료’를 통해 마기를 끌어모아 체내에 저장하는 수련법은, 엘도르 대륙에 존재하는 그 어떤 수련법보다도 빠르고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윌리엄. 그리고 로한! 둘 다 내 손으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

형형해진 눈빛으로 계속 걸어가던 그의 도착지는 집무실 앞이었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 둘이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인 뒤 각자 문을 한쪽씩 열었다.

“오셨습니까, 백작님!”

동시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젊은 남성 한 명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이름은 엘긴. 자작으로, 브롬멜 성의 행정 장관 자리에 앉아 있다.

“수련은 모두 마치셨습니까? 와아… 기운이 어제보다 더 강해지셨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몰라보게 강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백작님. 헤헤헤.”

비굴한 얼굴로 손바닥을 비비는 엘긴의 말을 한 귀로 흘리듯 행동하는 버몬드. 시선 한번 안 주고 소파에 늘어지게 기대앉은 그가 말했다.

“보고해 봐.”

“네! 우선….”

“커피는?”

“앗! 죄송합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급하게 하인을 불러 블랙커피를 버몬드 앞에 놓은 뒤에야 엘긴은 보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스콧 님이 통신으로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오늘 중으로 재료를 보내드리는 데 차질이 생겼다. 내일까지 반드시 보내 드리겠다’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뭐?”

눈썹을 꿈틀한 버몬드. 순간 화가 났지만, 그보다 의아함이 더 컸다.

지금까지 스콧이 약속 기일을 미룬다고 연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차질인데?”

“그게, 수련하는 도중에 마나가 역류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오늘 하루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서 재료를 검사하기가 힘들다고 하십니다.”

“쯧, 한심한 놈.”

초짜도 아니고 스콧 정도 되는 초월자가 마나를 역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거기엔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이 새끼 신체가 슬슬 마기를 못 받아들이는 건가?’

그렇다면 생각보다 큰 문제다. 한 번 금 간 그릇은 조금만 잘못 다뤄도 산산조각 날 확률이 높으니까.

“슬슬 갈아치울 때가 됐나….”

“네?”

“스콧 말고 다른 놈들은?”

“아, 스콧 님 외에는 문제없습니다. 재료들 전부 오늘 정상적으로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됐어. 내일 나 수련 들어가기 전까지 모두 지정 위치에 옮겨 놔. 들키지 않게 운반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어… 그게….”

엘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망설였다.

“왜 대답을 안 해?”

“저… 그, 두 번째 드릴 보고가 그것과 연관이 되어 있어서….”

“뭔데?”

“벨타디아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로한 백작이 브롬멜 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버몬드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로한이 이 영지에?

“그 새끼가 여길 왜 오는데?”

이건 버몬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성은 아로엘 영지로 가는 방향에 위치한 곳이 아닌데?

물론 버몬드도 모르는데, 엘긴이라고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건, 저도 잘….”

“당장 알아와!”

“히익, 넷!”

버몬드의 버럭 외치는 소리에 엘긴은 화들짝 놀라며 부리나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라지는 그의 등 뒤로 버몬드는 한 번 더 외쳤다.

“알아올 때까지 보고할 생각도 하지 마! 알았어?!”

* * *

“도착했군요.”

밀리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벨타디아와 충분히 견줄 법한 높고, 넓고, 튼튼한 성벽. 그리고 정문을 오고 가는 수많은 물자들과 사람들.

이곳은 브롬멜 성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