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새벽의 빈민가는 사람이 없어 평소보다 더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시각에 빈민가를 돌아다닌다? 그건 나 죽여주세요, 라고 외치고 다니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이니까.
그렇다고 진짜 한 명도 없는 건 아니었다. 이 빈민가를 본인들이 관리한다고 떵떵거리는 폭력배들한테는 지금이 주 활동 시간이다.
“아그야, 오늘은 뭐 없냐?”
“대어는커녕 피라미도 없습니다, 행님. 흔히 볼 수 있는 취객도 오늘 한 명도 없었습니다, 행님.”
“쯧,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응?”
두목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밝은 표정이 되었다.
“저기 사냥감 있다. 어서 잡으러 가….”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걱!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깔끔하게 베어지더니, 머리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밝은 표정 그대로 굴러다니는 두목의 머리를 본 부하들은 모조리 기겁했다.
“히이익!”
“두, 두목… 컥?!”
하지만 그들 역시 금방 두목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순식간에 8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머리 없는 시체로 변해 바닥에 쓰러져버린 것이다.
그들을 처리한 복면 쓴 암살자 중 한 명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처럼 목격자는 모두 죽이면서 이동한다.”
대답은 없었다. 단지 그의 뒤를 따라 모두 빠른 속도로 보육원 쪽으로 달려갈 뿐.
그때.
폭력배들 근처에 자라나 있던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작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전자파 신호를, 복면인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로한 가족이 묵고 있는 여관 안.
테르디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비싸기로 유명한 이곳의 특실 두 개를 로한 가족이 쓰고 있었다.
하나는 비올라가 아린과 같이 묵고 있고, 또 하나는 로한 혼자 사용하고 있다.
넓이, 인테리어, 가구, 조경 및 서비스까지 왕궁 못지않게 좋은 이곳은 하루 숙박료가 무려 금화 1개나 하지만, 로한한테는 큰돈도 아니었다. 얼마 전 케르베로스 시체 수급으로 벌어들인 돈만 해도 2백 골드가 훨씬 넘어가니까.
그 화려한 방 안에서, 로한은 내일 출발하기 위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건 다 챙겼고… 혹시 모를 노숙용 짐도 다 넣었고… 빠진 건 없겠지?”
짐 가방들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던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치해 놓은 ‘빈민가’ 레이더에 위협 인물들이 감지되었습니다.]
[위협 인물들이 보호 대상인 ‘사라’ 님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설치해 놓은 ‘빈민가’ 레이더에….]
알림을 들음과 동시에 로한은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특실 안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시각, 암살자들은 이미 보육원 마당까지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대장이 지시를 내렸다.
“최면 가루부터 뿌리고 시작한….”
뻐억!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턱이 익사이팅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도달한 로한의 주먹이 벌인 짓이었다.
보육원 반대편으로 멀리 날아가 버린 그는 눈깔을 뒤집은 채 기절해 버렸다.
“……!”
암살자들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나타나 대장을 날려버린 남성의 정체는 분명… 로한!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암살자들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
“잡아서 심문해 보면 알겠지.”
로한은 두 손을 털면서 싸울 준비를 했다.
그 모습에 암살자들의 2인자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전원 후퇴.”
상대는 S급 헌터 로한이다. 당연히 싸우면 가능성이 없다. 무조건 흩어져서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다!
암살자들 모두 즉각 몸을 돌려 서 있던 자리를 박차려 했다. 하지만.
‘어…?’
‘눈앞이… 왜….’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암살자들은 하나둘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가장 늦게 쓰러진 2인자만이 이유를 알아챘다.
“어, 언제… 수면… 가루…를….”
곧 쓰러진 2인자를 향해 로한이 대답해 주었다.
“가루가 아니라 가스야.”
얼마 전 벨타디아로 오는 길에 로한을 암습했던 버몬드 파 헌터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던 최첨단 수면 가스, 셔누스가 이번에도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홀로 남은 로한은 가장 먼저 처치한 대장에게로 다가갔다. 심문하기 위해서였다.
[에너지원 일부를 나르커즈 약물로 변환합니다.]
[총 0.30ml의 나르커즈 약물을 생성하였습니다.]
[투약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나르커즈를 이용해 최면 상태로 만든 후 심문하니, 금방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너네 정체는 검은 달빛이고, 의뢰인은 스콧 백작이라고?”
“네….”
“보육원 전원을 생포해 오라는 게 의뢰 조건이고?”
“맞습…니…다….”
“검은 달빛 위치는?”
“…34번가… 맞은편… 골목길 끝에….”
우드득!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알아낸 로한은 바로 대장의 목을 꺾어 즉사시켜 버렸다.
쓰러진 시체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설마 했는데, 사라한테까지 손을 뻗칠 줄이야.’
사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다. 버몬드 파의 지독함과 악독함이라면, 로한과 조금이라도 엮여 있는 모든 인물들을 위협하려 할 것이라는 걸.
그래서 미리 보육원 근처에 레이더를 몇 개 설치해 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말이다.
문제는 의뢰인이 스콧이라는 점이다. 그의 직위는 수석 집사. 즉,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사라를 괴롭힐 수 있는 놈이다.
‘분명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라를 건들 것이다.’
비올라야 로한과 같이 이제 성을 떠날 거고, 라가스는 애초에 걱정될 인물도 아니지만, 아무 힘도 없는 사라는 다르다.
이제 내일 로한이 이곳을 떠나면 사라와 아이들은 곧바로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게 뻔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한 가지 계획을 떠올린 로한은, 바로 목적지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쓰러져 있는 암살자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 전에 복수는 하고 가야지.’
로한은 대장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든 후, 기절한 암살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 * *
여기는 다시 스콧의 집무실 안.
여전히 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잔에 담긴 위스키를 한 모금씩 음미하고 있었다.
“곧 소나기가 오겠군.”
하늘을 바라보며 스콧이 혼잣말을 했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드는 걸 보니, 잠깐 쏟아졌다 없어질 소나기임이 분명하다.
“비가 오기 전에 마무리되겠지? 안 그래도 곧 끝날 시간이긴 한데….”
검은 달빛 놈들이 출발한 지 30분이 되어간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제 목표물을 전원 생포해서 저택의 지하 심문실로 도착할 시간이다.
“일단 사라라는 년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봐야겠군. 진짜 로한이 반할 만한 미모인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스콧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상대는, 복면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검은 달빛 길드의 그 복면은 절대 아니었다.
“누구냐!”
스콧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복면인은, 성대를 다친 듯 긁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라에게 의뢰받은 자.”
이어서 그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제서야 스콧은 그가 한 중년 사내의 수급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콧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검은 달빛의 마스터?!’
그렇다면, 설마 이 복면인한테 검은 달빛 전체가 몰살당했다는…?
“이놈이 고백하더군. 네놈이 사라를 생포하라고 의뢰했다고.”
“난 그런 적 없는데.”
억지로 태연한 얼굴로 받아치는 스콧. 하지만 그때 그의 등에는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놈이 바로 등 뒤에 나타날 때까지 인기척조차 못 느꼈잖아!
“그래?”
복면인이 곧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면 자백할 때까지 한번 맞아봐라.”
말이 끝나자마자, 복면인의 신형이 번개처럼 쏘아졌다.
초월자이자 천하의 버몬드 파 2인자 스콧이 아예 반응조차 못 할 만큼 엄청난 속도!
당연히 스콧은 그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퍼퍼퍼퍼퍼퍽!
곧 그의 몸에서 북 치는 듯한 소리가 자진모리장단처럼 빠르게 들려왔고,
“으어어어어!”
스콧의 신음 소리도 장단에 딱딱 맞춰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복면인의 생체 악기 연주가 한동안 이어졌다.
아쉽게도,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저택 안에 있던 누구도 그 환상적인 연주 소리를 듣지 못했다.
* * *
평소처럼 사라는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아이들의 아침을 차려주려면 이 시간에는 일어나야 제때를 맞출 수 있으니까.
평소처럼 문을 열고 나간 사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으읍!”
터져 나오는 비명을 두 손으로 급하게 막아내었다. 아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오랜 보육원 운영으로 인해 생긴 습관이었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시체들. 심지어 멀쩡한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 죄다 머리와 팔다리가 잘려 있고, 내장이 튀어나와 있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이, 이, 이, 이게 뭐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리는 사라. 너무 큰 충격에 급기야 신마저 찾기 시작한다.
“오, 파누엘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러시는 건가요…. 도대체…!”
“사라 님?”
그때 전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용병 차림의 두 건장한 남성이 대문을 열고 사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발에 닿는 시체 조각을 아무렇지 않게 발로 치우면서 말이다.
“사라 님 맞죠?”
용병의 물음에 사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물었다.
“누, 누, 누구세요? 호, 혹시나 하는 말인데 제가 안 죽였어요! 전 모르는 일이에요!”
“알아요, 알아요.”
사라 앞까지 다가온 둘은 자기소개를 했다.
“로한 경에게 고용된 지크라고 해요. B급 헌터고요.”
“난 피터. 이놈 친구고, 계급은 같소.”
사라의 눈이 커졌다.
“지금, 로한…이라고 하셨나요?”
“예. 당신이 알고 있는 로한 경 맞아요.”
지크가 품 안에서 편지를 한 장 꺼내 사라한테 내밀었다.
“로한 경이 당신에게 남긴 편지예요. 읽어봐요.”
“저한테요?”
사라는 바로 편지를 펼쳐서 읽어보았다.
로한입니다.
오늘 아침, 길드를 통해 새벽에 빈민가에서 발생한 참혹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듣자마자 당신과 아이들이 먼저 걱정되더군요.
항상 이런 일이 생기면 만만한 게 빈민가 사람들이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분명 관청에서는 시체 근처에 있는 모두를 붙잡아서 끌고 가 심문하겠죠. 죄가 있든 없든 간에요.
평소라면 제가 나서서 보호해 드리겠지만, 아쉽게도 전 지금 바로 영지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긴급히 두 명의 용병을 고용해 당신에게 붙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들의 안내를 따라 최대한 빠르게 벨타디아를 벗어나십시오. 내 이름을 대면서 아로엘로 이주한다고 말하면 경비병들도 제지하지 않을 겁니다.
부디 아이들까지 모두 무사히 나의 영지로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로한 백작.
편지를 읽어갈수록 점점 심해지던 두 눈동자의 떨림은, 이윽고 마지막 줄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크게 요동쳤다.
“백…작…?”
내가 아는 그 로한의 정체가… 백작이었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