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41화 (41/200)

제41화

“브롬멜은 동남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

윌리엄의 말은, ‘굳이 동북쪽에 위치한 아로엘에서 더 멀어지는 루트인 브롬멜 성에 왜 가는 것인가?’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로한은 대답했다.

“해결할 일이 있어서요.”

그 말에 윌리엄은 로한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해결이라. 그것도 버몬드의 영지에서?

정말 많은 뜻이 담겨 있는 한 단어다.

“내가 아는 해결의 방법은 여러 가지일세. 인내와 관용으로 해결할 수도, 엄칙과 공포심으로 해결할 수도 있네. 가장 쉬운 방법은 피로 해결하는 거지.”

“…….”

“자네에게 있어 ‘해결’이라는 단어는 어떤 뜻인가?”

로한은 대답했다.

“저는 헌터로서의 해결 방법밖에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군.”

그것으로 윌리엄은 완벽히 이해했다.

아마 내일, 브롬멜 성은 로한으로 인해 큰 피바람이 한바탕 불 것이리라.

그렇다면 윌리엄이 할 일은 간단하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듣지 않았네.”

“물론입니다.”

바로 로한이 알아서 해결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다. 저 테르디아를 좀먹는 버몬드 놈이 조금이라도 타격을 더 받는다면 윌리엄 입장에서는 무조건 환영할 일이다.

노예 시장, 공포 정치, 과한 세금 정책에 공식 석상에서의 안하무인 태도까지. 버몬드 파는 내버려 두면 테르디아를 빠르게 오염시키기만 할 것이다.

“하나만 충고하지. 피로 해결하는 방법은 쉽지만, 그만큼 쉽게 자신한테 돌아오네. 괜히 성군이라 불리는 이들이 모두 관용이라는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한 방법으로 해결한 게 아닐세.”

“알고 있습니다.”

“그러리라 믿겠네.”

이후 잠시 대화가 끊겨 침묵하는 둘.

“어떤 일인지 궁금하지는 않으십니까?”

이내 로한의 입이 먼저 열렸다.

입에 가져간 찻잔을 내려놓은 윌리엄이 대답했다.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 해결하고 난 후 얘기하고 싶어지면 그때 말해주게. 난 기다려줄 수 있네.”

로한은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작게 걸려 있는 미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로한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해결되면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기대하겠네.”

말을 마친 둘은 잔을 들었다. 윌리엄은 찻잔을, 로한은 독한 양주가 든 술잔을.

윌리엄과 눈을 마주치면서 로한은 생각했다.

‘확실히 큰 인물이다.’

로한의 사적인 일을 굳이 캐묻지 않는 배려심과, 무려 버몬드와의 일임에도 굳이 로한이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는 인내심.

거기에, 반드시 자신에게 얘기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뛰어난 판단력까지.

왜 윌리엄이 휘하 장수들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인물을 버몬드 따위에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동시에 다행이었다. 데르툴족이 버몬드에게 붙어서, 그래서 윌리엄이 아닌 버몬드를 적으로 삼을 수 있어서 말이다.

* * *

다음 날 오전에, 로한은 길드 본사를 찾았다. 라가스한테 작별 인사도 할 겸 들른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로한 백작님.”

들어서는 로한을 향해 건물 안의 직원 모두가 일제히 일어서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사는커녕, 무시한 채 업무에만 집중하던 직원들투성이였던 걸 생각하면 180도 달라진 대접이었다.

이게 귀족 사회에서의 백작의 위치였다. 왕실과 교황, 3대 공작과 버몬드를 제외하면 사실상 그의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는 인물은 이제 테르디아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접견실에서 마스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백작님.”

직원의 공손한 안내를 따라 로한은 접견실 문을 두드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라가스와 낯선 중년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킁! 네놈도 양반은 못 되는구먼?”

“네?”

“오우거도 제 말하면 찾아온다고, 어떻게 딱 니 얘기 하고 있을 때 오냐?”

농을 하는 라가스의 태도는 이틀 전이랑 똑같았다. 하긴, 공작인 윌리엄도 존대를 하는 라가스가 고작 백작 앞에서 어려워할 리가.

“풋, 그랬어요?”

그래서 로한은 더 반가웠다. 자신을 예전처럼 똑같이 대해주는 것 자체가, 지위가 아닌 그 사람 자체로 봐준다는 소리니까.

라가스는 중년 남성을 소개했다.

“인사해라. 벨타디아 마탑에서 온 올리버다.”

올리버라 소개받은 머리 벗겨진 중년인이 반가운 얼굴로 로한에게 악수를 청했다.

“벨타디아 마탑의 탑주을 맡고 있는 올리버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로한 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서로 힘차게 악수하는 둘.

눈앞의 올리버 정도면 충분히 S급 헌터 앞에서도 이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인사할 자격이 충분하다.

현재 그는 테르디아에서 2번째로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이니까.

‘지금 시점에서 7클래스인가 그랬었지?’

참고로 7클래스 마법사면 엘도르 대륙 어디에서도 어지간한 초월자 헌터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 그만큼 강하고 귀한 존재다.

‘그리고 누구보다 윌리엄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게 가장 중요했다. 마탑들 역시 현재 버몬드 파와 윌리엄 파로 나눠져서 싸우는 판국인데, 다행히도 왕성에 속해 있는, 그래서 가장 규모가 큰 벨타디아 마탑이 윌리엄의 편을 들고 있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십시오.”

올리버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어제 부탁하신 물품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근데 이걸 굳이 탑주님이 직접 갖고 오실 필요는….”

“아닙니다! 소문의 S급 헌터께서 특별히 부탁한 물품인데 감히 말단 마법사를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하하하! 참고로, 이거 무료로 드리는 겁니다?”

“네?”

이 비싼 걸 무료로 준다고?

“S급 헌터가 되신 기념으로 저희 마탑에서 드리는 축하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앞으로 또 부탁하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로한 님께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계속 밝은 표정과 친절한 어투를 유지하는 올리버. 누가 봐도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는 목적이 보이는 얼굴이었다.

속마음을 읽은 로한은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죠~하하하!”

로한 입장에서는 벨타디아 마탑과 친해져서 나쁠 게 없었다. 마법 능력이 깃들어 있는 장비, 아티팩트는 고위 헌터들에게 있어 거의 필수 아이템과도 같다. 벨타디아 마탑은, 그 아티팩트를 테르디아에서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올리버 입장에서도 미래에 큰손이 될지도 모르는 S급 헌터를 미리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어두는 게 좋다.

괜히 주판 튕기다가 다른 성의 마탑에 고객을 뺏긴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결과적으로 둘 다 윈윈인 만남인 셈이다.

* * *

버몬드 파와 라가스까지 모두 만나 인사를 한 로한.

이제 한 명만 더 만나면, 벨타디아에서 인사할 사람은 다 만나게 되는 셈이었다.

그 한 명은 바로….

“아! 로한 님!”

아이들 사이를 헤치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선한 인상의 여인.

보육원 원장, 사라였다.

“어서 들어오세요. 안 그래도 지난번에 바로 가셔서 차도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었는데…!”

대답도 안 한 로한의 팔을 거의 잡아끌듯이 보육원 안으로 데려가는 사라.

질질 끌려가면서 로한은 피식 웃었다.

그래, 과거에도 이 여인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는 절대 못 사는 성격이었지.

로한은 원장실 안에서 사라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떠나신다고요?”

“네. 그래서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로한은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사라는 크게 놀랐다.

“어머나! 또 안 주셔도 돼요! 지난번에 받은 기부금만 해도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데….”

“그럼 이걸로 2년 동안 버티시면 되겠네요. 매일 운영비에 쪼들려서 고생하시는 거 다 압니다. 그러니 그냥 받으세요.”

“아니, 너무 미안해서…. 전 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나중에는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하는 사라.

로한은 절로 미소를 지으면서도, 동시에 속으로 씁쓸함을 느꼈다.

예전엔 저 모습만 보면 너무 귀여워 안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이젠 그런 감정은 전혀 들지 않는구나.

“제가 바라는 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원장님도 건강 꼭 챙기시고요. 아이들 모두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버티시려면 말입니다.”

“네! 꼭 그럴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로한 님!”

“시간 되시면 아로엘로 한번 찾아오세요. 그땐 제가 차 한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고개를 젓는 사라였다.

“정말 찾아뵙고 싶지만,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다른 곳으로 놀러 갈 생각이 없어서요. 호의만으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실언을 했군요.”

사과하면서도 로한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이렇게 거금을 선뜻 내주는 젊은 미남이 놀러 오라고 하는데 바로 거절할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 보육원을 운영하는 데 진심인 사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일 것이다.

역시, 괜히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라니까.

* * *

이곳은 한 화려한 저택 안.

늦은 저녁 시간에도 불구하고, 마법석들로 인해 방 안은 대낮처럼 밝았다.

고급스러운 바로크풍 가구들로 가득한 집무실 안에서는 두 명의 남성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육원?”

“네. 빈민가에 있는 곳입니다.”

대답하는 남성은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앞의 상석에 앉아 있는 남성, 스콧 백작이 물었다.

“로한이 그곳에 들렀다고?”

“네. 그곳에 거액의 기부금도 투척했다 합니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빈민가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보육원 원장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풋.”

스콧은 코웃음을 쳤다.

“그딴 소문이 도는 걸 보니, 로한이 본인 정체를 말하진 않았나 보지?”

“네. 다들 그냥 잘생긴 외부인 청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스콧이 책상 위 서류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뭐, 어찌 되었든 간에 보육원을 두 번이나 들렀다는 게 중요해. 그렇다면 뭔가 있는 건 확실해. 둘의 사이가 어떻건 간에.”

스콧은 전방의 부하에게 지시했다.

“‘검은 달빛’에 연락해, 최정예 멤버들만 뽑아서 지금 당장 보육원으로 보내라고 해라. 아무도 모르게 보육원에 있는 전원을 생포해서 데려오는 걸 조건으로. 만약 성공하면 두당 금화 1개씩 주겠다고 해.”

“…….”

“왜 대답이 없어?”

부하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버몬드 백작님께서, 로한과 관련된 어떠한 인물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버몬드는 벨타디아에 없다.

귀족 작위 수여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주요 식솔들을 데리고 본인의 영지인 브롬멜 성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 버몬드가 돌아가기 전에, 스콧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당분간 로한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마. 알았어? 그 주변 인물도 절대 건드리지 말고. 만약 건드리는 놈이 나오기만 해봐. 한 명당 네놈의 손가락 한 마디씩 잘라버릴 테니까!”

거의 협박과 다름없는 엄포를 놓고 차갑게 몸을 돌리던 버몬드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하지만 스콧이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난 그저 세금을 안 낸 시민을 정당한 절차를 통해 불시에 체포하려고 하는 것뿐이야. 그게 수석 집사인 나의 임무고. 로한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

“대답해 봐. 지금 내가 하려는 일에 조금이라도 월권행위가 포함되어 있나?”

“…아닙니다, 백작님.”

수석 집사란, 국왕 관할지인 벨타디아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관직이다. 그중에는 세금을 내지 않은 백성들을 체포하는 권한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런 임무를 검은 달빛이라는 암살단을 시키냐, 라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분명 또 10분 내내 얻어터지겠지.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빨리 움직여.”

“네, 백작님.”

잠시 후.

한 으슥한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검은 복장을 한 다수의 남성들이 빠른 속도로 빈민가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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