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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37화 (37/200)

제37화

로한이 레기스트륨을 활성화하는 순간.

‘……!’

달려오던 복면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먼 거리였지만, 갑자기 로한이 풍기는 기운이 강해진 것을 그는 느낀 것이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분명….

‘윌리엄 정도의 경지로군!’

방금 전,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때 윌리엄이 순간적으로 보여줬던 진정한 경지와 버금가는 기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일 수도 있다.

‘이래서 버몬드가 아무것도 못 했군.’

당연히, 지금 로한의 경지는 버몬드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괜히 자신에게 감히 SOS를 요청한 게 아니었던 거다.

이러면 방심은 금물이다.

그가 테르디아에서 유일하게 경계하는 윌리엄과 최소 동급의 경지라면, 무조건 진심으로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한층 더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

이번엔 로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순간적으로 주변 전체를 뒤덮어 버리는 강렬한 마기!

최첨단 레기스트륨 금속으로 이루어진 그의 피부가 움찔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놀란 이유는 마기의 위압감 때문이 아니었다.

‘데르툴!’

10년 넘게 지겹게 마족들과 싸워왔던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기운은 오직 데르툴족만이 뿜어낼 수 있는, 순수하고 기분 나쁜 마기다.

‘진짜 데르툴이었다니.’

설마설마했던 그의 의심이 이제는 확신으로 굳혀졌다.

동시에 가슴속에 분노의 불길이 끓어올랐다.

“그럼 살려둘 수 없지.”

순간 로한의 머릿속에 10년 동안 지구에서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데르툴족과의 전투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전우들, 납치당해서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던 힘없는 시민들, 실험체가 되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흐느적거리던 어린아이들.

…이 새끼들은 악마다. 단 한 명도 살려둬서는 안 될 절대 악이다!

[에너지원을 모두 전투력으로 전환합니다.]

[모든 신체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상승한 수치는 측정 불가입니다.]

[급격한 전환으로 에너지원이 100% 전환되지 않았습니다. 100% 전환되려면 몇 초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로한의 기운이 던전 전체를 뒤덮었다.

“컥…!”

“허윽…!”

먼 거리에 있던 버몬드 일행들조차 그 기운에 압도당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키에에엑~!

그들을 뒤쫓던 S급 몬스터, 브리트라마저도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당연히 버몬드도 마찬가지였다.

“으… 누, 누구… 크흑!”

지금 이 순간 테르디아의 절대자 중 한 명, 버몬드가 타인의 기운에 굴복당해 두 무릎을 꿇고 있는 진귀한 장면이 펼쳐졌지만, 그걸 신경 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머지는 온몸의 피부, 뼈, 내장이 찌그러지는 고통에 비명도 못 내지르는 채로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으니까.

누구보다 로한과 가까이 있던 복면인이 느낀 충격은 더 컸다.

‘이게 무슨…!’

어떻게 한낱 인간 따위가 이 정도의 기운을 내뿜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데르툴족인 자신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섰다. 아니, 이건 그보다 계급이 높은 고위 데르툴족들보다 훨씬 더 강한 경지다!

‘말도 안 돼!’

현실 부정을 할 틈조차 없었다.

저 충격적인 존재가 곧바로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눈 깜짝한 사이에 자신의 바로 코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로한!

본능적으로 그는 느꼈다.

저건 절대로 막을 수 없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는 이 엘도르 대륙에 넘어온 후 처음으로 인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방향을 꺾어 옆으로 몸을 날리는 치욕적인 행동을 펼쳐야만 했다.

천만다행으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로한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애꿎은 땅이 로한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콰과과과광!

커다란 폭발음과 먼지가 걷히고 난 후 드러난 전방의 지형은, 마치 거대한 유성이라도 하나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최소 반경 50미터 이상, 깊이 20미터 이상 움푹 땅이 파일 정도의 이 위력을 고스란히 맞으면, 제아무리 데르툴족이라 해도 멀쩡할까?

절대 아니다.

‘이건 못 이긴다!’

복면인은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저런 괴물과 맞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래서 그는 바로 도망치기로 했다.

순간 그가 서 있던 곳 바로 뒤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작은 틈이 하나 생겼다. 그곳으로 그는 몸을 날렸다.

“어딜!”

로한은 바로 그쪽으로 쫓아갔다. 눈부신 속도로 포탈 앞까지 다가온 그는 바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아쉽게도 포탈이 닫히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그래서 또다시 굉음과 함께 애꿎은 땅만 움푹 파여버렸다.

“젠장!”

안타까운 목소리를 낸 그는 천천히 에너지원을 비활성화시켰다.

“커헉! 헉, 헉, 헉…!”

“헤엑, 헤엑… 콜록, 콜록!”

저 멀리서 기운에서 해방된 버몬드 일파가 일제히 숨을 헐떡이며 기침하는 소리가 로한의 귀에 들려왔지만, 로한은 지금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곧 팔랑거리면서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지는 검은 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이것은 분명, 복면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다.

‘그렇다면, 아까 내가 이 새끼의 얼굴을 봤다는 소린데.’

로한은 바로 방금 전 목격한 장면을 다시 돌려 보았다.

[자동 녹화된 장면을 리플레이합니다.]

[30초 전으로 되감겠습니다.]

[0.25배 속도로 재생합니다.]

도우미의 목소리가 끝나자, 그의 최첨단 스크린 각막에 30초 전 장면이 다시 재생되었다.

포탈이 닫히기 직전, 로한의 주먹에 담긴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복면이 벗겨지는 모습.

그 순간 로한은 영상 재생을 멈췄다.

[재생을 일시 정지합니다.]

정지된 화면에는 복면인의 얼굴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행히도 복면이 벗겨진 후 포탈이 닫히기 직전의 0.1초 정도 되는 찰나의 장면을 로한은 목격하는 데 성공했다.

복면인의 인상은 한마디로 냉막 그 자체였다. 핏기 없는 하얀 피부에 찢어진 두 눈, 깡말라서 날카롭기까지 한 얼굴선, 그리고 감정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인형 같은 표정.

로한은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말파스!’

버몬드가의 모든 헌터들을 총괄하고 있는 말파스 남작은 버몬드가 소속 헌터가 되면 가장 많이 마주치는 귀족이다.

과거 로한도 거의 매일 그를 찾아가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다.

‘말파스가 흑막이었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에 정체를 알아내고 말았다.

버몬드 일파를 몰락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는 로한 입장에서, 흑막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매우 큰 소득이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겠군.’

데르툴족은 힘도 강력하지만, 머리가 매우 뛰어나기도 하다. 그 교활한 놈에게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로한과 윌리엄을 괴롭힐지 모른다.

맑은 호수에 던진 독 덩어리가 완전히 녹기 전에 빨리 제거해야 한다. 조금만 늦으면 호수 전체로 퍼져버릴 테니.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전방을 흘끗 바라본 로한의 신형이 곧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 초 뒤, 그가 서 있던 곳으로 다수의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몬드 팀이었다.

“…어디 갔지?”

로한이 서 있던 곳에서 멈춘 버몬드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분명 이곳에 로한이 서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그는 일행들을 향해 물었다.

“촬영 마법석으로 찍은 사람 있나?”

“죄송합니다. 찍으려고 하는 순간 사라져서….”

“이런 무능력한 새끼들!”

아무도 대답이 없자 결국 버몬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증거라도 남겨서 나중에 정치질을 통해 보복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실패해 버리다니!

[멍청한 놈!]

그때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주인님의 목소리.

버몬드는 흘끗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말파스 남작이 일행 사이에 섞여 있었다.

감정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얼굴과는 달리, 머릿속으로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격양되어 있었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이 고작 이런 잡졸들이 다가오는 걸 못 느꼈겠어?!]

‘…….’

[포기하고 바로 철수해! 괜히 서 있다가 피해만 더 늘어날 테니!]

‘…알겠습니다.’

버몬드는 바로 명령했다.

“철수한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곧 포탈 입구 쪽으로 일제히 달려 나가는 버몬드 팀 헌터들.

그들은 달리는 와중에도 최대한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혹시나 또 로한이 습격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얼굴로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브리트라의 추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말파스가 일행들에게 합류했을 때, 브리트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리가 잘린 시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브리트라를 죽인 것일까?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여기서 단 두 사람, 말파스와 버몬드뿐이었다.

* * *

새벽에 갑자기 고든가 저택 정원에 생성되었던 A+급 포탈.

포탈을 발견한 로한이 가장 먼저 들어갔고, 한 시간 뒤에 언제나처럼 윌리엄 팀과 버몬드 팀이 경쟁하듯 앞다투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5시간 뒤.

막 동쪽 산 너머로 해가 떠오를 때쯤에서야 들어갔던 모든 인원들이 다시 귀환했다.

하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살아생전 니베리우스를 다 잡아보네!”

“이게 다 윌리엄 님 덕분이야. 봤어? 진짜 어마어마하더라!”

“이 정도 성과면 한 1년은 놀고먹어도 되겠는걸? 하하하!”

일단 윌리엄 파의 분위기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몇 명의 동료를 복면인한테 잃은 것만 빼면 그들은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었다. 수많은 케르베로스의 시체들은 물론, 니베리우스를 처치했다는 업적까지.

무엇보다 니베리우스 체내의 마정석을 획득했다는 것이 가장 크다. A+급 보스의 마정석은 헌터들에게 있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재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마정석의 소유자인 윌리엄이 이런 말까지 했다.

“이 마정석은 추후에 발전 가능성이 가장 돋보이는 자에게 주도록 하겠다.”

한 나라의 공작이자, 팀의 리더이며 이번 사냥에서 가장 큰 전공을 세운 윌리엄은 이 마정석을 소유할 권리가 충분하다.

그가 마음대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반대할 팀원은 여기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전보다 부하들의 수련 욕구를 자극시키는 용도로 기꺼이 이 귀한 마정석을 보상으로 내놓은 것이다.

효과는 확실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윌리엄 파 헌터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저들은 앞으로 마정석을 얻기 위해 이전보다 더 혹독한 수련에 돌입할 것이다.

반면.

“…….”

“…….”

버몬드 파의 분위기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의 그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이번 사냥에서 버몬드 파는 B급 이상의 헌터 40%가 목숨을 잃는, 역대 최악의 피해를 봤다. 다수의 케르베로스 시체를 전리품으로 얻은 것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니베리우스를 잡았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겠지만, 이번엔 그러지도 못했다.

심지어 브리트라의 시체조차 챙기지도 못했다. 행여나 로한이 다시 암습해 올까 봐 해부할 생각조차 못 하고 도망치듯 철수했기 때문이다.

으드득!

‘로한, 이 개자식!’

버몬드는 이를 빠드득 갈면서 로한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로한이 범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버몬드 파 모두가 로한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단 한 명. 말파스의 눈빛만이 달랐다.

‘…….’

밝은 얼굴로 라가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철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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