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윌리엄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자신의 팀을 농락하듯 가지고 놀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자신의 주인님은 윌리엄 파를 척살하기 위해 그들을 몰래 뒤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윌리엄은 절대 암살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설마, 로한?’
머릿속에 로한의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젖비린내 나는 새끼가 나보다 강하다고?’
초월자를 넘어, 불멸자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신이 기척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고? 그 풋내기 놈이?
역사상 20대 초반에 초월자에 들어선 이가 엘도르 대륙에 어디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윌리엄이 아닌 이상 남은 용의자는 이제 로한 한 명이다.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서걱!
“헉! 코트 남작님!”
지금도 자신의 기감에 전혀 걸리지 않으면서 유유히 헌터의 목을 베어내고 있다.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문 버몬드는, 다시 한번 주인님에게 빌었다.
‘로한, 그 새끼를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주인님!’
그 시각.
윌리엄 파 근처에 숨어 있던 ‘주인님’의 눈썹이 꿈틀했다.
로한? 왕실 파티에서 봤던 그 어린놈?
‘단지 신체가 특이한 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파티에서 버몬드와 로한이 악수했을 때, 그는 버몬드를 통해 로한의 몸 상태를 확인해 봤었다.
몇 번이나 작전을 실패하게 만든 애송이 헌터가 얼마나 대단한 자질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검사 결과 그가 내린 판단은 이거였다.
‘마나의 흐름이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 체질로, 나라별로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희귀 케이스. 이런 체질의 헌터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빠르게 A+급까지 올라설 수 있지만, 최강의 경지에는 다다를 수 없다.’
그는 이런 특이 체질을 몇 번 경험해 봤었다. 이런 경우는 어찌 저찌 초월자까지는 빠르게 성장해도, 그 이상의 경지는 불가능하다.
정석이 아닌 편법으로 성장하는 케이스라 더 그렇다.
그래서 이번 던전 공략 때 로한은 큰 변수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윌리엄 파를 잡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불쾌하군.’
굉장히 기분이 언짢아졌다. 예상치 못하게 그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도구들이 모두 없어지게 놔둘 수도 없었다.
[알았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 은혜는 절대…!’
감격해서 대답하는 버몬드의 목소리를 그는 중간에 차단해 버렸다. 기분이 안 좋으니 영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정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냥 갈 수는 없지.’
콰앙!
“크악!”
동시에 한 명의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니베리우스의 앞발 공격에 스친 것이다.
단지 스쳤을 뿐인데도 십 미터는 넘게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걸 보니 죽지는 않았지만, 왼팔이 부러져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해 보였다.
“부상자 발생! 4팀 전원 이동!”
“암살자로부터 보호해라!”
헤이즈의 명령과 동시에 1/4에 달하는 인원이 재빨리 부상자 쪽으로 이동했다. 응급 처치를 하는 와중에도 혹시나 암살자가 달려들까 봐 원으로 둘러싼 후 주변을 감시하는 모습.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빠지면 순간적으로 니베리우스와의 전투 전력이 줄어들게 되지만, 암살자가 와서 부상자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망할 버몬드 새끼…!”
이를 악문 시모어의 입에서 분노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뜩이나 완전한 전력으로 싸워도 힘든 니베리우스와의 전투인데, 정체 모를 암살자 때문에 항시 등 뒤를 조심해야 하니 더더욱 전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나마 윌리엄 공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촤악!
크허헝!
윌리엄의 검이 또 한 번 니베리우스의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그의 순도 높은 검강이 실린 공격은, 저 광폭한 니베리우스가 순간적으로 괴로워할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니베리우스는 금방 흉포함을 되찾았다. 다시 브레스 공격을 윌리엄에게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공격을 윌리엄은 전광석화와 같은 몸놀림으로 모조리 피해내었다. 엄청나게 빠른 니베리우스의 앞발 및 깨물기 공격까지 모조리 피해내며 품 안으로 파고드는 모습.
잠시 후, 또다시 윌리엄의 검이 니베리우스의 몸에 큰 상처를 입혔다.
‘정말 언제 봐도 놀랍군!’
지켜보던 헤이즈는 감탄했다. 오늘 몇 번째 감탄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 니베리우스의 몸에 생긴 크고 작은 상처는 전부 다 윌리엄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저 거대한 괴물의 치명적이고 눈부시게 빠른 공격들을 모조리 피해내면서 품 안으로 파고들 수 있는 존재가 윌리엄 외에 존재할까?
테르디아에서는 단연 유일할 것이며, 전 대륙을 통틀어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주제에 강하군, 윌리엄.]
그 시각, 지켜보던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니베리우스 정도면 그도 인정할 만큼 꽤 강력한 마수인데, 인간 주제에 단신으로 저 정도 무위를 뽐내는 건 꽤 칭찬할 만하다. 지금의 버몬드도 저 정도의 무위는 못 보여준다.
[그래서 더더욱 그냥 놔둘 수 없다, 윌리엄.]
버몬드 놈들을 구해내기 전, 윌리엄만큼은 반드시 처치하고 간다.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지금 니베리우스와의 전투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을 이때가 바로 적기다!
그의 온몸에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윌리엄의 등 뒤에 시선을 고정한 그의 신형이 빛처럼 전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근처까지 도달한 그가, 흑빛 검강으로 뒤덮인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까앙!
‘……!’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윌리엄이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흔들리는 그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윌리엄의 두 눈동자는, 마치 분노한 수사자의 그것과 같았다.
만일 일반 인간이었다면, 저 형용할 수 없는 분노의 눈길을 받는 순간 사지가 그대로 얼어버렸을 것이다.
‘이 공격을 어떻게?’
그의 계산은 완벽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윌리엄의 무위라면, 절대로 지금 자신의 기습을 피해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설마…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지금 보인 반응 속도, 그리고 가볍게 막아내는 검에 실린 검강은 확실히 지금까지 보아왔던 경지보다 월등히 빠르고, 강했다.
니베리우스를 거의 단독으로 상대하다시피 하고 있는 윌리엄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줄 어떻게 예상했겠는가?
‘인간 주제에 감히!’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추가 공격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는 금방 정체가 탄로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진행된 그의 원대한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전력으로 몸을 날려, 다시 왔던 길 그대로 도망치는 선택을 했다.
“암살자다!”
“잡아야 한다!”
헤이즈 등이 다급히 외치며 따라가려 했다. 그때 윌리엄이 외쳤다.
“쫓지 말고 전투에 집중해라!”
커허헝!
동시에 니베리우스가 괴성을 지르며 일행들을 향해 다시 브레스를 쏘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몸을 날려 간신히 브레스를 피해내었다.
윌리엄의 외침이 없었다면 말단 헌터 몇 명은 그대로 브레스에 불타서 한 줌의 재로 변할 뻔했다.
그때, 윌리엄이 뛰어올랐다.
니베리우스가 브레스를 막 마친 그 빈틈을 윌리엄은 놓치지 않은 것이다.
서걱!
드디어, 니베리우스의 세 개의 머리 중 하나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괴로워하는 니베리우스의 모습을 본 윌리엄은 잠시 숨을 돌리면서 생각했다.
‘이제 몇 분 안에 잡을 수 있겠군.’
니베리우스는 세 개의 머리로 내뿜는 브레스 및 깨물기 공격이 가장 위협적이다. 즉, 머리가 하나 없는 니베리우스는 공격력이 1/3 제거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전력이 확 준 니베리우스는 이제 시간문제일 뿐, 잡는 건 확실해졌다.
‘그나저나, 방금 전 그놈….’
윌리엄의 머릿속에, 자신을 기습했던 암살자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검은 암살자 복장에 복면까지 쓰고 있는 상태라 누군지 정확히 정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확인한 두 눈빛은 어디서 많이 본 눈빛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기분 나쁜 눈빛 말이다.
‘분명 버몬드 놈들 중 한 명이다.’
속으로 확신한 윌리엄은, 방금 전 눈빛을 확실하게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놓았다.
던전에서 나온 후 똑같은 눈빛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그리고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억울하게 쓰러진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거기까지 다짐한 윌리엄은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올린 후 재차 니베리우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또 한 명의 목을 베어낸 로한이 다시 신형을 저 멀리 뒤로 빼내었다.
“백작님! 이번에는 도이치 준남작 님이…!”
“아아악! 도대체 어떤 새끼야!”
버몬드가 발작하듯 외치는 소리에 로한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게 누가 마기를 갖고 있으래?’
예로부터 마기를 지닌 놈들 중 악인이 아닌 이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구에서는 물론, 엘도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다. 괜히 신마대전 이후 천년간 마기 사용이 금지되었겠어?
로한 입장에서 저놈들은 전부 죽어도 싼 놈들이다.
‘지금까지 처리한 놈은 총 13명.’
심지어 13명 모두 허접한 말단 헌터가 아니라, 최소 C급 이상으로 보이는 귀족 작위의 헌터들만 골라 죽였다.
아마 버몬드가 자신의 헌터 팀을 꾸린 이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날이 아닐까 싶다.
‘포탈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전멸시키는 것도 가능하겠군.’
전멸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다. 과거처럼 버몬드가 실권을 장악한 이후 행한 폭정을 다시 겪느니, 청렴하기로 소문난 윌리엄 쪽이 실권을 잡는 게 무조건 나을 테니까.
‘다시 가볼까… 응?’
재차 암살하러 들어가려던 로한은, 갑자기 느껴지는 기운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최첨단 강화 렌즈로 제작된 그의 두 눈에, 저 먼 거리에서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한 남자를.
복면을 쓴 그는, 정확히 로한이 숨어 있는 풀숲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를 본 로한은 자신도 모르게 광선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가득 주었다.
‘강하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부터,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최소 윌리엄 수준의 강자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른다!
로한은 바로 자신의 체내 레기스트륨을 활성화시켰다. 동시에 들려오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에너지원의 일부를 전투력으로 전환합니다.]
[모든 신체 능력치가 1,000% 상승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