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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34화 (34/200)

제34화

“으, 으아아악!”

신참 헌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헉!”

“우악!”

“뭐, 뭐야!”

나머지 인원들도 이어서 비명을 질렀다. 기겁하면서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는 이들.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일행들은 더욱 겁에 질렸다. 범인이 안 보인다는 뜻은, 그들이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목을 베고 도망갈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는 이야기니까.

“어, 어떡하지?”

“일단 본대로 돌아가!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남은 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본대 쪽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행여나 범인이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지 않을까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범인은, 저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서 그들을 지켜만 볼 뿐 전혀 쫓아갈 기색이 아니었다.

“이제 알아서 미끼를 물러 찾아오겠지.”

로한은 도망가는 헌터들을 내버려 두었다.

원래 다 죽여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쓸데없는 살인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마기를 가진 놈만 죽여도 충분하다.’

저 버몬드 팀 중, 방금 전 새턴처럼 ‘나 마기 가지고 있소’라고 티 내는 놈들만 골라 죽여도 충분히 원하는 성과를 낼 수가 있다.

곧 로한의 신형이 바람처럼 서 있던 곳에서 사라졌다. 다시 ‘사냥’을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새턴이?”

“네. 암살당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콧의 보고를 들은 버몬드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전원 본대에서 이탈 금지시켜. 그리고 가지고 온 촬영 마법석 꺼내서 활성화시키라고 해. 바로 증거로 남길 수 있게.”

“알겠습니다. 전원 들어라!”

스콧이 모두에게 버몬드의 명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버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높은 확률로 윌리엄 파 놈들 짓이겠지.’

이런 암습 경험이 버몬드 입장에서는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윌리엄 파와 경쟁 구도가 형성된 이후부터는 서로가 서로를 암살하려고 노리는 경우가 매번 있었다.

던전. 이 얼마나 암살하기 좋은 환경인가?

법보다 칼이 더 가까운 이곳은, 마음껏 암살한 뒤에 시치미만 떼면 그만이다.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항변해도 ‘증거 있냐? 몬스터한테 죽은 걸 우리한테 뒤집어씌우지 마라!’라고 우기면 끝이니까.

그래서 ‘촬영 마법석’이라는 것까지 최근에 발명되었다. 말로는 절대 증거로 안 먹히니까, 아예 영상으로 저장해서 확실한 증거로 남기기 위해서다.

‘아니면 케르베로스가 아닌 다른 몬스터의 암살일 수도 있고.’

이런 A+급 던전에는 단순히 한 종류의 몬스터들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B급 이상의 던전에서 볼 수 있는 몬스터들도 가끔 종종 튀어나온다.

특히 조심해야 할 몬스터는 A-급에서 볼 수 있는 ‘자골로수스(Zaglossus)’다.

이놈은 땅속을 돌아다니면서 적을 포착했을 때만 땅 위로 솟아올라 급습을 한다. 미리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개죽음당하기 딱 좋다.

새턴이 그놈한테 당했을 가능성도 높다. 자골로수스의 앞발에 달려 있는 길고 날카로운 발톱은, 각성자의 머리쯤은 깔끔하게 자르고도 남을 정도로 예리하니까.

‘설마 로한, 그 새끼 짓이려나?’

버몬드의 머릿속에 순간, 한 시간 전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던전 입구에 들어섰을 때 즐비하게 널려 있던 케르베로스의 시체들 말이다. 모두 로한이 처치한 것이 맞다면 그 녀석도 최소 S급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만약 자신이 로한에게 한 짓을 본인이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다면, 그가 범인일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전방에 케르베로스가 다가옵니다!”

그때, 옆에서 어떤 헌터가 외쳤다.

나무들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케르베로스가 두 마리 보였다.

버몬드가 바로 마나를 끌어 올리며 외쳤다.

“스콧이 오른쪽 놈을 맡아라!”

“네!”

곧 버몬드 파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익숙하게 두 파로 나뉘어져서 각각 한 마리의 케르베로스를 협공하는 모습.

테르디아 최강의 헌터 팀 중 하나답게, 그들은 압도적이고 빠르게 케르베로스를 처치하는 모습이었다.

그중 버몬드와 스콧의 활약이 유독 돋보였다. 둘이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정확히 케르베로스의 머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초월자 경지에 도달한 힘이었다.

서걱! 촥!

쿵. 쿵.

둘의 활약으로 두 마리의 케르베로스가 모두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초반대. 윌리엄 파의 사냥 속도와 비슷했다.

버몬드가 피 묻은 칼을 옆의 헌터에게 던지듯 넘겼다. 알아서 닦으라는 뜻이었다.

이후 버몬드는 정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면에 케르베로스가 많이 몰려 있다. 탐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조금 돌아서 이동을….”

“헉! 해, 해밀턴!”

“허억?!”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

고개를 돌린 버몬드의 눈이 커졌다.

해밀턴.

B-급에 해당하는 신예 헌터 한 명이, 어느새 목이 잘린 채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누워 있지 않은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죽였는지 아무도 못 봤어?”

“난 죽은 줄도 몰랐는데…. 혹시 마법석에 찍혔어?”

“…아니요. 전투에 집중하느라 해밀턴 자작님 쪽은 안 찍고 있었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그런 걸 찍으라고 나눠준 마법석 아냐!”

화가 난 스콧이 버럭 외쳤다.

그 뒤에서 버몬드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지?’

아무리 전투 중이라 정신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바로 뒤에서 암살당했다면, 당연히 S급에 달하는 버몬드가 눈치채고도 남았을 터. 그런데, 시체를 발견할 때까지 전혀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최소 자신보다 한 단계 더 강한 자가 암살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수는 지금 테르디아에서 세 명밖에 없다.

라가스, 그리고 로한과… 윌리엄!

‘윌리엄, 이 자식이…!’

범인을 확신한 버몬드는 이를 빠득 갈았다.

윌리엄일 수밖에 없는 게 일단 라가스는 포탈 밖에서 관리 중이니까 제외다. 그러면 남은 건 로한인데, 그 어린놈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이도 나이지만, 무엇보다 그의 ‘주인님’께서 자신보다 낮은 경지라 평가하셨다. 그리고 주인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평상시 고고하고 정정당당한 척 다 하더니, 이런 식으로 추잡하고 비열하게 암살을 해?’

순간적으로 가슴에 분노가 확 치솟았지만 반대로 머리는 차가워지는 버몬드였다.

정말로 윌리엄이 나섰다면, 이건 버몬드도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윌리엄은 아직 자신보다 확실히 한 단계 위에 있는 고수니까.

“모두 항시 마나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다! 절대로 무리 밖으로 나가지 마라! 어기는 놈은 내가 직접 목을 벨 것이다!”

외친 버몬드 역시 마나를 항시 뿜어낼 수 있는 상태로 전환했다.

이후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날 선 상태로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번에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로한.

‘계획대로 되고 있다.’

로한을 경계하느라 한층 늦어진 이동 속도. 그리고 향하고 있는 방향까지.

버몬드 파는 완벽하게 로한이 원하는 그림대로 움직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윌리엄 파보다 니베리우스를 먼저 발견할 가능성은 이제 0에 수렴하게 된다.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더 문제지.’

거기까지 생각한 로한의 신형이 다시 한번 서 있던 곳에서 사라졌다.

그 시각.

반대편에서 수색하고 있던 윌리엄 파는.

“휴스턴 남작…!”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료의 시체를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기대를 모았던 헌터 중 한 명, 휴스턴 남작.

윌리엄 파에 합류해 포탈로 들어와 본 적이 오늘로 세 번밖에 되지 않은 신참 유망주가, 온몸이 반으로 갈라진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슬픈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윌리엄이, 곧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신을 거두게.”

“네, 공작님.”

헌터들이 아공간 포대 자루 안에 휴스턴의 시체를 담는 동안, 윌리엄이 헤이즈 등에게 물었다.

“목격자는?”

“없습니다. 촬영 마법석에도 찍히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 윌리엄 파는 케르베로스 세 마리와 동시에 전투를 벌였다. 윌리엄의 맹활약으로 가볍게 사냥에 성공한 뒤에야 일행들은 휴스턴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버몬드 파의 해밀턴처럼, 그 누구도 모르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다.

“버몬드 파의 짓이 확실합니다!”

시모어 백작이 분노해서 외쳤다.

“항상 버몬드 새끼들이랑 같이 던전에 들어올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진정하시오, 백작.”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입니까? 네? 그놈들 때문에 몇 명의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냐는 말입니다!”

헤이즈의 만류에도 분노에 차 붉어진 얼굴로 계속 외쳐대는 시모어.

그의 외침은 여기 있는 모두의 기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솔직히 물증이 없을 뿐, 심증으로는 100% 버몬드 놈들의 짓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죽어간 동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분노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그만하게.”

결국 윌리엄이 입을 열고야 말았다. 그제야 시모어는 분노를 억제시켰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저도 모르게 또 흥분을….”

“모두 다시 출발 준비.”

더 이상의 추궁 없이 바로 명령을 내리는 윌리엄.

“마나를 최대한 활성화한 상태로 이동한다. 최대한 밀집 대형으로 이동하며, 대형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한다.”

“네!”

“출발.”

곧 윌리엄 파도 버몬드 파랑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린 이동 속도, 한껏 경계하고 있는 것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자는 누구일까?

[소용없다, 윌리엄.]

저 멀리서 혼잣말을 하는 범인은, 엘도르 대륙 공통어가 아닌 생소한 외계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 또한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그는 형형한 두 눈빛으로 저 멀리 윌리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오늘 너희들 중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몸소 느껴보아라, 윌리엄.]

“백작님.”

“뭐야?”

스콧의 물음에 대답하는 버몬드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딱 봐도 예민하고,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라는 걸 느낀 스콧은 한층 더 조심스럽게 그한테 말했다.

“일행들의 마나가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장기간 극도의 전투태세를 유지한 상태로 이동해서, 평소보다 지쳐가는 속도가 빠릅니다.”

“그래서?”

“잠시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그 말에 버몬드가 홱 일행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허약한 놈이 벌써 마나가 떨어져!”

“…….”

일행들은 당연히 자기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딱 봐도 저기압처럼 보이는 버몬드 앞에 괜히 나섰다가는 무슨 고초를 당할지 모르니까.

그래서 그들은 최대한 지친 자신의 모습들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몸에서 일렁이는 마나가 많이 줄어든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초월자인 버몬드는 바로 그걸 눈치챌 수 있었다.

“쯧쯧쯧, 명색이 고위 헌터라는 놈들이!”

한심한 표정을 지은 버몬드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전방에 니베리우스로 느껴지는 놈이 있다. 정말 니베리우스가 맞다면, 근처에서 잠시 휴식한 뒤 전투 준비를 한다.”

“알겠습니다. 모두 들었는가!”

“네!”

일제히 대답하는 헌터들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

니베리우스! 이 던전에 들어온 목적!

만약 버몬드의 말이 맞다면,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끝없이 방황할 필요가 없다.

마나를 끌어 올린 상태에서 최소 1~2분에 한 번씩 케르베로스와 전투를 벌인 것이 벌써 세 시간 남짓. 제아무리 테르디아 최고의 헌터 집단 중 하나라는 버몬드 팀이라 할지라도 이제 지칠 만큼 지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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