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크르르르…!
또 한 마리의 케르베로스가 으르렁대더니, 곧바로 빠른 속도로 일행들을 덮쳐 왔다.
“전방에 한 마리!”
헤이즈의 외침에 일행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빠르게 퍼져서 부채꼴로 방점을 잡은 12명의 헌터들은 3팀으로 나누어 각각 케르베로스의 오른쪽, 정면, 왼쪽 머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협공으로 케르베로스의 정신이 분산되었을 그때, 윌리엄 파의 에이스들이 움직였다.
헤이즈, 그리고 A급 헌터 시모어 백작이었다.
“차핫!”
“하압!”
둘이 동시에 기합을 내며 각각 왼쪽, 오른쪽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포위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던 케르베로스는 미처 검강이 덮인 그들의 검을 피해내지 못했다.
촤악! 촥!
깔끔하게 두 개의 머리가 날아갔고, 중앙 머리만 남은 케르베로스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동시에 마지막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중년의 기사.
윌리엄이었다.
빛처럼 달려드는 그의 속도는 누구보다 빨랐고, 검 위에 씐 검강도 누구보다 빛났다. 휘두르는 검의 속도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서걱.
베어낸 케르베로스 목의 단면도 헤이즈, 시모어보다 훨씬 깔끔했다.
곧 쿵 하고 육중한 몬스터의 몸이 쓰러졌다.
단 10초.
한 마리만으로 어지간한 성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A+급 포탈 몬스터 케르베로스가 윌리엄 파의 합공에 쓰러진 시간이었다.
곧바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말단 헌터들이 케르베로스의 시체들을 챙겨 아공간 포대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그동안 헤이즈가 뒤를 돌아보며 물어보았다.
“탐지석 반응은?”
그 말에 말단 헌터가 손에 든 돌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없습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건 결계 마법 룬어가 적혀 있는 검은 비석이었다. 그 비석이 있다는 건, 바로 근처에 니베리우스가 거주하고 있는 지하 동굴이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비석을 찾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마나 탐지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저 돌이 은은하게 빛나면 주변에 비석이 있다는 건데, 지금까지 한 번도 빛나지 않았다.
벌써 한 시간째 왼쪽으로 쭉 직진했는데도 말이다.
“이 길이 아닌 건가….”
“아니.”
회의적인 헤이즈의 혼잣말에 들려오는 대답.
윌리엄이었다.
그는 앞으로 혼자 걸어가더니, 풀숲 사이에 떨어진 무언가를 손으로 집어서 들어 올렸다.
검은색 깃털이었다.
“아!”
동시에 헤이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 포탈 안에서 깃털을 떨어뜨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바로 커다란 검은 날개를 보유한 니베리우스뿐이다.
“이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렇다면 버몬드 쪽보다는 확실히 빨리 찾을 수 있겠습니다.”
헤이즈의 말에 모두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최근 버몬드 파와의 신규 던전 공략 대결 때마다 승률이 꽤 저조했었던 윌리엄 파다. 운이 나쁜 건지, 아니면 버몬드 쪽이 운이 좋은 건지 항상 보스를 먼저 발견하는 건 버몬드 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편으로 향했던 버몬드 파보다는 확실히 이쪽이 먼저 니베리우스를 토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일하게 표정 변화가 없던 윌리엄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주변을 크게 돌면서 탐색한다. 혹시 모를 니베리우스의 급습에도 대비하도록 하라.”
“네!”
윌리엄의 뒤를 따라 일제히 이동하면서 사방을 수색하기 시작하는 팀원들.
그때, 시모어 백작이 헤이즈에게 물어왔다.
“그런데, 헤이즈 경.”
“음?”
“아직 니베리우스가 잡히진 않았겠죠?”
헤이즈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소. 반대편 쪽으로 간 버몬드 파는 당연하고, 남은 건 로한인데….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니베리우스를 1대1로 어떻게 상대하겠소?”
“역시 그렇죠?”
사실 시모어도 알고는 있었다. 그 엄청난 괴물인 니베리우스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테르디아에서 윌리엄밖에 없을 것이다. 버몬드나 라가스도 아직은 힘들 것이다.
로한이 윌리엄과 비슷한 실력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방심하지 마라.”
그때, 윌리엄의 말이 들려왔다. 둘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
“던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내가 가르쳤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죄송합니다, 공작님!”
시모어와 헤이즈가 화들짝 놀라 급히 허리를 숙였다.
제아무리 테르디아에서 손꼽히는 직위에 올라와 있는 둘이라도 윌리엄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제자에 불과하다.
둘을 잠시 바라보던 윌리엄은 다시 몸을 돌렸다.
“조금 더 수색 속도를 높이도록.”
“네!”
윌리엄 파 헌터들은 갑자기 훨씬 더 긴장한 모습으로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팀의 2, 3인자가 저렇게 깨졌는데 경각심을 안 가질 해이한 이는 이 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각.
윌리엄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감이 맞다면, 어쩌면….’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는 그의 머릿속에는, 아까 전 파티에서 봤던 로한의 모습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 시각.
오른쪽으로 향한 버몬드 파는.
“…….”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 버몬드의 모습을, 모두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에는 케르베로스들의 핏자국이 즐비했다. 버몬드 파 역시, 윌리엄 파 못지않게 뛰어난 합공 실력으로 쉽게 그들을 처치했던 것이다.
곧 눈을 뜬 버몬드가 입을 열었다.
“전방에는 확실히 없어. 아무 기운도 안 느껴져.”
그는 스콧을 향해 말했다.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겠다.”
“알겠습니다. 모두 그대로 왼쪽으로 이동한다!”
일행들은 두말없이 지시를 따랐다.
일제히 버몬드, 스콧 등을 따라 이동하던 도중, 말단에 위치한 헌터들 일부가 수군댔다.
“야. 우리, 지금 믿고 따라가도 되는 거야?”
“갑자기 뭔 소리야?”
“아무리 버몬드 님이 강하다고 해도 탐지석보다 정확할 수 있어? 말이 안 되잖아? 당장 윌리엄 님도 저런 방식으로는….”
“쉿! 조용히 해!”
질문을 들은 헌터가 화들짝 놀라 흘끔 전방을 바라보았다. 버몬드한테 ‘윌리엄’이 낀 뒷담화 장면을 들키면 즉결 처형이다!
다행히 저들의 귀에까진 안 들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할 필요가 있기에, 그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동료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네가 이번 신참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버몬드 님의 감각이 엄청 뛰어나. 오늘처럼 윌리엄 파와 정면 대결을 펼친 적이 굉장히 많은데 그때마다 저런 방법으로 먼저 보스를 찾아내셨어.”
“정말?”
“그래! 지금까지 보여준 게 많으니까 이 테르디아에서 손꼽히는 헌터들이 믿고 따르는 거 아니겠어?”
“오~”
모두 사실이었다.
지금껏 버몬드는 던전 안에서 단 한 번도 탐지석 따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본인의 감이 훨씬 더 정확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거의 80% 이상의 확률로 윌리엄보다 먼저 보스를 찾아내었다.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버몬드가 그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몬드 파의 일부 수뇌부들은 어떤 방법인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스콧 마찬가지였다.
‘이 주변에 니베리우스의 마기가 안 느껴지나 보군.’
수많은 던전을 버몬드와 같이 다닌 결과 스콧이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이 던전 안 몬스터들의 기운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마기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보스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마기는 일반 몬스터들의 몇 배에 달한다.
실제로 스콧은 지금 이 주변에 케르베로스가 어디에 몇 마리나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같은 마기라서 훨씬 잘 느끼는 것이다.
자신도 이런 수준이니, 여기서 가장 강한 마기를 지니고 있는 버몬드는 훨씬 더 넓은 범위 내의 포탈 몬스터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단지 그의 범위 안에 니베리우스 정도의 강한 기운이 안 느껴질 뿐이었다.
때문에 버몬드가 윌리엄보다 던전 안에서 항상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괜히 그동안 버몬드 파의 승률이 훨씬 더 높았던 게 아니다.
“…음?”
그때, 스콧의 시야에 전방 멀리 있는 특이한 무언가가 잡혔다.
눈에 힘을 줘서 그것이 뭔지 자세하게 확인한 스콧은, 곧 정체를 확인하고는 버몬드에게 보고했다.
“전방 오른쪽에 시체 웅덩이가 있습니다.”
시체 웅덩이란, 포탈 몬스터들의 시체가 한곳에 모여 있는 장소를 뜻한다.
던전 안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며, 수많은 귀한 몬스터 재료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될 곳이다.
확인한 버몬드가 지시를 내렸다.
“말단 몇 명 보내.”
“알겠습니다. 새턴!”
“네, 백작님.”
스콧의 외침에 뒤편에 있던 남작 작위의 헌터, 새턴이 빠르게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다섯 명 정도 데리고 전방의 시체 웅덩이로 가라. 빠르게 회수하고 본대로 합류해.”
“네! 제일 뒤편에 다섯 명은 나를 따라와라!”
곧 새턴을 포함한 여섯 명은 빠른 속도로 일행을 지나쳐 웅덩이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아까 수군댔던 두 명의 헌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웅덩이에 도착한 이 중, 아까 그 신참 헌터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이 시체들은 다 뭐야?”
안에는 정말 가지각색의 케르베로스의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평범하게 썩어가는 시체나, 완전히 썩어 뼈만 남은 시체는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런데 머리가 다섯 개 달려 있는 시체나, 온몸에 촉수 같은 게 잔뜩 달려 있는 기형 시체들은 다 뭐란 말인가?
“이것들은 케르베로스가 아닌 거 같은데…?”
“돌연변이인가 보지 뭐. 이런 시체들 흔해.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담아!”
나머지 넷은 익숙한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한 케르베로스의 시체들만 골라서 토막 낸 후 자루에 담았다.
신참 헌터는 일에 참여하면서도 궁금한 점을 끊임없이 물었다.
“그런데 이 시체들은 누가 모아놓은 거야?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시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거 같은데?”
“아무도 몰라.”
“아무도?”
“고위급 헌터들도 이 현상을 알아내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결국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어.”
“진짜? 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설마 주변에 이거 옮겨놓은 또 다른 괴물이 있는 거 아냐?”
“어이, 거기!”
그때 뒤쪽에서 새턴이 그에게 외쳤다.
“누가 잡담하라고 했나? 어?! 일 안 하고 떠들기만 할 거면 당장 돌아가!”
“죄송합니다….”
사과한 신참 헌터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일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금방 열렸다. 신참이라, 이 돌연변이 시체도 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새턴에게 직접 물어보려 했다.
“근데 이 돌연변….”
그리고 그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분명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할 새턴의 머리가… 없다?
곧 그는,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그의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