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아니다.”
하지만 라가스는 이내 의심을 거두었다.
방금 케르베로스를 잡는 로한의 무위를 봤다면, 감히 인원수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게 실례다.
“네 마음대로 해라.”
원래대로라면 고작 B+급 헌터인 로한은 절대 혼자 저 포탈에 들어갈 수 없다. 최소 A+급 헌터가 포함된, 검증된 파티에 속해야만 저 케르베로스 포탈 안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엘도르 대륙에서는, 가장 먼저 포탈을 발견한 사람에게 그 포탈의 최우선 입장 권한을 주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이 권한은 본인이 사용해도 되고, 다른 헌터 팀에게 돈을 받고 팔아도 된다.
이것은 거대 헌터 집단의 포탈 독점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다. 이런 규칙마저 없었다면, 포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질과 양이 월등히 뛰어난 거대 헌터 집단이 무력으로 모든 포탈을 선점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한은 이 포탈이 생성되기도 전에 오후에 미리 선점한 상태다.
“그럼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한마디를 남긴 로한은 거침없이 포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한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라가스가 고개를 돌려 헤이즈 일행에게 말했다.
“킁. 준비 안 하시오?”
“…아!”
그제야 헤이즈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살았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무려 A+급 포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헤이즈는 다급하게 윌리엄 파의 핵심 인물로서 해야 할 지시를 일행들에게 내렸다.
“당장 우리 쪽 헌터들 모두 불러와! 윌리엄 공작님한테도 바로 연락하고!”
“네!”
“한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포탈 앞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제 일행들이 저 포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각은, 선점한 로한이 들어간 이후 정확히 한 시간 뒤부터다. 그것이 엘도르 대륙 헌터계의 공통 법칙이다.
그 안에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몬스터들을 사냥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치와 더 좋은 재료들을 얻을 수 있으니까.
특히 버몬드 파 놈들보다!
“혹시 버몬드 쪽에도 연락하셨소?”
“아까 왕실에 연락하고 오는 길이오.”
“…그렇군.”
헤이즈도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소식을 받은 왕실 쪽에서 바로 통신구를 통해 테르디아의 모든 가문에 연락을 했을 터이니, 버몬드가도 당연히 소식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시각, 버몬드 백작가 집무실 안.
“다시 말해봐라.”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 버몬드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개벽 작전이 실패했다고?”
“…죄송합니다, 백작님.”
스콧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버몬드의 주먹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스콧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라가스와 로한이!”
강렬한 마기가 일렁이고 있는 버몬드의 주먹이 스콧의 얼굴 앞에서 딱 멈췄다. 스콧은 빠르게 목숨을 건 해명을 이었다.
“갑자기 등장해서 케르베로스를 막아내는 바람에 그만…!”
버몬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로한?”
라가스는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윌리엄과 더불어 지금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S급 헌터이자, 가장 포탈에 대한 정보가 뛰어난 테르디아 헌터들의 왕이니까.
근데 여기서 로한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저도 그건 잘…. 하지만 둘이 같이 몬스터를 잡아낸 후 포탈을 봉쇄한 건 사실입니다.”
“둘이 ‘같이’?”
“네. 동시에 등장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렇다면, 미리 알고 움직였다는 소리잖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콧의 대답에 버몬드가 물었다.
“그놈들이 그걸 어떻게 알아?”
“…….”
스콧도 할 말이 없었다.
포탈이 열리는 위치를 미리 안다? 그건 지금 버몬드도 모른다. 그걸 알고 있는 이는 이번 개벽 작전을 지시한 자신의 ‘주인님’뿐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라가스와 로한이 보여준 것이다.
“망할!”
버몬드는 이를 갈면서 주먹을 스콧의 머리 위에서 치워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머지, 순간 스콧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소리도 못 들어버렸다.
이번 ‘개벽 작전’만 성공했으면, 윌리엄 파의 핵심 인물들을 모조리 죽임과 동시에, 자신이 테르디아의 전권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작전이 완벽하게 실패해 버렸다.
‘라가스가 끼어 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만약 로한이 단독으로 작전을 막아냈다면, 억지로 로한을 추궁했을 것이다.
포탈이 열리는 걸 어떻게 알아냈느냐. 혹시 포탈 내 마기와 관련된 게 아니냐.
그렇다면 네놈이 대륙 내 금지된 마기를 사용하고 있구나! 당장 저놈을 화형시켜라!
하지만 라가스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평민 출신 신입 헌터인 로한과, 대륙 전체에서 인정받는 S급 헌터인 라가스는 아예 취급이 다르다. 지금 어지간한 소국의 황제 자리보다 S급 헌터가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니까.
‘로한, 이 새끼는 왜 요즘 하는 일마다 껴 있는 거지?’
최근 며칠 사이에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말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놈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다.
버몬드의 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로한. 이제 그 이름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웠다.
“…저기, 백작님.”
그때 스콧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버몬드는 거칠게 대답했다.
“뭐야?!”
“사건은 둘째 치고, 일단 빨리 준비해서 고든가로 향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윌리엄 파는 벌써 집결 중이라고 합니다.”
스콧 말은 지금, 버몬드에게 빨리 전투 준비를 마치고 포탈 사냥을 준비하라는 소리였다.
버몬드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았어. 전원 소집시켜.”
“네, 백작님.”
작전 실패에 기분이 더러워진 것과, 윌리엄 파에게 포탈 사냥을 밀리는 건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한 파벌의 우두머리인 버몬드는 확실하게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한 시간 뒤.
고든 공작가의 정원에는, 테르디아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헌터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이번에도 헌터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서 서로를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윌리엄 파와 버몬드 파로 말이다.
“저놈들, 또 띠껍게 노려보고 있어.”
“스콧 봐. 아까 하극상해 놓고 뭘 잘했다고 고개를 들고 있지?”
“고든 공작님은 또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며? 큭큭큭.”
“운 좋은 새끼들. 라가스만 없었어도 다 죽었을 텐데….”
서로 상대방 귀에 안 들리게 수군대면서 뒷담을 하는 모습까지.
아까 전 왕실 파티에서 봤던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윌리엄과 버몬드가 미리 합류해 있다는 점이다.
“인명 피해가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공작님.”
버몬드가 뻔뻔하게 윌리엄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하마터면 테르디아의 귀중한 인재들을 한순간에 모두 잃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다 라가스와 로한 덕분이오. 다시 한번 감사하오, 라가스.”
윌리엄은 포탈을 관리하고 있던 라가스에게 인사했다.
“킁. 나 말고 로한한테나 고마워하시오. 그놈이 혼자 다 했으니까.”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라가스. 버몬드가 그한테 물었다.
“그런데, 정말 로한이 혼자 케르베로스를 잡았소?”
케르베로스를 혼자 상대할 정도면 최소 A+급 이상, 평균 S급은 되어야 한다. 참고로 테르디아에서 S급 헌터는 지금 대화하고 있는 여기 세 명이 전부다.
하지만 로한은 아까 파티에서 만났을 때, 체질이 특이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여기 셋 정도의 강자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버몬드는 더더욱 못 믿고 있는 거다.
라가스가 대답해 왔다.
윌리엄과 대화할 때와는 달리, 갑자기 싸늘해진 얼굴과 말투로 말이다.
“내 말을 못 믿겠다는 소리요?”
그 태도에 버몬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저 인간은 왜 맨날 나한테만 저런 띠꺼운 반응을 보이지? 딱히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확 나빠진 그의 되묻는 말투도 당연히 좋지 않았다.
“아니, 누가 못 믿는다고 하였소? 나는 그저….”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니오?”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리는 라가스. 더 대화하기 싫다는 표현이었다.
발끈한 버몬드가 뭐라 하려 할 때, 헌터 길드 직원 한 명이 크게 외쳤다.
“1분 남았습니다! 모두 진입 준비하십시오!”
1분!
그 말에 모든 이들의 대화가 멈췄다.
이제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일 시간이다. 그것도 상대방 파벌과 경쟁하는 상황!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대열을 갖추고, 체내의 마나를 천천히 끌어 올리는 모두들.
포탈 앞에는 갑자기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 들어가시오!”
라가스의 외침에 윌리엄과 버몬드도 외쳤다.
“출발한다!”
“모두 입장해라!”
양쪽 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포탈로 달려갔다. 정원의 헌터들 모두가 포탈 안으로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일행들이 가장 먼저 본 광경.
그것은 입구 앞에 즐비하게 쓰러져 있는 케르베로스의 시체들이었다.
“로한이 처치한 것 같습니다.”
헤이즈가 윌리엄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포탈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로한 한 명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예상이었다.
윌리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 혼자서 케르베로스를 처치했다는 헤이즈 등의 증언도 증언이지만,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로한의 몸에서 느껴지던 내력을 생각해 보면 혼자서 이런 무위를 펼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중앙 쪽으로 이동한 걸로 보입니다.”
헤이즈가 말을 이었다. 시체들이 저 멀리 정면에 주르륵 널려 있는 것만 봐도 로한의 동선을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면으로 이동하면 좀 더 빠른 속도로 내부로 진입이 가능합니다.”
헤이즈의 물음에 윌리엄은 대답했다.
“정면에 니베리우스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일단은 천천히 사냥하면서 증거부터 모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답한 헤이즈는 모두에게 명령했다.
“좌측으로 전진한다!”
곧 윌리엄 파 전원이 좌측으로 꺾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면에는 사냥할 몬스터가 현저히 적어서 안 되고, 오른쪽에는 버몬드 파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동할 수 있는 루트는 왼쪽 한 곳뿐이었다.
그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한 버몬드 역시 명을 내렸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모두 우측으로 전진!”
스콧의 명령에 버몬드 파도 반대편으로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몬드가 이어 외쳤다.
“속도를 높인다! 윌리엄 쪽 놈들보다 빨리 니베리우스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니베리우스.
이 포탈의 보스 이름이다.
A+급 몬스터인 케르베로스를 처치해서 얻는 재료들과 경험치도 쏠쏠하지만, 보스인 니베리우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특히 니베리우스의 심장에 박혀 있는 거대 마정석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이 마정석은 여러 용도로 쓰이지만, 주로 고위급 헌터들이 체내에 마나를 흡수해 자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사용된다.
‘드디어 윌리엄을 넘어설 기회가 왔다!’
버몬드의 두 눈이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그동안 내력으로 흡수할 재료가 다 떨어져서 잠시 정체기에 있었는데, 드디어 한 단계 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게 다 ‘주인님’의 은총 덕분이었다.
그 시각.
한 시간 먼저 들어온 로한은 어디 있을까?
“역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군.”
좌우로 갈라져서 이동하는 두 무리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혼잣말을 하는 로한.
의외로 그는 던전 입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근처의 나무 위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 이제 진짜 사냥을 시작해 볼까?”
말을 마친 로한의 신형이 나무 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