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반응한 이들은 모두 높은 등급의 헌터 자격증을 보유한 강자들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노인일 뿐인 고든 공작은 무슨 상황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고든이 놀라 바깥을 향해 크게 외치자, 바로 한 명의 경비원이 헐레벌떡 만찬장 안으로 뛰어왔다.
“고, 공작님! 큰일 났습니다! 저택 앞마당에 거대한 포탈이…!”
“뭐라?!”
고든이 경악하던 그때.
대저택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괴성이 들려왔다.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듯한 이 소리. 헌터들은 듣기만 해도 모두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최소 B+급 이상의 초대형 몬스터다!
“헌터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가라!”
헤이즈가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이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콰앙!
갑자기 벽 한쪽이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곳을 통해 모두가 바깥 광경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든 공작가의 정원 중앙에 어느새 생겨나 있는 커다란 검은 포탈. 하지만 일행들의 시선은 포탈보다,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에 모두 몰려 있었다.
세 개의 머리에 달린 여섯 개의 눈으로 일행들 전체를 노려보고 있는 검은 존재. 헤이즈는 그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케르베로스…!”
2년 전, 갑자기 국경선에 등장한 A+급 포탈에서 다수의 케르베로스가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테르디아의 모든 헌터들이 출동해서, 수많은 인명 손실을 내면서까지 치열하게 혈투를 벌였던 기억이 헤이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필 왜 여기에 A+급 포탈이…!’
테르디아 역사상, A+급 이상의 포탈이 생성되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럼 그 포탈이 바로 눈앞에 생성될 확률은 얼마나 적을까?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당첨된 일행 전체는, 보상으로 일생일대 최대의 위기에 몰려버렸다.
‘큰일이다!’
지금 저 케르베로스를 1대1로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같은 A+등급의 헌터인 헤이즈 한 명뿐이다.
그나마 상대가 가능한 거지, 단번에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최소한 5분 이상의 치열한 전투를 펼쳐야 잡을까 말까다.
케르베로스가 눈앞의 한 마리가 다라면 합공해서 빠르게 잡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헤, 헤이즈! 저, 저기 또 나오고 있네!”
고든이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외쳤다. 그쪽을 바라보니, 포탈 바깥으로 천천히 세 개의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또 한 마리의 케르베로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문제다. 이제 저 포탈에서 저 강력한 몬스터가 계속해서 쏟아질 것이다.
두 마리가 열 마리로 불어나는 데 아마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막아야 한다!’
케르베로스가 더 늘어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포탈을 봉쇄해야 한다.
“전원 전투 준비! 목숨을 걸고 공작님을 지켜라!”
헤이즈의 외침에 모든 헌터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무기를 뽑아 들고 마나를 활성화시키면서 부채꼴로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파티 사냥을 해본 이들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움직임이었다.
헤이즈는 이번에 경비원한테 지시했다.
“어서 라가스한테 소식을 전해! 당장 여기로 테르디아의 모든 헌터들 집합시켜!”
“네!”
경비원이 뛰어가는 모습을 본 헤이즈 역시 마나를 급격하게 끌어 올렸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선에서 막아야 한다.’
어차피 인명 손실 없이 막아내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히려 자칫 잘못하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여기는 왕성 벨타디아고, 왕실 파티가 끝난 지 얼마 안 됐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아직 수도에 남아 있을 테니, 불러오는 속도도 평소보다는 빠를 것이다.
그들이 빨리 도착하기만 한다면, 최소한의 손실로 방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웅-!
곧 헤이즈가 뽑아 든 검에서 검강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각성자를 뛰어넘은, 초월자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동시에 케르베로스가 움직였다.
쾅! 하고 남은 벽을 오른쪽 머리로 받아서 무너뜨리더니, 세 개의 입을 쩍 벌린 채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였다.
왼쪽에서 무언가 빛의 속도로 케르베로스 쪽을 향해 날아오더니,
서걱!
깔끔하게 베는 소리와 함께 일행들 바로 앞에 착지했다.
동시에,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는 모습이 일행들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
일행들의 휘둥그레진 눈이 자연스레 당사자에게로 향했다.
일행들에게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윌리엄과 악수했던 남자. 하지만 그것보다는, 왕자의 청혼을 거절한 아린의 친남매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남자.
‘로한?’
“킁!”
그때,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신형이 오른쪽에서 날아왔다.
커다란 덩치의 그는 강기가 일렁이는 거대한 망치를 전력을 다해 케르베로스의 또 다른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빠각!
두개골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케르베로스의 오른쪽 머리가 축 늘어졌다.
이후 덩치에 맞지 않게 가볍게 착지하는 그의 이름을 헤이즈는 정말 반갑게 외쳤다.
“라가스!”
테르디아 헌터 길드의 총책임자이자 윌리엄에 이은 또 다른 S급 헌터, 라가스는 슬쩍 한 손을 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후 바로 로한에게 말을 거는 라가스.
“킁, 제법이구만? 꼬맹이 녀석.”
“감사합니다.”
의례적으로 로한이 대답하던 그때.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케르베로스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느새 남아 있던 머리도 깔끔하게 잘린 상태로 말이다.
라가스가 착지할 때, 로한이 남은 목까지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저놈 한번 혼자 상대해 봐. 실력 좀 보게.”
말하면서 라가스는 턱짓으로 막 포탈에서 튀어나온 다른 케르베로스를 가리켰다.
로한은 곧장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케르베로스의 코앞까지 도착한 그는, 뛰어오르면서 들고 있던 광선검을 연속으로 빠르게 휘둘렀다.
워낙 빨라서, 고든 등의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그저 어둠 속에서 잠시 무언가 번쩍하고 빛났다가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로한의 착지와 동시에,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머리가 모두 바닥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이후 힘없이 쓰러지는 머리 잃은 몸통은 덤이었다.
‘!!!’
헤이즈의 눈이 부릅떠졌다.
A+급 헌터인 자신이 전력을 다해야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저 괴물을 저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잡아낸다고?
‘서, 설마 S급 수준의 헌터?!’
믿을 수 없었다. 이제 20살로 보이는 어린놈이 라가스, 버몬드, 윌리엄와 같은 수준의 초월자라고? 말도 안 돼!
헤이즈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같은 생각을 하며 경악한 표정으로 로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라가스만 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로한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하는 라가스.
‘이 자식… 설마?’
거기까지 그가 생각했을 때, 로한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봉인하시죠?”
“…아.”
상념에서 벗어난 라가스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미리 준비해 온 아공간 주머니에서 커다란 결계석을 하나씩 꺼내서 포탈 주변에 팔문 형식으로 박는 모습.
결계석을 모두 설치한 그는 손을 탁탁 털면서 고든 등을 향해 외쳤다.
“봉인 끝났수다!”
그러자 일행들의 표정이 일제히 풀어졌다.
“휴우, 살았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여자 한번 못 사귀어보고 갈 뻔했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들 중 일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든이 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이제 포탈에서 무더기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일은 없어졌다.
물론, 완벽하게 차원을 봉인하는 건 아니라서 간간이 한 마리씩 튀어나오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이제 여기 있는 인원들만으로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
그들을 바라보며 로한은 생각했다.
‘이로써 미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과거에는 로한과 라가스 없이 고든 일행들만으로 저 케르베로스를 상대했어야만 했다.
그때의 상황을 후대 사람들은 ‘고든가 포탈 대참사’라고 불렀다.
- 고든가 포탈 대참사 :
500주년 파티 직후 새벽에 갑자기 고든가에 생겨난 A+급 포탈로 인해 벌어진 참사.
당시 뒤풀이를 위해 고든가에 모여 있던 윌리엄 파 귀족들이 대부분 전사하고 만다. 이때 입은 피해는 고든 공작과 헤이즈 백작을 비롯, 테르디아 전체 전력의 1/3 이상에 달한다.
이후 공석이 된 공작 자리에 버몬드가 앉게 되고 다른 빈자리도 버몬드 파의 귀족들이 모두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테르디아는 버몬드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이 포탈 때문에 윌리엄 파의 기세가 확 꺾였지.’
황제와 가장 가까운 궁내부 장관 위치에 앉아 있던 고든과, 총사령관의 바로 밑 직위이던 원수 헤이즈.
윌리엄의 양쪽 팔이라 볼 수 있는 둘을 포함, 거의 70%의 전력에 달하는 휘하 헌터들을 모두 잃게 된 윌리엄은 사실상 팔다리가 모두 잘리고 몸통만 남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버몬드 파와의 정치 알력 싸움에서 급속도로 열세에 몰리게 된다.
후대 사람들은 고든가 포탈 대참사를 버몬드 vs 윌리엄 파벌 싸움에서 버몬드 파가 승리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이제 미래는 뒤바뀌었다.
‘버몬드가 기세등등해서 날뛰는 꼴은 못 보지.’
로한에게 있어 버몬드는 반드시 없애야 할 주적 1순위다.
과거 어머니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죽인 원한, 과거 자신의 연인 사라를 죽인 원한, 그리고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데르툴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당사자.
윌리엄 파를 도와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적의 적은 동지니까.
“킁. 그나저나, 너 이 방법은 어떻게 알았냐?”
라가스가 로한에게 물어보면서 주머니에서 작은 돌 하나를 꺼내었다. 검게 빛나는 돌 주변은 마기로 요동치고 있었다.
포탈 안의 보스 몬스터들의 심장 부위에서 아주 희박한 확률로 얻을 수 있는 마정석. 그 위에 텔레포트 마법 룬어가 잔뜩 새겨져 있었다.
“진짜 포탈이 생성되는 곳에 가까이 가면 마기가 요동치네.”
“네. 그 돌을 이제 테르디아 곳곳에 설치해 두면, 언제 어디서 포탈이 열릴지 알 수가 있습니다.”
“킁.”
아까 처음 만났을 때, 로한은 이곳에 새벽에 포탈이 생겨난다고 자신에게 진술했었다.
당연히 그는 믿지 않았다. 그러자 로한은 바로 이 ‘포탈 측정기’를 꺼내서 라가스를 설득했다.
그래서 로한이 파티에 참여하는 동안 라가스는 한번 이 측정기를 실험해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기존에 생성되었던 포탈에 가까이 갈 때마다 측정기 위의 마기가 요동치는 것이 아닌가?
이후 그는 로한이 미리 말해두었던 이 장소까지 몰래 잠입했다. S급 헌터인 그가 마음만 먹으면 제아무리 공작가라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과 똑같이 마기가 요동치는 걸 그는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군그래.’
안도하고 있는 고든 일행들을 바라보며 라가스는 생각했다.
만약 그가 로한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혹은 끝까지 의심해서 로한과 함께 이곳에서 미리 기다리지 않았다면 오늘 윌리엄 파의 대부분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전 포탈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때 로한이 한 말에 라가스가 눈을 끔뻑였다.
“지금?”
“네.”
“혼자?”
A+급 케르베로스 포탈에 혼자서 들어가겠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