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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29화 (29/200)

제29화

“소문 많이 들었네! 버몬드일세. 반갑네!”

호기로운 모습으로 로한에게 손을 내미는 버몬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로한도 예의를 갖추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서로에 대한 치열한 탐색전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버몬드는 로한을 파악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왜 아무것도 안 느껴지지?’

맞잡은 손을 통해 느껴지는 내력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뭘 느껴야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게 아닌가?

그래서 버몬드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내력을 파악할 수 없다. 이 경우는 그가 알기로는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상대방이 내력이 아예 없는 평범한 일반인일 경우.

하지만 로한이 일반인일 리가 없으니 이건 해당 사항이 없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한참 강할 때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해지면 상대적으로 약한 자가 자신의 내력을 확인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나보다 강하다고?’

그게 버몬드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됐다.

본인도 지금 실력에 비해 엄청나게 젊은 나이다. 괜히 윌리엄 파가 자신을 집중 견제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버몬드가 윌리엄의 나이쯤 되면 지금의 윌리엄을 넘어설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싹을 꺾어 놓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로한이 나보다 강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버몬드가 현실을 부정하던 그때.

[그만.]

갑자기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순간 속으로 움찔한 버몬드는, 바로 악수하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런 그에게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상대방은 나로서도 처음 보는 특이 체질이다. 일반적으로 심장이나 단전에 모여 있어야 할 마나가 온몸에 퍼져 있어. 그래서 네가 파악하지 못한 거다.]

‘그렇다면 저보다 강한 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다. 지금 너보다 어린 나이에 불멸자의 경지에 들어서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휴우… 알겠습니다.’

그제야 속으로 안도하는 버몬드. 그의 ‘주인님’이 하신 말씀이니,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주인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저놈은 최대한 네 편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라. 만약 실패해서 윌리엄한테 뺏긴다 하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마라.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놈이라, 평범한 계략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속으로는 공손하게 대답하면서도, 겉으로는 호기로운 모습을 잃지 않으며 로한한테 말을 거는 버몬드였다.

“건장한 게 보기 좋구만! 조금 이따 얘기 좀 더 나누자고. 지금 당장 시간을 갖고 싶지만 곧 국왕 폐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해서 말이지.”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공손히 인사하는 로한.

그의 각막 스크린에는 방금 측정한 버몬드의 능력치가 나열되어 있었다.

- 상대방 능력치

힘 : S+

체력 : S

지구력 : A

마나량 : SS

마나 정제도 : A+

- 총 평가 : 상대방은 현재 초월자 숙련 단계이며, 곧 마스터 경지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윌리엄보다는 한참 아래군.’

평가 항목만 보면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윌리엄과 버몬드. 하지만 높은 경지에 올라설수록 한 단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특히 초월자 수준에서 한 단계 차이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 봐도 된다.

문제는, 지금 경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버몬드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마기. 이게 문제였다.

‘저놈의 몸속 마나가, 데르툴 놈들이랑 똑같았어.’

순수한 마기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마족, 데르툴과 똑같은 힘을 가졌다라….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이 정도면 데르툴족이나 리치 같은 금단의 흑마법사한테 마기를 받은 걸 넘어서, 거의 버몬드 자체가 마족의 현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만약 버몬드가 데르툴족이다?

이건 테르디아를 넘어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빨리 정체를 파헤쳐야겠군.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말이지.’

로한이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로한 님.”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몬드의 뒤편에 서 있던 화사한 미녀가,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버몬드 백작님의 사촌 동생인 스튜어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얼떨결에 스튜어트와 인사를 주고받은 로한.

치마를 잡은 채 허리를 숙인 스튜어트가, 고개를 들더니 똑바로 로한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

동시에 로한은 느꼈다.

스튜어트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정순한 마기를.

로한의 경험상, 이건 정신 계열 흑마법 중 하나였다.

‘유혹 마법이군.’

데르툴 놈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정신 계열 마법이라 로한 입장에선 모를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파훼법도 알고 있었다.

로한은 바로 그 파훼법을 적용했다.

[각막 스크린 전체에 마나 반사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지금부터 각막 스크린에 닿는 모든 마나를 적에게 반사합니다.]

각막 바로 앞의 공기 분자를 순간적으로 재배치해서, 적의 정신 계열 마법용 마나를 100% 반사시키는 기술.

이것은 에드먼을 포함, 지구의 수많은 기술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최첨단 사이보그 기술 중 하나였다.

모드가 적용되자마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마기를 쏘아대던 스튜어트의 눈빛이 크게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

순간적으로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에 스튜어트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반사된 마기를 직격탄으로 맞아버린 그녀는 역으로 본인이 유혹 마법에 걸려버렸다.

버몬드가 그녀에게 마법을 거는 방법만 가르치고, 역으로 방어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그 결과.

‘아…!’

로한을 쳐다보는 스튜어트의 눈이 하트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그녀의 시선에는 오로지 로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온 신경은 로한의 행동, 표정, 시선,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로한만이 그녀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돌아서는 로한. 하지만 스튜어트는.

“네에….”

그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로한 님이 다른 분을 만나고 싶으시다는데 감히 어찌 붙잡을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저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스튜어트는 행복했다.

“뭐 하는 거냐?”

옆에서 버몬드가 말을 걸어도 소용없었다. 지금 그녀는 로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

“스튜어트!”

버몬드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스튜어트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고정한 채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버몬드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이년이 되레 유혹 마법에 걸린 거야?’

도대체 마법을 얼마나 허술하게 배웠길래! 스콧 이 자식, 도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야?

한심하게 그녀를 쳐다보던 버몬드는 시선을 루이스에게 돌렸다.

그래, 스튜어트는 실패해도 최소한 너만큼은 성공하겠지, 라는 심정으로….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네?”

하지만 루이스의 상태가 더 심각했다.

스튜어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바로 아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청혼 공격을 하고 있었다.

“당신을 본 순간 첫눈에 반했습니다. 부디 저와 결혼하여 주십시오! 평생 당신을 공주님처럼 받들며 살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마음만 받겠….”

“부디 받아 주십시오! 제가 뭐가 모자랍니까? 가문, 외모, 신분. 모든 게 다른 사람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전 버몬드 백작님의 친척입니다! 지금 테르디아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루이스!”

듣다 못한 버몬드가 버럭 소리쳐 버렸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마력을 담았기에, 루이스도 움찔하며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국왕 폐하께서 직접 주최하는 왕실 파티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지금 저에게 이 여인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이 새끼가…! 스콧! 이 둘 데리고 잠깐 나가 있어!”

“안 됩니다! 그녀를 1초라도 보지 못하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이, 이거 놓으시오!”

곧 루이스와 스튜어트는 스콧의 손에 강제로 테라스 쪽으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버몬드는 스콧에게 귓속말을 했다.

“둘 다 폐기 처분해 버려.”

“알겠습니다.”

그 한마디로 두 사촌 동생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오늘 이후 테르디아 어디에서도 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한 번이라도 작전을 실패하면 가차 없이 버리는 버몬드의 성격이 자신의 혈육한테도 똑같이 적용된 것이다.

두 남매가 사라지고 난 후, 잠시 소란스러웠던 파티장은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린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 대신관님.”

밀리오가, 왠지 모르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정말 무례한 자로군요. 이렇게 중요한 왕실 파티에서 본인이 주인공인 것처럼 소란을 피우다니.”

“정말 저를 좋아하셨나 봐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한데….”

“네? 감사하다뇨. 설마, 저분에게 마음이 남아 있는 건….”

“그건 아니에요. 초면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백받는 거, 저 굉장히 안 좋아하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그제야 표정이 풀린 밀리오. 그러면서 속으로 ‘아린은 공개 고백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되뇌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국왕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관리의 외침에 모두의 고개가 계단 쪽으로 돌아갔다.

이 파티의 주인공, 필리프 국왕이 왕비와 왕자를 데리고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윌리엄, 버몬드를 포함, 모두가 허리를 숙여 그들을 맞이했다.

“고개를 들라.”

한마디로 모두의 고개를 들게 만든 필리프.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모두에게 미리 준비한 연설을 시작했다.

“500주년을 맞아 열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파티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환영하오. 특히 먼 거리를 이동하여 매우 피곤할 텐데도 파티에 참석해 준 각국의 사절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먼저 전하겠소. 테르디아는 대륙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음?”

필리프는 연설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들, 왕세자 조셉이 갑자기 자신을 지나쳐서 앞으로 홀린 듯이 걸어가기 시작한 것을 목격한 것이다.

“왕자님, 지금 움직이시면 아니 됩니다.”

고든 공작이 급히 그를 말렸지만, 오히려 조셉은 손으로 그를 막아내면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아린의 앞이었다.

“……?”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는 조셉의 행동에 아린의 눈이 커졌다.

그때, 조셉이 입을 열었다.

“제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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