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23화 (23/200)

제23화

“그러니까….”

로한의 설명을 모두 들은 밀리오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이들 전원이 마기를 내뿜었다, 이 말씀이시죠?”

“네.”

로한의 대답에 밀리오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대륙 전체가 발칵 뒤집힐 사건입니다. 며칠 전 알비치 백작의 사건 따윈 비교도 안 됩니다.”

“신마대전 이후 이런 일은 처음 아닌가요?”

“맞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신마대전 이후 대놓고 마기를 끌어다 쓰는 인간은 지금까지 엘도르 대륙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려 천 년 동안 말이다.

그래서 밀리오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지금 이들의 존재가, 혹시 천 년 만에 다시 일어날 신마대전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진짜라면 왕성에 도착하자마자 버몬드부터 강하게 추궁해 봐야겠습니다. 사실, 캄튼은 비공식적으로 버몬드 밑에서 일하고 있는 A-급 헌터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짐짓 놀라는 척을 하는 로한. 하지만 회귀한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밀리오 역시 테르디아에서 손꼽히는 초월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B급 이상의 헌터들 신상 명세 정도는 모두 외우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급부상한 캄튼 역시 밀리오 입장에서는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심문이 끝난 후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 전까지는 모든 게 추측일 뿐입니다. 제가 로한 님을 안 믿는 건 아니지만….”

“이해합니다.”

대신관인 밀리오 입장에서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에는 반드시 증거가 필요한 법이니까.

밀리오는 지금, 그 증거를 얻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려 했다.

그 시각.

어두운 밀실 안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흑마법사 한 명이 마법구에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암살 실패입니다. 캄튼과 데르마(Derma) 둘도 산 채로 잡혔습니다.”

대답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스콧 백작의 목소리였다.

“대신관인 밀리오가 증거를 얻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임무에 투입된 전원을 제거해라.”

“네.”

흑마법사는 대답과 함께 마법구에 불어넣던 마나의 양을 더 많이 늘렸다. 그러자 붉은색으로 빛나던 마법구가 갑자기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 * *

“일단 심문 전에 디바인 마크부터 이들의 몸에 그릴 겁니다. 만약 이들이 몸에 마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디바인 마크가 붉은빛으로 변할 것입니다.”

설명을 마친 밀리오는 우선 기절한 캄튼의 팔뚝 부근의 살에 신성력을 담은 손가락을 갖다 댄 후, 천천히 디바인 마크를 그렸다.

완성된 순간, 마크가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었다.

“오, 신이시여…!”

그 순간 밀리오는 탄식하고 말았다. 정말로 마기를 품고 있다니!

이러면 더 이상 심문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다시 입을 연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강하게 서려 있었다.

“이제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깨운 뒤에… 어?”

밀리오의 눈이 커졌다.

캄튼의 양옆에 묶여 있는 1호와 2호의 몸속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마기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옆에 있는 밀리오한테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동시에 둘의 몸이 눈에 띄게 크게 부풀어 올랐다. 온몸이 터질 정도로!

밀리오는 놀라 다급하게 외쳤다.

“폭발합니다! 모두 조심…!”

콰콰콰쾅!

마차 주변에 굉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1호와 2호를 포함한 모든 암살자들의 시체가 일순간 폭발해 버린 것이다.

사방이 전부 피와 뼈, 살점과 폭발에 휩쓸린 흙들로 완전히 뒤덮였다.

“큭…!”

밀리오는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신성력을 끌어 올려 실드 마법을 사용해서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워낙 폭발력이 세서 내상을 살짝 입어버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자가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라 괜찮았다. 오히려, 로한 등이 더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는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네.”

옆에 멀쩡하게 서서 대답하는 로한이었다.

그럼에도 밀리오의 걱정스러운 외침은 계속되었다.

“정말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정말 괜찮습니…?”

로한은 대답을 채 잇지 못했다.

밀리오의 물음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아린 님?”

“네! 괜찮아요, 대신관님.”

“혹시 아픈 곳이 있으시면 참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지금 제가 바로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어느새 아린에게 달려가 절절한 얼굴로 외쳐대고 있는 밀리오.

로한은 속으로 한참 혀를 찬 뒤에야 입을 열었다.

“혹시나 싶어 자동 실드 마법이 활성화되는 마차를 샀습니다. 그래서 멀쩡한 거니, 걱정 마시고 이리 오세요.”

“아! 정말 다행입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아린 혼자 마차 전체를 뒤덮을 수 있는 에너지 실드를 칠 수 있는데 뭣 하러 일회용 마차에 그런 쓸데없는 돈을 쓰겠나?

하지만 밀리오는 그 말에 진심으로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방금 전 폭발은 도대체….”

밀리오도 지금 같은 상황은 듣도 보도 못했다. 갑자기 마기를 내뿜으면서 모든 암살자가 자폭을 하다니.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벨타디아에 있는 대신전으로 가서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폭발 때 이들의 몸 안에서 느껴졌던 건 분명 마기였으니까요. 다만, 모두 자폭을 해버려서 증거가 없어졌다는 게 문제긴 합니다만….”

“한 명 남아 있습니다.”

로한이 바로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밀리오의 눈이 커졌다.

캄튼이 유일하게 폭발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걸 그제야 확인한 것이다.

왜 혼자 멀쩡한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다행이었다.

“잘됐군요. 캄튼 한 명만 있어도 증거로서 충분합니다.”

밀리오는 곧 캄튼의 신체에 또 하나의 마크를 그렸다. 신체의 마나를 완전히 봉인하는 속박용 마크였다.

그렇게 완전히 캄튼을 무력화시킨 뒤 조심스럽게 마차로 옮기는 밀리오의 모습을 보면서, 로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미리 카르만테(Calmante)를 투약하길 잘했군.’

카르만테는 마나 안정제다. 주로 마기를 폭주시켜서 광전사 모드 및 자폭 공격을 하려는 이들에게 투여하는 약물이다.

이 약물 효과가 남아 있는 동안 당사자는 마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어떠한 기술도 사용할 수 없다. 당연히 마나 폭주도 불가능하다.

아까 전, 혹시나 싶어 캄튼한테만 이 카르만테 약물을 투여했었던 로한이었다.

왜냐하면, 이럴 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10년간 전장에서 굴렀던 경험이 이럴 때 도움이 된다.

‘그나저나, 진짜 자폭을 시킬 줄이야.’

사방을 뒤덮은 시체 조각들을 보는 로한의 눈빛은 꽤나 심각했다.

‘이건 데르툴들이 현혹된 전사들한테 쓰던 방법인데.’

지구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풀렸던 현혹된 사이보그들이, 그들을 조종하고 있던 데르툴 마법사의 명령 한 번에 바로 동귀어진식 자폭 공격을 하던 기억이 또다시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정말 데르툴의 짓인 걸까?

물론, 인간 흑마법사의 짓일 수도 있다. 신마대전 때도 흑마법사들이 정신 지배 마법을 건 이종족들을 자폭 도구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계속 고민하던 로한은 이내 포기했다. 혼자 고민해 봤자 답은 절대 안 나오니까.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버몬드의 얼굴을 봐야겠군.’

이 모든 일의 뒤에는 캄튼과 비밀 계약을 한 버몬드가 있다.

아무래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버몬드의 음모를 파헤쳐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 *

“뭐?!”

버몬드의 경악한 외침이 그의 대저택 내 집무실에서 터져 나왔다.

“봉인된 마기를 푼 것도 모자라서, 캄튼이 생포되기까지 했다고?”

“네….”

“이런 미친 새끼야!”

퍽!

버몬드의 주먹이 스콧의 얼굴을 강타했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뒤의 벽에 부딪쳐 버린 스콧.

하지만 그는 쓰러지자마자 곧바로 일어나서 다시 버몬드 앞에 섰다.

그리고 또다시 날아가는 주먹.

퍽! 퍽! 퍽!

맞고, 날아가고, 다시 일어나 되돌아오는 행동을 반복하는 스콧.

얼굴이 부어오르고 코와 입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가 점점 굵어졌지만 스콧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픈 척이라도 했다간 바로 죽는다!

스콧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후우… 야, 너.”

열 번은 넘게 주먹을 휘두른 뒤에야, 담배 연기와 함께 입을 여는 버몬드.

“지금, 네가 말한 보고가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지?”

“네. 이대로 두면 만천하에 버몬드 파의 귀족이 마기를 대놓고 사용한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그 뒤에는?”

“…바로 아르카디아 성국에서 성녀를 포함한 정예 이단 심판관들이 파견 올 겁니다. 그러면 모든 비밀이 밝혀질 겁니다.”

퍽!

또다시 버몬드의 주먹에 스콧이 벽으로 날아갔다.

“아는 새끼가 이따위로 일 처리를 해?!”

버몬드의 버럭 외치는 목소리가 집무실을 가득 울렸다.

버몬드가가 마기를 사용해서 데르마(Derma) 헌터들을 키우고 있다는 비밀.

그게 밝혀지는 순간, 버몬드 파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면 버몬드의 원대한 목표도 그대로 중단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후우… 해결 방법도 당연히 생각해 놨겠지?”

“네.”

스콧은 터져서 피범벅이 된 입술로 해결책을 바로 내놓았다.

“일단 더 이상의 습격은 자제하려 합니다. 괜히 또 실패하고, 거기에 또 생포되는 인원이 생기면 우리만 점점 곤란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습격이 또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봉인된 마기를 푼 캄튼 팀을 상대로 피해 없이 승리한 걸 보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로한 일행의 실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봐야 합니다.”

“망할!”

버몬드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 로한 등이, 초월자 이상의 경지를 숨기고 있었다는 건 그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패착이었다. 그 누가 20대 초반의 신인 헌터가 A급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고 예상했겠는가?

“일단 벨타디아 왕성에 도달할 때까지는 방도가 없으니 놔두고, 캄튼 일부터 깔끔하게 처리한 다음에 계략을 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어떻게 처리할 건데?”

“미리 포섭해 놓은 교황과 대신관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캄튼이 우리 쪽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니, 다수결을 통해 꼬리 자르기에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그 말에 버몬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또 그 돈에 미친 새끼들한테 부탁해야 하다니…. 캬악, 퉷!”

그의 가래침이 정확히 스콧의 얼굴에 명중했다.

벌써부터 입맛이 쓰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비밀이 밝혀짐으로써 닥쳐올 후폭풍은 단순 금화 따위로는 절대로 막아낼 수 없는 불가항력의 영역이니까.

버몬드의 입이 열렸다.

“아직 모든 준비가 끝나려면 멀었어. 그때까지는 절대 아르카디아 성국을 자극해서는 안 돼.”

“…….”

“교황 쪽은 내가 만나서 해결해 보지. 교황 쪽만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밀리오도 별수 없을 테니까.”

제아무리 인망 높은 밀리오라도 교황 및 추기경들이 일제히 반대하면 별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교내 규칙을 엄수하기로 유명한 밀리오라면, 그보다 지위가 높은 이들의 다수결에 굴복할 것이 뻔하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이다.

“로한은 어떻게 할 거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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