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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21화 (21/200)

제21화

테르디아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의 저택이 모조리 몰려 있는 벨타디아에서도 버몬드 백작의 대저택은 손에 꼽힐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이곳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은 두 명의 공작의 저택들밖에 없을 정도다.

저택만 봐도, 현재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괜히 비공식 3대 공작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지금 버몬드가 앉아 있는 저택 안 회의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벽화, 석상, 가구, 의자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고가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출발했다고?”

상석에 앉은 버몬드가 물었다.

그의 앞에는 수많은 귀족이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흔히 ‘버몬드 파’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오늘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 북문 밖으로 마차를 타고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바로 오른쪽 옆에 앉은 스콧 백작이 대답했다.

버몬드의 오른팔이자 두뇌로 불리는 버몬드 파의 이인자. 그가 스콧이었다.

“예상대로군. 원래 하찮은 계급 놈들이 왕실의 파티 초대장을 받으면 눈깔이 뒤집혀서 발정 난 개처럼 왕성으로 달려오거든. 큭큭큭.”

“흐흐흐….”

“킥킥킥.”

버몬드와 맞춰 같이 조소하는 회의실 내 귀족들.

버몬드가 스콧한테 지시했다.

“그 새끼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려. 알비치 가문 놈들보다 그 새끼를 살려두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혹시 버몬드 파에 안 좋은 영향이 미칠까 봐 알비치 가문을 모조리 몰살시켰던 버몬드다. 오죽하면 거금을 들여서 이단 심판관까지 회유한 다음 독침을 쏘게 했을까?

당연히, 로한도 버몬드 파를 위해 없어져야 한다.

그동안은 로한이 검강을 사용한다는 강자기도 했고, 주변에 밀리오를 포함한 이단 심판관도 붙어 있어서 쉽사리 못 건드렸었다.

하지만 지금, 암살하기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뭔데?”

“밀리오가 같이 있습니다.”

스콧의 말에 버몬드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 여신 따까리 새끼가 같은 마차에 타고 있다고?”

“네.”

“확실해? 그 새끼, 교황이 부르는 거 아니면 절대 키넨 성에서 안 떠나잖아? 절대 왕실 파티에는 참석할 리가 없는데?”

“저도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확인해 봤습니다. 첩자의 증언과 현재 밀리오가 장기 외출 중이라는 신관의 말을 대조한 결과, 확실한 정보입니다.”

버몬드의 미간이 눈에 띌 정도로 찌푸려졌다.

아주 큰 변수가 생겨 버렸지만, 그렇다고 로한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지. 그놈도 같이 죽여 버려.”

그 말에 스콧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밀리오까지?

“밀리오는 자칫 잘못했다간 커다란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현재 밀리오는 차기 교황이 될 인재라는 말이 돌 정도로 신관들과 평민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만약 암살했다가 자칫 버몬드가의 짓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다.

무엇보다 밀리오가 테르디아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한 명이라는 게 문제다. 암살도 힘들다는 소리다.

“내가 그걸 몰라서 말하는 줄 알아?”

버몬드의 목소리가 급격히 커졌다.

“어차피 밀리오도 언젠가는 없애야 할 놈이었어! 지금 교내에서 유일하게 우리 편을 안 드는 놈이 그 새끼야!”

현재, 테르디아 신관들의 수뇌부라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은 모두 버몬드의 편으로 만들어놓은 상태다. 교황, 추기경 및 대신관들까지 모두.

유일하게 그의 편을 안 들고 있는 자가 하필, 교내에서 가장 실력 좋고 민심 좋은 밀리오였다. 버몬드에게는 정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에 밀리오와 로한을 확실하게 제거해. 절대 소문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알겠습니다.”

대답하면서 스콧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누가 이 일에 적합할 것인가?

금방 답은 나왔다.

“캄튼.”

스콧이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던 건장한 남성을 불렀다.

최근에 A-급 헌터 자격증을 얻은 실력자, 캄튼이었다.

“이번 일은 자네한테 맡기겠네. 특별히 ‘차기 황제’님의 휘하 A-급 실력자 두 명도 붙여주지. 할 수 있겠나?”

“맡겨 주십시오!”

캄튼은 호기롭게 외쳤다. 동시에 눈동자를 빛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잘 잡으면, 자신도 최소 남작 이상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중대한 임무를 잘 해결했던 이들은 모두 지위가 올라갔으니까 말이다.

그의 눈빛을 본 버몬드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검강을 사용하는 놈 셋이면 충분히 성공하고도 남겠군.’

일단 캄튼부터가 지금 테르디아 내에서도 20명 안에 드는 실력자 중 한 명이다. 캄튼 한 명이 밀리오와 로한을 둘 다 상대할 수도 있는 수준인데, 여기에 A-급 두 명까지?

결과는 안 봐도 뻔한 수준이었다.

“팀 구성은 말파스 남작과 상의하게.”

스콧의 말에 캄튼은 회의실 문 쪽을 돌아보았다.

냉막한 인상의 깡마른 청년, 말파스 남작이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치 인형과도 같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말이다.

“…알겠습니다.”

캄튼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워낙 싸늘한 놈이라 평소에 말 걸기가 께름칙하지만 임무를 받은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 말파스가, 버몬드가의 모든 병력을 관리하는 총 책임자이기 때문이었다.

* * *

말파스에게 병력을 받은 캄튼은 버몬드 휘하의 A- 실력자 둘과 추가 암살자 인원들과 함께 워프진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벨타디아로 가는 도중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만호프 마을. 그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폐가 지하로 워프한 이들은, 빠르게 달려서 로한 일행이 지나가는 길목 쪽 도랑에 자리를 잡았다.

때는 해가 석양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늦은 오후였다.

대로 근처 밑에 숨은 암살 팀에게 캄튼은 지시를 내렸다.

“상대편은 검강을 쓰는 고수가 둘이니, 만약을 대비해 확실한 방법으로 잡겠소. 작전명은 어제 알비치 백작가를 전멸시킬 때와 똑같은 ‘코브라’요.”

그 말에 눈앞의 검은 복면의 사내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A-급 실력자였다.

이름은 없었다. 그래서 캄튼은 둘을 암살자처럼 1호, 2호라고 불렀다.

“1호가 1팀을 맡아 선제공격을 하시오.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하다가 독을 푼 다음 뒤로 후퇴하시오. 이후 해독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쯤 전원이 다시 공격해서 해치우도록 하겠소. 이의 있소?”

“…….”

“좋소. 1팀은 여기서 대기하고, 나머지는 뒤쪽 숲으로 빠져서 상황을 지켜보겠소. 이동!”

둘로 나뉜 암살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암살 팀이 도랑 쪽에서 모습을 감췄다.

남은 1팀은 조용히, 그리고 끈기 있게 그곳에 숨어서 기다렸다.

곧 이쪽으로 다가올 로한 일행의 마차를.

그 시각.

마차를 타고 있는 밀리오가 석양을 보며 대략 현재 시각을 가늠하고 있었다.

“음… 한 시간 뒤면 해가 완전히 지겠군요. 잘못하면 오늘 안에 만호프 마을에 도착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늦게라도 마을까지 갈 계획입니다. 어머니께서 노숙을 한번 하시면 몸 이곳저곳이 결려서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길은 아십니까? 만호프 마을은 숲 안에 있어서, 어두우면 숲길 찾기가 힘들 겁니다.”

“아주 잘 압니다.”

최첨단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로한에겐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는 게 더 불가능한 소리다.

해가 져서 깜깜해져도 상관없었다. 각막 위 스크린에 적외선 모드를 활성화시키면 끝이니까.

“그런데 밀리오 님.”

“네?”

“인제 그만 마차 안으로 들어가시지 그러세요?”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밀리오에게 말하는 로한.

밀리오가 마차에서 나와 마부석에 같이 앉아 있던 게 벌써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무려 해가 정수리 위에서 저 서쪽 산 너머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 둘은 좁디좁은 마부석에 붙어 앉아 있었다.

그 말에 밀리오는 또 헛기침했다.

“흠, 흠. 그게, 마차 안은 많이 답답해서… 잠깐 바람 좀 쐬러….”

바람을 열 시간 넘게 쐬고 있냐? 일반인이면 벌써 감기 걸렸겠다.

밀리오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 혹시 같이 앉아 있어서 불편하신 건 아니죠?”

“조금 좁긴 합니다만.”

“크흠! 죄송합니다.”

사실 엄청 좁았다. 1인석인 마부석에 건장한 청년 둘이 엉덩이를 반쪽씩 붙이고 앉아 있으니….

문제는 이렇게 눈치를 줘도 바로 안에 안 들어가려고 한다는 거다.

로한이 솔직하게 물어봤다.

“그렇게 제 동생과의 자리가 불편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고막 떨어지겠습니다.”

“앗.”

정확히 말하자면 고막이 아니라 최첨단 마이크 시스템이지만.

밀리오는 마차 안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 절대로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너무 마음이 편했습니다. 단지, 외간 남자가 한자리에 오래 같이 있는 걸 혹여나 불편해하실까 봐서….”

“편한 거 맞아요? 아까 보니까 어머니랑 동생만 말하고 대신관님은 한마디도 안 하시던데요.”

“크흠! 흠!”

로한은 행운아였다. 밀리오가 당황할 때의 습관이 헛기침이라는 걸 아는 대륙의 거의 유일한 사람… 아니, 사이보그니까.

‘이렇게 잘생긴 얼굴로 숙맥일 줄이야.’

누가 알겠는가?

천하의 그 밀리오가, 미인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찐이라는 사실을. 물론, 아린이 보통 평범한 수준의 미인이 아니라는 걸 고려는 해야 하지만 말이다.

마차 안에서는 그렇게 과묵하다 못해 입을 꿰맨 것처럼 조용하더니, 어색함을 못 참고 뛰쳐나와 마부석에 앉은 뒤부터는 몇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무언가를 느낀 로한이 급하게 고삐를 당겨서 마차를 멈춰 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전방에 20명 정도가 숨어 있습니다.”

로한의 대답에 놀란 밀리오가 급하게 체내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기감을 최대한으로 올린 상태에서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무려 검강을 사용하는 초고수인 그가 말이다.

“저는 안 느껴집니다만…. 도대체 어디서 느껴지는 겁니까?”

“대략 2km 밖 전방입니다.”

“네?”

자신도 모르게 되묻는 밀리오.

어떻게 사람이 2km 밖의 기운까지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윌리엄 칼슈타인 공작님 정도는 돼야 가능한 경지일 텐데?

로한의 말은 계속되었다.

“무조건 이 길을 지나가야 될 테니, 결국 만날 수밖에 없겠군요. 그러면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을 해봅시다.”

잠깐 생각하던 로한은, 곧 밀리오한테 말했다.

“이번 전투 때는 잠깐 쉬시죠.”

“아… 혼자서 충분히 처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뇨, 그 말이 아니라 정말 쉬시라는 소립니다.”

“……?”

이해 못 한 밀리오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온다.”

도랑에 숨어 있던 1호가 조용히 말했다.

부하들의 눈에는 안 보였지만, A-급 고수인 그의 눈에는 저 멀리 대로를 따라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마차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모두 전투를 준비해라.”

그의 말에 부하들 일부가 품에서 독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나머지 인원들도 중독에 대비하기 위해 해독약을 미리 복용했다.

그 상태로 그들은 1분 정도 더 기다렸다.

마차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100m 정도로 가까워지자, 1호는 지시를 내렸다.

“신호를 하자마자 모두 달려든다. 완벽하게 포위했다 싶을 때 두 번째 지시를 내릴 테니, 그때 독약을 뿌려라. 이후 후퇴하라는 명령을 들으면 본대가 있는 곳까지 전력으로 후퇴한다. 알겠나?”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1호는 곧 신호를 할 준비를 했다.

5초, 4초, 3초, 2초, 1초…!

막 소리치면서 달려들려고 할 그때.

그의 민감한 후각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

동시에 갑자기 몽롱해지는 정신.

급격히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깨달은 그는 확신했다.

‘수면 가루다!’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 올려 체내의 수면 기운을 몰아내려는 1호.

하지만 소용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멀쩡해졌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점점 더 졸리기만 했다.

‘무슨… 수면 가루가… 이렇게…!’

다른 이도 아닌 검강의 고수인 자신한테도 통한다고? 어떻게 단순 수면 가루 따위가?

곧 그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셔누스 가스(Somnus Gas)라고 한다.”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를 로한의 말을 통해 말이다.

“에드먼 박사의 최고 발명품 중 하나지. 어지간한 데르툴 놈들도 이 수면 가스 앞에서는 모두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너 같은 단순 초월자 경지의 인간이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니야.”

“…이…놈….”

“그래도 좀 오래 버텼네. 다른 놈들은 1초도 못 버텼는데.”

말하는 로한의 시야에는 주변에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1호의 부하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가스 냄새를 맡자마자 모조리 우수수 쓰러져 버렸었다.

“그럼 잘 자라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로한의 그 말을 끝으로, 1호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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