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로한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신체에서 광선검 손잡이를 분리하였습니다.]
오른쪽 허리 내부에 장착되어 있던 광선검 손잡이를 꺼낸 로한은 곧장 에너지원을 불어넣었다.
우웅-! 하고 공기가 심하게 떨리는 소리와 함께 빛나는 검신이 생성되었다.
“?!”
“뭐야 저거?”
일행들 모두가 놀라 웅성거렸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직 빛으로만 이루어진 검신이라니! 살면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장면이었다.
이들 중 가장 크게 놀란 이는 듀란이었다.
‘빛으로만 이루어진 검신…. 설마?’
많은 각성자들을 만나봤던 듀란은 저 현상을 알고 있었다. 살면서 딱 한 번, 저것과 똑같은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정체도 알고 있었다.
“검강…!”
그 말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거, 검강?”
“진짜야?”
“와, 어쩐지…!”
검기.
각성자가 되면, 이 기술 하나만으로도 준각성자와 아예 다른 차원의 존재로 변해버린다.
기본적으로 검기를 사용하지 못하면 C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을 절대 혼자 상대할 수 없다.
검강은, 그 검기를 한 단계 초월한 경지다. 일반 공격과 검기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면, 검기와 검강의 차이는 하늘과 우주, 혹은 그 이상이다.
그래서 검강을 사용할 줄 아는 각성자를 일컬어 사람들은 ‘초월자’라고 부른다.
가장 중요한 건,
“그럼 로한 쟤, A등급 이상의 실력자라는 소리잖아…?”
충격받은 표정을 한 멜렌데즈의 말대로, 초월자는 모두 최소 A등급 헌터다. 참고로 테르디아 왕국의 A등급 헌터는 20명을 넘지 않는다.
피터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받은 충격은 더더욱 컸다.
‘저, 저 새끼가… 아버지보다 강하다고?’
당장 로한이 각성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틸란 성의 최강자인 아버지, 조프리보다 강하단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고작 20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어린놈이?
피터슨은 쉬이 믿지 못했다.
하지만, 곧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에에에!
갑자기 대각선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바실리스크의 괴성.
우거진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무려 세 마리였다.
“이쪽으로 온다!”
“이 새끼들은 왜 한 마리씩 오는 법이 없어?”
일행들이 투덜대면서도 바로 방어 진형을 갖췄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로한이 곧바로 바실리스크한테 달려들더니 들고 있던 광선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 공격 한 번으로 전투는 끝났다.
무언가 베이는 소리도 없이 바실리스크 세 마리의 목이 동시에 몸통에서 깔끔하게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바실리스크들도 자신들의 목이 베인 줄 몰랐는지, 땅에 떨어진 머리들이 로한을 노려보는 듯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
일행들은 눈을 부릅떴다.
너무 놀라서 이번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바실리스크가 저렇게 지렁이 베듯 한 방에 목을 벨 수 있는 존재였나? 분명 그들로서는 전원이 전력을 다해야 간신히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와서 시체 좀 담아주세요.”
로한이 그들을 향해 말하지 않았다면, 다들 계속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뻔했다.
* * *
이후 일행의 복귀 과정은 로한의 원맨쇼로 진행되었다.
로한이 앞에서 광선검으로 바실리스크를 전부 깔끔히 죽이면, 일행들은 그 시체만 챙기면 되었다.
위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행들은 아까 로한과 피터슨 둘이 트롤들을 때려잡을 때보다 더 마음이 편안했다.
그 정도로 로한의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정말 엄청나군.’
뒤에서 계속 로한을 지켜본 듀란의 한마디 감상평이었다.
이젠 로한을 바라보는 그의 감정은 감탄을 넘어 경외로까지 변해가고 있었다.
틸란 성에서도 손꼽히는 각성자인 그가, 오늘 첫 헌터 일을 시작한 로한의 실력에 경탄하고 있었다.
‘지금 보니, 속도와 민첩성도 훨씬 빨라졌어.’
아깐 검강을 사용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에만 집중해서 잠깐 놓친 부분이었는데, 달려드는 속도와 검을 베어내는 몸놀림 또한 트롤을 상대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그렇다면, 초반에 트롤을 상대할 때는 힘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모습이 힘을 숨긴 거였다니. 허, 참.’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트롤을 단 한 방에 때려잡는 그때도 진짜 어마어마한 괴물 신인이 등장했다고 놀라워했었는데….
이제 보니, 로한 입장에서는 트롤이 너무 약해서 굳이 힘을 보여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충격이 심하겠군.’
듀란은 피터슨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굉장히 어둡고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렇게 자신감이 바닥난 표정은 오늘 처음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호적수라고 생각했던 로한. 나이도 비슷해서 더더욱 라이벌 의식을 불태웠을 텐데, 알고 보니 힘을 숨겼던 괴물 중의 괴물이라니.
순간 자신의 재능이 하찮게 느껴졌을 게 분명하다. 절대 못 넘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벽을 마주쳤을 때 느끼는 그 상실감. 듀란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감정이었다.
“피터슨 님.”
듀란은 그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
“피터슨 님도 제가 본 헌터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저는 피터슨 님이 금방 조프리 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단지….”
듀란은 로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로한이, 테르디아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일 뿐입니다.”
“…….”
듀란의 위로에도, 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피터슨의 어두운 얼굴은 전혀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로한의 활약에 힘입어, 듀란 일행 전원은 무사히 포탈 밖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이후 듀란이 던전 내 상황을 전달했고, 틸란 성 헌터 길드는 뒤집어졌다.
“당장 그 던전 폐쇄해!”
베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던전 입구에 C급 헌터 최소 세 명 이상 배치하고, 왕도 쪽 헌터 길드 본사에 연락해서 이 사실을 전해. 왕실에도 최대한 빠르게 소식 전달하라고 하고.”
“본사 연락은 직접 하시겠습니까?”
“음… 아냐. 캠벨 자네가 대신 해줘.”
“알겠습니다. 야, 직원들 다 회의실에 모여 있어! 바로 회의 들어갈 테니까.”
캠벨이 외치면서 바쁜 걸음으로 마법구 통신실로 걸어갈 때, 베론은 반대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도대체 왜 바실리스크가 거기서 나온 거지?”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낮은 등급의 던전에 출몰한 건 엘도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노련한 베론 입장에서도 매우 당혹스러웠다.
‘일단 조사 인원을 꾸려야겠군. 길드 본사에 인력을 좀 요청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방문 앞에 도착한 베론.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방 안에 들어가니, 알 수 없는 룬어가 가득 적힌 평평한 마법석이 하나 있었다.
베론은 들고 있던 마법석 팔찌를 바라보았다. 표면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다.
- 사용자 이름 : 로한
- 오늘 처치한 몬스터 : 트롤 27마리, 바실리스크 38마리.
- 현재 얻은 전공 경험치 : 531%
- 이제 B-등급으로 승격할 수 있습니다.
- 가까운 헌터 길드소를 방문해서 팔찌를 제출하세요.
‘…한 번에 5단계나 올랐던 신인이 있었던가?’
예전 기억을 더듬으면서 베론은 팔찌를 마법석에 갖다 댔다.
그러자 팔찌에서 빛이 나면서 새로운 글씨가 떠올랐다.
- B-등급 헌터로 승격했습니다.
- 사용자 이름 : 로한
- 현재 얻은 전공 경험치 : 31%
- 사용자 헌터 등급 : B-
베론은 다시 방을 나선 후, 이번에는 응접실로 향했다.
문을 여니, 듀란과 로한이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듀란이 웃는 낯으로 말을 걸었다.
“웬일로 자네가 팔찌 업데이트 작업을 다 하나?”
“직원들이 바쁠 땐 나라도 해야지. 자, 받게.”
베론은 자리에 앉으면서 팔찌를 로한에게 내밀었다.
“B-등급으로 승격한 걸 축하하네. 뭐, 자네 본 실력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랭크지만.”
“감사합니다.”
팔찌를 받는 로한을 향해 베론이 진지하게 물었다.
“듀란 팀원들에게 말은 들었네. 검강을 사용했다고?”
솔직히 못 믿을 말이었다. 20대 초반에 A급 헌터 이상이나 사용 가능한 검강을 보여줬다고?
아무리 같은 각성자에다가 보는 눈이 꽤 정확한 듀란의 말이라 해도, 이건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다시 한번 그 검강을 보여줄 수 있겠나?”
로한은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다시 광선검 손잡이를 꺼낸 뒤 에너지원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빛으로 된 검신이 솟아났다.
그걸 본 베론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말이었군.”
다시 로한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제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뛰어난 유망주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올려다보는 눈빛이었다.
베론이 말했다.
“캠벨이 오늘 있었던 일을 헌터 길드 본사에 전하러 갔네. 본사에서는 이 소식을 왕실에도 바로 보고할 거야. 그리고… 그 내용에는 로한, 자네에 관한 얘기도 포함되어 있네.”
“허, 진짜인가?”
“한 번에 5등급이 오른 신인 헌터의 소식을 어떻게 안 전할 수가 있나? 이건 헌터 길드의 기본 규칙 중 하나일세.”
테르디아의 헌터 길드 본사에 소식을 전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듀란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듀란은 로한을 돌아보며 말했다.
“축하하네. 하루아침에 왕국 최고의 스타가 됐어.”
베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테르디아의 모든 헌터와 귀족들이 자네의 존재를 알게 될 걸세.”
그 시각.
캠벨이 아직 마법구 통신을 켜지도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로한의 소식을 접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검강?!”
고풍스러운 가구와 장식들로 가득한 드넓은 집무실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급스러운 옷차림만 보더라도 고위 귀족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 중년의 귀족이 놀란 표정으로 계속 물었다.
“지금 검강이라 했느냐?”
“네, 아버지.”
앞에서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는 청년은 바로 피터슨.
그가 아버지라 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틸란 성의 영주이자 B+급 헌터, 조프리 록버튼 백작뿐이다.
“파티장이었던 듀란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허…!”
조프리가 알고 있는 듀란이라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보는 눈도 굉장히 정확한 사내다. 그런 듀란의 말이라면 조프리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킨 조프리가 입을 열었다.
“아들아, 가서 집사한테 내 말을 전해라.”
“어떻게 전할까요?”
“그 헌터에게 내일 저녁 만찬 초대장을 보내라고. 그 가족들에게도 모두 다.”
“……!”
그 말에 피터슨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