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포탈 내에서 사냥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때쯤 일행들은 어느 커다란 동굴 입구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 동굴 안에는 이 던전의 보스인 트롤 킹, 카르바가 있다.”
듀란이 신입인 로한과 피터슨을 위해 파티원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설명해 주었다.
“다들 알겠지만 보스는 일반 던전 내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처럼 혼자서 싸우겠다는 생각은 여기선 버려. 특히, 로한.”
듀란이 로한과 시선을 맞췄다.
“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오늘 충분히 파악했다. 내가 보기에 최소 C등급 이상이고, 잘하면 B등급 이상까지도 무난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로한이 고개를 숙일 때, 제일 뒤편에 서 있던 피터슨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 누구도 보진 못했다.
“하지만 카르바는 B급 이상의 헌터들도 혼자 잡기 힘들어하는 놈이다. 그러니까 괜히 오버하지 말고, 파티 사냥법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내 지시에 잘 따라. 알겠나?”
“네.”
“피터슨 님도 알아들으셨습니까?”
“…어.”
피터슨이 대답하는 목소리 톤은 매우 낮았다.
“자, 모두 준비되었으면 진입한다.”
말을 마친 듀란이 먼저 동굴에 진입했고, 일행들이 그 뒤를 따랐다.
각자 무기를 뽑아 든 채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이동하는 일행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으로 가득했다. 언제, 어디서 카르바가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드넓고 어두운 동굴 통로를 계속 걸어가던 일행.
대략 100m 이상 진입했을 때였다.
“잠깐만요.”
로한이 갑자기 일행들을 멈춰 세웠다.
그가 듀란에게 물었다.
“여기 D+등급 던전 맞죠?”
“갑자기 무슨 소린가?”
“왜 이 동굴 안에 바실리스크가 있죠?”
“뭐?”
바실리스크?
C+등급 던전에서나 등장하는 그 거대 뱀 몬스터가 왜 이 던전 안에 있단 말인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듀란이 한마디 하려고 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하지만 피터슨이 먼저 발끈해서 소리쳐 버렸다.
“그게 말이 돼? 어떻게 C등급 몬스터가 여기서 튀어나와!”
“아니, 있어요.”
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로한의 표정은 진지했다.
당연히 피터슨은 끝까지 믿지 않았다.
“있긴 뭐가 있어! 듀란 님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뭔데…!”
시에에엑!
“……!”
그때 모두의 표정을 굳게 만드는 괴성.
주로 C등급 던전을 드나드는 듀란 파티원들의 귀에는 너무도 익숙한 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동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빠른 속도로 기어 오고 있는, 15m 이상의 거대한 검은 뱀의 모습을 파티원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다.
진짜 바실리스크였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아니?!”
“저 새끼가 여기 왜?!”
이건 듀란 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들 당황했다.
도대체 왜 던전보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냐는 말이다!
그때 듀란이 크게 외쳤다.
“모두 대형을 넓게 벌려라!”
그 말에 듀란 팀원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두 팔 간격 이상으로 넓게 섰다. 몇 년 동안 던전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이 그들의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이 듀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로한이, 갑자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로한!”
놀라 외치는 듀란. 세 마리의 바실리스크한테 무모하게 돌진하는 로한의 모습이 흡사 횃불에 뛰어드는 나방과도 같아 보였다.
곧 바실리스크의 코앞까지 도달한 로한이 뛰어올랐다. 바실리스크의 머리까지 떠오른 로한을 향해, 바로 검은 맹독이 뿜어져 나왔다.
정면의 바실리스크가 내뿜은 것이다.
로한의 온몸이 순식간에 맹독으로 뒤덮였다.
‘이런!’
듀란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바실리스크의 필살기인 맹독에 저렇게 뒤덮이면, 설사 B등급 이상의 헌터라도 절대 무사할 수가 없다.
보나 마나 로한의 온몸은 순식간에 녹아 버렸…어야 했다.
[에너지 실드(Energy Shield)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와 함께 생성된 얇은 푸른 보호막은 맹독에 뒤덮여서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다.
‘아니?’
그래서 듀란은 놀랐다.
그의 눈에 로한의 모습은, 맨몸으로 멀쩡하게 맹독을 뚫고 나온 것처럼 보였으니까.
반면 바실리스크는 로한의 주먹 한 방을 버티지 못했다.
퍼억!
오늘 로한에게 최후를 맞이했던 트롤들과 똑같이 머리 터진 시체로 변해버린 것이다.
착지하는 로한을 입을 벌린 채 쳐다보는 듀란.
‘도대체 어떻게…?’
한 방에 바실리스크를 죽인 것도 그렇지만, 저 맹독에 온몸이 뒤덮였는데 저렇게 멀쩡하다고?
이런 경우는 오랫동안 헌터 생활을 한 듀란조차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때였다.
멍하니 서 있던 그의 귀에 로한의 외침이 들려온 것은.
“양쪽 벽 조심해요!”
듀란에게 경고한 그는 곧바로 다음 바실리스크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듀란은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양쪽 벽?’
몇 초 뒤, 그는 바실리스크가 땅속에 사는 몬스터라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 냈다.
‘설마!’
화들짝 놀란 그는 마나를 급격하게 끌어 올렸다. 그러자 듀란의 온몸에 푸른 마나 아지랑이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기감이 몇 배 이상 상승했다. 이제 평상시에 느낄 수 없었던 멀리 있는 몬스터의 마기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변한 것이다.
당연히, 동굴 벽 너머에 있는 몬스터의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있다!’
듀란은 금방 양쪽 벽 너머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바실리스크의 마기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다급히 외쳤다.
“모두 뭉쳐! 양쪽 벽에서 급습해 온다!”
그 말에 듀란 팀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듀란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섰다.
그와 동시에, 양쪽 벽이 무너지면서 바실리스크들이 등장했다.
“헉?”
“미친!”
기겁한 일행들을 양쪽에서 일제히 덮치는 바실리스크들!
“방어 태세!”
듀란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바실리스크의 꼬리 공격을 대검으로 힘겹게 막아내었다.
그때부터 계속 방어만 할 수밖에 없는 일행들.
평상시에 그들이 최상의 포지션을 잡고 싸워도 전력을 다해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바로 바실리스크다.
듀란 팀원들이 한데 뭉쳐야 간신히 C등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수준인데, 이놈들은 한 단계 더 높은 C+등급이다.
심지어 이런 식으로 급습해서 양공을 펼치면 당연히 반격은 꿈도 못 꾼다.
“이런 씨발! 계속 나오잖아!”
“도대체 몇 마리야!”
심지어 단 두 마리도 아니었다. 뚫린 양쪽 벽에서 바실리스크들이 한 마리씩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어느새 여섯 마리. 이러면 아예 승산이 없다.
그래서 듀란은 최선의 선택을 했다.
“방어하면서 입구 쪽으로 후퇴한다!”
도망치는 것. 그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멜렌데즈가 외쳤다.
“로한은?!”
“어쩔 수 없어!”
지금 로한을 챙기다가는 다 죽게 생겼다. 대장의 위치에서 그런 감정적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저 속으로, 로한에게 생명의 여신 클로토의 가호가 있기를 빌 수밖에.
모두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어에 힘쓰면서 입구 쪽으로 조금씩 후퇴하던 그때, 유일하게 얼굴이 밝아진 한 명이 있었다.
피터슨이었다.
‘큭큭큭, 저렇게 나대다가 죽을 줄 알았다.’
일행이 떠나면 홀로 남은 로한은 무조건 죽은 목숨이었다. 제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계속 늘어나는 바실리스크의 포위망에서 어떻게 살아남겠어?
지금 그가 혼자 있는 상황이었다면 동굴이 떠나가라 폭소를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앓던 이가 빠진 시원한 기분이 이런 느낌이려나?
그때였다.
갑자기 바실리스크들의 뒤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콰르르릉!
동시에 어두웠던 동굴 전체가 환해졌다. 너무 환해서 듀란 일행이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보호해야 할 정도였다.
다시 빛이 사라지고 일행들이 손을 내렸을 때,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로한!”
멀쩡히 서 있는 로한.
그리고 혀를 내민 채 축 늘어져 있는 바실리스크들의 시체였다.
“뭐, 뭐야?”
당황해서 외치는 피터슨의 얼굴에 조금 전 밝았던 표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듀란 역시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금 뭐였지?”
“ESF탄이요.”
“ESF…?”
처음 듣는 단어에 의아해하는 듀란을 향해 로한이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입구로 뛰어요!”
시에에에!
그때 동굴 안쪽에서 또다시 들려오는 괴성. 아직도 동굴 내에 바실리스크들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듀란 일행은 곧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입구까지 뛰어갔다.
잠시 후, 입구 바깥으로 일행들이 뛰쳐나오자마자 로한은,
“동굴에서 멀리 떨어지세요!”
라고 외치며 동굴 입구 쪽 천장을 주먹으로 힘껏 후려쳤다.
쾅! 하고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충격으로 곧 동굴 입구는 우르르 소리를 내면서 무너졌다.
덕분에 동굴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후우… 살았다.”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모두가 살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할 때, 듀란만이 정면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어. 다들 정면을 봐.”
일행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표정이 굳었다.
그들이 걸어왔던 대로에, 새롭게 등장한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트롤이 아니라, 전부 바실리스크라는 점이었다.
“이런 씨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오, 신이시여. 제발…!”
일행들은 이제 하늘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평소에 얼씬도 안 하는 C+등급의 포탈 몬스터가 갑자기 세 단계나 낮은 D+던전에 무더기로 등장하냔 말이다!
일행 중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 한 명, 로한만 빼고 말이다.
‘아데가(Adega) 현상이군.’
다른 던전 지역에 사는 몬스터들이 타 던전 지역으로 넘어오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앞으로 4년 뒤에 만들어지는 단어다.
로한이 기억하기로 이 현상은 지금으로부터 2~3년 뒤부터 눈에 띄게 많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시기, 그러니까 15년 전에는 한 번도 안 일어났던 걸로 알고 있는데….
‘왜 벌써 나타난 거지?’
이건 로한도 의아한 부분이었지만, 지금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바실리스크들을 물리치면서 전원을 안전하게 포탈 입구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다.
로한이 듀란에게 물어보았다.
“바실리스크 상대하실 수 있습니까?”
“한 마리는 어찌어찌 되겠지만, 두 마리 이상은 무리다.”
솔직한 듀란의 대답에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제 말에 따라 주십시오.”
그 말에 모두가 로한을 쳐다보았다.
반박은 없었다. 아까 전, 바실리스크의 머리를 터뜨리던 모습이 아직도 그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지금부터 제가 선두에서 바실리스크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뒤에서 안전하게 기다리다가, 제가 저것들을 모두 죽이면 시체들을 챙기고 뒤따라오세요.”
나 혼자 다 처리할 테니 괜히 나서다 다치지 마라.
로한의 말뜻을 해석하면 딱 이거였다.
듀란이 물었다.
“정말 혼자 가능하겠나?”
로한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