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로한.
이미 저 새끼 때문에 피터슨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골고를 잡아서 아버지를 뛰어넘는 재능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려 했는데! 그랬는데…!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로한이 독차지했다. 최고의 유망주라는 평가도 로한이 가져가 버렸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로한에 이은 이인자 신입이라고 인식해 버린 게 가장 문제였다.
그래선 안 된다. 대륙 최고가 되기 위해선, 언제나 일인자여야 한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돼서는 안 된다!
‘오늘 무조건 저 새끼를 뛰어넘어야 해!’
지금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로한과 경쟁하려고 일부러 아버지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다.
꼭 로한이 오늘 참가하는 파티에 어떻게든 넣어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당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행히 기회는 찾아왔다. 평소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조프리가 직접 듀란을 찾아가 부탁한 것이다.
기회가 왔으니, 이젠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차앗!”
피터슨은 마나를 전력으로 검에 몰아넣으면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트롤과의 거리.
곧 트롤이 들고 있던 두꺼운 나무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지만, 이를 예상했던 피터슨은 옆으로 한 발짝 움직여서 그 공격을 피해냈다.
이번에는 피터슨의 검이 움직였다.
촥! 하고 트롤의 오른쪽 발목이 절반 이상 베였다. 순간 중심을 잃은 트롤은 비틀거리느라 추가 공격을 제때 하지 못했다.
그 빈틈을 피터슨은 놓치지 않았다.
“하아압!”
기합과 함께 피터슨은 있는 힘껏 검을 트롤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소리와 함께 트롤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5초.
E등급 헌터인 피터슨이 D+등급의 포탈 몬스터, 트롤을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오오오!”
뒤에서 일행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피터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이번엔 내가 이겼어!’
지금 일행들의 반응을 보니 로한보다 내가 먼저 잡은 것이 분명하다!
그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져가던 그때.
일행들의 뒤이은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로한 저놈 괴물이잖아?”
“한 1초 걸렸나?”
“쟤 주먹 휘두르는 속도 제대로 본 사람?”
뭐라고?
피터슨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로한 쪽으로 돌아갔다.
“……!”
동시에 그의 눈이 커졌다.
로한 쪽 트롤 역시 죽은 상태였다. 그런데 시체 상태가 좀 심각했다.
머리가 터진 것은 물론, 내장이 들어 있는 상체 역시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마치 바로 앞에서 대포를 맞은 것처럼.
그동안 수련하면서 수많은 대륙 내 몬스터를 잡았던 피터슨도 처음 보는 상태의 시체였다.
‘저걸 단순히 주먹으로 만들어 냈다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로한을 바라보는 피터슨.
하지만 이미 수많은 증인이 뒤에 서 있었다.
“놀랍군.”
둘을 향해 다가오는 듀란 역시 감탄하고 있었다.
정확히, 로한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골고를 때려잡았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군. 내가 예상한 기준을 한참 넘어선 전투력이야.”
“감사합니다.”
“실력은 대충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깔끔하게 머리만 공격하게. 이렇게 내장을 다 터뜨리면 돈이 전혀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듀란은 이번에는 피터슨을 돌아보았다.
“피터슨 님도 잘하셨습니다. 전 이 정도 실력을 보여주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
“이 정도면 합격입니다.”
칭찬을 마친 후 돌아서는 듀란.
하지만 남겨진 피터슨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로한은 예상 이상의 전투력이고, 나는 예상한 만큼의 전투력이라고?’
같은 칭찬이지만, 평가가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피터슨의 두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로한한테 졌다!
‘또 졌다고? 저 새끼한테?’
지금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전투력을 보여준 건데.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길 줄 알았는데!
그는 로한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연한 저 모습이 그의 눈에 더더욱 거슬렸다.
‘개자식!’
노려보는 피터슨의 두 눈에 어느 순간부터 열등감의 불씨가 자그맣게 생겨나 타오르고 있었다.
* * *
둘의 대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들이 있는 이세계는, 테르디아 왕국 내의 D랭크 포탈 중에서도 가장 난도가 높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당연히 이곳의 트롤들은 다른 D랭크 포탈 트롤들보다 훨씬 강했고, 숫자도 훨씬 많았다. 얼마나 많냐면, 로한과 피터슨이 쉬지 않고 계속 대결을 펼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아압!”
촤악!
피터슨이 기합과 함께 또 트롤 한 마리의 목을 베어냈다.
“헉, 헉, 헉….”
무릎에 손을 얹고 간신히 선 자세로 헐떡거리는 모습.
동시에 그는 팔찌를 확인해 보았다.
- 현재 처치한 몬스터 : 트롤 16마리.
- 현재 얻은 전공 경험치 : 181%
- 이제 E+등급으로 승격할 수 있습니다.
- 전공 경험치를 19%만 더 올리면 D-등급으로 승격할 수 있습니다.
- 가까운 헌터 길드를 방문해서 팔찌를 제출하세요.
‘많이도… 잡았네….’
열여섯 마리나 잡았으니 당연히 지칠 수밖에.
게다가 트롤들이 보통 강한 게 아니라서 매번 전력을 다해야 간신히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아직 노련하지 못한 피터슨 입장에서는 더더욱 빠르게 마나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퍽!
그때, 옆에서 또 한 번 수박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피터슨의 귀에도 익숙한 소리였다.
보나 마나 로한이 또 트롤 머리를 주먹 한 방으로 터뜨렸겠지.
“다 정리되었습니다.”
전투를 마친 로한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머리가 없어진 트롤 시체가 세 구나 있었다. 이번엔 한 번에 세 마리를 처치한 것이다.
딱 3초 만에 전투가 끝났으니, 사실상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그를 돌아본 피터슨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에게는 로한의 전투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 새끼는 도대체 왜 안 지치는 건데?’
던전에 들어온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그동안 피터슨보다 더 많은, 20마리 이상의 트롤을 처치한 로한이었다.
근데 처음 포탈에 들어올 때와 상태가 똑같았다.
힘든 기색 한번 없고, 옷에 피도 거의 안 묻어서 말끔한 로한의 모습은 전신이 트롤의 검은 피로 범벅되어 헐떡이는 피터슨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일행들의 평가도 일방적이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3초 걸렸네. 닭 세 마리를 잡아도 이것보단 오래 걸리겠다.”
“로한 덕분에 이번 사냥이 너무 편하다~!”
“너 다음 던전은 어디 돌 거야? 그때도 우리랑 같이 갈래?”
이미 듀란 파티원들은 로한의 실력에 놀라는 것을 넘어, 최대한 로한과 친해지려고 비비고 있었다. 최소 D랭크 이상으로 이루어진 헌터들이 그 정도로 로한을 인정하는 것이다.
파티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로한. 지친 모습으로 홀로 쓸쓸히 서 있는 피터슨과 너무나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괜찮습니까?”
그나마 파티장 듀란이 유일하게 피터슨을 챙기긴 했다.
“이제부터 선두 말고 파티 중앙에 서십시오. 이미 D+랭크 이상의 실력이라는 건 확인했으니, 더 무리하지 마시고….”
“아니.”
피터슨은 억지로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그러니까 계속 선두에 서겠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어.”
고개를 끄덕인 피터슨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걸 본 듀란은 더 말리지 못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홀로 남은 피터슨은,
‘아직 안 끝났어!’
라고 속으로 외치며 이를 악물었다.
물론 로한이 좀 더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현저하게 밀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잡은 트롤 숫자가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도 않고!
‘저 새끼도 분명 지금 지쳤을 거야. 억지로 태연한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 확실해!’
그렇게 믿고 싶은 피터슨.
파티원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로한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 속 열등감의 불길은, 아까보다 몇 배는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파티원들에게 돌아간 듀란이 멜렌데즈의 귀에만 들리도록 말했다.
“이제부터 피터슨 님 바로 뒤에서 비상 대기해. 지금 많이 지친 상태라서, 언제 싸우다가 위험에 처할지 몰라.”
“오케이.”
대답한 멜렌데즈는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다. 오늘 로한과 피터슨 덕분에 한 번도 뽑아 들지 않았던 검이었다.
듀란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로한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뚝심 하나로 억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트롤과 싸우던 피터슨.
계속된 전투로 마나가 바닥이 나자, 피터슨의 전투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촤악!
“…엇?”
또 트롤 한 마리의 목을 벤 피터슨은 당황했다.
검에 마나가 많이 안 실렸는지, 이번에는 트롤의 목을 절반밖에 못 베어낸 것이다.
그리고 재생력이 뛰어난 트롤은 절대 이 정도 상처로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분노한 모습으로 곧바로 피터슨에게 역공을 펼쳤다.
피터슨은 능숙하게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하려 했다. 그런데, 지친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힘이 빠져서 순간 조금 늦게 반응해 버린 탓에, 결국 트롤의 몽둥이가 정확히 피터슨의 복부를 가격하고 말았다.
퍽!
“커헉!”
비명과 함께 뒤로 훌쩍 날아가는 피터슨.
털썩 바닥에 쓰러진 그를 향해 트롤은 다시 한번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멜렌데즈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순간 눈부신 반응 속도를 보이며 달려 나간 그가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소리와 함께 절반만 베였던 트롤의 목이 완벽하게 베였다.
“헬레나!”
듀란이 외쳤다. 그러자 헬레나가 재빨리 피터슨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녀가 신성력을 끌어 올리는 동안, 다른 대원들이 사방을 점해서 혹시 모를 트롤들의 추가 공격을 대비했다.
힐 마법을 사용한 뒤 헬레나가 피터슨의 상처 부위를 만져보았다.
“뼈는 괜찮은 거 같은데…. 이제 일어나 보세요.”
“크윽…!”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피터슨은 혼자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복부에 남아 있는 고통에 오만상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지만, 완전히 치료된 건 아니라서 당분간 전투는 불가능해요. 마나도 바닥나신 상태라 자가 치유 속도도 매우 느릴 테고요.”
헬레나의 말을 들은 듀란이 바로 일행들에게 지시했다.
“이제 헬레나와 피터슨 님이 최후방에 선다. 스타인이 중앙으로 옮기고, 멜렌데즈가 피터슨 님의 자리로 이동해.”
“아니, 난 아직 더 싸울 수…!”
“그만.”
반박하려는 피터슨을 듀란은 바로 제지했다. 각성한 마나가 실린 목소리는, 이번에도 피터슨을 단 한 방에 합죽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듀란은 몸을 돌려서 걸어갔고, 일행들도 재빨리 트롤의 시체를 챙긴 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어쩔 수 없이 일행 제일 뒤에서 따라가는 피터슨.
하지만 얼굴에 떠오른 볼멘 표정은 숨기질 못했다.
‘망할. 이게 아닌데. 이래선 안 되는데….’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는 피터슨.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최후방으로 밀려난 이상 선두에 선 로한과 자신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 두 마리!”
“갑니다!”
퍽! 퍽!
보라. 지금도 혼자서 가볍게 트롤 두 마리를 상대하는 로한의 모습을.
자신이 다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한 마리씩 사이좋게 잡았을 텐데.
이제 모든 공을 로한한테 넘겨주게 생겼다.
“나이스~!”
“진짜 강하다, 강해!”
“저 정도면 최소 C랭크 이상 같아 보이는데?”
피터슨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행들은 연신 로한의 활약상에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