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10화 (10/200)

제10화

“왜 이제 오나?”

로한에게 따지는 피터슨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신입 헌터 주제에 제일 늦게 오다니. 너 때문에 몇 명이 기다리는 줄 아나?”

“아직 약속 시각 10분 전입니다만.”

“약속 시각보다 빨리 모이는 게 던전 파티의 암묵적인 룰이라는 걸 모르는군! 다른 사람들은 괜히 너보다 일찍 나오는 줄 알아?!”

피터슨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져 갈 때, 그를 말리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괜찮으니까 그만하시죠.”

피터슨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고개를 점점 더 위로 들었다.

2m가 넘는 거인, 듀란과 시선을 맞추려면 그렇게 머리를 들 수밖에 없었다.

듀란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처음이라 모를 수도 있죠. 그리고 만나자마자 언성을 높이시면 단합이 중요한 팀플레이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아니, 그래도 너무 늦게…!”

“그만.”

듀란의 목소리에 순간 힘이 실렸다.

그 힘은, 순간 피터슨을 움찔하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로한은 생각했다.

‘목소리에 각성한 마나를 실었군.’

듀란은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었다. 그는 엄연히 D등급의 헌터이자, 테르디아에서 몇 백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각성자였다.

그리고 각성자는, 인간을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자다. 고작 준각성자일 뿐인 피터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듀란이 다시 힘을 뺀 원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조건으로 파티에 합류하시지 않았습니까? 따르지 않으실 거면 다른 던전 파티를 알아보십시오.”

“…….”

피터슨을 조용하게 만든 듀란은 로한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자네가 로한이군. 반갑네. 어제 골고를 혼자서 생포했다면서?”

“저도 반갑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하하하, 지금 그 소식을 모르는 헌터가 틸란 성 안에 어디 있겠나? 이봐! 다들 이리 와서 인사 나누게. 그 소문의 주인공인 로한이야.”

듀란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느새 듀란의 뒤에서 등장한 그의 동료 파티원들이 모두 로한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두크먼이라고 하네.”

“난 호퍼일세! 잘 부탁하네! 골고를 혼자 때려잡았으면 이거, 나보다도 강한 거 아냐?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당장 지금 나도 혼자서 골고를 생포하는 건 힘들 거 같은데. 아, 난 멜렌데즈라고 부르면 돼.”

“에이, 다들 엄살은? 난 스타인일세. 미리 말하는데, 이놈들 말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 허풍이 70%니까.”

“지는?”

“뭐 인마? 난 너희들이랑 비교하면 하이엘프급으로 솔직하지!”

인사하면서 서로 끝없이 티격태격하는 파티원들을 보며 로한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이들의 유쾌한 분위기는 똑같았다.

“헬레나입니다. 다들 말이 좀 많죠?”

마지막으로 선한 얼굴의 여성 신관, 헬레나를 끝으로 통성명을 모두 마쳤다.

악수를 마친 로한이 듀란에게 물었다.

“피터슨 님도 같이 가십니까?”

듀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에 급하게 합류되었네. 자, 다들 모였으니 이제 던전으로 가자!”

“예에!”

“일하러 갑시다~!”

곧 듀란을 선두로, 8명의 파티원 모두가 서문 바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검은 포탈이 그들의 목적지였는데, 걸어가면 대충 2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그 20분 동안에도 일행들은 끝없이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떠들어댔다. 로한과 피터슨한테도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어서, 자연스럽게 둘 다 듀란 파티 특유의 분위기에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대장.”

멜렌데즈가 선두에 선 듀란의 옆에 붙었다.

이후 뒤쪽 눈치를 보면서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괜찮겠어?”

“뭐가?”

“오늘 처음 헌터 일 시작하는 핏덩이가 두 명이나 있잖아.”

같은 D랭크 헌터라고 하더라도 신입과 숙련자의 전투력 차이는 생각보다 꽤 많이 난다. 아무리 눈치 빠른 청년도 이병이 되어서 자대에 처음 배치받으면 매우 어리바리한 것처럼.

만일 로한과 피터슨, 둘 다 던전 안에서 어리바리하게 굴면 결국에는 남은 여섯 명이 배로 고생하게 된다. 괜히 두 신입의 안전을 챙기다가 그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심지어 저 귀족 도련님은 실력 검증도 안 됐잖아? 로한이야 골고를 혼자 때려잡아서 전투력을 증명하기라도 했지만, 쟨 뭔데?”

멜렌데즈가 가장 우려하는 건 바로 피터슨이었다.

같은 신입이라도 로한이야 일행들과 같은 D등급이니까 상관없다 치자. 하지만 피터슨은 E등급이다. 중간에 E+, D-등급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일행들과 무려 세 단계나 차이 나는 셈이다.

한 단계만 차이 나도 던전 내 몬스터의 수준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지는데, 무려 세 단계라니.

“아무리 영주가 직접 부탁했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렇다. 피터슨의 합류는 아버지인 조프리의 요청으로 인해 성사된 것이었다.

실제로 듀란과 조프리는 예전에 헌터 생활을 같이하면서 꽤 친분이 있었고, 엘도르 대륙에서 인맥을 통해 자식의 헌터 교육을 부탁하는 건 꽤 흔한 일이었다.

피터슨의 랭크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어떤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어젯밤에.”

조용히 듣고만 있던 듀란이 입을 열었다.

“영주님이 나한테 피터슨을 추천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 자기 아들은 최소 D랭크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으니, 오늘 최소한 민폐를 끼치진 않을 거라고.”

“그걸 어떻게 믿어?”

못 믿는 멜렌데즈에게 듀란은 말을 이었다.

“틸란 성 영주의 말은 못 믿어도, B+랭크 헌터인 조프리의 말은 믿을 수 있지. 안 그래?”

“…음.”

그 말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제 아들이라 가산점이 조금 붙는다고 하더라도, 자신들보다 랭크가 훨씬 높은 조프리가 보는 눈이 훨씬 더 정답에 가까울 테니까.

“그리고 우리도 평소보다 한 단계 낮은 D+던전 단계에 가는 거니까, 둘이 신입 티 좀 낸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마.”

“흠… 오케이.”

멜렌데즈는 결국 듀란의 의견을 인정하고 뒤로 빠졌다.

이후 그는 다시 다른 일행들의 시답지 않은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이 뭔 얘기했어?”

“네 뒷담.”

“뒷담? 대놓고 앞에서 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뒷담까지 했다고!”

“얼마나 욕할 게 많으면 그렇게 앞에서 까도 뒷담할 거리가 남아 있겠어? 어? 큭큭큭!”

“와~! 말하는 거 좀 봐. 얘들아, 저 새끼가 저런 놈이라니까? 아주 질이 안 좋은 놈이야!”

호퍼가 뒤쪽의 로한, 피터슨에게 외쳤다. 로한은 그저 소리 죽여 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조프리가 직접 피터슨을 이 파티에 꽂았다고?’

로한은 둘의 대화를 다 들어버렸다.

안 듣고 싶어도, 그의 민감한 청력 시스템에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의 목소리가 안 들려올 리가 없다.

‘권력이 좋긴 좋군. 아들한테 이렇게 낙하산식으로 더 많은 경험치도 먹일 수 있고.’

보통 헌터는 자신의 등급에 맞는 던전만 입장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던전을 출입하고 싶어도 많아야 두 단계 이상만 가능하다. 그나마도 해당 등급의 파티원들과 함께 입장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그런데 지금 피터슨은 무려 네 단계나 위인 D+던전에 입장하려 하고 있다.

피터슨이 D랭크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건 말건 간에 이건 낙하산이 맞다.

로한은 흘끗 피터슨을 돌아보았다.

“……!”

몰래 로한을 노려보고 있던 피터슨은, 로한과 눈이 마주치자 찔끔했다.

그는 뭐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시 닫고는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출발하기 전 듀란이 했던 경고가 다시 떠올라서 참은 모양이었다.

로한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골고 때문에 화가 많이 났네.’

아무래도 어제 자신 때문에 골고를 놓친 게 그렇게 한으로 남았나 보다. 안 그러면 오늘 첫 만남부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게 설명이 안 된다.

“이 오우거 똥같이 생긴…!”

“지는 와이번 앞발 주름처럼 생겨서…!”

“도착했으니 그만 싸워요, 좀.”

바로 앞에 보이는 검은 포탈을 가리키며 헬레나가 말렸다. 그제야 20분 동안 쉴 새 없이 떠들던 일행들의 수다가 끝이 났다.

듀란이 포탈 앞의 헌터 길드원들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일세. 한 달 만인가?”

“그쯤 됐군요. 요즘 D랭크 쪽 던전에 안 오셔서 얼굴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왔지 않나. 하하하.”

“큭하하하! 근데 여기 던전은 갑자기 왜 오셨습니까?”

“코멧 성 상인 협회에서 트롤의 피를 좀 많이 구해달라고 하더군. 제시한 가격이 워낙 괜찮아서 승낙을 안 할 수가 없었어.”

“그렇군요. 이거 가져가실 거죠?”

길드원 한 명이 커다란 포대 자루 같은 걸 듀란한테 넘겼다. 호퍼가 그걸 받아서 등에 멨다.

로한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아공간 마법 룬어가 새겨진 포대 자루군.’

이른바 몬스터의 시체를 편하게 담을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물품이다.

헌터 개개인이 구매하기에는 마법 룬 자체가 워낙 비싸므로, 길드에서 다수를 구매한 후 대여 비용을 받고 빌려주는 식으로 사용한다.

듀란에게 은화 몇 개를 받은 길드원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피터슨 님, 몸조심해서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특히 피터슨 앞에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길드원이었다. 피터슨은 대답 없이 손을 휘저은 뒤 바로 듀란 일행의 뒤를 따라 포탈 안으로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피터슨은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몬스터 시체를 목격했다.

‘트롤…!’

목이 깔끔하게 잘려 있는 트롤의 시체.

그 앞에서는 듀란이 자신의 대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든 트롤을 단번에 처리한 것이다.

늘 있는 일인 듯, 듀란은 평상시와 똑같은 얼굴로 일행들에게 입을 열었다.

“파티 진형을 배치하겠다. 최후방은 두크먼과 헬레나. 중앙에는 멜렌데즈, 호퍼, 스타인이 선다. 그리고 로한, 피터슨.”

듀란이 신입생 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셋은 나와 함께 전방에 선다.”

“!”

“분명 어젯밤에 자신 있으시다고 말씀하셨죠, 피터슨 님.”

듀란의 물음에 피터슨은 살짝 떨리던 두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대답하는 목소리에도 역시 힘이 실려 있었다.

“물론이다.”

그의 눈빛을 본 듀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신입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초반에 한번 체크해 보겠다. 자, 이동하기 전에 모두 마법석 팔찌 활성화하는 거 잊지 마라.”

‘아, 맞다.’

피터슨은 그제야 다급히 팔에 찬 마법석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약하게 빛이 나더니, 팔찌의 표면에 글자들이 나열되었다.

- 헌터 전용 가이드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사용자 이름 : 피터슨 록버튼

- 사용자 헌터 등급 : E

- 현재 던전 난이도를 자동으로 확인합니다….

- 현재 던전 난이도 : D+

- 현재 던전에서 주로 마주칠 수 있는 몬스터 : 트롤, 미노타우르스.

자동으로 대기 중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현재 던전 난이도를 알아내는 뛰어난 성능. 괜히 재발급할 때 금화 10개라는 비싼 가격을 받는 게 아니었다.

듀란의 말이 이어졌다.

“팔찌를 켜놓고 몬스터를 잡아야 팔찌에 자동으로 기록이 된다는 걸 잊지 마라. 아무리 맹활약을 펼쳐봤자 팔찌가 꺼져 있으면 길드에서 절대 인정해 주지 않는다.”

정확힌 신입인 로한과 피터슨을 바라보면서 설명을 마친 듀란은 몸을 돌렸다.

“이제 대로를 따라 이동한다.”

곧 조용히 이동하기 시작하는 일행들.

아까 전 시끄럽게 떠들던 긴장 풀린 청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은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사방을 주의 깊게 살피며 이동하는 프로페셔널 헌터들만 남아 있었다.

첫 전투는 금방 시작되었다.

걸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검은 피부로 물든 트롤 두 마리가 일행들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왔다.

듀란이 로한과 피터슨에게 지시했다.

“각자 한 마리씩 상대해 봐라. 나머지 인원은 따로 지시할 때까지 대기한다.”

듀란의 지시에 뒤로 한 걸음 빠지는 일행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둘의 실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둘의 경쟁 구도도 만들어졌다.

여기서 누가 먼저 트롤을 잡느냐에 따라 듀란 팀에서의 대우가 확연하게 차이 날 것이 뻔하다.

피터슨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판이 깔린 것이다.

‘드디어 내 자존심을 되찾을 시간이 왔다.’

그는 흘끗 로한을 노려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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