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7화 (7/200)

제7화

15년 전.

당시에도 로한은 저 잘생긴 소년이랑 같이 포탈 안으로 들어가 시험을 봤었다.

결과는 둘 다 합격. 하지만 처음 받은 랭크는 달랐다.

로한은 평범하게 F급으로 시작했지만, 당시 피터슨은 뛰어난 전투력으로 포탈 보스인 골고를 처치했고, 그 전공을 인정받아 E급으로 헌터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테르디아 내에서도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뽑혔었지.’

그때 피터슨은 틸란 성 주변에서 가장 돋보이는 신인 헌터로 명성이 자자했었다. 헌터 등록 이후 몇 달도 안 되어서 C+등급까지 올라갔던가?

그래서 한때 테르디아 왕국을 대표하는 유망주 10명 안에 이름을 올렸었다.

능력 좋고, 집안 좋고, 잘생기기까지 해서 사교계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정도까지만 로한은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지구로 소환돼서 모른다.

‘진짜 잘생기긴 했군.’

로한의 눈에 비친 피터슨은, 성형이 보편화된 지구에서도 잘생겼다는 소리를 매일 듣고 살 법한 미남이었다.

“오셨습니까?”

베론은 피터슨에게 묵례했다. 헌터 길드장이면 여느 평범한 귀족보다도 훨씬 급이 높지만, 그래도 해당 영지의 차기 가주한테도 예의를 차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늦진 않았겠지?”

“네. 딱 제시간에 오셨습니다.”

“다행이군. 여기 있으면 되나?”

“네.”

피터슨은 자연스럽게 응시자들 제일 앞에 섰다.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고급 경갑과 눈에 띄게 하얀 피부 때문에 백 명이 넘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그는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베론은 곧 시간을 확인하더니, 옆의 직원에게 물었다.

“이제 1시다. 안 온 사람 누구 있나?”

“없습니다.”

“그러면 출발하지. 모두 4열종대로 서라!”

곧 로한과 피터슨을 비롯한 응시자 일행들은 베론의 뒤를 따라 북문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험 장소는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곳에 있었다.

로한은 정면에 위치한 커다란 검은 포탈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지구로 소환되기 전, 매일 밥 먹듯이 드나들었던 이 지긋지긋한 포탈을 또다시 보게 될 줄이야.

‘뭐, 그래도 데르툴 놈들의 포탈보단 낫긴 하지.’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포탈 앞을 지키고 있던 틸란 성 길드 소속 헌터들이 베론에게 인사했다.

[F- 3구역]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는 포탈 앞에는 수많은 헌터들과 길드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이루고 있었다.

“별일 없었나?”

“오전에 세 마리 정도 튀어나온 게 전부입니다. 피해는 없었습니다.”

“좋아. 모두 포탈 안으로 입장한다! 신관들과 헌터들도 나를 따라오시오!”

곧 베론의 뒤를 따라 모두가 포탈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로한은 제일 마지막에 입장했다.

발을 내딛는 순간, 주변 공기가 확 바뀌었다.

“와…!”

“여기가, 포탈 안…!”

청년들은 커다래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구름으로 가득 차서 햇빛이 완전히 가려진 하늘. 때문에 대낮임에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었다.

황폐한 황야와 군데군데마다 보이는 검붉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과 몬스터의 시체처럼 보이는 뼈다귀들.

이것이 일행들의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지금부터 헌터 라이선스 실기 시험을 시작하겠다.”

베론이 모두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시험은 간단하다. 이 포탈 내부에 사는 고블린을 처치한 후, 그 증거를 가지고 오면 된다. 시체를 통째로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 고블린인 걸 증명할 수 있는 귀나 코 등을 베어서 갖고 오면 된다.”

“저기… 한 마리만 죽여도 되는 건가요?”

“한 마리만 잡아도 정식 헌터로 등록은 가능하다. 단!”

베론의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죽인 고블린의 숫자에 따라 헌터 등급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한 마리만 잡고 시험을 마치면 F-등급에서 시작하지만 세 마리 이상 잡아 오면 F등급, 다섯 이상은 F+등급, 열 마리 이상은 E-등급으로 시작한다. 만약 이 구역에 사는 보스인 골고를 잡으면, 처치한 고블린 숫자와 상관없이 모두 E등급 이상을 주겠다.”

“어… 혹시, 단체로 파티 짜서 잡아도 인정해 주나요?”

“물론이다.”

그 대답에 응시자들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베론은 바로 그들의 속마음을 읽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참고로 포탈 내 고블린들은 마나를 실어서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

“여기 있는 모두가 마나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란다. 아닌 사람은 지금이라도 개죽음당하지 말고 포탈 밖으로 나가도록.”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정도 능력도 없이 헌터를 지원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을까?

“지금 1시 21분이니, 모두 원하는 만큼 사냥한 후 6시가 되기 전까지 이곳으로 다시 집합하도록. 6시까지 안 온 응시자는 바로 실격 처리할 테니 유의해라. 그러면 시험을 시작하겠다!”

베론이 외침과 동시에 응시자들은 움직였다.

일부는 먼저 고블린을 잡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고, 일부는 눈치를 보면서 대기했다.

그리고 일부는 보스를 잡기 위한 파티를 결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10분 정도 지나니, 10명 정도를 제외한 모든 응시자가 포탈 입구에서 멀어졌다.

남아 있는 사람 중에는 피터슨이 있었다.

“자, 그럼 슬슬 한번 가볼까?”

양쪽 어깨를 가볍게 휙휙 돌린 피터슨은 베론 등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조금 이따 보자고.”

이후 피터슨은 여유롭게 숲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휘파람까지 부는 걸 보면 싸우러 가는 건지, 놀러 가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심지어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베론과 헌터들조차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피터슨 님은 가볍게 통과하겠죠?”

직원의 물음에 베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은 최소 D등급 이상 던전에서 놀 분이다.”

틸란 성 영주인 조프리와도 친분이 있는 베론은 피터슨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가 보기에 피터슨의 재능은 조프리를 오히려 뛰어넘었으면 뛰어넘었지, 절대 그 밑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피터슨 님보다 다른 응시자들을 걱정해야 한다. 신관들은 치료 준비를 모두 마쳤나?”

“거의 끝났습니다. 1분만 더 시간을 주시면….”

직원이 대답하던 그때였다.

“으아아악!”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아악!”

“내 팔이! 내 팔이… 커헉…!”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처절한 목소리들.

신관 중 신입으로 보이는 일부가 당황해서 베론을 쳐다보았지만, 베론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전부 죽었다. 신경 쓰지 말고, 아까 말한 대로 직접 찾아오는 부상자만 신경 써라.”

현직 헌터이기도 한 베론은 워낙 경험이 풍부해서, 비명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단말마만 들리고 더 소리가 안 들려온다면, 100% 사망한 것이다.

옆의 직원이 혀를 찼다.

“쯧쯧쯧. 단순한 고블린이라고 무시했다간 저 꼴이 나지.”

지금 응시자들이 잡아야 하는 몬스터는 그냥 대륙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블린이 아니라, 그보다 힘과 민첩성이 몇 배는 더 뛰어난 포탈 내 고블린이다.

F-급 헌터가 최소 세 명이 달라붙어야 포탈 고블린 한 마리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방심하고 1대1로 싸웠다가 낭패를 본 것이 분명하다.

“이번 시험 때도 최소 절반 이상 죽어 나갈까요?”

“뻔하지.”

헌터 라이선스 테스트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생존자가 절반 이상 남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베론은 고개를 돌려 포탈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출발하지 않은 10명가량의 응시자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서 있었다. 아까의 비명 때문이었다.

대부분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걸 본 베론이 충고했다.

“포기하고 싶으면 바로 포탈 밖으로 나가면 된다. 물론, 포기하면 향후 3년 동안 헌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잃게 되니 유의하도록.”

“…….”

“이세계에서 몬스터들한테 산 채로 잡아먹힐 바에야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잘 생각해라.”

이후 베론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저들은 이미 99% 탈락이 확정된 사람들이다. 타고난 재능 이전에 목숨을 건 전투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는 절대로 헌터로서 먹고살 수가 없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베론과 엮이지 않을 사람들이니 더 관심을 줄 필요가 없다.

“길드장님.”

그때 옆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

베론은 그의 이름을 기억해 내었다.

“…로한? 맞나?”

“네.”

“뭔가?”

로한이 질문했다.

“아까 골고를 잡으면 최소 E등급을 준다고 하셨죠.”

“그랬지.”

“그러면, 혼자서 골고를 생포해 오면 몇 등급을 주실 겁니까?”

베론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혼자서 여기 보스, 골고를 상대하겠다고? 그것도 생포를?

로한의 얼굴을 바라보던 베론은 입을 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물어보는 참가자가 있군.”

매년 이 청년처럼 물어보는 응시자가 최소한 한 명 이상은 꼭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서 골고를 실제로 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무모하게 덤벼들다가 골고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건 틸란 성에 한정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테르디아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보면, 아주 극소수지만 단신으로 골고를 생포해 왔던 이들이 몇 명 있긴 했었다.

그걸 아니까 로한도 물어보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골고를 홀로 생포해 왔던 이들은 모두 D등급으로 헌터를 시작했다.”

베론은 로한에게 대답을 이었다.

“만약 골고를 생포해 온다면 바로 D등급을 주지.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알겠습니다.”

로한은 바로 몸을 돌려 베론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숲이 아닌 황야를 따라 쭉 직진하는 로한의 뒷모습을 계속 응시하는 베론.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의 무모했던 참가자들과는 달리, 로한은 진짜 사고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까 캠벨이 했던 말 때문일까?

“…그래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베론은 이성적인 남자였다.

아무리 타고난 마나 활용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상대가 골고라면 다른 문제다.

골고는 현재 필드에 널려 있는 잡다한 고블린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 * *

한편,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는 로한.

머릿속에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맵핑 시스템을 활성화 중입니다.]

[목표 지점까지 5.211km 남았습니다.]

동시에 로한의 각막 스크린에는, 현재 들어와 있는 F- 던전의 지도가 자세하게 펼쳐져 있었다. 맵핑 시스템으로 던전 전체를 스캔한 결과였다.

덕분에 이곳 지형은 물론, 응시자들과 고블린들의 위치도 알 수 있었다. 각각 하얀 점과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지도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숲속에 커다란 붉은 점이 하나 표시되어 있었다.

이놈이 아마 골고일 것이다.

‘이대로 일직선으로 이동하면 되겠군.’

로한은 다른 응시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골고를 향해 이동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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